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29)
구룡전기-129화(129/217)
구룡전기 (129)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에서 가장 큰 정육점을 운영하는 왕팔은 한낮에 찾아온 손님이 주문한 고기를 장만하면서 손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구룡장의 일에 남궁세가의 여식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구룡장과 남궁세가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요. 섬서성에 있던 남궁진과 남궁연아가 스스로 인질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기를 주문한 손님은 화린이었고, 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정육점의 주인 왕팔은 산동성 하오문 지부의 지부장이었다.
화린은 그에게 섭혼술을 걸어 지금 섬서성의 상황을 자세하게 듣는 중이었다.
“허, 참…… 그 두 사람이 왜 인질이 된 건지.”
“사혈맹에서 구룡루를 때려 부수려고 하였는데 그때 성주가 막아선 모양입니다. 이대로 두었다간 사혈맹과 관군이 싸울 것 같으니 남궁진과 남궁연아가 스스로 인질이 되기를 자처하였고, 그 소식이 남궁세가에 전해졌습니다.”
“남궁세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소문에는 검존이 이 일을 해명하기 위해서 나섰다고 합니다.”
“검존? 검존이라면 남궁진의 숙부인 남궁청야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나섰으니 남궁진과 남궁연아의 일은 잘 해결될 것입니다. 다만…….”
“다만?”
“남궁세가와 구룡장의 관계가 밝혀지고 정리가 되면 사혈맹에서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기 힘드니 그 부분이 걱정이긴 합니다.”
“힘들 게 뭐가 있습니까? 구룡전단에 의해서 대령멸마대가 소멸되었으니 사혈맹의 입장에서는 고심이 커지겠지요.”
“네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령멸마대가 소멸되었다니요?”
왕팔은 자신이 섭혼술에 걸렸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화린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얼마 전에 그들이 몰살당했습니다.”
화린은 대령멸마대가 몰살당한 장소까지 자세하게 알려 준 후에 지금 무림의 상황을 조금 더 알려 달라고 재촉하였다.
“섬서성은 남궁세가의 남매가 인질로 잡혀 있다고 해도 구룡루로 인해 사혈맹과 관군이 충돌할 수 있으니 종남파와 화산파에서 무인들을 산문으로 내려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그건 잘한 결정이군요.”
“하여간 이 일로 섬서성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어 있습니다.”
“지부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이번 싸움에서 구룡장이 사혈맹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겠습니까?”
왕팔은 잠깐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사혈맹이 죽자 살자 달려들면 잘 피해 다니는 구룡장주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혈맹의 입장에서는 이해타산을 따져 봐야 하니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구룡장이 유리할 것입니다. 다만…….”
“다만?”
“구룡장이 섬서성에 정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사혈맹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중원 어디에 자리를 잡든 구룡장은 조용한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사혈맹이 뒤로 수작질을 부린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요. 거대한 무림 연합 단체가 일개 장원 하나 어찌하지 못하였다고 소문이 난다면 그걸로 그 단체의 위신은 꺾이는 것이고, 속해 있는 많은 문파들은 정파 무인들에게 손가락질당하며 지내야 할 것입니다.”
“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사혈맹에서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니 은밀히 고수를 보내거나 혹은 살수를 동원하여 구룡장주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왕팔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럼 찾아오는 족족 죽여 버리면 되겠군요.”
“네에? 그게 무슨…….”
“아니, 아닙니다. 오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찾아오겠습니다.”
“아,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편한 날, 편한 시간에 찾아 주시면 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화린은 왕팔에게서 정보를 들은 후에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왕팔은 한참 있다가 섭혼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잠깐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이렇게 앉아 있지? 내가 뭘 하려고 했나?”
왕팔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이리 앉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은 공허한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벌써 치매인가? 아직 젊은데…….”
* * *
“그러니까 나 때문에 본가가 오해를 받고 있다는 말이네.”
“그렇지. 우리를 감시하였던 놈 중에 맹호사사혈전대 소속 사람이 있는 게 분명 해. 그놈이 나와 너를 알아보았다고 그랬거든.”
“우리를 감시하는 놈이면 사파겠지.”
“아마도.”
“대부분의 무인들이 사파이지 않았습니까? 조장이 전역하고 난 후에 수연 선배가 그놈들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데요. 아마 수연 선배라면 이를 갈 겁니다.”
동춘이 말하자 수연이 노려보았다.
“아니, 내가 이를 가는 건 아니고, 선배에게 당했던 사람들이.”
남궁수연은 동춘을 노려보다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그놈, 이승천.”
“이승천?”
화린은 이승천이라는 이름이 생소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놈이 한 놈 있어. 선배도 얼굴을 보면 알 거야.”
“내가?”
“선배야 워낙 정을 안 주려고 했으니까 늦게 들어온 대원들에게는 관심을 안 가져서 그렇지.”
“그렇다 치고, 왜 그놈이라 생각을 해?”
“백마사의 장문인이 이천국이라며. 이승천이랑 성이 같잖아.”
화린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남궁수연을 보았다.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천국뿐이야?”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같은 성이니까 부자지간일 수도 있지. 그리고 그놈이 산동성에서 일반인을 강간하고 죽이는 바람에 관군에게 쫓기다시피 하여 군대에 들어왔다고 했거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입대 동기는 안 가르쳐 주는 걸로 되어 있는데.”
“우리 조장이 가르쳐 주던데. 내가 여자라고 조심하라고 말이야.”
“조심은 이승천인가 하는 놈이 해야지, 웃겨. 아니, 어떻게 선배를 여자로 생각할 수가 있지?”
동춘의 말에 남궁수연이 발끈하여 자신의 손으로 가슴을 위로 살짝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며 동춘에게 말했다.
“그럼 이건 뭐냐?”
그런 남궁수연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동춘 역시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하였다.
“남자라면 다 있는 거 아니오?”
화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동춘이가 조금 더 크네.”
“어디 너 옷 벗어 봐.”
남궁수연이 동춘의 옷을 벗기려고 하자, 동춘이 황급하게 화린의 뒤에 숨었다.
“선배는 나와 봐. 내가 오늘 저놈의 가슴을 반으로 잘라 버릴 테니까.”
남궁수연은 다짜고짜 화린을 향해 손을 썼고, 화린의 신형이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흩어지자 뒤에 숨어 있던 동춘이 남궁수연의 손에 잡혔다.
“어디 봐. 가슴이 얼마나 큰지 한번 보자.”
“조장, 조장…….”
동춘은 황급하게 화린을 불렀고, 화린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하며 잠깐 자리를 비켜 주었다.
“선배, 내가 잘못했소. 내가 실언을 한 거요. 그러니 한 번만, 한 번만 살려 주시오. 정말이오. 내가 다시는 선배에게…… 아아악!”
동춘의 애달픈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화린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혁지석은 구룡전단의 단원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대령말마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도 쉬지 않고 수련하는 중이었다.
화린은 남궁수연과 동춘의 사이가 진정될 때까지 이들의 수련을 지켜보며 사혈맹이 물러난 이후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 보았다.
“암습을 한 번 받을 때마다 사혈맹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십이사가에 속한 가문을 하나씩 멸해 버릴까?”
사실상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리한다면 사혈맹의 선택지는 두 가지로 좁힐 수가 있게 된다.
하나는 더 이상 구룡장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패 없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고수를 보내는 것이다.
“사혈맹의 맹주인 사황 백무기는 나서지 않을 터이니 백대고수 중 한 명이 나서겠지.”
십이사가에 속한 서너 가문은 멸문당한 후에야 자신에게 손을 뗄 것이다.
“또 모르지. 명예 회복을 위해서 사황 백무기가 직접 나설지.”
말을 하기 좋아하는 세간의 사람은 일마이황삼왕사제의 무공이 엇비슷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천마, 검황, 사황의 무공은 삼왕사제보다는 한 수 위였다.
한 수 위라고 하여 차이가 그리 나는 것은 아니지만 변수가 없다면 삼왕사제가 천마와 검황, 사황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본인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황이 직접 나선다면? 그의 무력을 가늠할 수가 없어 확답을 할 수 없겠지만 아마도 자신이 반 수 정도는 밀릴 것이다.
“살인검제 선배와 싸울 때도 사실 내가 꼼수를 부려 비긴 것이지, 선배가 살수로서 나에게 접근하였다면 내가 무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난 십대고수들에게는 아직 미치지 못한단 말이지.”
화린은 자신이 무림백대고수 수준임을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었다.
“무공과 술법의 합일을 이루었지만 내가 익히고 있는 무공들을 단순화시켜 무공을 합일시키지 않는 이상은 그들을 뛰어넘을 수가 없어.”
화린이 젊은 나이에 이처럼 뛰어난 경지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무공과 배교의 술법을 합일시켜 새로운 형태의 무공을 창안해 내어서였다.
여기에서 하나 더 익히고 있는 무공들을 하나로 합일시켜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무공에 자신이 익힌 모든 걸 담아내어야 했다.
이러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 높은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깨달음을 얻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그 전에 그들을 만나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데, 사태가 커지면 그러한 일도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이지.”
화린이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화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혁광 형,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죽은 단리혁광에게 물어보는 말이지만 어쩌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걱정 마. 내가 소소와 혁진이는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한동안 시끄럽게 동춘과 남궁수연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수연이에게 부탁을 하면 내가 당하더라도 구룡장의 식솔들을 살릴 수가 있겠지.”
* * *
“그러니까 남궁세가와 구룡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검존?”
“그렇소. 본 가의 여식이 오래전에 집을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군에 들어간 모양이오. 그곳에서 구룡장주라는 작자를 만나 개인적인 친분으로 그를 돕고 있는지 모르나 본 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소. 그러니 나의 조카들을 풀어 주었으면 하오.”
천량사가의 장로인 배동성은 백마사의 셋째인 이승천에게 들은 말과 일치하여 남궁청야가 거짓을 말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풀어 줄 수는 없었다.
“그 말을 어찌 믿소. 남궁가 여식의 손에 본 맹의 예하 문파가 여럿 멸문을 당했소. 이게 남궁가의 여식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소.”
“어찌 수연이 혼자요? 구룡장주와 구룡장의 무인들과 함께 한 일이 아니오.”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거요? 고작 열다섯 명으로 섬서, 산서, 하남, 산동성의 사파 문파를 멸문시켰다는 것이오!”
배동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못 한다고 생각하시오? 내가 나서서 그들을 멸한다고 칩시다. 그럼 할 수 있을 것 같소, 못 할 것 같소?”
“검존, 당신과 남궁가의 여식이 같소?”
“어찌 다르다 생각을 하오? 수연이 나보다 더 강하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은 거요?”
“뭐요?”
“화린 조장과 남궁수연 선배는 무림백대고수에 비견할 정도로 강합니다. 제가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이리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배동성은 이승천이 한 말이 떠올랐다.
“특히 화린 조장은 괴물입니다. 젊은 나이에 그만한 경지에 오른 자는 천지를 다 뒤져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을 만큼 괴물입니다.”
“배 장로, 본 가의 명예와 부친의 명예, 그리고 나의 명예를 걸고 말하는 것이니 조카들을 풀어 주시오.”
“그럼 남궁가의 여식을 데리고 오시오.”
배동성의 말을 듣자, 남궁청야의 볼이 씰룩였다.
“지금 나보고 조카를 잡아 와서 당신들에게 바치란 말이오?”
배동성은 순간 자신이 남궁청야의 역린을 건드렸음을 깨닫고 황급하게 말하였다.
“내 말은 그 말이 아니라 남궁세가의 여식에게 직접 검존이 하였던 말을 듣고자 함이오.”
“지금부터 어설프게 대답하지 마라. 인질이고 뭐고 확 다 죽여 버릴 수가 있으니까.”
남궁청야의 기세에 주눅이 든 배동성은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하필이면 이놈이 와서……. 딴 놈이 왔으면 대화라도 편하게 할 텐데.’
“이제 두 번 말 안 해. 내 조카들을 풀어 주거나 아니면 여기 있는 놈들 다 죽거나, 결정해. 지금 배가 고프니 딱 한 식경 시간을 주겠다. 그 후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딴소리를 할 경우에는 살아서 이 객잔을 나갈 생각은 하지 마.”
협상을 하러 온 것인지 협박을 하러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남궁청야의 강압적인 말에 한 식경 안에 배동성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봐 점소이, 이 집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으로 한 상 차려 가지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