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10)
구룡전기-110화(110/217)
구룡전기 (110)
“황궁에서 갑자기 사라져 어디 가서 뒈진 줄 알았더니 여기서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었구나.”
주영호는 화린이 구룡장의 주인이란 말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비꼬아 말을 하였다.
“보기에는 호사 같아 보이지만 남의 것을 탐하려고 하는 자들이 많아 피곤한 삶입니다.”
화린은 주영호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을 하였다.
“황궁보다는 편하겠지.”
“이를 말입니까? 세상천지 어디에 있든, 비루먹고 살아도 겉만 화려한 황궁 생활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황궁의 화려함 뒤에는 언제나 칼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너는 어찌 황궁에서 나온 것이냐?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심지어 말도 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어찌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냐?”
“황후마마를 비롯하여 여러 비께서 제가 황궁에 있는 게 수치스럽다 하여 황궁에서 쫓겨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너를 쫓아내셨단 말이냐?”
“상비께서 관여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그리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런 제가 불쌍하였는지 호위 무사 한 명과 노비 몇 명 그리고 살 집을 주셨습니다.”
거짓말이었지만 주영호가 이를 확인할 수는 없을 터이니 신경 쓰지 않았다.
“이래 살아서 뭐 하나 싶어 종남산에 올라가 절벽에서 뛰어내렸는데 강력한 바람에 의해 절벽 아래 동굴로 빨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기연을 얻어 병도 치료하고, 무공도 익히고 하였습니다.”
“기연을 얻어?”
“그렇습니다. 그 덕분에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장원으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장사를 하면 괜찮겠다 싶어 구룡루를 개업한 것입니다.”
주영호는 술을 마신 후에 잔을 내려놓았고, 화린은 빈 잔을 채웠다.
“용케도 도박장의 허가를 받아 낸 모양이구나.”
“미움을 받으며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자랐다고 하지만 그래도 폐하의 아픈 손가락이지 않습니까?”
“그럼 나도 다른 성으로 가서 이런 도박장을 한번 해 봐야겠구나.”
“허가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호수가 있는 곳에서 하십시오. 여긴 관광객이 없어 그런지 생각보다 매상이 오르지 않습니다.”
“그래?”
“이래저래 해도 운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박장 안은 볕이 들지 않게 창문을 만들지 않지만 도박장을 나와서 바라보는 경관은 멋들어져야 찾아오는 맛이 있겠지요.”
“그렇겠군.”
“그런데 형님께서는 동창의 무사들을 대동하고 어인 일로 황궁을 나오신 겁니까?”
주영호는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술상 위에 올려놓았다.
“감찰패?”
“폐하께서 자식들에게 감찰패를 주고 각 성의 사정을 알아보고 오라 명하셨다. 난 섬서성을 담당하여 이곳으로 왔고, 형님, 누이, 동생들은 각기의 성으로 파견 나갔다.”
“누님들에게까지 감찰패를 주셨단 말입니까?”
“그래. 무슨 생각으로 각 성을 감찰하라고 명하셨는진 알 수가 없지만 솔직히 짜증이 조금 나긴 하였다. 그런데 막상 황궁을 벗어나니 이리 좋을 수가 없구나.”
화린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황궁을 떠나 산다고 나를 비웃는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폐하께 지병이라도 생기신 것입니까?”
“정정하시다.”
“하면, 큰형님께서 몸이 안 좋으신 것입니까?”
“너무 건강하시다. 무공도 제대로 익혀 동창의 고수들도 인정할 만큼 대단하지.”
“그럼 비들의 입김이 작용하였나 봅니다.”
“비들의 입김?”
“형님을 황제로 만들기 위한.”
“이놈!”
주영호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내 아무리 세상을 개차반처럼 살아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본은 지키고 사는 놈이다.”
“아니면 다른 비들께서 단합을 하신 모양이군요.”
주영호가 눈을 좁혔다. 황궁의 다툼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폐하께서 정정하시다고 하니 향후 십 년은 그 자리를 유지할 터이고, 지금부터 큰형님께 생채기를 조금씩 낸다면 후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 말입니다.”
“하면 지금부터 큰형님을 공격한다는 말이더냐?”
“급하게 움직이면 꼬리가 밟힐 것이니 십년대계를 준비하고 조금씩 실행에 옮긴다면 그 후에는 능히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십년대계라……. 그럼 내가 황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냐?”
“가장 큰 경쟁자인 큰형님께서 넘어지시면 혼란이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형님께서 큰형님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면 능히 가능도 하시겠지요.”
뒤를 이을 재목이란 말이 주영호는 피식 웃었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구나. 개차반 같은 내가 어찌 큰형님께 비빌 수 있겠느냐.”
사실 주영호는 큰형님, 즉 황태자 주문현을 좋아하고, 믿고 따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문현의 말이면 어지간해서는 다 들어줄 정도로 그를 따랐다.
“하여간 조심하십시오. 섬서성을 다니시면서 위험하다 싶으면 저를 곧장 찾아오시든지, 그럴 여건이 되지 않으면…….”
화린은 혹시 몰라 품에서 작은 명패 두 개를 꺼내어서 그에게 주었다.
“그 명패를 형님이 있는 곳에서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두십시오.”
“이 명패를?”
“그렇습니다.”
“하하. 네놈이 황궁을 나왔다고 무림의 기인 행세를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리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다른 하나는 큰 형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제가 조금 전에 한 말을 그대로 전해 주시면 됩니다.”
화린의 표정을 보니 장난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듯하였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기연을 얻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형님께서 믿든 안 믿든 상관은 없는데 혹여 목숨이 경각에 다다르면 속는 셈치고 한번 해 보십시오.”
“오냐. 그리하마. 술이나 한 잔 따라 보아라.”
화린은 술을 그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좋으냐?”
주영호의 물음에 화린이 그를 보았다. 예전에 자신이 알던 주영호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 말이다. 황자의 신분을 떠나 범부로 이리 사는 것 말이다.”
“황자의 신분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
화린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구룡패를 주영호에게 보여 주었다.
“다만 황궁과의 관계를 끝냈을 뿐입니다.”
“황궁과의 관계를 끝내?”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황궁 밖으로 보내실 때,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바마마께서?”
“그렇습니다. 황궁 밖의 세상은 또 다른 세상들이 모여 커다란 세상을 이루고 있다.”
주영호는 화린의 말을 들으며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곤 기울였다.
“무뢰배들이 판을 치는 무림, 돈이 전부라 생각하여 사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상림, 혼자서 고고한 척을 다 하지만 글을 읽는 것 외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서림, 온갖 아부를 하며 더 위로 올라가 큰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관림, 이러한 자들에게 핍박받고, 빼앗기고, 무시당하고, 억울해도 하소연할 곳 없이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까지.”
화린은 비어진 주영호의 잔에 술을 채워 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황궁의 담장 밖에는 이러한 세상들이 있고, 이들 세상에서 군림하는 왕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왕?”
“무림에는 무왕, 상림에는 상왕, 서림에는 대학사, 관부에는 황제 폐하께서 있습니다.”
주영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민초들의 왕은 없습니다. 민초들의 왕이라 불리는 자는 곧 반역이고, 역모를 꾸몄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구나.”
“폐하께서는 이런 세상으로 나가면 제가 선택한 세상에서 왕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선택한 세상에서 왕이 되어라?”
“그러합니다. 폐하의 자식으로 남 밑에서 굽실거리며 사는 건 폐하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으니 어느 세상이든 가서 왕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되란 말에 주영호의 심장이 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네가 왕이 될 세상을 정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네가 왕이 될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무림이옵니다.”
“무림, 무림이라……. 어쩌면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또한 다른 이를 앞세워 그를 상림의 왕, 상왕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상왕을 만들어?”
“무림과 상림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곳입니다. 공생공사하는 관계이니 이왕이면 제가 원하는 자가 상림의 왕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영호는 자신의 뜻을 당당하게 말하는 화린에게 처음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으냐?”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지나온 세월 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스스로 나약해지고, 현실과 타협하려고 하는 편의함에 빠지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주영호는 화린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바마마의 제왕지기가 너에게 이어졌구나.”
주영호는 첫째인 주문현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제왕의 기개를 화린에서 보았다.
‘어쩜 아바마마께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막내를 황궁 밖으로 내보내었는지도 모르지.’
“과찬이십니다. 저는 제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럼 네가 무림의 왕이 되면 이 형이 너에게 빌붙어 살아도 되겠구나.”
“형님께서 저를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저야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옵니다.”
주영호는 피식 웃더니 손사래를 하였다.
“아서라. 내 밥벌이는 내가 할 터이니 네는 원하는 바를 이루어 아바마마를 기쁘게 해 드려라.”
화린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한 잔 하여라.”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였다.
“형님, 지금 황궁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 주십시오.”
황궁은 워낙 폐쇄된 곳이라 외부에서는 황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황궁? 늘 같은 곳이다. 네가 황궁을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온갖 암투와 모략이 판을 치고 있지. 오죽하면 이제는 중궁전의 쥐와 동궁의 쥐가 서로 모함하고 헐뜯는다는 말이 나오겠느냐.”
“제가 황궁에 있을 때는 보고, 듣고, 말하지를 못하여 그런 것에 제외가 되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 황궁은…….”
* * *
“뭐라? 거래를 하던 트라빌 왕국의 곡물 상인이 다른 자와 계약하여 곡물을 더 이상 팔 수 없다고?”
“그리 말을 하였습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래하고 있는 다섯 곳의 곡물 상인 중 한 곳을 제외한 네 곳은 다른 상인과 거래를 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화명상단의 화정수는 화가 나서 보고하는 화정국에게 소리쳤지만 그 역시 알 수가 없으니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어떤 놈인지 당장 알아내.”
“사람들을 시키겠습니다. 그런데 형님.”
“못 알아낸다는 말은 하지 마라.”
“그게 아니라, 이대로 가다간 상단의 돈줄이 마를 수도 있습니다.”
“돈줄이?”
화명상단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곡물 유통에 차질을 빚고 있으니 자금 사정이 그리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곡물 운송은 둘째 치더라도 무림인을 고용하는 데 너무 큰돈이 들어갔습니다.”
“빌어먹을!”
큰돈을 들여 무림백대고수를 무려 세 명이나 초빙하였고, 그 아래 무인들도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을 고용하였지만 곡물은 곡물대로 털리고, 무림인을 고용한 비용은 비용대로 지출이 되었다.
물론 초빙한 무림백대고수 세 명이 모두 죽었기에 중도금은 주지 않아도 되었지만 계약금만 해도 꽤나 큰돈이었기에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다시 밀수를 해서…….”
오래전 화명상단은 밀수와 인신매매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곡물 유통업에 뛰어들어 상단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안 돼!”
화정수는 단호하게 대답을 하였다.
“형님, 그렇게 잘라 말하지 마시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곡물 대금도 치러야 하고, 다른 물품 대금과 인부들의 급여도 줘야 합니다.”
“끙…….”
화정수는 머리가 아픈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단기간에 돈을 만들 수 있는 건 밀수와 인신매매뿐입니다.”
“그러다 들통나게 되면? 지금 조금 어렵다고 하여 다시 밀수와 인신매매를 하면 앞으로 어려울 때마다 그것들에 손을 댈 것이 아니더냐? 꼬리가 길면 밟힌다. 그때는 가문이 풍비박산 날 것이야.”
화정수가 불같이 화를 내자, 화정국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지금 돈이 너무 급하니 저도 모르게 실언을 하였습니다.”
“돈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냐?”
“지금 당장 금전 오천만 냥 정도가 필요하고 다음 달은 금전 팔천만 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건만 해결되면 당분간은 큰돈이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
“알겠다. 내가 대리세가에서 돈을 융통해 볼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라. 그리고 정국아.”
“네. 형님.”
“그냥 돈이 없어 가문이 망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가 있지만 밀수와 인신매매를 하다 들키는 날에는 다시 일어날 기회조차 없게 된다. 그러니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