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4)
구룡전기-14화(14/217)
구룡전기 (14)
“자네가 부대로 와서 몇 번이나 작전에 나갔지?”
“모르긴 해도 백 번은 넘을 것 같습니다.”
화린은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장인 적성과 독대를 하는 중이었다.
“백 번이라…… 많이도 나갔군.”
“그러게 말입니다. 나를 그렇게 못 죽여서 안달을 하니, 내가 억울해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자네를…….”
“그런 분이 계십니다.”
적성은 화린의 말이 농담이라 생각을 하고는 피식 웃었다.
“이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지.”
“석 달이면 오 년이 되니 제대를 합니다.”
적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하면 할 일은 있나? 아니면 갈 곳은 있고?”
“왜요? 제대하지 말고 여기에 남으라고 하실 생각입니까?”
적성은 화린의 말에 뜨끔하였는지 헛기침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위험한 임무가 가끔 있어 그렇지. 이곳보다 편한 곳을 찾기 쉽지 않을 걸세. 그리고 위험한 적은 다 제거가 되었으니 몇 년 동안은 임무가 내려오지 않을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싫습니다. 남으라는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면 제가 미쳐서 칼부림을 할 수도 있으니 그리 아십시오.”
화린의 협박에 적성은 남으라고 설득하려던 생각을 접어야 했다.
“알겠네. 자네가 그동안 본대를 위해서 노력해 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네.”
“해야 할 일을 하였습니다.”
적성은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어 화린에게 주었다.
“제대증이네.”
화린이 적성을 보았다.
“당분간 임무는 내려오지 않을 것이고, 자네는 무료한 시간만 보내다 제대를 할 것이니 그리하는 것보다 지금 제대해서 중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렇긴 합니다.”
“그동안 자네의 고생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게.”
화린은 전역증을 받아 보며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깐 동안 고민을 해야 했다.
“설마 이걸 미끼로 탈영병 처리해서 날 엮으려고 하는 건 아닙니까?”
“하하하, 그랬다간 우리 부대의 대원들이 자네의 검에 모두 죽을 걸 아는데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나.”
화린은 대답은 들었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적성을 보았다.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고 그냥 떠나게.”
“지금 말입니까?”
“이제까지 그렇게 해 왔네. 괜히 전역을 대원들에게 알려 그들을 뒤숭숭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소리 없이 조용히 부대를 떠나는 것이 부대원들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네.”
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돌아가 짐을 챙긴 후에 그길로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화린은 적성에게 마지막 군례를 올린 뒤에 그의 집을 나왔다.
“전역이라…….”
화린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몇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이가 바로 단리혁광이었다.
“내가 버티고 견뎠어. 이제 돌아가면 동생들을 만나 볼게.”
화린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후에 발걸음을 옮겼다.
* * *
황궁의 밤은 어두운 곳은 어둡지만 밝은 곳은 대낮보다 밝았다.
밤을 틈타 황궁으로 몰래 숨어들어 온 한 인영은 어두운 곳만을 다니며 경계를 서는 금의위의 눈을 피하였다.
그는 구중심처라 불리는 황제의 침실까지 다다를 수가 있었는데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조심스럽게 황제의 침실로 들어간 그는 황후와 함께 잠을 자고 있는 황제를 보았다.
“무림으로 가기 전, 아바마마께 마지막 문안 인사를 드리옵니다.”
화린이었다. 그는 군에서 전역을 한 후에 곧장 황궁으로 와서 황제를 찾았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맹호사사혈전대로 보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오 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면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으니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된 시간이었다.
황제의 호위 무사인 진이 모습을 드러내어 침실에 불을 밝혔다.
그런 진의 기척에 황제가 눈을 뜨고 일어났고, 엎드려 있는 화린을 본 후에 곁에 있는 황후의 수혈을 눌러 인기척에 깨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전역을 한 것이냐?”
황제는 덤덤하게 말을 하였다.
“아직 석 달이 남았지만 임무가 내려오지 않을 것 같다며 전역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경험들을 하였느냐?”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아귀다툼도 하고 도움도 주고받으며 그리 살았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네가 정착할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겠느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쉽게 남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황제는 화린의 대답에 만족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면 되었다.”
대답을 하는 황제는 곁에서 자고 있는 황후를 보았다.
“이 사람을 용서해 줄 수는 없겠느냐?”
황제는 지난날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물었다.
“그 당시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다만 후각이 발달되어 배꽃 향기를 품은 이가 다녀갔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음…….”
“세상 천지에 배꽃 향기를 품은 이가 한두 명이겠습니까?”
“하면?”
“저는 더 이상 황궁의 사람이 아닙니다. 황궁의 일은 황궁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 저의 손을 떠났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모친의 죽음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택하였는지, 아니면 모친이 뭔가 크게 잘못하여 죽임을 당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모친의 죽음에 대한 복수는 자신의 몫이 아니라 황제의 몫이라 말을 하며 그에게 맡겨 버린 것이다.
“고맙구나.”
황제는 진을 보았다. 그러자 진은 침실 한쪽에 있는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내어 화린에게 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화린은 진이 준 것을 펼쳐 보았다. 땅문서와 집문서 그리고 전답과 식솔들의 신상이 적혀 있는 서류였다.
“네가 원하고자 하는 일에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밑거름 삼아 영양분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화린은 황제가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감사하옵니다.”
“이제 떠나라. 오랫동안 마주 보고 있어 좋을 일이 없을 터이니.”
화린은 황제에게 절을 한 후에 그의 침소를 나왔다. 그의 곁에는 진이 있었다.
“구황자님께서 이해를 하십시오.”
“제가 이해를 하고 자시고 할 것 없습니다. 아바마마를 잘 부탁드립니다.”
화린은 진에게 황제를 부탁하고는 한 마리의 야조가 되어 황궁을 떠났다.
그런 화린을 보며 진은 감탄을 하였다.
‘화린 황자님께서 무림에서 활동한다면 앞으로 무림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군.’
진은 화린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 몸을 돌렸다.
‘그런데 굳이 화린 황자님의 군대에서 활동한 행적을 지울 필요가 있나?’
진은 이 문제를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폐하의 마음은 정녕 알 수가 없구나.’
* * *
섬서성은 중원의 중서부에 있는 성으로 황하 중류에 위치해 있었다.
동으로는 산서, 하남성과 면이 닿아 있고, 남으로는 호북, 서쪽에는 감숙과 사천이 면에 닿아 있었다.
또한 북으로는 대초원과 맞닿아 있어 옛날부터 교통,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해 온 성이기도 하였다.
섬서성에는 많은 무림의 문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정파의 대표적인 문파로는 구파일방의 화산파와 종남파가 있고, 사파로는 음사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정사지간의 철사장도 큰 성세를 드러내고 있어 섬서성의 무림은 사천성 다음으로 큰 무림이기도 하였다.
화린은 황궁을 나와 섬서성 산양현으로 갔다. 그곳에 단리세가가 있으니 단리혁광의 동생들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음…….”
화린이 단리세가를 찾았을 때 세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화린은 산양현의 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단리혁광의 두 동생과 한 명의 노복을 찾을 수가 있었는데 그들의 형편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일단 며칠 더 알아봐야겠어.”
화린은 그들을 찾아 곧장 다가간 것이 아니라 객잔에서 머물면서 며칠 동안 그들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두 눈으로 확인을 하였다.
“혁진, 너 또 싸우고 온 거야?”
“잔소리하려면 말하지 마. 밥이나 줘.”
매일같이 두 남매는 투덕거렸는데 문제는 단리혁진에게 있었다.
화린은 단리혁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단리세가의 사람이 고작 삼류 왈패들의 무리를 이끌고 있으니…….”
화린은 조금 더 이들을 지켜보았다.
단리혁진은 산양현에서 문제가 많은 청년이었지만 그의 누이인 단리소소는 행실이 바르고 예의를 알고 명문가의 규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산양현의 기루에서 일을 하는 기녀들의 옷을 수선해 주거나 빨래를 해 주며 품삯을 받아 생활하였는데 왈패 짓을 하고 있는 단리혁진으로 인해서 이만저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노복도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니 그녀가 노복까지 책임을 지며 생활하는 중이었다.
화린은 왈패들을 모아서 대장질을 하고 있는 단리혁진부터 조금씩 고쳐 보기로 결정을 하였다.
산양현은 화산파가 있는 화산과 종남파가 있는 종남산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또 온천으로도 유명한 여산을 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마을이기도 하였다.
이런 산양현에는 상점들이 들어선 시전과 노점상들이 가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저잣거리가 있는데 이 두 곳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웠다.
단리혁진은 왈패들을 이끌고 이 시전과 저잣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며 장사치들로부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곤 하였는데 이곳에도 경쟁자들이 많아 매일같이 싸움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단리혁진은 단리세가의 무공을 어느 정도 익혀 왈패들 중에서는 제법 강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그렇지 무림인을 상대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오래전 단리세가는 정사대전에서 무공이 많이 소실되었고, 단절되어 그나마 어린 시절 형이었던 단리혁광에게 배운 무공을 갈고 닦아 왈패들의 대장 짓을 하고 있지만 내공심법을 배우지 못하였기에 무림인들을 상대로 싸우는 건 많이 부족하였다.
지금이야 일반인을 상대로 어떻게 먹힌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무림인과 시비가 붙을 수가 있고, 그로 인해서 죽을 수도 있었기에 단리혁진이 왈패가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 버릇을 고쳐야 했다.
화린은 일부러 시전에서 단리혁진의 패거리에게 시비를 걸었다.
자신들의 세상인 양 시전 거리를 다니는 그들이었기 화린이 의도적으로 건 시비에 넘어왔다.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화린의 주먹이 왈패의 얼굴에 적중하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을 파악하였을 땐 왈패 중 한 놈의 코가 깨진 상황이었다.
“이 새끼가!”
그들은 화린에게 우르르 달려들었고, 그런 그들을 곤죽으로 만들어 돌려보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수하들이 곤죽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단리혁진이 시전으로 화린을 찾아왔다.
함께 온 자가 화린을 가리키자, 단리혁진은 전후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단리혁진은 화린을 향해 허공으로 도약하여 발을 뻗었다.
그런 단순한 공격을 가볍게 피한 화린은 바닥으로 내려서는 단리혁진의 종아리를 강하게 후려 찼다.
“윽!”
단리혁진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화린의 공격에 걸려 바닥에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네놈은 뭐냐?”
화린이 모른 척 물었다.
“뭐긴, 시✕놈아! 네가 우리 애들 곤죽으로 만들었다며!”
악다구니를 쓰며 일어나 달려와서는 주먹을 여러 번 휘둘렀다.
화린은 손을 이용하여 그의 주먹을 모두 쳐 낸 후에 손바닥으로 가슴을 때렸다.
“윽!”
단발마와 함께 뒤로 밀려나는 그를 보고 화린은 몸을 빙글 돌아 발을 뻗었다.
퍼어억!
발이 단리혁진의 가슴을 또 한 번 때리자, 그 힘에 이기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뒤로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이 개새끼가.”
화린은 욕지거리를 하며 달려드는 그의 턱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퍽!
화린의 주먹이 단리혁진의 턱에 제대로 들어가자, 그대로 고개가 돌아가며 옆으로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화린은 기절한 그를 잠시 내려다본 후에 구경을 하고 있는 주변의 상인들에게 말을 하였다.
“이제 더 이상 이놈들에게 보호세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이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면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저는 집을 구할 때까지는 만정객잔에서 머물고 있으니 저를 찾아오면 제가 이놈들을 쫓아 버리겠습니다.”
화린의 말에 상인들은 긴가민가하였지만 일단 단리혁진을 쉽게 쓰러뜨린 그였기에 그가 하는 말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화린은 쓰러진 단리혁진을 둘러업고는 그의 집으로 갔다.
다 쓰러져 가는 집 마루에서 단리소소가 가지고 온 옷감을 수선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어…….”
화린이 단리혁진을 업고 오는 모습을 보고 놀라 맨발로 달려 나갔다.
“괜찮습니다. 잠시 기절했을 뿐입니다.”
화린은 단리소소를 안심시켰다.
“저와 시전에서 시비가 붙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손을 쓴 것이니 용서하십시오, 소저!”
화린은 업고 있는 단리혁진을 마룻바닥에 눕혔다.
“죄송합니다. 동생이 워낙 막무가내라…….”
“아닙니다. 사내가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앞으로는 주의를 주셔야 할 겁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화린은 단리소소에게 약간의 돈을 건넸다.
“이건 동생을 치료하는 데 쓰십시오.”
“아니, 아닙니다. 동생이 공자님께 시비를 걸었는데…….”
“큰돈이 아니니 그리하십시오.”
화린은 그녀의 손에 돈을 쥐여 주고는 그녀의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