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55)
구룡전기-155화(155/217)
구룡전기 (155)
살수들이 화린을 살황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청부를 받아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사혈맹과의 싸움 이후, 화린을 알고 있는 문주들은 종주로 인정하고 있으나 아직은 많은 이들이 화린을 살황의 전인으로 대할 뿐이었다.
하지만 화린이 언젠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살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할 때, 그를 살황의 전인이 아닌 살황이라 부를 것이다.
“부름에 응답해 준 그대들에게 우선 고마움을 전한다.”
화린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리면서 살수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대들을 이곳으로 모이라고 한 이유는 이미 서면으로 알린 것처럼 앞으로 우리 살수들도 연합을 만들어 거대한 힘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화린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대들의 무공을 얕보지는 않으나 정천맹이나 사혈맹, 혹은 십대세가, 구파일방, 십이사가나 오대마가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화린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여, 그들과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살수 무공뿐만 아니라 정통 무공도 익혀야 할 필요성이 있고, 또 살수 무공과 정통 무공의 장점들을 스스로 찾아내어 자신만의 독문 무공으로 발전시켜 후대에 남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말해라.”
“하남성 흑막교의 교주 배구환입니다. 전인께서 정통 무공을 익혀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무림에서 통할 정도의 상승 무공을 배우고 익히는 요원한 일입니다.”
“꼭 상승 무공이 아니어도 된다. 그대들이 익힌 살수 무공과 궁합이 잘 맞는 무공이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살수지, 정통 무인이 아니다. 다만 그 차이를 조금 줄이고자 할 뿐이다.”
다른 사람이 손을 들었다.
“말하라.”
“사천성 혈문의 문주 진우설입니다.”
이들은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알린 후에 화린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 차이를 조금 줄인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이득이 생기는 것입니까?”
화린은 진우설을 향해 간단명료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리하면 앞으로 돈 떼일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주들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각 문파의 문주들이 앞에 서고 그 뒤에 제자들이 선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그대들에 대해서 빨리 알 것 같은데.”
화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움직였는데 예상한 오육십 곳보다 열두 곳이 늘었다.
문주들이 데리고 온 제자가 한명인 곳도 제법 있어서였다.
“어째서 그대들은 한 명만을 데리고 온 것이지?”
“사람이 없거니와 또 그나마 제구실을 하는 놈이 이놈뿐입니다.”
“나는 분명 훈련 과정에서 죽어도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을 하였는데 문주의 말을 들어 보면 제자가 문파를 이끌어 나갈 자가 아닌가?”
“하지만 전인께서 말씀하시길 훈련을 견뎌 내면 못 죽일 놈이 없게 만들어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죽고 사는 것, 부귀영화를 누리는 건 다 이놈의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조차 제공하지 못한 문주로, 사부로 남는 것이 싫어 이놈의 의중을 물었고, 자신이 이겨 내겠다고 하여 데리고 왔을 뿐입니다.”
화린은 산동성 은밀문의 문주 송천우 뒤에 서 있는 자를 보였다.
이곳에 온 몇 안 되는 여성 살수 중 한 명이었는데 작고 왜소하게 보이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여기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빛나고 있었다.
“그대의 생각에 공감하는바, 내 특별히 은밀문의 제자는 더욱 빡세게 굴려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귀주성 귀살문 문주 역도기입니다. 제자들의 수련은 이곳에서 하는 것입니까?”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정 수련을 거친 후에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눈도 속일 생각이다.”
문주들은 화린의 대답을 들으며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화린은 이미 맹호사사혈전대에서 그러한 경험을 해 보았으니 살수들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후에도 화린은 이들에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살수 연맹에 대해서 이야기하였고, 살수들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럼 각 문파의 문주들은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
화린의 모습이 망루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산채에서 가장 큰 건물 안이었다.
“너희들은 나가서 밥하는 거 도와. 밥 시간 제때 못 맞추면 아주 죽을 줄 알아.”
그곳에 모여 있던 녹림도들은 화린의 한마디에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화린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자, 살수 문파 문주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앉으세요.”
조금 전의 권위 있던 모습과는 달리 문주라는 신분에 맞게 예의를 갖췄다. 그렇다고 하여도 화린이 이들보다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화린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은 모습에 문주들도 아무렇게나 바닥에 앉았다.
화린의 얼굴이 무면에서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의 모습을 처음 본 문주들은 사내답게 생긴 얼굴에 내심 놀랐다.
보통 가면이나 변용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얼굴에 큰 단점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화린의 얼굴은 멀쩡한 걸 떠나 사내답게 생겼고, 뜯어보면 잘생긴 것 같기도 하여서였다.
“정확하게 제 소개를 하면 섬서성 산양현에 위치하고 있는 구룡장의 장주 주화린이라고 합니다.”
구룡장의 장주라는 말이 화린의 입에서 나왔을 때, 이들은 한 번 더 놀랐다.
이번에는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광서성 해문의 문주님이신 하청민 문주가 맞으시지요?”
“그렇습니다.”
“말씀하세요.”
화린이 한 사람을 지목하자, 손을 올렸던 이들이 손을 내렸다. 이렇게 질문을 주고받으니 소란스럽지도 않고, 또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없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있습니다. 전인께서 사황 백무기와 검을 나누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십초 반절식에 패하였습니다.”
화린의 대답을 들은 이들의 눈빛이 변했다. 뭔가 희망을 발견한 그런 눈빛과 흡사하였다.
“그리고 큰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가 있었고, 그 싸움으로 인해서 제가 조금 더 이득을 보았습니다.”
“이득이요?”
“사람들은 십대고수라 하여 일마이황삼왕사제를 언급하지만 사실 전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수들의 종주인 살황의 전인이니 그만큼의 오만함을 가져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을 하였는지 문주들 중에서 화린의 말에 반감을 가지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지난번 살인검제 선배와 검을 나누었을 때도 크게 두렵거나 제가 진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황 백무기는 또 다른 차원의 고수였습니다.”
“다른 차원의 고수요?”
“삼왕사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강자라고 하지만 그들이 비빌 수 있는 그런 고수가 아니었습니다.”
무림에서도 일마이황이 다른 이들보다 더 강하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지만 화린에게 직접 들으니 또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최소한 제가 비빌 수 없는 고수가 무림에 세 명이 있다는 사실이 저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음…….”
“사부님께서 무림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감히 그 누구도 사부님과 비교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그들과 비교는커녕 오히려 두들겨 맞았으니 사부님께서도 한심하다 생각하실 것 같아 새로운 목표를 잡고 나아가는 중입니다.”
“새로운 목표……?”
“일마이황을 잡는 것입니다. 사실 이대로 한 삼십 년 정도 지나면 제가 천하제일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지금도 무림십대고수라 칭함을 받는 살인검제와 싸워 이겼으니 시간이 흘러 윗세대의 고수들이 천수를 다해 죽으면 당연히 남겨진 화린이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으니 아직 그들이 건재할 때, 그들을 꺾을 것입니다.”
살수 문파의 문주들은 화린의 눈빛이 타오르고 있음을 보고 지금 그가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문주들의 셈법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사혈맹과 대립하면서 무림에서는 정말 능력이 있는 자가 아니면 혼자 살아남을 수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약육강식의 법칙이 강하게 적용되고 있는 무림이라고 할지라도 혼자서는 무림 전체를 상대할 수 없는 법이었다.
이백 년 전 중원 천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권마 초단운도 결국 무림 연합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무림에서 홀로 살아남기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 살수 연맹을 만들어 서로 도우면서 살수들의 위상을 조금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복건성 지혈문의 문주 강소입니다. 살수들의 연맹과 위상을 올린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가지고 계신 겁니까?”
“지금 생각한 건 일단 살수들의 의뢰 성공률을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지금도 의뢰 성공률은 높은 편이라 알고 있습니다.”
“실수 없이. 어떠한 어려운 의뢰라도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성공률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문주들은 화린의 말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희들은 명확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는 건 의뢰를 받는 것도, 의뢰를 받아 목표를 제거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러니까 제가 각 문파의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음…….”
“스스로 만족하면 변화나 발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도태되겠지요. 무림뿐만 아니라 세상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린은 자신이 맹호사사혈전대에서 수없이 많이 돌아다녀 보았기에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그때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일어설 수 없게 됩니다.”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광동성 천밀문의 문주 보국상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러한 일들이 가능하겠습니까?”
화린이 자신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단순한 물음이었다.
“연계를 하여야지요.”
“연계라 함은?”
“사천의 혈문에 자주 의뢰를 넣는 고객이 광동성에 있는 누군가를 죽여 달라는 의뢰를 하였습니다. 그럼 혈문에서 그 의뢰를 마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이건 사천성 혈문의 진우설 문주님께서 대답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가는 시간, 조사하는 시간 그리고 의뢰를 실행하는 시간까지 하면 못해도 보름에서 한 달은 걸릴 것입니다.”
“그럼 광동성에 있는 천밀문에서 나서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가능하면 이삼일 정도면 됩니다.”
“그렇겠지요. 만약에 혈문에서 천밀문에게 이 의뢰를 전서구를 통해서 준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전서구가 오가는 시간을 이용하여도 닷새면 해결될 일입니다.”
“혈문에 의뢰를 받았지만 딱히 노동이나 위험한 일을 한 것이 없으니 의뢰비의 일 할을 챙기고, 천밀문에서 의뢰에 관한 일을 모두 하였으니 구 할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광동성의 천밀문 문주 보국상이 대답을 하였다.
“다른 분들께서도 딱히 여기에 대한 불만은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살수를 파견하여 먹고 자고 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버는 것보다 파견하는 쪽이 더 비쌀 수도 있으니까요.”
화린의 말에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였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 살수 연합이 만들어지고 연합을 통해서 이러한 연계 의뢰를 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진다면 각 문파에서는 기존보다 더 많은 의뢰를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적게 할 것 같습니까?”
“살수의 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의뢰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데리고 있는 살수 중 특급 살수는 한 명인데 동시에 세 곳, 네 곳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하염없이 시간만 흐를 수도 있고, 의뢰자는 답답함으로 인해 다른 곳에 의뢰를 넣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일을 많이 한다는 건 데리고 있는 살수들 역시 경험이 쌓이는 것이고,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연계를 통해서 우리가 조금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주들은 화린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하북성 군성의 성주 이재우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의뢰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의뢰를 포기하면 쌓아 올린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의 의뢰라면 아마도 문파의 사활을 걸어야 하니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의뢰는 저에게 맡기십시오. 제가 나서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화린이 살행에 나서겠다는 선언에 문주들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살업을 쌓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무림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살업을 쌓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따로 의뢰를 받아 움직일 생각도 없습니다.”
살행을 하되 자신이 의뢰받는 것이 아니라 살수 문파에서 해결하지 못할 의뢰가 들어오면 대신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사혈맹에 의해서 감찰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무림의 일만 관여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상인은 중원 천하 어디를 갈 수 있습니다.”
즉 그 금제는 자신에게 큰 제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
“여기 계시는 문주님들께서 저의 생각에 찬성해 주신다면 올해까지 명확한 체계를 만들어 내년에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일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