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42)
구룡전기-142화(142/217)
구룡전기 (142)
화린은 화산파의 영전관에서 정신을 잃은 듯 누워 있었는데 그의 몸에는 천이 빈틈없을 정도로 감겨 있었다.
몸에 두른 천에 붉은색이 옅게 번지는 걸로 봐서는 제법 큰 상처를 입은 듯하였다.
“내가 미쳤지. 보따리를 싸 들고 말렸어야 했는데.”
그의 곁에서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남궁수연이었다.
그녀는 사황 백무기와 화린의 대결을 두 눈으로 목격하였고, 무림에서 사황 백무기의 사령마공을 보고도 살아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사황 백무기와 대결을 펼쳤던 화린은 사령마공에 전신이 난자당해 큰 부상을 입었지만 목숨만은 건질 수가 있었다.
화린의 공무도원공이 사령마공의 위력을 반감시키지 못하였다면 이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영전관에 누워 있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황 백무기 역시 화린과의 대결에서 내상을 입었지만 화린처럼 심각한 수준의 내상은 아니었다.
백무기는 약속대로 화린의 무공이 자신의 기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하여 이 정도에서 끝낸 것이다.
그래도 보름 정도는 요양을 통해서 심신을 안정시켜야 할 정도의 내상을 입었다.
백무기는 화린과의 대결을 끝낸 후에 남궁수연에게 화린을 데리고 선인봉에서 내려가란 말을 하며 자신의 내상을 감추었고, 남궁수연 역시 화린이 잘못될까 싶어 급하게 선인봉을 내려와 백무기의 상태를 알지 못하였다.
“최소한 생채기라도 내어야지. 백대고수 둘을 이겼다고 그렇게 자랑하더니.”
투덜거리지만 남궁수연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선배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 줄은 알았는데 십대고수, 그것도 사황이랑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어.”
사황 백무기가 화린이 마음에 들어 손 속에 사정을 두었는지는 알 수 없고 결과로 보면 화린의 참패이지만 결과가 드러나는 과정에서는 막상막하, 용호상박이었다.
“사혈맹이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으니 이제 크게 싸울 일은 없겠지.”
남궁수연은 눈을 감고 숨을 고르게 내쉬는 화린을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선배는 이제 좀 쉬어. 그동안 정말 많이 싸웠잖아. 그러니 조금 쉴 때도 되지 않았어?”
만약 화린이 사황과 싸웠다는 소문이 무림에 알려진다면 더 이상 구룡장에 시비를 걸 이들이 없겠지만 그건 사황도 그렇고, 화린의 입장에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화산파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화산파의 입장 역시 난처해질 수도 있으니 이러한 사실은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 뿐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쉬면서 나랑 함께 중원 여행도 다니고 하자. 그러면서 선배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남궁수연은 화린이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속에 있는 말들을 다 하였다.
“선배가 만나는 사람, 나도 소개 좀 해 주고 그래.”
남궁수연은 화린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그때, 선배 참 멋있었어. 대초원에서 말이야.”
남궁수연은 대초원의 마적단들을 멸할 때 화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부상을 당해 화린이 싸우는 걸 온전히 볼 수 없었지만 잠깐 보았던 싸우는 화린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잠시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던 남궁수연은 화린을 가만히 바라보다 자신의 입술을 화린의 입술에 가져갔다.
* * *
사혈맹에서 구룡장의 항복을 받아 내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또한 사혈맹에서 구룡장에 아량을 베풀어 구룡장주의 목숨을 살려 주고 그의 영업장을 그대로 존속시켜 주는 대신 향후 오 년간 무림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사혈맹의 감사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구룡장이 사혈맹에 의해 봉문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상인의 가문으로 활동을 하게 해 준 것만으로 어디야?”
“그건 사혈맹의 입장에서 돈이 나올 구석이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
“왜 잘 도망 다니며 사파들을 박살 내다가 갑자기 이런 소문이 퍼진 거야?”
갑작스러운 소문에 사람들은 의아하기도 하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황이 직접 나섰다고 하더군. 무림백대고수 세 명을 잃었으니 구룡장주와 남궁수연이 작정하고 도망 다니면 잡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야.”
“그래?”
“그렇다고 남궁세가를 치기에는 부담스러웠겠지. 그렇게 되면 정천맹과 전면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이해가 되긴 해. 사황이라면 사파의 무인들에게는 엄격하지만 정파나 마교의 무인들에게는 관대하다며?”
“그게 아니고, 입으로 떠벌리는 자들 말고, 실력이 있는 자들에게 관대하다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구룡장주와 남궁수연은 진짜라는 말이지. 사황을 만나서 그에게 인정을 받았으니까.”
함께 모여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오 년 봉문이라고 하지만 구룡장의 명성은 높아지겠네.”
“그렇다고 봐야지. 그리고 말이 봉문이지 무림의 가문이 아닌 상림의 가문이니 활동을 하는 데 크게 위축되거나 하진 않을 거야.”
“대단하네. 십룡팔봉의 이름이 하도 높아서 무림의 신성은 그들뿐이라 생각했는데 그들보다 더 뛰어난 이들이 두 명이나 나온 거잖아.”
구룡장에 대해서 열심히 대화를 하는 이들은 하오문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일부러 소문을 퍼트려 중원 전역에 구룡장주의 명성을 띄우는 중이었다.
사황의 부탁도 있었지만 구룡장주의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가 운영하는 구룡루를 찾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고, 구룡루를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수집하여 비싼 가격에 팔아먹을 수 있으니 하오문의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였다.
“그렇지.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대단한 자들도 무림에 많이 나왔나 봐.”
“그래?”
객잔 안에 있는 이들의 귀와 신경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들에게 집중이 되었다.
무림에 대한 소문은 가치가 있건 없건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서였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지금이 난세라고 표현을 하기도 해.”
“난세?”
“무림이 힘을 합쳐 배교를 멸망시킨 후, 삼십 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축적된 힘을 외부로 표출하기에 적합한 시기가 온 것이지.”
“그래도 지금 당장 알려진 사람은 구룡장주와 남궁세가의 여식이 전부잖아.”
“이 사람, 이렇게 무림에 소식이 둔해서야. 잘 들어.”
객잔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이를 느낀 사내는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더니 말하였다.
“물이 냉랭하네. 어디 나에게 술 한 잔 줄 사람 없소?”
마치 자신이 설표라도 된 듯 사람들에게 술을 요구하니 여기저기서 술을 가져다주란 소리가 들려왔다.
점소이는 재빨리 술 두 병이 들고 사내들이 있는 식탁에 내려놓았다.
“호응에 감사합니다. 하하,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 알았다면 전문 설표꾼으로 나서도 되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소.”
“헛소리 집어치우고 제대로 된 주둥이 놀려 보거라.”
갈갈한 목소리에 흠칫하는 그는 술병을 집어 들어 잔을 채우더니 단번에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잔살십육검이라고 들어 보았나?”
“잔살십육검?”
“백 년 전 사파의 고수인 잔살검 육문식의 독문 검법이지. 한 마을을 몰살시키고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어 무림의 추격을 받았는데 그 후에 어떻게 되었다는 소식이 없었다고 하네. 그런데 이번에 그 잔살십육검이 무림에 나타난 거지.”
“그게 사실이야?”
“어디 그뿐인가? 화산파의 속가 고수인 천화난무도 나타났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수신공도 무림에 등장하였다는 말이 있더군.”
“그 말은 나도 들었네. 섬서성, 그…… 아, 그 문파 있었는데.”
사내는 생각이 안 나는지 자신의 아둔함을 탓하는 표정을 짓더니 대충 얼버무렸다.
“하여간 그 문파 무인들이 당했다는 말은 나도 들었네.”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는 화마혈수권을 익힌 자가 나타났지.”
“그건 익히 소문이 난 것이지.”
“지금 중원으로 북해의 빙궁, 서장의 포달랍궁과 소뇌음사, 흑룡강성의 암흑마탑과 부산궁, 남해의 백팔군에도 고수들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어.”
“그게 사실인가?”
객잔의 한쪽에 앉아 있던 사내가 물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소인이 확인해 보지 못하여 장담은 할 수 없으나 상인들 사이에는 그러한 소문이 파다합니다.”
“음…….”
“상인들은 무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조금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과장이 섞일 수는 있지만 변방의 고수들이 중원으로 들어온 것은 확실할 것입니다.”
무림이 난세로 가고 있다는 말은 종종 흘러나왔다. 또 그걸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 중원의 각 성에 많은 고수들이 출연하였고, 그들로 인해서 작은 소란들이 생기고 있다.
일련의 큰 사건들로 인해서 그 소란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뿐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사혈맹과 정천맹의 대립은 곧 심화되겠군.”
“그건 우리도 알지 못하지요. 다만 중원 천지에 새로운 무림인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술을 한 잔 사 주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여 살짝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사내였다.
“마교에서 변방의 문파들을 힘으로 굴복시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들이 중원으로 오는 것이 그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건 저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말을 하던 사내는 마주 앉은 사내와 시선을 교환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일하러 가 보세. 교역 도시까지 가려면 쉬지 않고 가야 오늘 밤에 도착할 것이니 말일세.”
이들이 자리에서 떠나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잠시 동안 침묵하더니 곧 자신들의 이야기에 열중하였다.
그런데 객잔 구석에 앉아 있는 이남 일녀의 일행은 객잔을 나선 사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중원의 정보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상인들조차 우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니.’
“들었죠?”
여인의 말에 두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표 나지 않게 조심해서 다녀야겠어요. 일단 옷부터 바꿔 입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 *
불에 탄 구룡장을 점거하고 있던 백마사의 무인들은 어쩔 수 없이 구룡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백마사의 장손인 이대만은 이대로 물러난다는 것이 억울하여 산동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신 분노를 표출하였다.
“형님, 이대로 산동성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놈들이 우리 장원을 불태워서 돌아가도 객잔에서 지내야 할 판입니다.”
둘째 이대로 역시 장손인 이대만에게 불만을 토로하였다.
“사혈맹의 지시에 따르시지요, 형님들.”
“너는 이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느냐!”
셋째인 이승천은 화린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 그와 될 수 있으면 충돌을 피하려고 하였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해도, 또 피해를 보았다고 해도 그와 싸워서 이길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물러날 때라 생각하였다.
“화린 장주와 싸우면 우리가 당합니다.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무림백대고수 둘을 상대하여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너는 그 말을 믿느냐?”
“믿고 싶지 않으나 화린 장주의 무공을 직접 보고 경험하였기에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화린 장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놈입니다.”
“너는 돌아가서 불에 탄 장원을 치우고, 목수들을 불러 공사를 하여라.”
둘째인 이대로는 이승천의 언행에 몹시 기분이 상하였다.
“형님, 감정적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자칫 가문의 대가 끊기고 멸문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라도 기회를 봐서 복수하면 되지 않습니까?”
“나중에?”
“사혈맹에서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맹주가 직접 나서서 구룡장주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목숨을 살려 주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지 않으냐?”
“그럼 우리가 구룡장주를 공격하면 사황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자신의 권위를 무시한 것도 모자라, 봉문시킨 문파를 공격하여 그들을 죽인다면 사혈맹의 권위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오 년입니다. 어차피 오 년 동안 구룡장은 무림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상단을 하나 알아보고, 상단을 이용해서 구룡장이 운영하는 영업장들을 공격해야지요.”
“영업장을?”
“그렇습니다. 구룡장이 운영을 하는 영업장을 파악하여 상단의 다툼이 일어난 것처럼 꾸며서 영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지요.”
“음…….”
“구룡장이 사혈맹에 항복하였으니 막대한 손해 보상 비용을 지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업장이 망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하지만 구룡장에는 구룡루가 있다. 구룡루가 있는 이상 구룡장이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듣고 있던 이대만이 말하였다.
“섬서성주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구룡루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는 섬서성에 사용된다고 말입니다.”
“일부이지 않느냐?”
“막대한 세금도 있습니다. 세금도 내고 수익의 일부도 섬서성에 상납을 해야 한다면 구룡루에서 버는 수익의 삼 할 정도만 구룡장이 가지고 갈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겠지요. 하나 다른 영업장들이 힘들어지면 그 돈은 영업장의 손해를 메우기 위해서 계속해서 사용될 것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말이지요.”
“음…….”
“형님, 이번 일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힘으로 구룡장주를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승천은 자신에게 맡겨 주면 오 년 동안 그를 고통스럽게 말려 죽일 것이라고 장담을 하며 이대만에게 말하였다.
“정말 그럴 자신이 있느냐?”
“맡겨 주십시오. 제가 군대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만 배운 건 아닙니다.”
“오냐, 너에게 구룡장의 일을 맡기마. 단, 네가 오늘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시에는 나의 분노가 너에게도 미칠 것임을 명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