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05)
구룡전기-105화(105/217)
구룡전기 (105)
살인검제 백정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한 손에는 장검을, 다른 한 손에는 소검을 들었는데 그의 움직임은 빠르고 행동은 과감하였다.
백정인이 쇄도해 오자, 화린 역시 가만히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체에엥!
백정인이 휘두르는 검을 화린이 막자, 반대 손에 든 소검으로 공격해 왔다.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백정인은 손목의 변화를 이용하여 수많은 검의 환영을 만들어 내었다.
“뇌전류!”
화린의 손에서 일렁이는 기운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뇌전이 여러 방향으로 나눠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백정인이 만들어 낸 변화를 깨뜨려 버렸다.
퍼어어엉…… 펑…… 펑…… 펑…….
백정인은 자신의 공격이 무참하게 부서지자, 이번에는 장검을 이용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소검이 변화를 많이 일으키는 검술이라면 장검은 묵직한 중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화린은 우악스럽게 힘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백정인의 중검을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다른 곳으로 보내어 버렸다.
“허엇!”
화린의 오른손이 백정인의 가슴을 향해 뻗어 나가자, 백정인은 몸을 빙글 돌며 소검으로 화린의 손을 쳐 내려고 하였다.
이 모습을 본 남궁수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 모습을 본 혁지석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화린 선배는 오른손잡이인데요.”
“그래서 오른손으로 공격한 것이 아닙니까?”
“검을 왼손에 들고 있어서요.”
그 말에 혁지석은 화린을 보았다.
정말 왼손에 검을 들고 있었고, 천하의 고수라 칭함을 받는 백정인의 공세를 막아 내고 있었다.
“남궁 소저께서는 주군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까?”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죠.”
“그럼 주군의 무공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건 저도 모르죠. 다만 선배가 싸워서 패한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살인검제 백정인이 천하십대고수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움에 있어서는 선배를 이기지 못할 거예요.”
“그래도 경험은 무시할 수 없지 않습니까? 백정인은 수백 번의 실전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말에 남궁수연은 피식 웃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백 번이 무슨 대수라고.”
남궁수연의 반응에 혁지석은 눈을 깜빡였다.
“혹시 혈랑대마적단이란 이름을 들어 보셨어요?”
“알고 있습니다. 대초원의 마적단이지 않습니까? 단주인 암흑대칸이 마적단을 통합하면서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가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추었다고 들었습니다.”
“잘 알고 있네요. 그거 선배가 한 거예요.”
“네에?”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더 황당하였다.
“선배가 단신으로 혈랑대마적단을 포함하여 대초원의 대형 마적단 열두 개를 괴멸시켰어요. 그 결과 대초원에서는 지금까지 마적단이 세력을 크게 형성하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마적단만이 남게 되었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믿을 수가 없어 물었다.
“선배와 내가 복무를 했던 군이 그런 특수한 전투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였어요.”
“그런 부대가 있습니까?”
“당연하죠. 군인은 나라와 백성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요.”
혁지석은 남궁수연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살인검제 백정인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혈랑대마적단을 멸할 수 없을 터이니 그는 선배를 이길 수 없단 말이에요. 백정인의 실전 경험이 백 번이 넘는다면 선배의 실전 경험은 천 번이 넘어요. 무엇보다 선배와 백정인 경험의 수준이 달라요.
“다른 점?”
“백정인은 개인 대 개인의 싸움에 의한 실전 경험이 풍부하다면 선배는 집단 전투에도 능해요.”
“하지만 그것으로 개인과 개인의 싸움에 이득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퍼어어어엉!
사방으로 검기와 같은 예기가 퍼져 나가며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 모습을 본 산적들은 몸을 낮게 낮추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집단 전투에 능한 사람들의 장점은 시야가 아주 넓다는 거예요. 전장을 지휘하려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적의 사기를 꺾을 수 있는지도요.”
“그 말씀은…….”
“선배는 무공이 강하거나 혹은 경험이 많아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법을 알고 있기에 이기는 거예요.”
남궁수연은 고갯짓으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백정인이 급해졌죠. 많은 이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벌써 이십 합이 지났어요.”
“음.”
“살수의 싸움이 아닌 정면 승부로는 백정인이 졌어요. 하지만 선배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백정인을 이기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왜입니까?”
“상대에 대한 예의죠. 그리고 선배는 뭐든 귀찮아하는 성향이 조금 있거든요. 아마 이대로 몇 합 더 겨룬 뒤 백정인이 패배를 인식할 때쯤 그와 타협을 보겠죠.”
혁지석은 곁에 있는 남궁수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검황, 검존 그리고 검룡 이 셋만으로도 남궁세가의 영화가 백 년은 이어질 터인데 여기에 남궁 낭자까지 더하면 남궁세가가 천하제일세가로 이름을 떨칠 날도 머지않았구나.’
“저기, 남궁 소저?”
“왜요?”
“남궁 소저는 얼마나 강합니다?”
남궁 수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
“아직까지는 선배에게 비빌 수 없죠. 하지만 곧 가능해질 거예요.”
“그 말씀은?”
“지금 익히고 있는 두 개의 무공을 합일시킨다면 충분히 선배에게도 대항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뿐이죠. 선배를 이길 수는 없을 거예요.”
남궁수연이 두 무공을 합일시켜 재탄생한 무공으로 인해 남궁세가가 천하제일세가로서 천년의 영화를 이어 가게 될 것이라곤, 이때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였다.
퍼어엉, 펑, 펑, 퍼어엉!
기운의 충돌이 크고 강하게 일어날수록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씩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수비만 하던 화린이 공세로 전환하였고, 살인검제를 몰아붙였다.
‘아무리 살황의 전인이라도 해도 이제 애송이 티를 벗은 놈에게…….’
살인검제는 자신이 힘에서도, 무공에서도 그리고 대결에서도 밀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래도 이대로 무릎을 꿇는다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때 화린이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종주로 인정하는 이들에게 명한다. 지금 오태산으로 들어온 무인들을 모두 죽여라.”
“존명!”
어디서 낸 건지 모를 목소리들과 함께 수많은 기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곳을 지켜보던 살수 문파의 주인들이 움직인 것이다.
“수연, 서북방으로 가면 마교 놈들이 몇 놈 있을 것이다. 놓치지 말고 반드시 죽여라.”
화린의 말에 수연이 반응하여 모습을 감추었다.
“혁 단장, 남서 방향으로 사혈맹의 무리들이 있을 것이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혁지석도 몸이 먼저 반응하였다.
“이 호법, 동북방향에 정천맹의 무인들이 있다.”
이도문 역시 소리 없이 사라졌다.
화린의 명령에 따라 모두 오태산채를 떠나 오태산으로 흩어졌고 산채에는 화린과 백정인 그리고 산적들만이 있었는데, 산적들은 두 사람의 전투로 인해서 혼비백산이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오태산채의 공터는 크고 넓은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 웅덩이가 건물이 지어진 터까지 침범해 있었다.
건물이 곧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아직도 사부님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까?”
화린은 두 사람 사이에 기막을 펼쳐서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였다.
“어린놈이 이 정도로 우쭐하여…… 허엇!”
목을 향해 뻗어 오는 검기에 놀라 허리를 뒤로 젖혀 피하였다.
“살수들은 모두 사부님을 인정하여 종주의 이름으로 내린 명령을 수행하러 갔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인정을 하시면 검제 님의 명예는 지켜 드리겠습니다.”
“뭣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제야 화린이 싸우는 도중에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알 수가 있었다.
“살수계는 검제 님이 필요합니다. 저는 제가 검제 님을 인정하는 것처럼 사부님을 인정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백정인이 뒤로 물러나자, 화린은 공세를 잠시 멈추었다.
“단지 그뿐이더냐?”
“그렇습니다. 그 시대의 업적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음.”
“후손이 있는 사람들이야 그분들의 대를 이어 삶을 증명하겠지만 대를 이을 후손이 없다면 그분의 삶이 얼마나 기억되겠습니까? 특히 검 한 자루에 목숨을 건 무림인들은 말해 뭐 하겠습니까?”
백정인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지금 무림에서는 사부님을 더 높게 생각하고 있지만 선배께서 천수를 다하실 때까지 무림에 남긴 업적이 더 많고 대단하면 자연스럽게 사부님보다는 선배의 업적을 언급하며 사부님이 아닌 선배를 최고라 역사를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세상의 인심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네놈도 열심히 활동해서 나의 업적을 넘어서려는 것이냐?”
“차례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검제 님 다음에 저의 차례이니 제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정인은 화린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너의 뜻을 받아들이지. 내가 너에게 져서 너의 제의를 수락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입니다. 검제께서는 저에게 지지 않으셨습니다. 후배의 미래를 생각하여 검을 거두어 주신 것뿐입니다.”
화린은 살인검제 백정인을 향해 허리를 숙여 가볍게 예를 표하였다.
‘살인검제가 숨겨 둔 한 수를 꺼내었다면 팔다리 중 하나는 날아갔을 텐데 이쯤에서 끝낸 것이 다행이군.’
그런 화린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곳을 치워라. 검제 님과 술을 한잔할 것이니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내오라.”
화린이 벌벌 떨고 있는 산적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시✕, 다 부숴 놓고 술은 무슨…….’
* * *
오태산채에 살수계의 수장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낸 채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은 살인검제와 살황의 전인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였지만 대충 승부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살인검제가 이겼더라면 화린의 목숨은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아무도 이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건 살인검제의 명예도 있지만 살황의 전인에 대한 신뢰도 포함이 되어 있어서였다.
이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을 때, 혁지석이 돌아왔고,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때, 이도문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한 시진이 지났을 때, 남궁수연이 돌아왔는데 격렬한 싸움을 하였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남궁수연 님.”
그 모습에 놀라 혁지석이 그녀를 불렀다.
남궁수연은 그런 혁지석을 무시하고 곧장 화린에게 가더니 말했다.
“선배, 알고 나를 그쪽으로 보낸 거지?”
“뭘?”
“나보고 마교 놈들 처리하라고 그랬잖아. 그곳에 혈천마가의 늙은이가 있다는 거 알았지?”
남궁수연의 입에서 혈천마가의 늙은이라는 말이 나오자, 순간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모두의 시선이 남궁수연에게 향했는데 이들의 관심은 혈천마가 늙은이의 생사 여부였다.
“아니, 네가 아니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널 보낸 거지. 내가 혈천마가의 늙은이가 누구인지 알고.”
“알았잖아. 혈천마도 그 늙은이!”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툭 쏘아붙이는 남궁수연이었고, 모두는 짐작했던 이름이 나오자 숨소리조차 죽였다.
“그래서 그 늙은이는?”
“달아났어.”
“놓쳤어? 이야, 천하의 남궁수연이가 목표물을 놓치고 웬일이래.”
“마인들의 방해를 받아서 죽이지 못했어. 그 늙은이 무공도 보통이 아니던데 도망가는 것도 보통이 아니었어.”
남궁수련의 말에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혈천마도가 정말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남궁수연의 몰골을 보면 분명 대단한 고수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정말 혈천마도가 왔다면 무림에 또 한 명의 신성이 출연한 것이라 큰 화제가 될 일이었다.
‘세상에, 이제 스물 초반의 여인이 마두 중에 마두인 혈천마도와 싸워 퇴패시켰다니.’
“잘했어. 이쪽으로 와서 앉아.”
정작 화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만들어 주자, 그의 곁에 앉았다.
“선배, 남궁세가의 여식입니다. 저와 함께 군 생활을 한 후배이기도 합니다.”
화린이 백정인에게 남궁수연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의 입에서 남궁세가의 여식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일부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만큼 지금의 남궁세가는 무림에서 최고의 세가 중 한 곳으로 인정을 받는 곳이기도 하였다.
“군 생활?”
“네. 보기 드물게 강단이 있는 여인입니다. 무공도 대단하지만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도 대단합니다. 향후 오 년이 지나면 이 친구로 인해서 마교나 사혈맹이 골치깨나 썩을 것입니다.”
“여인의 몸으로 군대를 다녀왔다니 정말 대단하군.”
“과찬입니다. 제가 행하고 싶은 걸 행하였을 뿐입니다. 서로가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살인검제의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똑 부러지게 자신의 할 말을 하는 남궁수연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검룡 남궁진과 함께 남궁세가를 떠받칠 이가 한 명 더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얼떨결에 이곳으로 끌려와 함께 술잔을 기울고 있는 영천상단의 동서독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황궁의 아홉 번째 황자라는 사실도 겁나고 두려운데 살수들의 종주인 살황이라니……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동서독은 지난날 자신이 화린에게 하였던 일들이 떠올라 속으로 자책하며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 생각했다.
“아, 그리고 우리 영천상단의 동서독 상단주님께서도 저의 술을 한 잔 받으십시오.”
화린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서독을 보며 자신의 술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그리고 내공을 이용하여 허공에 술잔을 띄워 배달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구황…… 구룡 장주님.”
황자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구족까지 멸해 버릴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그는 서둘러 말을 바꾸었다.
그 모습에 화린이 활짝 웃었는데, 그 웃음이 마치 지옥의 명왕이 자신을 보고 웃는 것처럼 보여 등골이 오싹하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그게 나를 두고 하는 말일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