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04)
구룡전기-104화(104/217)
구룡전기 (104)
오태산채의 녹림도들은 모두 화린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오태산채의 주인인 방석구를 대신하여 부두목이었던 오세한이 새로운 오태산채의 주인이 되었다.
오태산채의 산적들은 오세한이 자신들의 새로운 두목이 되는 것에 큰 불만이 없는 듯하여 화린은 그를 앞세우고 오태산채를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른 건 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나의 광산만은 건들지 마. 광산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무조건 너희들이 한 일이라 생각하고 찾아와서 모두 쳐 죽여 버릴 거다.”
화린은 이들에게 엄포를 놓았고, 산적들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광물 팔아 모아 둔 돈 제법 되지?”
“광물은 팔지 않았습니다. 마땅한 거래처가 없어 산 중턱에 쌓아 두었습니다.”
“그래도 돈은 있을 거잖아.”
화린이 역정을 내듯 말하자, 오세한이 그렇다고 곧장 대답하였다.
“그럼 며칠 안으로 손님들이 찾아올 테니 손님들 맞을 준비를 해.”
‘손님?’
혁지석은 무슨 말인가 하여 고개를 갸웃거릴 때, 한 사람이 오태산채로 걸어왔다.
이도문이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왔어?”
“제가 이곳을 정리하려 서둘러 왔는데 주군께서 먼저 정리를 하셨군요.”
“정리라고 할 것도 없지. 그냥 우두머리 하나 바꿨을 뿐이야.”
이도문은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세한을 보았다.
“다 안 죽이시고 말입니까?”
“굳이 다 죽일 필요 있나. 아무리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라고 해도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헛소리는 못 하겠지.”
이곳으로 오는 이들은 중원 살수계의 수장들이었다. 소문을 잘못되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염라의 사자들을 만나야 할 판이니 이들도 며칠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함구해야 할 것이다.
“이 호법님.”
혁지석이 이도문을 불렀다.
“손님이라니요? 누가 이곳으로 찾아옵니까?”
이도문은 화린을 보았다. 화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도문은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말하였다.
“이야기를 듣게 되면 혁 단장님께서는 평생 주군의 그늘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말에 혁지석은 이도문의 눈치를 살폈다. 화린이라면 농담이라 생각하겠지만 자신이 아는 이도문은 농담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군의 가신이 된 걸 축하드립니다.”
“네에?”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야기를 듣게 되면 주군의 그늘을 벗어날 수가 없다고.”
“전 아직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들을 터이니 미리 축하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 더 궁금해졌다.
“중원 살수계의 수장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뜬금없이 살수계의 수장들을 언급하니 혁지석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주군께서 진정한 살수계의 종주가 누구인지 검증을 하기 위해서 살인검제 백정인을 이곳으로 불렀고, 살수계의 수장들이 공증인의 자격으로 두 분의 대결을 지켜보기 위함입니다.”
“자, 잠시만요. 지금 살인검제 백정인이라고 하였습니까? 일마이황삼왕사제에 속한 그 살인검제요?”
“그렇습니다.”
혁지석의 시선이 화린에게 향했고, 화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아니, 무슨 생각으로 살인검제에게 도전을 한 것입니까?”
혁지석이 놀라 묻자, 이도문이 이를 바로 잡았다.
“주군께서 살인검제에게 도전한 것이 아니라 살인검제가 주군의 아성에 도전을 한 것입니다.”
“아니, 가주님이 도대체 누구이시기에 살인검제가 도전을 한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가주님께서 살황 서문의 전인이라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주군께서 살황 서문 님의 전인이십니다.”
그 순간 혁지석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눈을 깜빡이며 이도문을 보았고, 제대로 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절로 고개가 화린을 향했다.
“뭘 그런 걸로 놀라고 그래요. 세상에는 이보다 더 놀랄 일이 많은데.”
“아니, 그걸 왜, 숨겼습니까?”
“안 숨겼는데요. 단장님께서 저에게 물어보지 않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굳이 먼저 알려 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말을 안 했을 뿐입니다.”
화린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설마 살황 서문의 전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이래서 장주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셨군요.”
“하늘 아래 주군의 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감히 누가 살황의 살수를 피할 수 있을까? 물론 화린과 살황 서문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만 그 차이 역시 시간이 줄여 줄 것이니 결국 화린은 살황의 옛 영화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혁지석은 화린을 향해 옷을 단정히 정리한 후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숙였다.
“혁지석이 주군을 뵙습니다.”
그도 화린을 주군으로 인정을 하고, 그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래도 단장님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을 거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언제나 구룡장을 든든히 지키겠습니다.”
화린은 혁지석을 자신의 사람으로 얻어 기분이 좋았다.
“뭣들 해?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지. 음식도 준비하고 연회도 준비하고 백 명이 넘게 올 테니까 손님맞이에 차질 없도록 해. 한 명이라도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 또 두목 바꿔 버릴 테니까.”
* * *
“지금쯤 살수계가 움직였겠군.”
“중원 백사십여섯 개 살수 문파의 수장 전원이 오태산으로 향했습니다. 살인검제 역시 오태산으로 향한 것으로 파악이 되었습니다.”
“살황이라니…… 너무 뜬금없군.”
사혈맹의 심처 사황 백무기는 사혈맹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총관 사마맹과 독대를 하는 중이었다.
무림에 소문이 퍼지지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소문의 진원을 확인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태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정천맹이나 마교에서도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오태산으로 향했겠지.”
“그런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태산 안으로 쉽게 접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살황과 살인검제의 만남이었다.
살인검제 백정인은 이미 중원 십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절대강자이고, 살황의 전인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모르나 호기롭게 살인검제와의 만남을 주선하였다면 아마도 살황 서문의 전진을 모두 이어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고수들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 허락받지 못한 자가 오태산으로 들어선다면 아마도 살아서는 오태산을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살수의 눈을 피해서 움직일 수 있는 이가 필요하여 천량사가의 천이성 가주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천이성 가주께?”
“그렇습니다. 지금쯤이면 천량사가에서 은신술과 경공술에 뛰어난 자를 선별하여 보냈을 것입니다.”
“천량사가라면 한두 명은 돌아올 수 있겠군.”
사혈맹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십이사가 중 한 곳인 천량사가는 경신술과 은신에 뛰어난 가문으로 초창기 사혈맹에서는 정보부의 역할을 하며 활약한 가문이었다.
무공 또한 다른 가문에 비해 뒤지지 않아 지금의 사혈맹을 이룩하는 데 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천이성 가주께 감사함을 전해야겠군.”
“맹주님의 마음을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살황에 대해서 몹시 궁금해하고 있을 터이니 우리가 도움을 청하지 않았더라도 따로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사황 백무기는 잠깐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볼 때 누가 이길 것 같나?”
“아무래도 살인검제 쪽에 승산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살황 서문의 전인이라고 해도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무공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경험을 무시할 수 없지. 살인검제라면 더더욱 힘든 상대이고.”
같은 십대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기에 백무기는 살인검제라는 무호가 가지는 무게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살인검제가 패한다면……?”
“살황을 중심으로 살수들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그들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중원 무림의 판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 * *
오태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오태산채에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오태산채 안에는 백 명이 넘는 외부인이 들어와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태산채의 산적들은 이러한 침묵에 질식하여 죽을 것 같았지만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태산채의 중앙 공터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백의를 입은 중년의 사내와 마찬가지로 백의를 입은 약관의 청년이었다.
살인검제 백정인과 살황의 전인 화린이었다. 화린은 변용을 하여 본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무면!
응당 얼굴이라면 있어야 할 눈, 코, 입이 없었다. 그렇다고 인피면구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화린이 무공의 역용술과 배교의 비술을 합쳐 만들어 낸 무면의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마주 보고 그렇게 서 있었는데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단순히 마주 보고 서 있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는 서로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맞부딪치고 있어서였다.
저들 사이로 가벼운 낙엽이라도 하나 떨어지는 날에는 두 기운의 폭발로 인해서 산채가 크게 손상을 입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화린과 마주하고 있는 살인검제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살황의 전인이라는 자가 자신에게 도전을 할 때만 해도 그러려니 하였다.
살황은 옛날 사람이었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는 없으나 지금의 자신이 그를 한참 뛰어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살황이 살수답게 암살을 전문으로 명성을 얻었다면 자신은 살수이지만 암살보다는 정면승부를 통해서 얻은 명성이기 때문에 같은 살수라고 해도 그 급이 다르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그의 전인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간 검제께서 살수계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오셨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화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그런 검제 님의 업적을 무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또한 사부님께서 검제 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부님의 시대와 검제 님의 시대 그리고 훗날 나의 시대는 그 환경, 사람,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음…….”
“그냥 있는 그대로, 검제 님께서는 지금 검제 님의 시대를 여시면 되는 것입니다. 굳이 사부님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으셔도 충분히 검제님께서는 살수들에게 존경을 받을 업적을 세웠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사부님의 업적을 지우는 일은 그만하시지요. 그럼 저 역시 더 이상 검제 님의 행사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화린이 양보를 하듯 말하였지만 그 말이 살인검제의 심기를 건드렸다.
“나의 행사?”
“그렇습니다. 검제 님께서 살수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고 하여도 전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린의 말에 지켜보는 살수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검제 님께서 지금까지 이루어 놓으신 보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추호도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나……!”
살인검제의 눈빛이 변하였다. 화린의 변화를 느껴서였다.
“더 이상, 사부님이 명예에 대해서 운운한다면 저 역시 사부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자네가 나서? 나서면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제가 검제 님을 못 넘는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뭐?”
“사부님께서도 최고였고, 사부님의 전진을 이은 저 역시 이 바닥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 말은 저 또한 최고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화린의 기운이 모인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변화를 일으키자, 두 사람의 사이에 형성된 기운의 소용돌이가 한쪽으로 밀리기 시작하였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살수계의 수장들이 모두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대단한 변화였다.
‘어디서 이런 놈이. 어미 뱃속에서부터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살황의 전인이라고 해도 단숨에 자신이 기운 싸움에서 밀렸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에 곧장 자신의 심공을 이용하여 기운의 양을 배로 늘렸지만 한 번 밀린 기세를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종주님의 전인이 검제의 기운을 밀어냈다.’
‘검제가 기선 제압에 실패했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살황 님을 맞이할지도.’
살수계의 수장들은 두 사람의 대결을 보며 살황의 재연을 꿈꾸었다.
“누구나 그런 말을 하지.”
살인검제는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단전의 내공을 움직였다.
“하지만 나 백정인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감히 나의 앞에서 그러한 말을 하지 못한다.”
퍼어어어엉!
두 사람의 사이의 기운이 폭음과 함께 폭발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지며 강력한 바람을 만들어 내었다.
그 바람은 산채의 건물들을 휩쓸어 버렸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서 건물이 무너져 내릴 만큼 크게 흔들렸다.
“피해라. 건물이 무너진다.”
두려움에 산채의 건물 안에 숨어 얼굴도 내비치지 않던 산적들은 건물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여 건물을 뛰쳐나왔다.
콰지지직.
잠깐이라도 머뭇거렸다면 건물에 깔려 죽을 뻔한 산적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시✕,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고. 여기 와서 지랄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