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17)
구룡전기-117화(117/217)
구룡전기 (117)
구룡장이 음사문과 혈사파를 멸문시켰다는 소문은 무림을 넘어 상림은 물론 서림, 관림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졌다.
“구룡장주님이 엄청 무서우신 분이셨구나.”
상남현에 사는 사람들은 화린이 늘 웃으며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해 주니 마냥 좋은 사람으로 알았는데 음사문과 혈사파를 멸문시켰다고 하니 또 달리 보였다.
“그래도 우리한테는 격식 없이 대하여 주시잖아요. 이번에 구룡장에서 표국도 열었다고 하던데요.”
“표국을?”
“네. 지금 쟁자수를 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나 봐요.”
“그럼 일자리가 또 늘어나는 거야? 구룡장에서 사업을 크게 하니 우리 상남현에 일자리가 많이 생겼어.”
“그러게요. 일자리가 많이 생기니 사람들 유입도 많이 되고 좋잖아요.”
“어중이떠중이들도 많이 오는데.”
“그런 놈들이야 구룡장주님께서 혼쭐을 내 주시니까. 이곳에 와서 나쁜 짓 못 하죠. 음사문과 혈사파란 무림 문파도 박살 냈다고 그러잖아요.”
“하긴, 관아를 찾는 것보다 구룡장주님을 찾는 게 사건 해결에 더 도움이 되긴 하지.”
상남현의 사람들은 구룡장의 선행을 여전히 반기며 지지하였다.
“이곳 사람들은 구룡장의 장주를 몹시 좋아하나 봅니다. 다른 곳에서는 무림의 문파라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곤 하는데 말입니다.”
화산파에서 화영 진인과 함께 내려온 옥해는 상남현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구룡장이 이곳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게 되었고, 친구인 화린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친절을 베푸는지 알 수가 있었다.
“화린 그 친구도 대단하네요, 장로님.”
“아무렴, 그렇기에 장문인께서도 그 친구의 기분을 살피라고 하지 않았겠느냐.”
옥해는 화산파의 장문인인 매산이 화린의 눈치를 보는 듯하여 조금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로님, 정말 화린 장주가 음사문과 혈사파를 멸문시켰을까요? 음사문은 섬서성 제일 사파이고, 혈사파는 하남성 제일 사파이지 않습니까?”
소문은 들었지만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 산문을 넘어 내려오면서도 긴가민가하였다.
“글쎄다. 소문이 그리 났으니 관련은 있을 게다. 그게 직접 손을 쓴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의 손을 빌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야.”
“다른 누구의 손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구룡장주라면 몇 곳에서 힘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구룡장으로 화산파의 장문인인 매산의 서신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상남현에 도착하여 조금 걸어가니 커다란 장원이 나왔다.
“이곳이다. 예전에는 단리세가의 가문이었지만 단리세가는 망하였고, 그 자리에 구룡장이 들어섰구나.”
옥해는 구룡장의 편액을 올려다보았다.
“필력이 느껴지는 편액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때, 안에서 거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대로 안 해!”
두 사람은 잠깐 당황하였지만 침착하게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는데 누군가에게 맞았는지 눈이 푸르게 멍들어 있었다.
“뉘시오?”
“화산에서 내려온 화영이라고 하오. 구룡장주님과는 인연이 있어 이번에 화산파의 장문인이신 매산 장문인의 서신을 가지고 방문을 하였소.”
고개를 내민 사내가 화산에서 왔다는 말에 대문을 활짝 열자 뜰의 연무장에서 무인들이 수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가르치는 이가 바로 조금 전 소리를 질렀던 여인이었다.
“아, 화산에서 오셨군요. 안으로 드시지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구룡장 안으로 들어서자, 밖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완전 달랐다.
장원 안의 공기 자체가 무거웠다.
“어쭈, 본 녀를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린다 이거지.”
성난 암사자와 같이 연무장에서 날뛰는 여인을 보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저 여인은 또 누구인가?’
화영 진인은 남궁수연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대단하다. 저들도 고수인 것 같은데 열다섯 명이 넘는 이들의 기세를 단숨에 제압하다니.’
옥해 역시 화영 진인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았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사내는 두 사람을 안내하려고 하였다.
“동춘이 너, 이리 안 와! 어디서 빠져나가려고.”
“선배, 장주님을 찾는 손님이 오시지 않았소. 내가 장주님께…….”
“네가 안내 안 해도 할 사람 많아. 보아하니 화산파의 도사님들 같은데, 그 길 따라 걸어가다 보면 식솔들 중 한 명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에게 장주님께 안내해 달라고 하세요.”
동춘은 남궁수연의 말을 듣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시라고 하네요. 그럼 어서 가 보십시오.”
동춘은 두 명에게 고개를 숙인 후에 연무장으로 돌아갔고, 남궁수연의 보복성 수련에 비명을 질렀다.
이들은 구룡장의 그늘 아래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새명파의 무인들이었다.
남궁수연은 이들의 정신 상태를 뜯어고치기 위해서 손수 나섰고, 그 결과 새명파의 무인들은 매일같이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에 힘은 들어도 남궁수연의 훈련법에 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화영 진인과 옥해는 잠깐 이들의 수련…… 아니, 남궁수연의 일방적인 구타를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외원을 지나 내원으로 들어서자, 화린이 나와서 두 사람을 반겨 주었다.
“이렇게 연락도 없이 찾아주시고. 그간 잘 계셨습니까, 화영 장로님?”
“우리야 별일이 있을 리 만무하지요. 너무 무탈하여 배가 이렇게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하하하. 옥해도 오랜만이야.”
“어, 그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화린이 두 사람을 데리고 내원의 안채로 들어갔다.
“주방에 가서 손님들이 오셨으니 나의 집무실로 간단한 다과를 가지고 오라 전하여라.”
식솔 중 한 명에게 주문을 한 후에 이들을 데리고 집무실로 갔다.
“앉으십시오.”
자리를 안내한 후에 화린도 맞은 편에 앉았다.
“연락도 없이 본 장원을 찾아오신 건 아무래도 최근에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신지요.”
화린은 이들이 온 목적을 대충 짐작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건 본 파의 장문인께서 장주님께 전하는 서신입니다.”
화린은 화영 장로가 건네는 서신을 펼쳐 보았다. 서신에는 정천맹의 입장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쓰여 있었지만 결론은 정천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사혈맹의 보복 공격에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말이 요지로 적혀 있었다.
화린은 서신을 모두 읽어 본 후에 서신을 내려놓고는 잠깐 침묵하였다.
“혹시 장문인께서 저에게 따로 전한 말씀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화산파는 정천맹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구룡장을 도울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사혈맹이 본 장원을 공격할 것이란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사혈맹의 입장에서는 섬서성과 하남성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문파들을 잃었으니 다른 성이나, 혹은 사혈맹에 가입한 문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산동성의 백마사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정도야 예상하고 있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겠지요. 화산에서 본 장원을 위해서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화산에서 우리 식솔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십시오.”
“안전이라고 함은?”
“화산으로 본 장원의 식솔들을 보내겠습니다. 그들을 보호해 주십시오.”
“식솔들만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종남과 나누어서 보낼 터이니 그리 많은 인원은 가지 않을 겁니다.”
“그것만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화산의 제자들을 보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남의 집 싸움에 화산의 제자들이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면 장원을 비울 것이니 화산의 제자들을 먹여 주고, 재워 줄 수도 없습니다.”
“음…….”
“화린, 그리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야. 잘못하면 모두가 죽을 수 있어.”
“우리가 죽는다면 화산의 제자들이 와도 어쩔 수가 없어. 화산과의 인연으로 인해서 화산의 제자들을 희생시키는 건 도리가 아니야.”
“하지만…….”
“본 장원의 일은 알아서 할 것이니 화산에서는 식솔들의 안전에만 신경을 써 줘. 그것만 해 주면 돼.”
옥해는 화영 장로를 보았지만 화린의 대답을 들었으니 그가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었다.
“저희가 돌아갈 때, 식솔들을 데리고 화산으로 가겠습니다.”
“그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 * *
화린은 화산에서 가지고 온 서신을 구룡장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선배, 정말 괜찮겠어? 본가에 연락해서 사람들을 보내어 달라고 할까?”
남궁수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서라. 정사대전을 일으키고 싶은 거야? 그리고 우리가 장원을 비우면 그들도 어떻게 손을 델 수가 없어.”
“왜 없습니까? 구룡루를 비롯하여 많은 영업장이 있지 않습니까? 표국하라고 불러 놓고 표국이 시작도 하기 전에 망하게 생겼는데.”
동춘이 억울하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망해. 다만 피해는 조금 입겠지. 하지만 섬서성의 성주가 나서면 제아무리 사혈맹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자라고 해도 관군이랑 싸우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섬서성의 성주가?”
“구룡루는 섬서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금이 나오는 곳이야. 구룡루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지금 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섬서성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공사에 비용을 지출하고 있잖아.”
“그렇지.”
“그런데 구룡루에 다른 누군가가 눈독을 들이면 섬서성 성주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하긴 때려잡으려고 하겠지. 지금 섬서성주의 평판이 엄청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야.”
남궁수연과 동춘은 그제야 화린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속사정을 모르는 자들은 구룡루를 두고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결국 구룡루는 섬서성을 위한 사업체에 불과하다더군.”
“그런데 왜 이걸 시작했어?”
남궁수연의 질문에 화린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이렇게 파리가 많이 꼬일 테니까. 꼬이는 파리만 잡아도 무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떨칠 수가 있겠지.”
무림에 구룡장이라는 이름을 가장 빨리 각인시키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하여간 잔머리는. 조장이 군에 있을 때부터 잔머리는 잘 굴렸어. 그렇지 않아요, 선배?”
동춘이 화린의 말을 듣고 한마디 하였다.
“잔머리가 아니고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잔머리는 나보다 네놈이 더 많이 굴린 것 같은데.”
“나야 생존을 위한 잔머리였으니 그런 거고. 조장은 일하기 귀찮아서 굴리는 잔머리이지 않소.”
타아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동춘의 눈에 불꽃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아주 죽으려고 환장을 하였지.”
화린의 말에 동춘이 습관처럼 입술을 삐죽였다.
“수연아, 저놈 입술을 오리 입술로 만들어 버려.”
“아니, 내가 잘못했소. 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할 수도 있지 않소!”
동춘은 곧장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장주님, 식솔들은 어찌하기로 하였습니까? 화산으로 보내신다고 들었는데.”
서대영이 물었다.
“화산과 종남으로 나눌 생각이야.”
“왜요?”
“그래야 안전할 테니까. 아무리 사혈맹이라고 해도 화산과 종남을 동시에 건드린다는 건 좀 망설여지는 일이 아닐까?”
“그렇긴 하겠네. 화산과 종남이 공격받으면 구파일방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놈들이 움직였다는 소식이 들리면 우리는 곧장 선제공격을 할 거야.”
“선제공격?”
“사혈맹과 백마사가 함께 오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구룡전단과 수연이 백마사에 가서 기다렸다가 병력이 빠져나오면 빈집을 털어. 확실하게 털어야 해.”
“맡겨 둬. 그런 일 한두 번 해 보나. 그런데 안 나오면?”
“지켜보다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백마사로 가서 물어봐. 공격해 올 것인지 아닌지.”
“물어본 뒤에는?”
“죽일 듯 달려들면 다 죽여 버려. 한 사람도 살려 두지 말고, 삭초제근 알지?”
남궁수연은 방긋 웃었다.
“그리고 이 호법은 수하들과 구룡루에 있다가 사혈맹이 공격해 오면 섬서성의 사파 문파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싹 쓸어 버려.”
이도문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서 총관은 식솔들 일부를 데리고 종남으로 가서 철영 장로에게 내가 며칠만 부탁한다고 말하고 식솔들과 함께 있어.”
“안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화린은 동춘을 보았다.
“저기 못난 놈 있잖아. 저놈만 있으면 돼.”
“아니, 조장은 내가 언제까지 꼬맹인 줄 아시오?”
“죽을래?”
화린의 한마디에 동춘이 꼬리를 말았다.
“싸우는 건 내가 싸워. 넌 내가 준비하라는 것만 미리 움직여서 지정한 장소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혁지석이 말하였다.
그는 화린이 살수들의 종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살수들의 도움을 받으면 사혈맹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하였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제가 감당합니다. 저의 능력 밖이라면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제가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종주가 된 자의 도리이며 의무입니다.”
가끔 화린의 이러한 고지식한 부분 때문에 답답하긴 하여도 스스로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에서는 믿음이 갔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올지 안 올지도 모르잖아.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올 것 같은데.”
“그럼 어쩔 수 없고. 그냥 신나게 싸우는 거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칼춤을 추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거야.”
화린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따라 남궁수연의 입가에도 미소가 생겼다.
두 사람의 미소를 본 동춘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아니, 닮아 갈 게 없어 저런 것까지 닮아 가나? 하여간 남궁수연 선배는 별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