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35)
구룡전기-135화(135/217)
구룡전기 (135)
화마혈수권
섬서성을 대표하는 정파로 화산파와 종남파가 있다. 두 문파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거대 문파로 오랫동안 섬서성과 함께 궂은일과 좋은 일을 경험하며 구파일방의 일원으로 무림의 안녕을 위해서 노력하는 문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두 문파는 세속적인 일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고 있어 섬서성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들은 정천맹에 가입한 정파들의 수장들이 모여서 처리하곤 하였다.
이제까지는 석천파를 중심으로 정파의 수장들이 모여 의견들을 나누었지만 석천파가 의문의 무리에서 멸문을 당한 이후, 섬서성의 정파 모임을 이끌어 가는 문파는 호천문이었다.
호천문의 문주 박호상은 초일류의 무인으로 섬서성에서는 흑호검이라 불리는 성급의 고수였다.
그런 호천문의 박호상이 심장이 뚫린 채 자신의 장원 대들보에 기대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복면을 쓰고 있어 그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붉은 빛을 뿜어내는 안광은 그가 정상적인 무공을 익힌 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었다.
“무엇 때문에…….”
박호상은 자신의 죽음, 아니…… 호천문의 멸문이 억울한지 복면을 쓴 자를 향해 왜 자신의 문파를 공격했냐고 물었지만 그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대답을 듣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는 박호상을 내려다보며 복면인은 입을 열었다.
“무림에서 필요에 의해 죽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닌가?”
필요에 의한 죽음!
천년 무림이 대를 이어 오며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같은 이유이기도 하였다.
돈, 명성, 사회적인 지위와 같은 것을 얻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탐욕에 눈이 멀어 상대를 죽이거나 죽는 곳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고, 그러한 일이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무림이었다.
복면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호천문을 등지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다음 날 호천문에서 일하는 사람 중 외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호천문의 식솔들과 무인들이 모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섬서성의 부현 관아에 신고하였다.
이 소식이 개방과 하오문에 전해지자, 삽시에 섬서성 전역으로 퍼졌다.
사파의 문파가 이렇게 멸문을 당했다면 구룡장주가 일을 벌였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정파의 문파가 멸문을 당했으니 섬서성의 무림에서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마공입니다.”
순간 호천문 안에서는 정적을 흘렀다.
호천문의 멸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방의 섬서 지부장인 걸충선과 하오문의 섬서 지부장인 남선영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혹시 몰라 다시 확인을 부탁하였지만 개방도와 하오문도는 같은 결론을 내렸다.
“상처를 보시면 심장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피를 흘린 자국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십 명이 죽었는데 장원에 피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상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피가 안에서 응고되어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걸충선과 남선영은 시체들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럼 어떤 마공인지 알 수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정혈옥형공 같습니다.”
걸충선이 말하자, 남선영도 인정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정혈옥형공 외에 화마혈수권도 의심해 볼 만합니다.”
남선영의 입에서 화마혈수권이란 이름이 나오자, 좌중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요. 화마혈수권은 이백 년 전에 절진되어 더 이상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걸충선은 화마혈수권의 절진을 이유로 남선영의 말을 부정하였다.
“저도 그리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화마혈수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권마 초단운!
이백 년 전 무림에 홀로 나타나 중원 무림의 삼분지 일을 초토화시킨 희대의 마왕으로 불리며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무인으로 그의 성명절기가 바로 화마혈수권이었다.
당시 권마 초단운에게 죽은 자들로 산을 쌓고, 흘린 피로 강을 이루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였다.
그런 초단운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마교에서는 천마를 비롯한 오대마가의 가주들이 나섰고, 사파에서는 십이사가의 가주들이, 정파에서는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천무제가 나섰다.
이들은 권마 초단운을 운남성의 십만대산까지 추격하여 십만대산의 최고봉인 천뇌봉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렀다.
이들의 싸움으로 인해서 천뇌봉이 무너져 내렸고, 당시 전투에 참여하였던 이들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너지는 천뇌봉과 함께 함몰되어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온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권마 초단운 역시 천뇌봉이 함몰되면서 함께 그곳에 묻혔는데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 이후, 권마 초단운이 무림에 나타나 살겁을 일으킨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고, 당시 전투에 참가하였던 이들은 권마 초단운이 천뇌봉과 함께 묻혔다고 믿었다.
그렇게 이백 년이 지난 지금, 권마 초단운의 성명절기를 언급하니 모인 좌중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에 화마혈수권이라 생각을 합니까?”
남선영은 심장이 있는 곳에 구멍이 나 있는 호천문의 문주 박호상을 가리켰다.
“이 상처를 보십시오. 심장에서 피가 돌아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화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남선영의 말을 들은 걸충선은 박호상의 상처를 유심히 살폈다.
남선영의 말대로 응고된 피에 화기가 깃들어 있었다.
걸충선은 아닐 것이라며 부정하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박호상의 무공이 뛰어나니 흉수가 양강의 기운을 더하여 공격하였겠지요.”
걸충선은 애써 부정을 하였다.
무공은 세월이 흐르면서 발전하여 지금까지 내려왔기에 이백 년 전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마혈수권이라 할지라도 지금에 와서는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당시 중원 무림의 삼분지 일을 초토화시켰던 공포의 마왕이 사용했던 무공이라 두려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섬서성에 마가 낀 것이 분명하군.”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잔살십육검에 천화난무, 소수신공에 이번에는 화마혈수권까지……. 섬서성에 마가 제대로 낀 것이 틀림없어.”
* * *
호천문의 멸문에 괴상한 소문이 돌면서 무림은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권마 초단운의 무공인 화마혈수권은 앞서 섬서성에 모습을 드러낸 무공들보다 더 위험했기에 죽은 자들의 사인이 화마혈수권이라면 무림은 한바탕 혈겁에 휩싸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조기에 색출하여 권마의 전인을 죽이거나, 붙잡아 뇌옥에 가두어야 했다.
정천맹과 사혈맹에서는 섬서성의 부현 관아에 방치되어 있는 시체를 구해 부검을 통해서 확실하게 사인을 조사하였고, 그럴수록 이들의 수심은 깊어졌다.
중원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은밀하게 활동을 시작한 마교 역시 호천문 무인의 시체를 구해 와서는 부검을 해 보았고, 사인이 정혈옥형공이 아닌 화마혈수권임을 확인하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화마혈수권이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섬서성의 장안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은밀하게 활동하는 음서마군과 그의 수하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화마혈수권에 몹시 당혹해하였다.
“혹여 권마 초단운의 전인이 나타날까 싶어 십만대산의 무너진 천뇌봉으로 가는 길을 봉쇄하였고, 무림이 나서서 출입을 막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본교에서 파견 나간 교도들이 그곳에 상주하며 사혈맹과 정천맹의 무인들과 함께 무너진 천뇌봉으로 오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권마 초단운의 화마혈수권이 나타났다는 건 그가 천뇌봉이 무너질 때 함께 묻히지 않았거나 혹은 천뇌봉을 통제하는 무인들이 그의 사체를 찾아내 비급을 얻어 후대에 물려주었다는 말인데.”
이 경우가 아니면 권마 초단운의 화마혈수권이 무림에 다시 나타날 수가 없었다.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나?”
“권마 초단운이 살아 있었다면 그 당시 사달이 나도 났을 것입니다. 그가 회복 불능의 부상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제자를 길렀을 것이고, 그리하면 화마혈수권이 더 일찍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것입니다.”
음서마군은 일리가 있다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되물었다.
“그럼 이백 년이 지난 지금 나타난 이유는?”
“아마도 비급으로 무공을 익히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어려움이 있다? 어설프게 무공을 익혔다간 무림공적으로 몰려 쫓길 수도 있으니 보다 확실하게 익힌 후에 어느 정도 무림에서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란 뜻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백 년 전과 달라진 상황이라 권마 초단운처럼 혈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본 교는 몰라도 사혈맹, 정천맹에서는 객원 장로의 자리를 약속하며 그를 영입하려고 할 것입니다.”
“본 교라고 하여 다를 것은 없겠지. 다만 장로의 자리보다 호법의 지위를 제안하겠지.”
마교의 장로들은 오대마가의 가주들을 주축으로 구성하고 있기에 외부의 사람에게 장로의 자리를 주기를 원치 않았다.
“일단 화마혈수권을 익힌 자가 누구인지 최대한 빨리 찾아내어 그가 혹할 수 있는 제안을 하는 것이 우선이겠군.”
“아무래도 그자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인다면 대공자에게 밀리고 있는 단천운 공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천마 방각에게는 일곱 명의 제자가 있다.
대제자인 방혁우는 천마 방각의 아들로 그는 무림에서 십룡팔봉 중에 마룡이라 불리고 있으며 천룡 용혁과 더불어 십룡 중에서도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다.
둘째 제자부터 여섯째 제자는 다음 대의 오대마가를 이끌어 갈 소가주들로 이들 역시 방혁우에 못지않은 무공 성취를 이룬 자들이다. 이제 약관을 벗어난 젊은 나이를 감안하면 이들 역시 방혁우의 자질과 비교하여도 손색을 없을 만큼 뛰어난 기재들이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제자는 천마 방각이 마교를 잠시 떠나 있을 때 그 자질이 대단하여 거둔 제자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마교도들 사이에서는 그를 무영이라 부르며 미지의 인물임에도 천마의 제자로 인정해 그에게 다음 마교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도전권을 부여해 주었다.
마교는 본시 약육강식의 강자존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능력만 되면 자신의 지위를 얼마든지 위로 끌어올릴 수가 있다.
다만 마교의 교주가 되기 위해서는 오대마가를 주축으로 한 장로원의 허락이 있어야 교주 위에 도전할 수가 있는데 이는 무분별한 교주 쟁탈전을 막고, 마교의 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치이기도 하였다.
이 외에 마교의 교주가 되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교주인 천마와 장로원에서 그 자질을 인정하여 다음 마교를 이끌어 갈 소교주를 선택하는데, 소교주가 될 자격이 있는 이들은 천마의 제자들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간혹 젊은 마교도들 중에서 소교주에게 도전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무분별한 도전을 막기 위해 장로원에서 그 자질과 지위 그리고 그의 무공을 판단하여 도전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준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명목상으로 만든 장치들이고, 실제로는 천마의 제자들끼리 교주 위를 놓고 경쟁할 뿐이었다.
대제자인 경우 천마의 아들이니 천마를 따르는 마교도들이 그에게 힘을 보태어 주고 있고, 오대마가의 사람들은 가문의 소가주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무영의 경우엔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있어 교주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부여받았으나 교주 쟁탈전에서는 일찌감치 탈락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섬서성에 수하들을 데리고 나온 음서마군은 오대마가 중 혈천마가의 사람으로 혈천마가의 소가주이자, 천마 방각의 이제자인 단천운을 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를 만나는 것도 문제지만 그를 만나면 어떤 조건을 내밀어야 손을 잡을 수 있겠나?”
“혈천마가의 객원 장로직이나 단천운 공자가 소교주가 되고 교주 위에 올랐을 때, 부교주의 자리를 준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부교주?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단천운 공자가 소교주로 내정되어도 교주 위에 오르려면 못해도 오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소교주로 내정되는 순간 마교의 호신무공이자 성명절기인 천마신공을 배울 수가 있다.
천마신공을 익히기 위해서 빠르면 오 년, 늦으면 십 년까지도 폐관 수련을 한 후에 천마신공을 익히고 나와야 교주 위에 오를 수가 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화마혈수권의 약점을 파악하거나, 오랜 작업을 통해서 무력화시키고 단천운 공자가 교주 위에 오른 후에 제거해 버리면 됩니다.”
“음…….”
음서마군은 이야기를 듣고 이해득실을 따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면 큰 문제는 없겠군. 덤으로 화마혈수권을 회수하면 우리에게는 더없이 좋을 터이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수하들에게 그동안 심어 둔 정보원들을 이용해서 초단운의 전인을 찾는 데 집중하라고 전해. 그리고 사혈맹이나 정천맹 역시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으니 그들의 진영도 잘 살피라 하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