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46)
구룡전기-146화(146/217)
구룡전기 (146)
백군성
달빛도 구름에 가려 어두운 밤, 양주의 봉태산 초입에 많은 사내들이 등짐을 내려놓았다.
“물건들을 확인해 보시오.”
이들의 등짐은 무려 오십 개나 되었는데 등짐 안의 물건들은 중원 황제가 허가 없이 수입을 금지한 품목들이었다.
한 사람이 등짐을 확인하다 물건을 가지고 온 자에게 물었다.
“산삼, 인삼…… 청자는 어디 있소?”
“이쪽이오. 여기 확인해 보시오.”
이들은 해동국의 밀수업자 일당과 화명상단의 화정국이 데리고 온 일꾼들이었다.
이번 밀수를 주도한 화정국은 꼼꼼하게 물건을 다 확인한 후에 밀수업자에게 대금을 지불하였다.
“물건은 이상이 없는 것 같소. 이곳까지 오신다고 고생하였소. 그럼 해구신과 노예들은 닷새 뒤에 인수할 수 있겠소?”
“일정에 차질이 생겨 열흘은 걸릴 듯하오. 갑자기 해구신을 구하는 자들이 생기는 바람에 그들과 경쟁하여 잡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 같소.”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다음에 만날 때는 해상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해상에서요?”
“노예들을 데리고 육지로 다니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으니 해상에서 만나 노예들을 싣고 우리는 거래처로 곧장 갈 생각이오.”
“알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화정국은 주머니에서 작은 천으로 만든 주머니를 하나 빼 밀수업자에게 주었다.
“강소성의 계집들은 늘씬하여 손에 감기는 맛이 있을 터이니 돌아가는 길에 들러 여독을 풀고 가시오.”
“이런 걸 다 챙겨 주시고, 역시 화 대인은 화통하십니다.”
밀주업자는 주머니를 챙겨 품에 넣으며 말하였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좋을 것 없으니 우리는 먼저 내려가겠소. 조심해서들 돌아가시오.”
“그러겠습니다.”
“서둘러 내려간다.”
화정국이 함께 온 쟁자수들에게 등짐을 지게 한 후에 봉태산 초입을 벗어났다.
모두가 바쁜 걸음으로 봉태산을 벗어났고, 밀수업자들 역시 이들 반대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들이 떠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한 사람이 거래 현장에 나타났는데 그는 짜증부터 내었다.
“남들 일하는 대낮에 이런 거래를 하면 얼마나 좋아. 꼭 일도 못하는 것들이 밤에 일한다고 야근을 뛰게 만들고 지랄은…….”
그는 동춘이었다.
동춘은 화린의 명을 듣고 화명상단에서 밀거래를 하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들이 거래를 끝내면 물건을 강탈하여 처분하기 위해서 섬서성에서 멀리 강소성의 양주까지 온 것이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 왜 화린 조장의 것을 탐냈는지……. 하긴 저들이 화린 조장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겠어.”
동춘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는데 얼마 가지 않아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했나 보네. 내 새끼들 얼마나 늘어났나 가서 봐야지.”
동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 느긋하게 이동했다.
어두운 밤이라고 하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를 못 볼 정도는 아니었기에 화명상단의 표사들은 습격자들에 대항하여 도검을 휘두르며 밀수품을 지키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서걱.
검이 허공을 가르며 살을 베고 지나가자, 피가 튀며 짙은 혈향이 피어올랐다.
화명상단의 표사들과 싸우는 이들은 새명파의 제자들로, 이제는 구룡표국의 표사가 된 동춘의 사제들이었다.
동춘은 화린에게서 받은 무공을 사제들에게 가르쳤고, 그 후 이들의 무공이 일취월장하여 삼류 무인이 아닌 이류 무인으로 성장을 하였는데 화린은 이들을 일류, 혹은 초일류의 무인으로 성장시켜 유사시 구룡장의 전력으로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과 화명상단 표사들의 싸움이 시작되자, 쟁자수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는 듯 빠르게 그 자리를 벗었다.
산의 초입이라고 해도 산길을 달려 내려가기란 어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들은 이러한 일에 익숙한지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앞만을 보고 거침없이 내달렸다.
“커어억!”
그러다 갑자기 쟁자수 한 명이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미리 뿌려 둔 쇠자를 밟고 그 고통에 놀라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것이다.
“좀 조심해서 다니지.”
쟁자수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어두운 밤에 검은 복면을 쓰고 나타난 사내만을 볼 수가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를 찾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을 만큼 어둠에 잘 동화된 복장이었다.
‘살수다.’
쟁자수는 복면인의 모습을 보고 단번에 살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화명상단과 거래를 하면서 밀수바닥에서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란 뜻이기도 하였다.
“오른손, 조금만 더 움직이면 목이 날아간다.”
섬뜩한 복면인의 말에 쟁자수는 허리춤에 숨겨 둔 비수를 꺼내려고 했던 손을 멈칫하였다.
“우리 이야기를 좀 하는 것이 어때?”
“무슨 이야기 말씀입니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건전한 이야기. 당신은 목숨도 건지고, 돈도 벌고.”
쟁자수는 상대의 말을 잘 들으면 죽이지는 않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에 대화를 시도하였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이름이 왕자춘 맞지? 섬서성 함양현에 사는.”
쟁자수는 놀라 말했다.
“맞습니다.”
“토끼 같은 마누라와 아들 하나 있고, 아들이 동아서당에서 글을 배우고 있고.”
상대는 이미 자신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며 협박이 아닌 협박을 해 왔다.
“맞습니다.”
“그럼 이제 앞으로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어 보지.”
쟁자수 왕자춘이 복면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등짐을 지고 달아난 다른 쟁자수들 역시 복면인들에게 붙들려 같은 협박을 받고 있었다.
“어때? 괜찮은 조건이지.”
“그렇게만 하면 정말 살려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물론, 하지만 지금 나와 한 약속을 어길 시에는 자네의 가족은 물론 흥평현에 살고 있는 자네의 노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지.”
“무조건, 무조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모친을 언급하자, 왕자춘은 복면인의 말에 따라 행동하기로 하였다.
“그래. 그럼 자네의 등에 진 짐을 여산으로 가지고 가게. 녕강현에 가면 만수장이라고 있다. 그곳으로 가서 자네의 등짐을 풀어놓으면 된다.”
복면인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천 주머니를 그에게 던져 주었다.
“이건 수고비. 아마도 자네가 받기로 한 것보다 곱절은 많을 터이니 손해를 보지는 않을 거야.”
쟁자수는 천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걸로 봐서 못해도 백 냥은 넘는 돈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화명상단에서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깨어나 보니 물건이 없어졌다고 말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서둘러 산을 내려가.”
쟁자수는 일어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산을 내려갔고,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복면인은 잠시 후 시선을 돌려 봉태산 초입을 올려다보았다.
“우리에게 일을 맡겼다면 금방 끝냈을…….”
복면인은 말끝을 흐린 후에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봉태산 초입에서 화명상단의 표사들과 싸우고 있는 새명파, 즉 구룡표국의 표사들은 분명 화명상단의 표사들보다는 강했지만 그들의 수가 많아 싸움이 빨리 끝나지 않고 있었다.
체에에에엥!
동춘은 사제들이 싸우는 걸 지켜보다 이들 중에서 가장 강해 보이는 표두와 싸우는 중이었는데 사제들에게 맡겼다간 큰 부상이라도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무인이었다.
“네놈들은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후일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염병,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후일을 말해. 그리고 밀수하는 새끼들이 뭐가 떳떳하다고.”
밀수를 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해동국의 업자들이 보낸 자들이냐?”
“내 말투가 해동국 사람이 하는 말로 들리냐? 어떻게 오랫동안 거래를 했다는 사람들을 의심할 수가 있지. 하여간 밀수하는 놈들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표두의 검이 동춘의 허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검과 검이 서로 마주치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어났다.
멀리서 이러한 모습을 보았다면 요괴가 나타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불꽃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일단 밀수품은 잘 쓸게. 그런데 이번 밀수품에는 해구신이 없다며?”
동춘은 아쉬운 듯 말을 하였다.
“밀수품의 품목까지 알고 있다는 건 내부에 첩자가…….”
표두는 첩자를 언급하였지만 동춘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하였다.
“첩자는 저기 있잖아.”
동춘이 손으로 가리킨 사람은 다름 아닌 화정국이었다.
조금 전 화정국과 밀수업자가 하는 대화 내용을 들었으니 그가 알려 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놈!”
표두가 버럭 화를 내며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왜 안 믿지? 저자가 해구신이랑 노예들을 열흘 뒤에 받기로 했다고 알려 주었는데.”
동춘은 표두의 약을 올리며 그를 도발하였는데 의외로 쉽게 도발에 넘어왔다.
흥분하여 사납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동춘은 활짝 웃었다.
“이래서 화린 조장이 싸울 때, 상대의 약을 바짝 올리는구나. 빈틈투성이네.”
동춘은 자신도 모르게 화린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고 배운 사람이 화린이었고, 만날 그와 티격태격하지만 동춘은 화린을 자신의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를 닮자고 노력하였다.
흥분한 표두의 동작이 커지고, 빈틈이 많이 보이자, 동춘은 흥미가 떨어졌는지 표두가 내리치는 검을 자세를 낮추어 흘려 낸 후에 사선으로 길게 올려 베었다.
표두는 자신의 좌측 허리에서 우측 어깨로 올라가며 기다란 검상이 몸에 새겨지는 순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봐? 그러니 당신이 지는 거야. 몇 번 검을 섞어 봤을 때 감이 와야 오래 살 텐데 말이야.”
표두는 동춘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동춘은 표사들과 싸우고 있는 사제들을 쭉 훑어보았는데 다친 이가 없는지, 혹은 힘들어하는 이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화린 조장도 임무에 나가면 조원들이 다치지 않을까, 죽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그랬겠지.”
늘 싸가지 없이 말을 해도 조원들을 엄청 챙겨 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를 미워하기보다는 좋아할 수밖에 없고, 또 전장에서 수많은 전공을 올려 조원들의 사기를 높여 주니 그를 닮고자 하였다.
“그러니 남궁수연 선배가 화린 조장을 마음에 두었겠지.”
옆에서 보면 두 사람의 사이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걸 화린은 모르는,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남궁수연 선배도 대단해. 악착같이 화린 조장 곁에 붙어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사혈맹과 사달이 났을 때도 남궁세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칫 불똥이 남궁세가로 튈 수도 있었지만 남궁수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린의 곁에서 그를 지키며 도왔다.
“아니, 수연 선배가 화린 조장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눈에 보여 잘 알겠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일이 커지면 남궁세가도 풍비박산 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동춘은 정말 궁금하여 남궁수연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남궁수연은 동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사람이 어려울 때 떠나는 거 아니다. 그로 인해서 내가 힘들어지더라도 곁에 남아 그를 도와줘야 한다. 떠나려면 차라리 그가 흥하고 있을 때 떠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오?”
“그래야 죄책감이나 미련이 남지 않을 테니까.”
동춘은 남궁수연이 한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보통 그런 말들은 남자가 여자한테 하는 건데. 하여간 수연 선배 멋있다니까.”
흔히 여걸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 말이 남궁수연에게 참 잘 어울린단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 아직까지 화명상단의 표사들과 싸우고 있는 사제들을 보았다.
“어휴, 저것들 언제 키워서 제대로 된 무인을 만들까?”
동춘은 말을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화린 조장도 우리가 처음 부대에 배속되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