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16)
구룡전기-116화(116/217)
구룡전기 (116)
“아버님께서 누이와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참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혈맹에서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말을 하였기에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산동성 백마사의 대전에는 백마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들은 하남성 혈사파의 어려움을 듣고 도와주기 위해 갔던 장문인 이천국의 죽음을 놓고 언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아버님과 누이가 죽었습니다. 흉수가 누구인지 모르면 몰라도, 그들을 알고 있는데 이렇게 참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사혈맹의 부탁을 저버리고 우리가 단독으로 구룡장을 치기라도 해야 한단 말이야?”
“형님.”
“구룡장을 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 훗날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사혈맹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생기면 어찌하겠느냐?”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가족이 죽었습니다. 사혈맹의 해법을 기다리기에는 이 가슴이 터져 죽을 것 같습니다.”
첫째인 이대만과 둘째인 이대로가 언성을 높이자, 장로들과 단장들은 눈치만 볼 뿐이었다.
“형님들, 언성을 조금만 낮추시지요.”
셋째인 이승천이 나서자, 이대만과 이대로가 그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 자리에는 장로님들과 단장님들이 계십니다. 형님들께서 감정을 내세우기보다는 장로님들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승천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살짝 변하였지만 그의 말을 따라 자중하기로 하였다.
“죄송합니다. 부모와 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대만이 먼저 장로들에게 고개를 숙이자, 이대로 역시 고개를 숙여 언성을 높인 점을 사과하였다.
“두 분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크게 괘의치 마십시오. 다만 이 늙은이가 노파심에 한마디 하겠습니다. 소가주의 말씀대로 사혈맹에 속한 우리 백마사이기에 사혈맹의 부탁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행동에 옮길 수는 없습니다.”
이대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하나, 장문인의 죽음을 좌시한다면 무림의 수많은 문파가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대장로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 겁니까?”
이대로가 답답하여 물었다.
“사혈맹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구룡장의 전력을 파악해야 합니다.”
“구룡장의 전력이라고 함은?”
“제가 듣기로는 한날한시에 섬서성의 음사문과 혈사파가 멸문을 당하였고, 두 문파를 멸문시킨 곳이 구룡장이라 들었습니다.”
“저도 그리 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우리 백마사가 음사문과 혈사파를 동시에 공격하여 멸문시킬 수가 있는지 두 분께 묻고 싶습니다.”
대장로인 채궁민의 물음에 두 사람은 잠깐 동안 망설였다.
백마사가 산동성의 패자라고는 하나 음사문과 혈사파 역시 그 지역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문파였다.
하나의 문파라면 몰라도 두 문파를 동시에 상대해서 멸문시키는 건 백마사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두 사람이 대답이 없자, 대장로인 채궁민이 말하였다.
“조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혈맹에서 기다려 달라고 하였으니 일단 지켜보면서 우리는 구룡장의 전력이 어떤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고수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겠지요.”
“음…….”
“형님들.”
셋째인 이승천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제가 구룡장에 다녀오겠습니다.”
“네가?”
“구룡장의 사람들은 제가 백마사의 사람이란 사실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승천이 군 복무를 하고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동성의 문파들도 이승천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
“혼자서 말이냐?”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제 한 몸은 빠져나올 자신이 있으니 혼자 다녀오는 것이 저에게도 편합니다.”
이대만은 이대로를 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대장로인 채궁민을 보았다.
“저도 그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심하여야 한다.”
“걱정 마십시오. 이러한 경우를 군에서 수없이 경험하였으니 말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라.”
“준비하면서 생각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 * *
“왔어?”
구룡장에 아침 일찍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한때 화린의 수하이자, 사천 새명파의 장제자인 동춘이었다.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화린 조장님.”
“그냥 장주님이라 불러. 새명파 사람들은?”
“사천에서 문파를 정리하고 섬서성으로 넘어오기로 하였습니다.”
화린이 구룡장의 표국을 맡길 요량으로 사천 새명파의 장제자인 동춘을 불렀고, 동춘은 이번 기회에 아예 새명파를 정리하여 섬서성으로 올라와 화린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삼류 문파, 혹은 문파를 성장시켜 이류 문파로 사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화린의 밑에서 성장하는 것이 더욱 성공적일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래? 잘했어.”
“이게 누구야. 탈영병 동춘이잖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동춘은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수연…… 선, 배!”
“네가 여긴 웬일이야?”
“화린 조장이 불러서 왔습니다. 그런데 선배는 왜 여기 있습니까? 남궁세가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동춘이 묻자, 남궁수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난, 화린 선배에게 무공 배우고 있지.”
“그게 정말입니까? 조장이 무공도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거리는 눈빛으로 화린을 보았다.
“하는 거 봐서.”
“아, 목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동춘은 화린에게 넙죽 절을 하였다.
“그건 됐고. 나랑 나가자.”
“어디를?”
“너 일할 곳에 가 봐야지.”
“아, 알겠습니다.”
화린과 동춘이 장원을 나서자, 남궁수연이 따라붙었다.
“바늘이 길을 나서니 실이 따라가네.”
지켜보고 있던 소용인이 입가에 활짝 미소를 띠며 말을 하였다.
“우리 황자님과 참 잘 어울리는 분이신데. 황자님은 전혀 관심이 없으니…….”
소용인은 아쉬운 듯 말을 하였지만 입가에 미소만은 여전하였다.
“단리세가의 여식보다야 남궁세가의 여식이 낫지. 암, 낫고말고.”
소용인은 잠깐 동안 서서 화린이 나간 대문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그런데 조장, 아니…… 장주님, 오다 들은 말로는 사고를 단단히 치셨다던데, 괜찮으십니까?”
“사고? 무슨 사고?”
“음서문과 혈사파를 화린 조장, 아니, 장주님께서 멸문시켰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지금 사혈맹에서는 난리가 났고, 정천맹도 이 때문에 고심하는 모양이에요.”
“아, 그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리고 그쪽은 너무 신경 쓰지 마. 몇 번 다투다 보면 조용해질 거야.”
“다투다 보면? 사혈맹과 싸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내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데 그냥 줘? 너라면 그냥 주겠어?”
“그건 아니지만…… 아무리 조장, 아니, 장주님이라고 해도 사혈맹이랑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못 이기지. 대신 어느 정도 피해는 줄 수 있다고 보거든.”
동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정천맹과 마교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사혈맹을 완전히 무너뜨리려고 하겠지. 마교는 몰라도 정천맹은 그렇게 할 거야.”
“그렇긴 하겠네요. 사혈맹이라고 해도 화린 조장, 아니, 장주님을 잡으려면…….”
“야, 그냥 조장이라고 불러. 호칭을 뭘 그리 헷갈리고 그래.”
“아, 알겠습니다. 조장이란 단어가 입에 붙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멍청하긴.”
“선배도 화린 조장에게 선배라 부르지 않습니까?”
“나는 처음부터 선배라 불렀는데.”
동춘이 입을 삐죽였다.
“제대했다고 이제 대놓고 입술을 내미네. 어디 한번 늘려 줘?”
“아니, 아닙니다. 수연 선배는 다 좋은데 너무 과격한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여성분들은 조신하고, 여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선배는…….”
“그게 싸움에서 내 목숨 살려 주냐?”
“그건 아니지만.”
“내가 군대에 들어갔을 때, 이쁜 척했던 년들 다 죽었어. 그년들 때문에 동료 대원들도 몰살당하고.”
동춘은 화린을 보았다. 남궁수연의 말이 사실인가 묻는 시선이었다.
“그런 적이 있었지.”
“그럼 수연 선배가 유일한 여성 전역자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듣기로는 여성들 중에서 제대로 임무를 나간 사람은 수연이가 유일해. 전역은 이전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복무할 때는 없었어. 모두 작전에 나가서 죽었으니까.”
동춘이 남궁수연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존경합니다, 선배님.”
“그러니 알아서 모셔라. 그럼 내가 생존술을 알려 줄 수도 있으니 말이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도착한 곳은 시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지어진 장원이었다.
“동춘이 너와 새명파 사람들이 생활할 곳은 여기다.”
“장원을 새로 지은 것 같습니다.”
“기루가 있는 곳이야. 기루를 허물고 장원을 지었지. 안으로 들어가서 설명해 주마.”
화린은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장원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장원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이들 사이는 하나의 담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가운데 중문을 만들어 이곳을 통해서 내원과 외원을 오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외원에는 오십 명 정도가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어. 이곳에서 쟁자수와 표사들을 쉬게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쟁자수와 표사들은 제가 구해야 하는 겁니까?”
“그럼 표국주가 너인데 내가 구할까?”
“아, 알겠습니다.”
화린은 창고부터 시작해서 표국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시설들을 모두 설명해 준 뒤에야 말과 수레가 있는 장원의 뒤뜰 마구간으로 갔다.
“장주님, 오셨습니까?”
마구간에서 한 사람이 말에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는 말을 관리하기 위해서 고용한 일꾼이었다.
“여긴 장제사 왕손의 장인이시고, 이쪽은 앞으로 표국을 이끌어 갈 표국주 동춘입니다. 서로 함께 생활해야 할 터이니 인사들부터 나누십시오.”
장제사는 말의 편자를 비롯하여 말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거나 갈아 끼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표국을 운영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아이고, 국주님이셨군요.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동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혼자서 이 많은 말을 관리하시는 겁니까?”
“도와주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그리하겠습니다, 국주님.”
동춘은 국주라는 말을 듣자,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였다.
“단순한 놈.”
그런 동춘이 못마땅한지 톡 쏘는 남궁수연이었지만 한두 번 당한 것이라 아니었기에 웃으며 넘어갈 수가 있었다.
“선배, 여기서는 내가 대장이우.”
“그래서, 나한테 대장질하려고?”
“아니, 말이 그렇다는 것 아니오. 그러니 어느 정도 대접을 좀 해 주시오.”
“대접?”
남궁수연은 잠깐 동안 말이 멈추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배.”
“왜?”
“이 표국 나 주라.”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동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오. 조장, 줬다가 빼앗는 법은 없습니다.”
“누가 빼앗는다고 그래.”
화린의 말을 듣고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 동춘은 득의한 표정으로 남궁수연을 보았다.
“그리고 수연이 너, 동춘이 그만 괴롭혀. 오늘 오랜만에 만나서 할 일이 그리 없어?”
“반가우니까 그렇지.”
“선배는 두 번 반가우면 껍질을 홀라당 벗겨 먹을 사람이오.”
동춘이 한마디를 하자, 남궁수연의 손이 동춘의 입술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동춘은 얼른 고개를 돌려 피하고자 하였지만 남궁수연의 손은 이미 동춘의 입술을 잡고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비명을 질러 구원의 목소리를 내어 보았지만 화린은 장제사인 왕손의와 함께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선배, 미안, 미안하오. 내가 죽을죄를 지었소. 그러니 한 번만 용서를 해 주시오.”
“그럼 죽을까?”
“아니, 살려 주시오. 나 살고 싶소, 선배!”
동춘이 사정을 하자, 그제야 입술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 주었다.
“한 번 더 대접 같은 소리를 하면 오리 입술처럼 만들어 줄 터이니 그리 알아.”
‘아니, 여자가 여자 같은 맛이 없으니……. 그러니 화린 조장도 여자로 안 보는 거지.’
“선배, 같이 가.”
남궁수연이 화린의 뒤를 따라가자, 동춘이 그제야 허리를 폈다.
“수연 선배가 군대에 있을 때부터 저리 쫓아다녔으면 화린 조장도 그 마음을 알 때가 되었는데……. 싸우는 것 말고는 진짜 둔한 사람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