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67)
구룡전기-167화(167/217)
구룡전기 (167)
“불가하오.”
“어찌하여 불가하다는 말이오? 청부금으로 금 만 냥이면 그리 적은 돈은 아니지 않소.”
“만 냥이면 사람 목숨치고 많은 돈이지요. 하지만 구룡장주는 무림백대고수 둘을 동시에 상대하여 이긴 고수입니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황 백무기 맹주가 직접 나서서 간신히 항복을 받아 냈다고 할 만큼 뛰어난 무력을 지닌 자입니다. 그런 자를 어찌 암살할 수 있겠소.”
화명상단의 화정수는 화린을 죽여 달라고 사당의 당주인 문소를 만나 금 일만 냥에 청부를 하였지만 거절당했다.
문소의 경우 화린과의 관계를 떠나서 무림백대 고수에 이름을 올린 화린을 죽이려고 할 경우 최악의 경우에는 멸문까지도 생각을 해야 한다.
멸문과 금 일만 냥의 무게를 비교하면 금 일만은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아니, 십만 냥, 백만 냥을 준다고 해도 멸문당할 것이라 생각하면 청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화린뿐만 아니라 무림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무림인들은 그만큼의 위험 부담을 가지고 있었기에 중원의 살수 문파들은 자신들의 살생부에 그들의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구룡장의 장주에 대한 소문이 크게 났으니 아마도 일반 살수 문파는 청부를 받지 않을 것이오.”
“그럼?”
“살인검제라면 혹시 모르지요. 그라면 청부를 받아들이고, 그를 죽여 줄지. 하지만 그를 만나 청부를 하려면 돈을 조금 더 써야 할 거요.”
살인검제의 이름을 듣자, 화정수 역시 돈을 더 써야 한단 말에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졌다.
그만큼 살인검제란 이름에서 주는 무게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럼 그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오문은 알고 있지 않을까 하오. 하오문에 그의 행방을 물어보시오. 우리는 도움이 되지 못하여 오시는 수고만 끼쳐 드린 것 같소이다.”
“아니오. 그래도 그놈을 죽일 수 있는 방도를 알았으니 괜한 수고는 아닌 듯하오.”
화정수는 문소에게 전낭을 내밀었다.
“좋은 정보를 주어 고맙소.”
“주시는 것이니 받겠습니다.”
* * *
“그래? 다음 달 열하루라고.”
“네. 제 기억이 맞으면 다음 달 열하루가 맞습니다. 그런데 흥친 왕야의 생신은 왜?”
“왜는 무슨 왜, 숙부님의 생신인데 조카가 찾아뵙는 건 당연한 것 아니야? 내가 황궁에 매여서 사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경험한 바에 의하면 뜬금없는 질문이나 뭔가를 알고자 할 때는 다른 꿍꿍이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찾아가시는 건 좋은데, 가서 사고는 치지 마십시오.”
“넌 내가 사고만 치고 다니는 줄 알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화린의 말대로 사고는 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손해 본 것은 지금까지 딱히 없으니 이 말에도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흥친왕야를 찾아뵙는 자리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황궁에서도 사람을 보낼 것이고, 장주님의 형님, 누이들도 오실 터인데 옛날 생각해서 그분들 쥐어 패지 말고 말입니다.”
“어릴 적 일을 가슴에 묻어 둘 만큼 소인배는 아니다. 숙부님께서 뭘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준비해 둬.”
“그거 있지 않습니까?”
“뭐?”
“화명상단에서 밀수할 때, 그 품목에 개구신…… 아니, 해구신이 있었지 않습니까?”
“너 평소에 나를 개구신이라 생각하고 있었지?”
“아니, 아닙니다. 제가 왜 장주님을 개구신이라 생각합니까? 저는 장주님께서 지극히 정상적이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화린이 서대영을 노려보자, 그는 시선을 피했다.
“아닌데. 그런 것 같은데.”
“정말 아닙니다.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해구신 몇 개를 빼돌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시간 나면 부친께 드리려고 몇 개 빼돌렸지.”
“그거 하나 드리면 더 이상 좋은 것이 없습니다.”
화린은 서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나지막하게 말을 하였다.
“해구신이랑 개 거시기랑 비슷하지.”
“말려서 펴면 차이가 안 난다고 합니다. 효과는 차이가 나겠지요.”
“영감들한테 효과가 있어 봐야 거기서 거기지.”
“영감들이라니요?”
“있어. 넌 가서 개 거시기 몇 개 구해 와.”
“네에?”
“구해 오라고 하면 구해 와.”
“알겠습니다.”
서대영이 나가자, 화린은 허공에 손가락을 찍어 공간 주머니를 열어 그 속에서 해구신을 꺼내었다.
“이렇게 투박하게 주는 것보다는 포장을 해서 주는 것이 좋겠지.”
화린이 공간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가 빼자 그의 손에는 산삼이 들려 있었다.
해구신과 산삼은 화명상단에서 밀수하였던 밀수품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몇 개를 빼돌려 놓은 것들이었다.
“해구신을 가운데 놓고, 산삼 두 뿌리를 양쪽으로 놓으면…….”
화린은 눈대중으로 대충 이것들을 담을 상자의 크기를 생각한 뒤에 해구신과 산삼을 공간 주머니 안에 넣었다.
공간 주머니가 사라지자, 화린은 자신의 집무실을 나왔다.
구룡장이 다시 지어질 동안은 구룡루에서 생활하고 있었기에 집무실을 나선 화린은 구룡루 안을 느긋하게 걸으며 분위기를 살폈다.
주각인 구룡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음주가무에 빠져 희희낙락하며 그날의 기분을 풀어내는 중이었고, 별각인 매, 난, 국, 죽에서는 남의 돈을 한 푼이라도 따기 위해서 살기까지 드러내는 이들이 있을 만큼 삭막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와하하하, 내가 또 이겼어.”
내기에서 이긴 사람은 소리치며 좋아하였고, 진 사람은 한 번 더 하자며 역정을 내기도 하였다.
“이게 사람 사는 거지.”
화린은 이런 모습들을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돈을 잃고 행패를 부리려다가 구룡루의 안전을 위해서 고용한 무사들에 의해 제지되어 밖으로 쫓겨나는 사람도 있었고, 환전소 앞에서 제발 환전을 해 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손님께서는 오늘 환전할 수 있는 금액을 모두 환전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쉬시고 내일 또 오셔서 놀이를 즐기십시오.”
“아니, 이러는 법이 어디 있소. 내 돈을 따고 배짱을 부리는 거요?”
“저희 구룡루에서는 고객님의 돈을 딴 적이 없습니다. 고객님께서는 손님들과 놀이를 즐기셨습니다.”
세상에 많은 인간 군상이 있다고 하지만 이 도박장만큼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곳도 없었다.
화린은 이런 도박장에서 온갖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배교의 비술 중에서 최고의 비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사람의 희로애락을 다스릴 줄 알아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다고 하였기에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도박장이야말로 최상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화린은 구룡루에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를 오갔지만 누구 하나 화린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구룡루에서 일하는 직원들조차 화린을 알아보지 못하는지 그들은 그들의 일만 할 뿐이었다.
배교의 비술 중 하나인 동화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든 뒤 자신의 존재를 지워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내공이 고강한 무인들이나 감이 뛰어난 일반인들은 눈치를 채거나 이상함을 느끼겠지만 화린을 알아보는 건 불가능하였다.
물론 화린보다 무공이 뛰어난 이들이라면 당장이라도 화린을 알아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화린이 술법을 풀기 전에는 그를 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인식할 뿐이었다.
그렇게 화린은 구룡루를 천천히 순찰한 후에 구룡루를 나와 다른 영업장으로 향했다.
* * *
“그러니까 이게 개 거시기를 말려서 늘인 것이고, 이게 해구신이란 말이지.”
말려서 비교해 보니 정말 비슷하게 보였다.
“하긴 물에 사는 개도 개니까 비슷하겠지.”
“정말 이걸로 속일 생각이십니까?”
“지들이 알겠어? 눈으로 봐도 구분이 안 가는데.”
“많이 먹어 본 놈들은 단번에 알 텐데 말입니다.”
“그럴까? 그래도 내가 우기면 지들이 어떻게 할 건데.”
서대영은 ‘이런 양아치.’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흥친왕부에 가서 다른 황자님들이나 황녀님들을 만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너도 가야지. 내가 그 사람들 상대했다가 칼부림하면 어찌할 건데?”
“저도 말입니까?”
“그럼 안 가려고 했어?”
“그럼 여기는 누가…….”
“총관 대리가 있잖아. 이서정!”
서대영은 고난의 길이 열렸다는 생각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너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인데?”
“아니,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가야 합니까?”
“그럼, 형님들은 다 호위 무사로 동창 놈들 데리고 올 건데. 나만 혼자 등짐을 메고 뚜벅뚜벅 걸어가라고?”
“짐꾼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호위!”
“호위라면 구룡전단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 구룡루는 누가 지켜?”
서대영은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려 하였지만 화린이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들을 말하며 족쇄를 채웠다.
“더 없지?”
서대영은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없습니다. 제가 수행해서 가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어디서 잔머리를 굴리고 그래. 다음 달 열하루라고 했으니 다음 달 초하루에 사천으로 갈 거야. 그렇게 알고 준비해.”
“장주님!”
그때,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요?”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문소라는 분이신데 장주님을 뵙고 싶다고 하여…….”
“아, 어디 계세요?”
“별관 사 층 수록방에 계십니다.”
“알겠어요. 제가 곧 갈 터이니 간단한 술상을 부탁해요.”
“준비하겠습니다.”
“사당에서 무슨 일로 왔을까요? 장주님께서 안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나도 몰라. 일단 만나 봐야 알겠지. 넌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다음 달에 사천으로 떠날 준비나 해.”
“백군성이는 어찌합니까? 먼 길 가면 따라붙을 텐데 말입니다.”
“상관없어. 숙부님의 생신에 숙부님을 찾아뵙는 것만 따라오지 못하게 하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난 사당의 당주님을 만나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구룡객잔으로 가 있을 테니까, 일이 생기면 그쪽으로 와.”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신경을 좀 쓰고.”
“그건 걱정 마십시오. 신나게 공부하고 뛰어놀고 있으니 말입니다.”
화린은 고개를 주억거린 후에 집무실을 나섰다. 구룡각의 별관을 찾아간 화린이 수록방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 문소가 앉아 있었다.
문소가 화린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화린이 괜찮다고 앉아 있으라는 시늉을 하며 자신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겁니까?”
“화명상단의 화정수가 맹주님을 암살해 달라고 청부를 넣었습니다.”
“열 좀 받은 모양이군요. 그래서요?”
“그래서 저희들의 실력으로는 맹주님을 암살할 수 없다 말하고 살인검제 님을 찾아가서 청부를 넣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백정인 선배라면 저도 방심할 수가 없겠군요.”
“하지만 그분께서 맹주님을 죽이려고 하시겠습니까?”
“오태산채에서 당한 일로 아마 시험 정도는 해 보지 않을까 합니다.”
문소가 눈을 크게 떴다.
“시험이라면?”
“마주 보고 검을 겨누었을 때는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암살로는 승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시험 말입니다.”
“감히 맹주님을 의심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의심이라기보다는 확신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백정인 선배를 우리 연맹의 장로님으로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로님으로 말입니까?”
문소는 되물으면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만큼 살수 업계에서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공헌도 하였으니 대우는 받을 만한 존재였다.
“이번에 백정인 선배도 인정할 만큼의 확실한 차이를 보여 주겠습니다.”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살인검제 님은 중원십대고수의 반열에 오르신 분입니다.”
화린은 그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시 십대고수들조차 벌벌 떨게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리 약한 놈이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