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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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회
화르르륵…
나를 맞추지 못하고 튕겨나간 화시가 장원을 불태우고 있었다. 나는 불길 사이를 걸으면서 어떤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익숙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틀림없이 흉맹한 적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적이다.
나는 불길 너머로 나타난 어떤 존재를 바라보았다. 회색 승포를 입고 긴 머리를 삿갓으로 가린 인물을 발견했다.비구니로 보이는 인물이 허리까지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길렀다는 점에 묘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그 여승의 머리는 먹물처럼 검으면서도 윤기가 흘러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여승의 머리카락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여유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거리가 삼 장이나 되는데도 뻗어나오는 살기 때문에 몸을 추스리기 힘들 정도였다. 천지쌍살도, 비뢰쌍마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암왕 당산 정도.
절대 허투루 볼 수 없는 상대다. 나는 언제든지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내고 의문의 여인을 향해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
“누구인지 말하시오.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어떻게 할건가?”
의문의 여인은 말을 중간에서 잘라버렸다.
의문의 여인의 음색은 천상에서 노래하는 선녀처럼 듣기가좋았다.
사성(四聲)이 기본으로 깔린 중국어는 음절의 고저에 따라 듣기에 무척 싫은 목소리와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확연하게 구별되어진다.
그런데 의문의 여인의 목소리는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라 노래와 같았다. 찾기가 힘들 정도의 미성이다.
” … 검으로 말하는 수밖에.”
나는 여상하게 대답했다. 어떠한 허례허식도 나는 쓸모없다고 여겼다. 어차피 이런 곳에서 대치한 이상 상대와 나는 서로 죽이기 위해서 대치한 것이다. 정파든 사파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림인이 원래 그런 존재다.
” 증명해 봐라.”
여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내었다.
열여덟 개의 염주알이 튕겨나왔다.
파바박.
푹. 푹. 푹
염주알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나는 이미 안력이 극성에 도달해서 어지간한 것은 다 파악할 수 있었지만, 열여덟개의 염주가 팔방으로 산화하는 변화를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 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불가에서 사용하는 첫 초식인 동자배불(童子背佛)의 환영이 머릿속에 비쳤다. 여승이 쓴 염주알의 변화는 그 초식을 역(逆)으로 펼친 것이, 마치 구슬꿰는 것과 같았다.
암기술의 조예가 보통이 아니다.
나는 반보를 움직여서 공세를 피해냈다.
훗
순간, 나는 삿갓 밑에 살짝이 보이는 여승의 입술이 기묘하게 휘어지며 미소를 짓자 소름이 끼쳤다. 여승이 무릎을 구부리지도 않고 허공으로 날아 오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무탄력경공!”
경공의 극치!
범인(凡人)은 반세기를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다는 재능의 결정체!
그녀는 흔들림 없이 허공에서 양팔을 펴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구부려 학과 비슷한 모습을 만들었다. 얼핏 허식으로 가득찬 모습이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하나의 빈틈도 남기지 않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나는 여승이 한순간에 면전에 도달하자 양손에 낚아챘던 염주알을 그녀에게 날려버렸다.
휙. 휙.
파악
단 일장의 거리에서 날아온 염주 알을 여승은 가볍게 받아쳐 버렸다. 그것도 장력에서 가볍게 뿜어져나온 접인지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 정종내공이 실린 것을 너무 쉽게 쳐냈다.
여승은 허공에서 나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단순하고 변화 없지만, 섣불리 대응하다가는 큰일난다.
그리고 나는 장괘장권구식으로 공격하며 내력으로 강화시킨 팔목으로 의문의 여인이 내지르는 발차기를 막기 시작했다. 팔에 응력(凝力)이 맺혔다.
퍼벅. 퍽.
강렬한 칠연타였다.
그녀가 퍼붓는 발길질은 하나같이 강력했고 빨랐다. 발길질이 팔목에 닿일 때마다 붉은 섬영과 함께 파격음이 터져나왔다.
그녀의 굽었던 오른쪽 무릎이 펴지면서 내 목을 향해 내치며 시작된 공격은 옆차기와 내려찍기 되돌아 차기의 연속공격이었다.
또한 일곱 번의 발차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단 한번도 땅을 밟지 않았다. 허공에서 방향전환이 자유로운 그녀의 몸놀림은 환상적이었다.
경공의 조예가 구파일방 내에서 따라갈 자가 드물 정도다. 내가 보았던 종리노인조차도 연화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대로 손을 응조, 용조, 웅조, 호조의 형태로 자유롭게 변형시키며 팔방을 갈라버리며 공격했다. 극의를 깨달은 이상 초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수영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웅. 웅. 웅…
수영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매서운 강풍이 생겼다. 그러나 여승은 폭풍 속에서도 뽑히지 않는 풀뿌리처럼 흔들리지만 굳건한 발걸음으로 매서운 공격을 피해나갔다.
‘ 저 보법은 연화암향(蓮花暗香)?’
역시 불가의 기본적인 보법 중 하나다. 그러나 저 여자는 단순한 보법을 달인의 경지로 연마해, 가벼운 변화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상하단을 동시에 노리는 진공의 손톱을 피해냈다.
그리고 공세가 일백수를 넘어갈 때 잠시 생긴 틈을 이용해 뒤로 후퇴해 한 장 이상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거리를 확보하자 그녀는 양손을 들어 올리더니 오지(五指)를 쫙 펼치더니 나를 향해 밀어냈다. 강맹하면서도 유연한 경력이 마치 관음보살의 손처럼 나를 덮쳐왔다.
나는 여승이 내지른 수법을 보고는 경악했다.
“십이난화불혈수(十二蘭花拂穴手)!”
열두 개의 손이 허공에 펼쳐지면 그대로 경락을 제압하고 사지를 꺾어서 전의를 상실케 한다는 아미파 비전의 절학이었다. 내 조법은 허공에서 막혀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고, 도리어 난화불혈수에 걸려서 내력이 삭감될 뻔 했다.
내가 급히 뒤로 피하고 있을 때 다음 공격이 날아왔다.
우우웅.
그녀가 펼친 장법은 너무나 단순했다.
앞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손바닥을 밀어내자 사방에 강력한 압력이 생성되더니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다만 그것이 내 일 장 앞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두 배로 커지더니 금빛 광인(光印)을 뿜어내는 것이었다.
나는 장괘장권구식과 유운검법의 팔대절초를 연환해서 허공에서 그것을 막아내었다.
콰쾅.
거대한 폭음이 나더니 강력한 폭풍이 발생했다.나는 일 보 뒤로 물러섰고, 여승은 반 보를 물러섰다. 미미한 차이였지만 이것은 내력의 차이를 의미했다. 여승의 내력이 나보다 심후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강력한 바람이 삿갓을 날리며 그녀의 긴 머리를 구름처럼 퍼트렸다. 또한 삿갓으로 가렸던 그녀의 얼굴이 세상에 드러나 버렸다.
“으음…”
나는 비장의 절기까지 사용하게 만든 적수가 고작 20대의 나이라는 사실이 믿을 수 없어 신음소리를 냈다. 2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늘씬한 미녀였다. 외모는 은설란이나 나예린과 비견될 만 했다.
하지만 나는 신비로운 빛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벽안(碧眼)을 보고 감탄이나 하고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투명하게 빛나는 벽안 밑에 새파랗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았기 때문이다.
“수미불면장(須彌佛面掌)을 막아내다니 놀랍군요.”
그녀는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나는 그만 크게 놀라고 말았다.
‘ 수미불면장은 소림사의 칠십이종 절학 중에서도 최상으로 불리는 십대 절기의 하나로 알고 있다. 십대 절학은 소림사에서도 특별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소림사 십대절기!
십팔나한이나 십계신승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소림사에서 나와 강호를 종횡하면 온갖 호사가들이 입을 맞추어 떠들 정도로 소림사의 무게는 컸다. 그런데 소림사에서도 특별한 존재들이나 견식을 겨우 한다는 절학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여승 복장을 한 여인이 나타났으니 의문은 당연했다.
특히 비구니가 없는 소림사의 실정에 비록 승포를 입었지만 긴 머리를 한 속세의 여인이 수미불면장 같은 비학을 익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