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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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회
다음 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은설란의 마차를 이끌던 마부였는데, 은설란이 어딘가로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천무학관 사람들에게 부탁하려는 것 같았다. 비류연은 흔쾌히 승낙했고, 얼떨결에 장홍, 모용휘, 나예린도 같이 가게 되었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꽤나 긴 과정이었다.
비류연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 너도 갈테지?”
” 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경험을 쌓을수만 있으면 좋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하자, 이윽고 은설란을 구출하는 결사대가 결성되었다. 평균무위가 절정 이상인 가공할 구출대였다.
가는 곳은 풍매객잔.
대륙제일표국이라는 중원표국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중원표국이 의심스럽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중원표국이란 껍데기를 쓰고 있는 의문의 세력이 중요한 것이다.
은설란의 무공 또한 절정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를 쉽사리 납치할 정도라면 당연히 천겁령밖에 없다.
‘ 이렇게 또 마주치게 되는군.’
이상하게 천겁령과 자주 맞부딪히는 것 같았다. 비뢰쌍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의아니었지만 많이 싸운다. 그들이 우연치 않게 내 일행의 안전을 위협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술시 경.
천무봉에서 인적없는 길을 찾아서 내려가려던 도중, 마천각 소속의 진홍의 검희 석류화와 구출대가 마주쳤다.
먼저 움직인 것은 염도였다. 염도는 석류화가 반응할 틈도 없이 습격해서 혈도를 제압하고 말았다.
“끄응…”
염도는 인상을 팍팍 구겼다.
일단 제압은 했지만 그 뒤처리가 문제였다.
“어떻게 하지? 그냥 여기 놓고 갈까?”
자신이 저질러 놓고도 염도는 어쩔 줄 몰랐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은 거죠?”
나무라는 말투.
너무한다는 듯 비류연이 염도를 쏘아보았다.
“밤의 산이 얼마나 추운 줄 알아요? 우리 사부가 말씀하시길 미인은 찬데 두는게 아니라고 했어요!”
천벌 받을 짓은 용납하지 못한다는 기세였다.
“그럼…?”
“메고 가죠!”
점혈당해 있던 석류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비류연의 한마디 더 덧붙였다.
“게다가 일단 함께 가면 공범이 되잖아요. 죄는 공유하면 공유할수록 공유한 사람들의 입을 무겁게 만드는 신비한 마력을 지니고 있죠.”
비류연의 입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게다가 그러면 고자질하기도 곤란해지겠죠!’
그런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비류연은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그 때 이진설의 뒤에서 효룡이 나타났다. 다들 놀라고 말았다.
‘제정신이 아니라도 몸은 무공을 기억한다는 건가?’
무척이나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현재 일행에게 짐이 하나 더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죠?”
이진설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되돌아 가기는 늦었어!”
장홍이 말했다. 게다가 되돌아가서 돌려놓는다 해서 또 따라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귀찮더라도 이제는 이 짐을 업보라니 하고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지금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여기까지 온 것을 보니 앞으로도 잘 따라올 수 있겠지.”
그리하여 마침내 비류연은 결론을 내렸다.
“데려가죠!”
그리고 야밤의 산악질주가 시작되었다.
해시정(약 22시경) 섬서성 화음현 화산 천무봉 입구 근처.
그 짧은 시간에 신월의 달빛 하나만을 횃불 삼아 그 험한 천무봉을 내려온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몇몇 사람은 몇번인가 발밑의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성대하게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그러나 겨우 한 시진만에 천무봉의 산중을 돌파하느라 녹초가 되어버린 우리라 해도 한가롭게 쉴 새는 없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구출대는 곧장 은설란이 납치되었다는 풍매객잔으로 향했다. 아니,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선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있었다.
“풀어줘요!”
비류연이 명령하자 염도가 들쳐메고 있던 석류하를 내려 놓고는 혈도를 풀어주었다. 석류하가 싸늘한 눈치리로 우리를 쏘아 보며 말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 주실까요?”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였다. 거의 짐짝 취급을 당한 그녀였다. 그녀의 분노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었다.
비류연이 시선을 들어 모용휘를 바라보았다.
“무례를 용서하시십오, 석소저!”
모용휘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역시 쌓아놓은 품격, 가닥이있기 때문이라 그런지 그의 말은 잘 먹혔다. 그만큼 그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고, 타인을 감화시키는 기도가 있었다.
때문에 비류연도 그 유용성을 참작해 모용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분위기 조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사과가 아니라 이유에요.”
석류하의 차가운 시선이 좌중들을 향해 꽂혔다.
“그건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도움이요?”
“예, 저희들은 지금 소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듣고 있던 비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도와줄 사람을 자체적으로 납치하는게 유행인가 보군요.”
“그 일은 정말 면목 없게 되었습니다. 돌발상황이라 그런 식의 대처 밖에 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모용휘가 끈질기게 말을 이었다.
“소저께서 저희들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왜 천무학관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거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요? 그것도 저를 이런 곤경에 빠트린 사람들을요?”
조용하지만 차가운 한기가 풀풀 날리는 그런 말이었다. 물론 그녀가 저토록 냉정하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조금 전 거의 보쌈에 가까운 꼴을 당했던 것이다.
“이것은 저희 천무학관의 일이 아니라 마천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즉, 소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천무학관 사람이 아니라 마천각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무슨 말도 안되는! 절 희롱하시는 겁니까?”
석류하가 큰소리로 외치며 반박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모처에 감금되어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분을 악적의 손아귀 속에서 반드시 구하고 싶습니다.”
“누, 누구죠? 그 사람은?”
사뭇 진지한 모용휘의 태도에 석류하의 목소리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바로 사중화 은설란 소저입니다.”
그 소리에 석류하의 눈이 경악을 한껏 커?다.
“설란 언니가 납치되다니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죠?”
석류하의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격렬했다.
“아시는 분인가요?”
모용휘가 되물었다.
“물론 알고 말고요. 그녀는 저와 가장 절친한 사람 중 하나에요. 그녀를 제가 모를 리 없죠. 애당초 함께 흑도사화라고 불리기도 했으니깐요.”
“그렇군요.”
그제야 모용휘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란 언니가 이곳에 있는 거죠?”
“자세한 내막은 저희들도 잘모릅니다. 단 한 가지, 그분을 수행하던 분께서 생명을 걸고 그분이 납치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왔기에 도우로 달려온 것이죠.”
그러면서 모용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시말 (약 23시경) 풍매객잔 심처.
“뭐? 없어?”
검은 그림자 하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질문을 받은 또 하나의 그림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역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객잔의 수상한 점은?”
비류연이 다시 물었다.
“이곳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에요. 화산파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윤준호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의 정보를 토해낸다.
“이제 어쩌죠?”
최대한 낮춘 목소리로 남궁상이 물었다.
해저정(약 22시경) 풍매객잔 앞.
과연 듣던 대로 풍매객잔의 경비는 삼엄했다. 더 정확하게는 풍매객잔에 머물고 있은 중원표국의 표물에 대한 경비였다.
“뭐야, 저녀석들? 황금덩어리라도 싣고 온 건가? 왜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거야?”
염도가 언짢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병장기를 휴대한 표사들이 두 명씩 조를 이루어 객잔 주위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었다. 회톳불이 여기저기에서 활활 타오르며 어둠을 몰아냈다.
그러나 표차가 있는 곳은 의외로 화톳불이 적었다.
“글쎄요… 하지만 수상하긴 확실히 수상하군요.”
“뭔가 구린게 있을 거야.”
너무 지나친 것만으로도 남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뭐 벗겨보면 알겠죠. 일단 잠입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