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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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회
분했다. 참을 수 없이 분했다.
끓어오르는 증오, 주체할 수 없는 충동.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고 싶었다. 그 순간 모든 증오가, 원망이 그의 오른팔에 집중되었다.
쓸모없는 짓!
그는 왼손으로 검을 잡아들고 단칼에 그의 오른손을 베어버렸다.
서걱 소리와 함께 맹수의 표호 같은 울부짖음이 그의 목을 통해 터져나왔다. 그러고도 한동안 그는 암흑 속을 헤맸다. 무신 혁월린이 없었다면 아마 그는 그 깊은 어둠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탓이지요. 패배가 당연했다는 것일랄까요. 자해라니… 어리석음의 극치로군요.”
또다시 비류연의 입에서 인정사정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주위의 공기가 삽시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해쓱한 얼굴로 연못의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류, 류연!”
“자, 자네 어쩌자고…”
도대체가…
호랑이 간이라도 삶아 먹었나? 사람들은 도대체 비류연이 뭘 믿고 저렇게 막 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비류연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뻔뻔할 정도로 당당했다.
하지만 검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업자득이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그에게서 공포나 경외보다는 질투를 느꼇다네! 그래, 노부가 느낀 것은 강한 질투심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자에 대한 강렬한 질투 말일세!”
그것은 산 밑바닥을 기는 자의 산 정상에 오른 자에 대한 질투였다.
문제는 그 산이 노력만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는 산이란 것이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산. 혹은 신을 거역하고 하늘을 거부한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그 산에 ‘그’는 오르고 검치는 오르지 못했다.
나는 순간 그에게 공감하고 말았다.
격렬하게.
‘ 질투.’
언제나 천재의 재능을 지닌 자를 꺾고자 노력했다. 그 감정 속에 질투가 섞여있는 건 틀림없었다. 단지 그것을 동력으로 삼았을 뿐이지만 섭운명의 마음은 시리도록 공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와 같은 좌절은 겪지 못했다.
…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그와의 거리는 겨우 이 장.
그러나 왠지 이 거리를 좁히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은… 어째서일까.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스스로를 패배자로 전락시켰지.”
검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 세 사람이 그에게 느낀 감정은 모두가 틀렸지만 세사람 모두 그의 잔상에 영혼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같았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해줄 수 없지만 그 후의 이야기는 해줄 수가 있네! 혈신이 기적적으로 패퇴하고 천겁혈세가 끝난 이후, 강호의 수뇌들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네.
그가 남긴 흔적을 강호상에서 제거하기로 말일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징표는 남아 있어 봤자 공포 이상을 낳을 수 없다는 결론이었지. 그러나 이 강호상에서 단 한곳, 이곳만은 남겨두었네. 후일 등장할 인재가 ‘그’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시험하는 장소로서 말일세. 무신과 무신마께서는 강호 무림에 그런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한 토양을 마련하기 위해 천무학관과 마천각을 각기 세우고 백 년동안 교육에 힘썼다네.
그리고 백 년만에 천무봉의 봉인이 풀리고 자네들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일세! 시험과 시련을 받기 위해서!”
검치의 말은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아직도 천겁의 그림자는 완전히 씻겨나가지 않았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어둠 속에서 그 힘들은 강대해져 왔네. 이제 자네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게! 자네들의 실력을! 과연 자네들이 이곳을 통과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보겠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비류연이 말했다.
“물론 폐가 되지 않으니 뭐든지 물어보게나!”
섭운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러자 비류연이 곤란하다는듯 뒷통수를 긁적였다. 남에게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저기, 폐가 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는데요?”
그러자 검치 섭운명의 시선이 비류연을 향했다.
“재미있는 젊은이로군!”
무뚝뚝하던 노인의 검흔투성이 얼굴에 처음으로 유쾌한 감정이라 부를만한 것이 떠올랐다.
“‘그’라고 남들이 쉬쉬거리는 그 남자. 에, 그러니깐 천겁혈신 위천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작자입니까? 이렇게 계속 듣고 있다 보니 혹시나 손발이 합쳐서 열여덟 개는 아닌지 문득 걱정이 들어서요.”
검치는 그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스무 개라네!”
“네?”
“뭘 그리 놀라나? 손가락과 발가락이 합쳐서 스무 개라는 이야기였네!”
별거 아니라는 투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노인장이었다. 검치의 이런 행동에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할아버지도 꽤 하시는 군요.”
비류연이 감탄하며 말했다.
섭운명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곧 결정을 내렸다.
”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그의 인상착의를 알고 있는 사람은 현 무림에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백 년 전 그와 직접 대면한 노부 또한 그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면 대답해줄 말이 궁하다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얼굴의 반을 덮는 기묘한 모양의 은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지. 그 가면 밑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네. 그러나 다들 단 한가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
“그것이 무엇인가요?”
호기심이 격발된 비류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까 전부터 자꾸만 이상한 예감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에게는 한가지 특이한 신체적 특징이 있었지. 그것은 바로 은가면 밖으로 드러난 그의 두 눈이 때때로 황금빛으로 번뜩인다는 것이었어. 사람들은 그것을 금색의 마안이라 부르고. 그를 황금안의 마신이라 부르며 두려워했지!”
‘ 황금안이라.’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 … 헛!”
나는 경호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며칠 전에 마주쳤던 의문의 괴인, 월승혼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나중에야 그의 능력이 용안(龍眼)이라는 설명을 나예린에게서 들었다. 나예린은 내게 설명해 주었다.
[ 강호에는 원래부터 용안을 계승하던 일족이 있었다고 해요. 그 일족의 정체도, 성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강호는 그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죠. 그 능력 하나만으로도 무림의 일각을 차지할 정도의 위력을 보였기 때문이에요.] [ ……] [ 전설에 따르면, 그 일족의 직계가 용안의 능력을 극한으로 터득하면 눈이 황금색으로 바뀐다고 해요.]… 그렇다면.
월승혼이 용안의 일족이라고 한다면, 천겁혈신 또한 용안을 지닌 자였다는 것인가?
내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이보게나! 재미있는 청년!”
아마 비류연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지명당한 비류연이 노인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자네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흐음…”
비류연은 갑자기 어려운 난제라도 만난 사람처럼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뭐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상태로는 세치(약 9cm)라고 할 수 있죠.”
현재 상태라 함은 묵룡환을 차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검치는 그런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대표단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 했다. 무공의 경지를 묻는데 세 치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