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70)
구룡전기-170화(170/217)
구룡전기 (170)
“헉헉헉…….”
한 무리의 사내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시선을 들어 정면을 응시하였다.
한차례 거친 싸움을 한 것처럼 주변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들도 있었다.
“어디 있느냐?”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들이 있었는데 모두 흑의를 입었으며 가슴에는 ‘암흑’이라 쓰여 있었다.
“도대체 알지도 못하는 물건을 왜 우리에게 내어 달라고 하는 것이냐?”
포위를 당한 한 사내가 말하였는데 그는 사천성의 중소 문파에 속하는 궁상파의 장문인인 서유도였다.
“오 년 전, 너희 궁상파에서 한 장의 미인도를 소화상단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서유도는 흑의를 입은 자들이 미인도를 언급하자, 눈을 좁혔다. 이들이 언급한 미인도는 자신을 손을 떠난 지 삼 년이나 되어서였다.
“선화유정미인도는 본 탑의 것이다.”
“그건 흥친왕부 흥친왕 전하의 생신 선물로 드렸소. 삼 년이나 지난 일이오.”
서유도는 억울하다는 듯 말을 하였고, 그 대답을 들은 이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였다.
“흥친어림군의 수장인 흥친왕부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소.”
자신들이 알고 있는 흥친왕부란 말에 궁상파를 포위하고 있는 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였다.
“흥친왕부라면 조심해서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중원에서 황제 다음으로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흥친어림군의 수장이자, 흥친왕부의 주인인 흥친왕 주영국이었다.
그런 그를 무림인 상대하듯 하였다간 자신들은 물론 흑룡강성에 있는 관련자들까지 모두 구족이 멸하게 될 것이다.
선임인 듯한 자가 말없이 고민하자, 포위된 궁상파의 무인들은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조심해서 접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접근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저들이 지금 방심하고 있을 때, 공격하여 빈틈을 만들고 빠져나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다. 방심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간파하여 숨통을 끊어 놓으려 할 것이다.
―그럼 이대로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니, 어쩌면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잠시만 기다려 봐.
“조금 있으면 흥친왕야의 생신이니 내가 가서 그 미인도를 구입해 주겠소.”
서유도의 말에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의 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미인도를 구입해 주겠다고?”
“그렇소. 그러니 우리를 풀어 주시오.”
선임인 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정당하게 거래하여 되찾는 방법도 있었지. 흥친왕의 생신이 정확하게 언제라고?”
“열하루이니 이레가 남았소.”
“열하루라……. 바쁘게 움직이면 그런대로 시간은 맞출 수 있겠군.”
선임인 자가 수하들을 향해 고갯짓하자, 수하들이 궁상파의 무인들을 향해 공격을 하였다.
체에에엥!
“그림을 사 준다고 하지 않소?”
서유도가 공격을 막으며 선임인 자를 향해 외쳤다.
“상인이면 몰라도 무림인이 그림을 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서유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네놈들이 선화유정도에 궁금증을 가지면 우리가 피곤해지거든.”
“크아아악!”
궁상파의 무인들이 피를 뿌리고 쓰러지자, 장문인인 서유도가 검을 크게 휘둘러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내가 시간을 벌 터이니 뒤돌아보지 말고 달아나라.”
서유도가 명령을 내리자, 무인들이 지체 없이 달아났고,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궁상파의 무인들을 쫓았다.
“어딜!”
서유도가 이들을 저지해 보려고 했지만 혼자서 다수를 저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들의 선임이 되는 자가 서유도를 막자, 그의 수하들이 달아나는 궁상파 무인들의 뒤를 쫓았다.
서유도는 급한 마음에 검을 썼다.
허공을 가르는 검에서 은은한 빛이 발하였는데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의 선임은 이를 막지 않고 피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서유도는 검이 상대를 스치듯 지나가자 손목을 움직여 검에 변화를 주었다.
횡으로 지나가는 검이 수직으로 아래로 떨어지더니 곧바로 사선으로 올라오며 상대의 가슴을 노렸다.
체에에엥!
검을 쳐 내며 상대가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힘에 밀렸다고 생각한 그는 단숨에 끝장을 낼 요량으로 검을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뜀뛰듯 크게 한 발 내디디며 검을 아래로 내리치려는 순간 상대의 입가에 생긴 조소를 보았다.
서유도는 그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윽!”
불에 덴 것처럼 옆구리에서 화끈함을 느낀 서유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곧이어 찢어진 옷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며 고통이 찾아왔다.
서유도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상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 순간 머리가 핑 도는 어지러움을 느끼고는 인상을 썼다.
“도…… 독…… 쿨럭!”
입으로 피를 토해 내더니 결국 무릎을 꿇은 서유도는 몹시도 억울한 시선으로 상대를 보았다.
“네 수하들도 곧 뒤따라 보내 줄 테니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서유도는 그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지며 죽음을 맞이하였다.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의 선임은 죽은 서유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흥친왕의 생일에 초대될 자가 누가 있지?”
상인이면 좋겠지만 굳이 상인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었다.
흥친왕을 만나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림을 거래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면 충분하였다.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면 관리들도 상관없겠지.”
* * *
화린은 중경에서 사천성으로 가기 위해 관도를 따라 대죽현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장주님!”
곁에서 걷고 있던 서대영이 놀라 본능적으로 화린을 따라 경신술을 펼치며 뒤쫓았다.
서대영이 사력을 다해서 쫓았음에도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저 양반은 어째서 무공이 계속 느는 거지? 사황과 싸운 뒤에 더 강해진 것 같은데.’
화린의 모습을 시야에게 놓칠까 싶어 이를 악물고 뒤를 쫓던 서대영은 얼마 가지 않아 싸우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동춘 표국주가 장주님을 보고 괴물, 괴물 하던데 정말 괴물 같구나. 거리가 얼마인데, 그 거리에서 싸우는 소리를 듣다니.’
화린이 검은 옷을 입은 자들과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그들 주변으로 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서대영은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세 사람은 숨이 끊어진 상태였고, 한 사람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서대영은 임시방편으로 자신의 내공을 이용해 죽어 가는 자의 몸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쿨럭!”
사내가 입에서 피를 쏟아 내자, 역겨운 냄새가 흘러나왔다.
“독?”
서대영은 사내의 상처를 보았다. 검상을 입은 곳이 푸르게 변색이 되어 있었다.
“장주님, 놈들의 검에 독이 발려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서대영은 화린에게 급하게 외쳤지만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과 싸우는 걸 보니 괜한 걱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저 독한 양반에게 독이 통할지가 의문이지.”
서대영은 피를 쏟아 내고 정신을 차린 사내의 상태를 살폈지만 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무복을 입은 걸로 보아 문파의 무인인 듯한데, 저들이 왜 당신들을 공격한 것이오?”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저들이 다짜고짜 문파로 쳐들어와서는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문파?”
“궁상파의 무인입니다.”
“음…….”
사내는 또 한 번 입에서 피를 쏟아 내었다.
“저들이 미인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서대영의 눈이 반짝였다.
“미인도?”
“그렇습니다. 장문인께서 오래전에 소화 상단에서 산 미인도 한 장이 있었는데 저들이 그 미인도를 찾았습니다.”
“그럼 그 미인도는?”
“장문인의 말로는 삼 년 전에 흥친왕 전하의 생신 선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흥친왕이란 말이 나오자, 절로 인상이 구겨진 서대영은 습관적으로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과 싸우고 있는 화린에게 시선이 향했다.
어느새 그들을 다 죽여 버린 화린은 시체에 걸터앉아 자신과 궁상파의 무인이 하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화린이 고갯짓으로 더 물어보란 시늉을 하였고, 서대영은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 미인도가 무엇이기에 사람들을 다 죽인단 말입니까?”
“모릅니다. 그 미인도를 선화유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 탑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서대영은 그 외에도 몇 가지 물었는데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몸이 축 늘어진 궁상파 무인의 눈을 감겨 준 서대영은 몸을 돌려 화린을 보았다.
“암흑마탑의 잡것들이야.”
“최근에 중원으로 넘어왔다는 그 암흑마탑 말입니까?”
“그래. 내가 오래전에 흑룡강성의 아수라마탑을 멸문시킬 때, 그놈들이 아수라마탑을 도와주기 위해서 온 적이 있어.”
화린은 자신과 암흑마탑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럼 그들이 말하는 선화유정도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아수라마탑의 보물이지.”
“아수라마탑의 보물이라면…… 그 미인도에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겠군요.”
“본시 아름다운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야.”
아름다워서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탐하는 자들이 많아서 위험한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서대영이었기에 화린의 말에 수긍할 수가 있었다.
“듣기로는 모두 다섯 장이라고 들었는데 각기 한 장에 아수라마탑의 무공이 수록되어 있고, 다섯 장을 다 모으면 아수라마탑의 독문 무공인 아수라혈공을 익힐 수 있다고 그랬던 것 같아. 그 위험한 물건 중 하나가 숙부님의 손에 들어간 모양이군.”
“그럼 암흑마탑과 아수라마탑의 생존자들이 암흑마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일 수도 있겠군요.”
화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숙부님이 가지고 계신 선화유정도를 회수해야겠어.”
“흥친 왕야께서 그림을 주려고 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사랑스러운 조카가 그림을 달라고 하는데 그깟 그림 한 장 못 주겠어. 그리고 내가 흥친어림군을 위해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 고생을 생각하면 보상으로 충분히 받을 자격도 있지.”
맹호사사혈전대가 흥친어림군 소속이었기에 화린이 하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놈의 무림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구나.”
서대영은 화린의 입가에 생기는 옅은 미소를 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저건 왜 적응이 안 되는지 몰라.’
화린이 황궁을 벗어나 처음 접한 세상은, 죽거나 죽이는 곳이었다.
비록 상부의 명령이었다고 해도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빼앗았고, 또 수많은 동료들이 죽는 걸 보면서 오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런 세상에서 생활하였던 화린이 전역한 후에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는 그에게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막상 전역해서 세상에 나와 보니 그런 건 자신의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림이라는 세상 역시 자신이 오 년간 몸담았던 군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였다.
군대에서 객잔의 점소이로, 주인으로 위장 생활을 한 것처럼 무림에서 구룡장의 주인으로 생활하는 중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다툼이 일어나니 너무나 친숙하여 자신이 전역한 것이 아니라 다른 부대로 전출을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할 때도 있었다.
“가는 길에 관아에 들러 여기에 시체들이 널렸다고 알려 줘.”
“알겠습니다.”
“나는 이 근방을 조금 돌아본 후에 성도로 갈 테니까, 넌 몇 가지를 알아보고 와.”
“무엇을 말입니까?”
“사천에도 동창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안가가 있지?”
“그렇습니다.”
“넌 그들을 만나 지금 군의 움직임이 어떤지 한번 알아봐.”
“군의 움직임 말입니까?”
“그래. 팔로수로군, 흥친어림군, 용친어림군, 국경수비대, 황궁수비대 등등…….”
서대영은 화린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명령을 내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그의 뜻대로 하기로 했다.
“그 후 흥친왕부로 곧장 갑니까?”
“아니, 성도의 화련화루란 기루가 있어.”
“화련화루?”
“하오문의 다섯 세력 중 기녀들의 모임인 기녀방의 본방이야.”
화린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미옥에게서 하오문에 대해 소상히 들어서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최대한 빨리 갈까요? 아니면 느긋하게 갈까요?”
“알아서 맞춰 와. 단 숙부님의 생신 이틀 전에는 흥친왕부로 들어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시간 맞춰서 와.”
화린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안개가 바람에 흩어지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