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66)
구룡전기-166화(166/217)
구룡전기 (166)
사천행
“꼭 그렇게 찾아가서 염장을 지르고 오셔야 했습니까?”
서대영은 화명상단의 장례식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화정수의 속을 뒤집어 놓은 화린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안 그래도 동생이 죽어 슬픔이 가득한데.”
“그런 소리 마. 저놈들 아니었다면 우리가 사혈맹과 싸웠겠어, 사파랑 싸웠겠어.”
화린이 목소리에 백군성이 뜨끔하였다.
“사파 놈들이야 원래 그런 놈들 아닙니까? 남의 것이 크게 보이고, 큰 걸 가지고 싶어 하고, 또 내가 못 먹으면 찔러서 남들도 못 먹게 하는.”
“커허어어엄!”
백군성이 헛기침을 하여 무안함을 조금이라도 모면해 보려고 하지만 화린과 서대영은 백군성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리고 화명상단은 사파와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석천파를 돈으로 매수해서 우리에게 보낸 것이 아닙니까?”
화린은 서대영의 말에 발끈하려고 하였지만 생각하니 사파와는 화명상단이 아닌 영천상단이 개입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 것을 빼앗아 가려고 했잖아. 애초에 저놈들이 나를 건들지 않았다면 나도 사회에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순화되었을 것 아니야.”
“그건 또 무슨 억지입니까?”
“억지는 무슨 억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매일같이 다툼이 일어나고, 허구한 날 사람을 죽이는 그런 곳에서 오 년을 생활했으면 그놈이 제정신이겠어?”
“그건…….”
“세상이 다 그런 줄 알 거잖아. 내가 남을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는 걸 인식하고 있을 거잖아. 안 그래?”
이상한 논리로 묘하게 설득력 있게 말하는 화린의 화술에 서대영은 반박하지 못하였다.
백군성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 화린이 말하는 그놈이 화린, 자신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고는 관심을 가졌다.
“눈을 뜨고 세상에 나와서 본 게 죽고 죽이는 거야. 그런 곳에서 제대로 된 인격이 만들어질 것 같아?”
“그래도 책으로 보고, 사람들에게 들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 정도 생활하는 거잖아. 그게 아니었으면 화명상단이 저리 남아 있을 것 같아? 영천상단이 남아 있을 것 같아?”
서대영은 화린과 더 대화를 했다간 자신이 묘한 논리에 넘어갈 것 같아 반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보고 양아치, 못 배운 놈, 왈패보다 더 왈패 같다는 둥 말하지만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입장에서 성장했다면 나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다.”
화린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고, 백군성은 화린의 성장 배경을 알지 못하였기에 화린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세 한탄 좀 그만하십시오.”
“몰라. 넌 가서 내가 시킨 일이나 해. 난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할 테니까.”
화린이 순간 모습을 감추자, 백군성이 당황하였다.
“그냥 두십시오. 억울한 게 많은 모양이니 말입니다.”
백군성은 서대영을 보았다.
“장주님에 대해서는 알려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장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대충 기억하셨다가 잊을 때쯤 잊으시면 됩니다.”
“그럼 하나만 물읍시다.”
“말씀하십시오.”
“서 총관님께서 생각하시는 화린 저 친구는 어떤 친구입니까?”
서대영은 백군성의 질문에 잠깐 생각을 하더니 반문하였다.
“백 감찰관님께서 지금 양아치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백군성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린이 떠올라 눈을 크게 뜨고 서대영을 보았다.
“저의 대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보고 듣고, 행동하는 걸로 판단을 하지. 그 내면의 아픔 따위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
* * *
화린은 구룡객잔에서 홀로 술을 한잔하면서 뭔가를 고심하는 얼굴을 하고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화명상단은 끝났어.”
화린은 화정국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을 보며 십대상단에 이름을 올린 화명상단이 옛날 같지 않음을 알 수가 있었다.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던 팔로수로군 곡물 납품 문제와 나에게 곡물을 털리는 바람에 다른 거래처에 곡물 지급이 늦어지면서 생겨난 불신 때문이겠지.”
상인에게 신용은 목숨과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사람들에게 신용만 잃지 않으면 탑을 쌓듯 한 층, 한 층 쌓아 가며 회복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하나 신용을 잃은 상인은 상인이라기보다는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사천과 운남, 귀주에서 곡물을 생산하는 화명상단의 거래처 역시 지금 화명상단의 어려움을 알고 있겠지.”
화린은 다른 상단에서 화명상단이 쥐고 있던 중원의 곡물 유통업에 끼어들기 전에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하였다.
“가서 나에게 곡물을 팔아 달라고 말하면 사기꾼 취급을 하겠지.”
연고가 있다면 그와의 친분을 내세워 그들을 만나 설득이라는 걸 해 볼 수 있겠지만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이제 화명상단은 끝났으니 나에게 곡물을 팔아 달라고 말을 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화린은 품에서 황제의 아홉 번째 아들임을 증명하는 구룡패를 꺼내어 만지작거렸다.
“둘째 숙부를 만나 이야기를 해 볼 수밖에 없나?”
다른 거대상단 역시 이번 화정국의 장례식에서 화명상단의 운명을 보았을 것이다. 그럼 그들은 중원의 곡물 유통을 노리고 끼어들 것이고, 자신은 그들과 경쟁해서 중원의 곡물 유통을 확보해야 하는데 무림과 달리 상림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기도 하였다.
당금 황제의 둘째 동생이자, 흥친어림군의 수장으로 중원 남서쪽의 국방을 담당하고 있는 흥친왕부의 주인을 떠올린 화린은 고심하는 얼굴로 장고를 하였다.
화린은 한참 동안 고심을 하다 결정을 내린 듯 표정을 풀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이켰다.
“그래.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건 다 이용해 먹어야지.”
화린은 흥친왕부의 주인인 흥친왕 주영국을 만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정정당당이란 말은 조건이 안 좋은 사람들이 하는 소리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어렵게 가는 건 멍청한 자들이 하는 짓이라 생각을 하였다.
“둘째 숙부의 생신이 언제이지?”
흥친왕의 생일 때, 많은 이들이 찾아올 것이니 그 자리에 참석해서 사람들과 안면을 익힌 후에 흥친왕의 도움을 받아 곡물을 생산하는 대지주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 총관이 둘째 숙부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려나.”
* * *
“이번 화명상단의 둘째 화정국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였는데 그들의 위세가 옛날만큼 못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들어 화명상단에 대한 안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는데 그게 사실인 모양입니다.”
사천에 터를 잡고 수많은 토목 공사를 시작으로 건물의 안을 치장하는 내장 공사까지, 도로와 건축에 있어서는 중원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며 그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원십대상단에 이름을 올린 삼천상단의 천양산은 두 동생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명상단의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하여 밀수에 손을 댔다는 말이 있습니다. 화정국의 죽음 역시 그 밀수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 소문은 나도 들었다.”
“형님, 화명상단이 무너진다는 가정하에 우리도 곡물 유통에 진출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곡물 유통에?”
“우리도 각 성의 유지들과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들을 통해서 각 성에 곡물을 풀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음.”
“저도 둘째 형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천에서 생산되는 곡물만 우리가 다 사들여도 제법 많은 양의 곡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각 성의 지주들에게 유통시킨다면 제법 돈을 만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 소문을 듣고 우리를 찾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고, 이를 대비해서 운남과 귀주에서 생산되는 곡물 역시 우리가 사들일 수 있다면 판매처를 더 많이 늘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곡물 유통이라…….”
삼천상단의 주인인 천양산은 두 동생의 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거칠고,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건축업보다야 유통업이 덜 피곤하다는 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건축업의 경우 공사를 시작하면 장기간의 공사와 막대한 공사비로 인해 수익이 크다는 장점이 있고, 유통업은 안전하지만 수익은 그리 많지 않으니 일장일단은 분명히 존재하였다.
“우리가 곡물 유통을 생각할 정도면 다른 상단에서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발 빠르게 움직여 사천에서 생산되는 곡물만 선점해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곡물은 관리만 잘하면 일이 년은 충분히 보관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팔 곳이 없으면 우리가 확보한 곡물을 공사장으로 보내서 그곳 공사 인부들에게 먹여도 되니 일단 곡물을 사서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이득이 될 것입니다.”
“우리 말고 곡물 유통에 뛰어들 상단이 누가 있을까?”
“두양상단과 국성상단이 경쟁하지 않을까 합니다. 금양상단도 관심을 보이긴 하겠지만 그들은 병장기를 제작해서 군납을 하고 있으니 유통에는 큰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영천상단도 옛날부터 곡물 유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각 성에서 생산되는 광물을 중원 전역으로 보낼 수 있는 유통망을 가지고 있으니 곡물을 유통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대륙상단과 황금상단은?”
“같은 십대상단이라고 해도 대륙상단과 황금상단은 우리보다 한참 윗줄에 있는 상단이니 곡물 유통은 관심조차 두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대륙상단은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으니 굳이 유통업까지 끼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곡물 유통업에 뛰어들 때,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두양상단, 국성상단 그리고 영천상단이겠군.”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화명상단 역시 경쟁 상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화명상단은 자금력에 문제가 있으니 돈으로 싸운다면 결국 화명상단은 뒤처지게 될 것입니다.”
“돈으로 싸운다…….”
“화명상단의 재력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면 손쉽게 떨쳐 버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소문만 무성할 뿐이니 일단 기존 가격에 일리를 더 얹어서 산다고 곡물 상인들을 유혹한 뒤 화명상단의 대응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곡물 유통에 있어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화명상단만 쳐 낸다고 해도 사실상 우리에게는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그럼 곡물 유통을 시작한다고 하면? 무엇부터 하면 되지?”
“일단 사천의 대지주들을 만나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지주들이라…….”
“마침 다음 달이 흥친왕 전하의 생신입니다. 그때 그들이 올 것이니 그 기회를 살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하의 생신이 있었지.”
“그리고 화명상단과 접촉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답도 사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답을? 팔려고 할까?”
“일단 돈으로 장난을 쳐 본 후에 그들이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면 접근해서 현금을 통해 전답을 매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을 모두 모아 두어야겠군.”
“부족하면 대륙 상단을 통해서 돈을 융통하면 되니 그 문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진행시키는 걸로 해. 난 대륙상단의 만금상인을 만나 화명상단의 자금력에 대해서 조금 알아볼 터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