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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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회
빙검이 흠칫거렸다. 아마도 나를 정천맹의 감시원이나 비밀요원 정도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음모론이 팽팽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 숨겨진 정체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빙검처럼 쓰잘데기 없이 머리굴리기를 좋아하는 헛똑똑이한테는 슬며시 뉘앙스만 풍겨주면 알아서 상상한다. 도리어 염도처럼 이것저것 제쳐두고 자백을 들으려고 하는 타입이 더욱 까다로웠다.
이윽고 비류연이 모사령에게 무언가 자백을 들으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과정을 지난 열흘간 질리도록 봐왔으므로 이번에는 굳이 구경하러 가지 않았다. 게다가 모사령의 자백 내용도 알고 있었다.
‘ 대충, 화산까지는 3일 거리 정도가 남았나.’
섬뢰마검과 잔뢰마도에게서는 생각보다 캐낼만한 묘리가 있었다. 생사결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비장의 절초도 모조리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3일, 즉 한 달동안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기로 했다.
섬서성(陝西省) 화음현(華陰縣).
중원오악(中原五嶽)의 하나인 화산(華山)이 위치한 지역이다.
그 안에 자리한 거대한 시진(市塵), 이곳은 실제로 화산의 그림자가 아침 저녁으로 드리워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화산에 닿기 전에 위치한 가장 큰 마을이기도 했다. 성벽만 없다 뿐이지 화산파의 그늘 속에 차곡차곡 성장한 그 거대함은 일개 성(城)에 필적할 정도였다.
낙뢰곡의 큰 싸움 이후 우리는 별다른 방해 없이 수월하게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부상자들 때문에 조금 행보가 늦어지기는 했지만 크게 일정에 차질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서부터는 화산파의 앞마당이기 때문에 사방 곳곳에 화산파의 이목이 퍼져 있어 천겁우는 물론이고 흑도 세력마저도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조천우를 앞세운 천무학관 대표단들은 매화객잔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이 마을 제일 큰 객잔 앞에 와 있었다.
“이곳입니다.”
“으음, 수고했다.”
빙검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묵기로 되어 있는 숙소는 이곳 지리를 손바닥 보듯 알고 있는 조천우가 있었기에 조금도 헤매지 않고 올 수 있었다.
화산파 바로 앞에 위치한 도시에서 가장 큰 주루의 소유주는 누구일까?
아마 백이면 백, 화산파 제자의 주루일 것이다. 아니면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던가.
이곳뿐만이 아니다. 다른 대문파가 위치한 곳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 문파에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마을의 가장 큰 이익 집단은 백이면 백, 이들 문파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객잔뿐만 아니라 표국,주루 심지어는 기루까지 관련된 경우도 있다.
그들은 사문의 비호를 받으며 그 성세와 세력을 넓혀 나간다. 어디 감히 뒷골목 무뢰배 따위가 그들에게 삥을 뜯을 수 있겠으며, 상납금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목숨이 여벌로 서너 개나 된다면 모를까, 어불성설이었다.
‘ 화산파의 성세가 대단하군.’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 광경을 종남파의 장로들이 봤으면 짜증이 나서 미칠려고 할 것이다. 같은 구파일방이며 동지이지만, 동시에 섬서 일대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거대세력들이기도 했다.
고풍스럽게 꾸며진 간판의 모퉁이를 보니 화산파의 독문 문양인 매화 모양이 작게 새겨져 있었다. 이곳이 화산파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하긴, 이름부터가 매화객잔이니 얼마나 적나라하게 화산파와의 관계를 광고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역시 이곳의 주인 또한 공식대로 화산파의 은혜를 입은 속가제자였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연줄과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들어가지!”
빙검이 말했다. 앞으로 그들은 이곳에서 며칠 묵어갈 예정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화산 제일의 명소인 매화객잔에 잘 오셨습니다. 저희 매화객잔은 항상 손님 여러분들의 편의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막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이들이 범상치 않은 무리인 것을 눈치 챘는지 총관이 급히 달려 나와 인사한다. 투철한 직업 정신 탓인지 서론이 좀 긴 감이 없잖아 있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긴 서론이 끝나자 그제서야 손님을 여지껏 밖에 세워두었다는 것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검과 용이 춤추는 곳에서 왔네!”
검룡(劍龍)은 천무학관의 상징이었다. 빙검의 대답에 총관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크게 떠졌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 가시고자 하는 곳은 어디십니까?”
망설이지 않고 다시 빙검이 대답했다.
“매화가 지지 않는 곳!”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주인님께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지요.”
문답이 끝나자 총관은 부리나케 몸을 돌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밖에까지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미 화산파의 기별이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오늘 영업은 끝이다. 남은 손님들은 모두 돌려보내도록!”
그러고는 2층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황급히 달려 올라가며 외쳤다.
“등(燈)을 일제히 밝혀라. 귀빈께서 왕림하셨다. 모두들 나와 극진히 영접하라!”
빙검을 위시한 대표단들은 왕후장상에 부럽지 않은 요란한 대우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들은 영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정중한 사과의 말을 들으며 객잔 밖으로 나서야만했다.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사죄의 의미로 음식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곧 수그러들었다.
객잔의 각 방에 묵고 있는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곧 가까운 객잔이 수배되었고, 짐은 일사분란하게 그 쪽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들 역시 지금까지의 숙박비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불만불평을 삼켜 버렸다.
곧 문이 닫히고 ‘영업 종료’를 알리는 팻말이 내걸렸다. 지나가던사람들이 그 팻말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12시진 낮과 밤을 잊고 해와 달과 더불어 휴일도 영업하던 매화객잔에 ‘영업 종료’의 팻말이 걸렸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던 것이다.
몇몇 호기심이 동한 사람들이 매화객잔에 접근했지만 그 내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듣지 못한 채 정중하게 쫓겨나고 말았다.
다른 천무학관 대표들은 모두 식당으로 향했지만 모용휘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욕탕이었다. 아마 그동안 자신의 몸에 쌓였던 먼지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평소의 그도 남들이 보기에는 과연 저게 오랫동안 여행을 한 자가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깔끔하고 깨끗했다.
그가 즐겨 입는 백의에는 무슨 조화가 부려져 있는지 때도 끼지 않았다. 참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곧 산해진미가 그들의 탁자 앞으로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술도 나왔다. 빙검과 염도는 오늘만큼은 술 마시는 것을 허용했다. 계속 해서 이어져 나오는 갖가지 미주(美酒)를 본 염도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그동안 굶주렸던 술 벌레가 그의 뱃속에서 요동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화산 도착을 알리는 성대한 축하연은 한밤이 깊어가도록 그칠 줄 모르고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대표단들은 오래간만에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따뜻한 욕조에서 묵을 때를 씻어낸 뒤 폭신한 침대에서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밤이 깊어가고 달이 점점 기울어감에 따라 쌓였던 피로가 푹신한 이불 속으로 풀려나갔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 유천영, 잠시 나와 보아라.”
빙검이 나를 불렀다.
나는 짐을 풀어놓고는 빙검을 따라서 인적없는 곳으로 갔다.
달이 밝았다. 빙검이 조용히 말했다.
” 종남파 본산에서 파문령이 내려졌다. 너를 천무규약지회 대표단에서 탈퇴시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