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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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회
천무학관 대표단 일행은 구궁산의 유일하게 나 있는 산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누구든 구궁산을 넘으려면 이 길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산길을 걷고 있으니 당연히 산을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내려올 수도 있지만 점차 위쪽의 구름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등정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산의 특성상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길은 험해지고 녹음은 더욱더 푸르게 우거지고 있었다. 거의 십 장에 가까운 나무들이 길의 사발을 에워쌌다.
보통 이런 외길 험한 곳에는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 통칭 “영업”을 하는 자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이런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근야 방치해 놔둔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범죄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 ……”
어느 순간, 나는 근처에 매복이 다가온 것을 알아챘다. 먼저 가서 공격할까 생각했지만 그다지 대단한 자들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 주위에는 아까부터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한들이 두 겹으로 인의 장벽을 쌓은 채 포위하고 있었다.
쏴악
두 겹으로 둘러쳐진 인의 장막 중 대표단 앞쪽이 좌주로 갈라지며 한 명의 중년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대다수의 험악한 인상의 장한들과는 반대로 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중년 사내였다. 그러나 험악한 장한들 사이에 있으니 오히려 그의 평범함이 비범하게 보였다.
게다가 지위도 결코 낮지 않은 듯 했다.
“뭐하는 놈이시오?”
대표단 인솔자 중 한 명인 고약한 노사가 나서서 거칠게 물었다. 누가 이름 아니랄까봐 더러운 인사치레였다. 그러자 중년인은 정중히 포권지례를 취하며 인사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소속이 뒤바뀐 듯한 모습이다.
“허허허, 안녕하십니까. 저는 녹림칠십이채 소속의 자그마한 산채 하나에서 부채주 직을 미력하나마 수행하고 있는 이송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녹음이 우거진 화창한 날에 여러분들을 만나뵙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아! 그렇소이까?”
고약한은 엉겁결에 마주 인사하고야 말았다. 산적 치고는 너무나 정중한 어조였다. 과연 산적이 맞는지 직업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용건이 뭐요?”
고약한이 짧고 거칠게 물었다.
“아! 간단합니다. 저희 산채를 맡고 계시는 분께서 갑자기 나이에 걸맞기 않은 주책없는 짓을 하려고 하셔서요. 죄송하지만 가급적 그일에 협조해 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저도 별로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은데 지위가 깡패라서요.
참, 나잇값도 못 하고 민망스럽게시리…, 쯧쯧!”
“야! 임마! 먹물! 누구 주책이라는 거야. 네가 나 늙어가는 데 보태준 거라도 있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헤치고 나온 이를 보며 대표단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먹물”은 아무래도 자신을 이송이라 소개한 사람의 별명인 모양이었다.
철침처럼 뻣뻣하게 난 검은 수염, 오른쪽 눈가를 가로지르는 굵은 상처, 부리부리한 눈, 송충이같은 빽빽한 눈썹, 그리고 널찍하 등짝에 매단 흉악하게 생긴 검정색 도끼. 어느 모로 보나 매우 정상적으로 생긴 산 도적이었다. 전혀 산적답지 않은 말끔한 부채주와는 지극히 대조되는 인상의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자는 지극히 산적스러웠다.
“당신은 또 누구요?”
늑기한의 질문은 사실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저렇게 험악하게 생긴 얼굴에 부채주보다 위인 인물은 딱 한 명밖에 없는 것이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가 바로 이 산적 패의 두목이었다.
“그럼 아까 듣지 못한 용건이나 마저 들읍시다.”
늑기한을 포함한 이들 대표단 일행은 산적 두목, 그들 표현으로는 채주에 해당하는 자의 갑작스런 등장응로 이송에게 미처 용건을 마저 듣지 못했던 것이다.
갑자기 산적 두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부끄러워하는건가?’
그는 얼굴을 붉힌 채 다시 팔꿈치로 재촉하득 부채주 이송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만둬어어어!”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역겨움의 파도에 익사할 뻔한 사람들 모두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속으로 꽥꽥 비명을 질러댔다. 주위 산적들의 얼굴을 쭈욱 둘러보니 핼쑥한 것이 그들도 결코 속이 편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뭐, 뭐라고?”
염도가 입을 쩌억 벌렸다. 눈알이 금장이라도 떼구르르 굴러 떨어질 듯 부릅떠진 그의 두 눈은 불신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옆에 서 있는 노학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야! 노학아! 지금 내 귀가 잘못됐냐?”
노학의 표정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표정은 지금 청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그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선풍검룡 위지천은 두 눈에서 불을 뿜으며 길길이 날뛰었고, 여자 관도들은 모두들 벌레라도 본 듯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여인들의 행복한 꿈 중 하나가 불한당에게 침범당한 데 대해 분노했다.
“지,지…, 지금 저기 저 아이를 댁의 채주 아내로 달라는 그 말이오?”
반문하는 고약한의 손가락 끝은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히 떨리고 있었다. 평소 냉혹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떨림이 황당함 때문인지 아니면 분노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부끄럽지만 귀하의 말에 단 한 점의 틀림도 없소이다.”
대답하는 부채주 이송의 얼굴은 부끄러운과 민망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도 이 요구가 얼마나 민망하고 주책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예린을 대신해 그녀의 사저인 독안봉 독고령이 전신에서 분노와 살기를 동시에 분출해 내고 있었다.
“당신 미쳤소?”
고약한이 지금 이 상황을 단 한마디로 단순 명쾌하게 요약했다. 이송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휴우, 저도 차라리 그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이런 걸 어쩌겠습니까. 저도 채주에게 광증이 생겼다고 의심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윗사람의 명령을 아랫사람의 도리로 거역할 수는 없군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뭬야, 미치긴 누가 미쳐! 난 정상이야, 정상! 말짱하다고!”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채주가 발끈해서 외쳤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정상이랍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이송이 말했다. 그의 태도는 풀이하자면, 내가 보기엔 확실히 미친 것 같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니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그대로 말해 주었다, 라는 정도였다.
“불가!”
낮지만 전체를 사로잡을 만한 힘이 담긴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비류연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채주 임개가 물었다. 자신의 백년지대사에 느닷없이 끼어든 불청객이 그는 무척이나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정신병자에게 가르쳐줄 이름 따윈 가지고 있지 않군요.”
냉소적인 어조로 비류연이 대답했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달라는 데 그가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뭐라고, 이런 건방진 놈! 어르신들 이야기하는데 꼬마 놈은 저쪽 구석에 가서 찌그러져 있거라!”
비류연의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가 걸렸다.
“후후, 광증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눈까지 멀었군요. 겉보기엔 아직 정정한 것 같은데 정말 안됐네요.”
”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어린놈이 듣고 있자 하니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은 애송이가 어디서 함부로 지껄이느냐. 아직 꼬마라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본좌가 친히 네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이번 여행은 생각 외로 흥미가 진진한 것 같군. 좋은 일이야! 쿡쿡쿡!”
비류연의 쿡쿡거리는 조소를 본 주작단원들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컥! 화났어! 화났어!”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난 몰라! 난 몰라!”
그들의 비류연의 조소 한 번에 집단 혼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 뭐하냐.”
” 넌 입만 살았냐. 빨리 덤벼봐!”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임개가 외쳤다.
“당신 같은 하찮은 조무래기에게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군요. 여기 이 사람과 이 사람의 친구들이 당신을 상대할 겁니다.”
비류연이 지명한 사람은 바로 남궁상이었다.
뭔가 속닥속닥거리더니, 남궁상이 앞으로 나섰다.
“우선 우리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은 댁들의 무지와 무모함과 용기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오.”
“뭬이야, 이런 쳐죽일 놈들!”
남궁상의 정중한 인사에 임개는 금장 발끈하고 말았다. 이송이 급히 충고를 했다.
“두목님, 초반부터 적의 격장지계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자중하십시오.”
부두목 이송이 작은 목소리로 충고했다.
“뭐,뭐… 벽장이…, 뭐 어쨌다고?”
“에휴, 그냥 상대의 시비에 말려 화부터 내지 마시라구요.”
하는 수 없이 이송은 쉬운 말로 풀어주었다. 그러나 임개는 은혜를 곧 원수로 갚고야 만다.
“너 금방 비웃었지?”
“네? 무슨 말씀이시죠?”
이송은 어깨를 으쓱하며 시치미를 뚝 뗐다.
“야! 이 망할 놈아! 쉬운 말 놔두고 왜 어려운 말 써?”
“일단 통성명부터 하는 게 순리인 것 같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