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71)
구룡전기-171화(171/217)
구룡전기 (171)
흥친왕부
화린은 무서운 속도로 관도에서 벗어난 비포장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와중에도 주변을 살피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방향을 잡더니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화린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 암흑마탑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찾았다.”
화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암흑마탑의 무인들이 일제히 화린이 서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린은 죽어 가는 궁상파 무인의 말에서 암흑마탑의 무인들이 더 있음을 직감하였고, 멀지 않은 곳에 암흑마탑 무인들이 있다 판단하고는 급하게 서대영과 헤어져 이들을 추적하여 찾아낸 것이다.
화린은 맹호사사혈전대 시절 다양한 전투 방법을 습득하였고, 그중에는 상대를 추적하고 따돌리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살황의 일기장에도 청부 대상을 추적하는 기술들이 기록되어 있었기에 이들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웬 놈이냐?”
이들은 화린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하였다.
“나를 알지 못하는 걸 보니 암흑마탑에 늦게 합류한 자들인가 보군.”
암흑마탑 무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고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살기를 드러내었다.
선임으로 보이는 자가 고갯짓을 하자, 한 명의 무인이 화린을 향해 다가갔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죽을 자리를 찾아온 너의 무지함을 탓하여라.”
그의 말에 화린이 피식 웃었다.
“어디 족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놈이 건방지게.”
화린은 귀찮다는 듯 그를 향해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엄청난 속도로 주먹이 암흑마탑 무인의 얼굴 앞까지 당도하였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암흑마탑 무인의 머리가 크게 뒤로 젖혀지더니 그대로 날아가서는 동료들이 있는 곳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동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눈을 부릅뜨다 선임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누구냐?”
“이걸 몰라봐?”
선임의 물음에 화린이 되물었다.
“무엇을 말이냐?”
“그럼 아수라마탑의 놈들은 아닌데, 무엇 때문에 내 것을 찾고 있지?”
“내 것?”
“선화유정도!”
화린의 입에서 미인도의 이름이 나오자, 암흑마탑의 무인들이 흠칫하였다.
“선화유정도가 네놈의 것이라니 그게 무슨 궤변이냐? 선화유정도는 본 탑의 보물이다.”
“그런데 이걸 알아보지 못해?”
화린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선임은 무엇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인지 물었다.
화린은 그 자리에서 선임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가 회수하였다. 그런데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퍼어엉!
권풍이 일어나며 선임의 몸을 때렸고, 그의 등이 새우등처럼 굽어졌다.
크게 벌어진 입으로 오물을 쏟아 내던 선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였다.
“언제…….”
“이걸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무슨 아수라마탑의 생존자들이라고.”
“아수라마탑? 우리는 암흑마탑의 무인들이다.”
그의 말에 화린은 조소를 지었다.
“그놈들 역시 마찬가지. 이걸 모를 수가 없지.”
“그게 무엇인데 그리 말하는 것이냐?”
“너희들이 찾고 있는 다섯 장의 선화유정도 속에 담겨 있는 무공이지. 아수라유성권이라고.”
선화유정도에 대해서 알고 있는 화린에 선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린이 손으로 허공을 당기는 시늉을 하자, 그의 손에 하나의 족자가 생겨났다. 그 족자를 펼치자 아름다운 여성의 그림이 나타났다.
이는 아수라마탑의 보물인 다섯 장의 선화유정도 중 한 장이었다.
화린이 아수라마탑을 멸문시켰을 때 얻은 것으로, 그 당시 이미 네 장의 그림은 사라진 상태였고, 한 장밖에 남지 않은 것을 그가 회수하여 가지고 있었다.
“선화유정도!”
이들은 선화유정도를 보자 놀란 눈을 하였고, 그 눈은 곧 탐욕을 드러내는 눈으로 바뀌었다.
“선화유정도는 알고 있는데 아수라마탑에 대해서는 모른다라……. 수상한 놈들이군.”
화린은 이들이 아수라마탑이나 암흑마탑의 무인들이 아니라고 판단을 하였다.
“부산궁인가? 흑룡강성에서 같이 중원으로 들어왔다는 자들이.”
부산궁을 언급하자, 선임이 흠칫하였고, 그걸 놓치지 않은 화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
“부산궁이 욕심을 부리는군.”
부산궁에서 암흑마탑이 한 일처럼 꾸며 선화유정도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을 당혹스러워하는 선임의 모습에서 화린은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다.
“모두 몇 명이나 들어왔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선임이 발끈하며 되레 화를 내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어색하여 누가 봐도 당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네놈들이 다 죽으면 나온 놈들이 찾으러 오겠지.”
화린이 손에 든 족자를 허공으로 던지자, 족자가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져 버렸다.
“허엇!”
화린의 주먹이 움직였다.
주먹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허공이 움푹 파여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켰다.
“커억!”
화린의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부산궁 무인들의 고개가 크게 뒤로 젖혀지며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이놈!”
선임인 자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거리를 줄이며 화린을 향해 검을 휘둘러 공격해 왔다. 그러나 화린의 주먹이 더 빨랐다.
첫 번째 주먹이 선임이 들고 있는 검을 때리자 그의 검이 산산이 부서졌고, 두 번째 주먹이 복부를 때리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큰 충격에 입을 크게 벌렸고, 세 번째 주먹이 아래에서 턱을 올려치자 몸이 뒤집히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네 번째 주먹이 선임의 가슴을 때리자, 그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처음에 서 있던 자리 바닥으로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화린의 주먹이 얼마나 빨리 움직였는지 부산궁의 무인들은 화린의 주먹을 보지도 못하였다.
선임은 화린의 공격에 당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다른 무인들은 시선을 교환하며 달아날 궁리를 하였다.
“허어억!”
그 순간 전신을 조여 오는 살기에 숨이 턱하고 막히는지 부산궁 무인들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들은 살기를 접하는 순간 눈앞에 있는 사내의 허락 없이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화린의 살기가 짙어질수록 숨을 쉬는 것이 불편한지 무인들이 급하고 빠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커어억…….”
무인 한 명이 힘든지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숨을 급하게 쉬었지만 그럴수록 불편함이 가중되었다.
그러다 급기야는 숨이 막혀 쓰러지는 이가 생겼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수가 많아졌다.
의형살인!
흔히들 현경을 넘어 생사경의 경지에 들어선 무인이 살의를 품는 순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가공할 기운만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경지를 말하는데, 사실상 현경, 생사경과는 상관이 없고, 심의지경에 이른 무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하였다.
하지만 무인들 사이에서도 심의지경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정확하게 심의지경을 정의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마음이 일면 검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신검합일의 경지, 즉 신검의 경지가 심의지경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마음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는 무공의 경지가 아닌 신의 경지, 즉 신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화경, 또 다른 이는 현경, 생사를 주관하는 것이니 생사경의 경지에 올라서야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직까지 무림에서는 정의가 모호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화린이 심의지경에 올라 의형살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산궁의 무인들이 모두 쓰러지고 한 명만이 남았을 때, 화린은 자신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헉…… 헉…… 헉…….”
“편하게 단칼에 죽고 싶지.”
죽고 싶으냐는 말에 부산궁의 무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빨리 죽여 달라는 얼굴로 화린을 보았다.
“그럼 질문.”
“……!”
“부산궁에서 왜 선화유정도를 수집하는 거지?”
“저는 말단이라 그런 이유까지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 그럼 너희 말고 몇 명이나 더 나왔지?”
“다섯 개 조, 오십 명이 나왔습니다.”
“그럼 한 조에 열 명이라는 말이고, 각 조의 조장들은 이유를 알고 있겠군.”
“저는 그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조금 전의 고통을 다시 당할 수 없다는 필사의 의지로 화린의 물음에 답하는 부산궁 무인이었다.
“그들을 만나는 날은?”
“각 조의 조장만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으면 그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찾아오는 건 당연한 거고.”
화린은 부산궁의 무인을 보았다.
“이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스스로 죽어.”
화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자신의 검으로 목을 긋고 죽어 버렸다.
화린은 죽은 부산궁 무인을 잠깐 내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다른 놈들이 사천으로 온다고 해도 궁상파가 멸문당했으니 선화유정도의 행방은 알 수 없겠지만 숙부님의 생신 때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면서 선화유정도에 대해서 알려지면 부산궁 놈들의 귀에도 들어가겠지.”
아무리 간이 부은 자들이라고 해도 흥친왕부를 공격하지는 않을 테지만 도둑에게 의뢰하여 훔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천에 그림 잘 그리는 화방이 있나 모르겠네.”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리명한 가주님.”
화정수는 돈이 급해 운남성의 대리세가를 찾았다. 대리세가는 운남성에서 채석되는 대리석을 생산하는 가문으로, 대리석은 건물을 짓거나, 혹은 도로, 거리, 성을 축조하는데 장식이나, 혹은 마감재로 사용된다. 엄청난 고가를 자랑하는 고급 건축 자재임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부족할 정도로 중원의 각지로 판매되고 있는 중이었다.
대리석 판매로 큰 부를 쌓은 대리세가는 운남성에서는 대리국이라고 불릴 만큼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화 대인. 동생분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화정국의 이야기가 나오자, 화린의 얼굴이 떠올라 화정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침을 삼키는 것처럼 화린에 대한 분노를 삼켰다.
살인검제가 움직였으니 그도 얼마 가지 못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믿고 있어서였다.
“동생의 일로 근심을 끼쳐 드렸습니다.”
“아이고, 근심이라니요. 화 대인의 슬픔에 비할까요.”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후에 화정수가 대리세가를 찾은 이유를 말하였다.
“가주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희 상단에 돈을 좀 융통해 주십시오.”
“돈을 말입니까?”
“최근에 안 좋은 일들이 겹치면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얼마나 필요하시기에?”
“금 오천만 냥이 필요합니다.”
“오천만 냥이라……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군요.”
“대륙전장에 급하게 막아야 할 어음이 있습니다. 그것만 해결하면 자금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가주님께 빌리는 돈은 수 달 내로 갚아 드리겠습니다.”
“요즘 상단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조금 힘들긴 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희 화명상단 역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여 지금까지 성장하였습니다. 곧 있으면 흥친왕 전하의 생신이니 전하를 찾아뵙고 흥친어림군에 곡물을 납품하게 되면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되면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더 많이 구입할 터이니 저를 믿고 돈을 융통해 주십시오.”
대리명한은 고개를 저었다.
“화명상단의 사정이 좋다면 화 대인의 신용을 믿고 그 돈을 융통해 드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몹시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운남성에 있는 저에게도 화 대인이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는 말이 들리고 있습니다.”
밀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미 중원의 대상들을 중심으로 화정국의 죽음이 밀수를 하다 들켜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거짓된 헛소문입니다.”
대리명한은 화정수의 말보다는 떠도는 소문이 더 신빙성 있다고 생각해 그의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럼 이리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담보를 맡기신다면 그 담보에 맞는 금액을 이자 없이 융통해 드리겠습니다.”
대리명한도 손해는 보기 싫다는 말이었다.
“담보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돈을 갚을 때, 그 담보를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자가 없는 것만으로 화 대인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화정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용만으로는 돈을 융통할 수 없음을 대리명한의 언행에서 느낀 것이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대리명한이 이리 말할 정도면 어디를 가도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돈을 빌릴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 담보는 어떤 걸로 받으시겠습니까?”
“아무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화 대인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금 오천만 냥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니 담보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운남, 사천, 귀주에 있는 상단의 전답을 담보로 맡기면 되겠습니까?”
“그리하신다면 당장이라도 돈을 내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가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