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1)
구룡전기-11화(11/217)
구룡전기 (11)
전역
화린이 맹호사사혈전대에 입대한 지 사 년이 흘렀다. 그동안 몇 번의 출정이 있었지만 혈랑대마적단을 괴멸시키는 것 외에는 큰 어려움이 없이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할 수가 있었다.
제대 일 년을 남겨 둔 화린은 여전히 부대원들을 훈련시키고, 객잔을 운영하면서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화린은 개인 수련도 잊지 않았다. 혈랑대마적단의 율랍파는 자신보다 더 강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갑과 보검이 율랍파의 것보다 뛰어나 이겼을 뿐,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매번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출정이지만 화린은 그때마다 하나를 배우곤 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맹호사사혈전대에 임무가 내려졌다.
“철사자성을 괴멸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정보에 의하면 철사자성의 성주인 해리손이 주변의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마교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철사자성의 성주인 해리손에게 동맹의 제의를 하였고, 해리손은 마교와 손을 잡았다고 한다.”
“마교라면 무림의 문파가 아닙니까?”
“무림의 문파이기도 하지만 이단이기도 하다.”
화린은 이번 임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임무이고, 이걸 성공적으로 끝내면 제대할 때까지 특별한 임무는 내려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마교였다.
마교는 상상을 뛰어넘는 무공을 지닌 고수들이 즐비한 곳으로 맹호사사혈전대가 삼백 명의 고수들로 이루어진 군대라고 하지만 마교와의 싸움은 갓난아기와 성인의 싸움으로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전력의 차이가 심하게 났다.
“이번에도 우리보고 죽으라고 강요를 하십니다.”
“상부의 명이라 어쩔 수가 없다. 마교와 철사자성이 손을 잡고 중원으로 들어와 무림에 혼란을 가져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받아야 한다. 그뿐 아니라 무림인들과의 싸움으로 인해서 시체는 산을 이루고 피는 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어림군이 움직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군이 움직이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그리고 주변의 왕국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어 군대를 움직이는 건 한쪽을 열어 두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불가능하다.”
화린은 대장의 말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또한 내려진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라 그에게는 딱히 잘못이 없기도 하였다.
“진짜, 더러워서…….”
“화린아.”
화린이 대장을 보았다.
“대원들을 부탁한다.”
화린은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화린은 객잔으로 돌아와 긴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입니까?”
“출정이다.”
출정이라는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도는 대원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동안 힘든 임무는 없었으니…… 이들을 위해서 내가 대신 죽어 줄 필요는 없겠지.’
예전의 동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였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혹은 살기 위해서 서로 도와 가며 노력하였지만 지금의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
그때 객잔으로 찾아온 한 여성이 있었다.
“화린 선배!”
남궁수연이었다.
그녀는 무공도 무공이지만 근성도 있었고, 삶에 대한 집착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에 와서는 화린과 말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왔어?”
“이번 출정이 철사자성이라면서?
“그래.”
“듣기로는 철사자성과 마교가 손을 잡았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야?”
“그렇다고 하더군. 그게 왜? 문제가 있나?”
“당연히 문제가 있는 것 아니야? 다른 단체도 아니고 마교잖아. 단일 세력으로는 무림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고, 홀로 무림의 삼분지 일에 해당되는 전력을 가진 단체인데. 우리가 이제껏 상대했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라고.”
남궁수연은 남궁세가의 사람이라 무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마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마교주, 아니…… 그 아래 십이마군, 아니다, 그 아래 이십사마영 중 일부만 나서도 우리는 모두 죽을 수 있어.”
“나는 마교주가 와도 살 거다. 그러니 네 걱정이라 해라.”
무뚝뚝하게 말하는 화린에게 눈을 흘기는 남궁수연이었다. 화린은 그 모습에 한마디 툭 던졌다.
“예쁜 척하기는……. 너와 안 어울린다는 것은 알고 있나?”
부대 안에서 사내다운 모습만 보여 주었던 그녀였기에 이리 말을 하였다.
“칫, 나도 꾸미면 예쁘거든.”
“그런 헛소리 하려거든 돌아가서 살 궁리나 해. 너로 인해서 엄한 대원들 죽게 만들지 말고.”
“내가 언제…….”
남궁수연이 말을 하려고 하는데 화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수련하러.”
누군가를 떼어 놓기 위해서 가장 좋은 변명거리가 바로 ‘수련하러.’ 이 말이었다.
화린이 객잔을 나가자, 대원들이 퇴짜를 맞은 남궁수연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녀의 사나운 시선이 대원들에게 향했다.
그 순간 고개를 돌렸지만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모지리들, 지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리 웃는 걸 보면 화린 선배의 고심이 얼마나 깊은 줄 알겠다.”
화린은 교역 도시의 뒤편에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올라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임무가 될 것 같아. 그런데 상대가 보통이 아니야.”
단리혁광을 생각하며 그에게 말을 건네는 중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맡은 임무 중에 가장 위험한 임무가 될지도 몰라.”
사실 철사자성은 대초원의 혈랑대마적단에 비해서 강한 단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화린이 이렇게 말을 하는 건 그들과 손을 잡은 마교로 인해서였다.
남궁수연의 말대로 마교의 마군들 중 몇 명만 철사자성을 지원하면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은 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마교주가 와도 살아서 빠져나갈 수는 있는데 다른 동료들은 다 죽으니까 하는 말이야.”
화린의 무공은 일대종사급의 경지에 도달하여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몸을 뺄 수가 있었다.
“나만 살라고? 그래서 동생들 보살펴 달라고?”
화린은 한참을 하늘만 응시하다 피식 웃었다.
“그래. 나만 살게.”
* * *
철사자성은 신강을 넘어 새외 무림의 패자로, 그들은 이미 새외 무림의 문파들을 많이 규합하여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더구나 신강의 천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마교가 그들을 지원하니 그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은 감숙성을 떠나올 때는 그러려니 하였지만 막상 새외에 도착을 해서 보니 그들의 위세에 주눅이 들었다.
죽을 것을 알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 신세라는 것을 느낀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하였다.
그들은 평소와 달리 선임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 자율적이고 독창적인 의견 제시는 하지 못하였다.
“오늘 밤 철사자성을 친다. 그리고 미리 말해 두는데 두려우면 지금 탈영해라. 괜히 오기, 혹은 객기로 남아서 동료들의 발목을 잡지 말고.”
대원들은 하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오늘 밤 자시가 시작되는 시간까지, 지금 흩어져서 자시까지 이곳으로 오면 된다.”
대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면 된다. 단, 명심할 것은 철사자성과 싸움이 시작되면 누구도 너희들의 목숨을 챙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너희들이 목숨은 너희들이 챙겨야 한다.”
화린은 이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고, 대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 지면 되지. 화린 선배 말 못 들었어? 일단 흩어져. 모여 있으면 놈들에게 발각될 수도 있으니까.”
남궁수연도 자리를 떠나, 대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화린은 대원들과 헤어져 철사자성이 보이는 객잔에 앉아 성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성으로 성문은 철문으로 되어 있고, 철문에 작은 문이 있어 평소에는 그 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양이었다.
성벽의 높이는 서른 척 정도였고, 성루에는 경계를 서는 무인들이 몇 명 보였다.
“성벽을 단숨에 넘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경비를 서는 놈들의 눈을 피해 안으로 잠입을 해야 한단 말이지.”
혼자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면 틀림없이 저들의 눈에 발각되고 말 것이다.
“다들 부대로 복귀하고 홀로 오랜 시간 동안 싸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
“선배!”
옆으로 다가와서 자리에 앉은 남궁수연이었다.
“이 근처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슬쩍 보고는 다시 시선을 철사자성으로 돌렸다.
“용건은?”
“딱히 없는데. 선배는 저 성을 오늘 밤 공격할 생각이고 난 그런 선배의 뒤를 따라 저들과 어울려 볼 생각을 하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 남궁수연이 걱정되어 말을 하였다.
“그러다 죽는다.”
“이전에 혈랑대마적단과 싸울 때도 그랬어. 선배가 아니었다면 그때 죽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죽었겠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빠져라.”
남궁수연은 냉정하게 빠지라는 말을 하는 화린이 조금 야속하긴 했지만 자신을 위하는, 아니…… 부대원들을 위하는 마음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서운하지는 않았다.
“보고 싶어서.”
“……!”
“선배가 적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래서 나도 선배처럼 강해지고 싶어.”
“왜, 그렇게 강해지려고 하는데?”
“여자라고 깔보고 무시하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려고. 여자라고 해서 나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만들 거야.”
그제야 화린은 남궁수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궁세가에서 난 꿰어 놓은 보릿자루 신세에 불과했거든. 무공에 재능이 있어도 세가에서는 오라비와 동생에게…….”
남궁수연은 자신의 사정을 화린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맹호사사혈전대에 들어와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였다.
그녀의 사정을 들은 화린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비웃는 거야?”
“내가 너를 비웃을 이유는 없다. 오래전 나의 일이 떠올랐을 뿐이다.”
남궁수연은 화린이 어린 시절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기에 자신을 비웃는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너에게 알려 주고 싶군.”
“뭐?”
“너는 지금 복에 겨워 투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선배!”
“사람들은 저마다 태어날 때, 원하는 가정, 원하는 환경을 선택할 수가 없다.”
남궁수연은 화린의 말에 눈을 좁혔다.
“세상에는 밥 한 끼를 얻어먹기 위해서 몸을 파는 여인도 있고, 그런 여인이 낳은 아이는 부모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노예로 팔아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궁수연은 말을 하지 못하였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음을 먼저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남자들과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전에 동등한 입장에서 너의 재능을 먼저 부모님께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
화린은 남궁수연에게 조언이 아닌 조언을 하게 되었다.
“네가 밖으로 나와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다고 한 들 너의 부모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였는데 너의 명성을 인정해 줄 것 같나? 내가 부모라면 믿지도 않을 것 같다.”
“선배. 하지만 난 이곳에 들어와 이전보다 더 강해졌어.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거야.”
“너의 오라비, 동생들 역시 네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무공을 익히고 무림에서 활동하면서 더 강해졌을 것이고, 더 인정을 받고 있을 것이다.”
남궁수연은 바른말만 하는 화린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세상은, 아니…… 주어진 삶은 그런 것이다. 나 역시 얼마 살지 못하였기에 그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다 말을 할 수 없지만, 내가 경험하고 느낀 삶은 늘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음을 알고 스스로에게 겸손을 강요하여야 한다.”
“아니…… 선배, 후배를 좀 이해해 주고, 편들어 주면 안 돼? 그렇게 기를 죽여야 해.”
“그렇게 해도 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게 너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아 말하는 것이다.”
“에이 씨!”
계속해서 말을 하면 잔소리만 들을 것 같아 짜증을 내는 표정으로 고개를 획 돌려 버렸다.
그런 남궁수연을 보고 피식 웃는 화린은 철사자성을 보며 옛날 황궁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황궁에서의 생활은 분명 힘들었지만 막상 힘들었던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배꽃 향기.’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단 하나, 배꽃 향기뿐이었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시절 유일하게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냄새를 맡는 것이었고, 그 냄새를 이용해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 수가 있었다.
배꽃 향기를 품은 이가 왔다 갔던 날 모친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배꽃 향기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친을 죽인 배꽃 향기를 품은 이,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복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도 딱히 생기지 않았다.
‘이해해 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