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72)
구룡전기-172화(172/217)
구룡전기 (172)
화린은 사천의 성도에서 가장 유명한 화방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화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화린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림 하나 사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우리 화방에 없는 그림은 사천에서 영업하는 어느 화방에 가서도 구할 수가 없지요.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는 화린을 화방의 안쪽으로 안내하였다. 화방의 안쪽은 마치 전시장같이 온갖 그림이 족자에 담겨 벽에 잔뜩 걸려 있었는데, 그가 자신한 것처럼 각양각색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수화, 풍경화 같은 거 말고 미인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 미인도를 원하십니까? 이쪽으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엔 여인의 전신, 상반신, 전라의 그림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을 추천해 주십시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주인은 잠깐 고심하더니 한쪽으로 가서 세 개의 족자를 가지고 와서는 화린의 앞에 펼쳐 보였다.
“이 그림은 고금제일미라 불리던 초난의 인물화입니다.”
고금제일미라 불리는 초난은 무려 오 백 년 전의 인물로 그 당시 그녀의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서 수많은 화공들이 그녀의 모습을 그렸고, 오늘날까지 그 그림이 전해지고 있었다. 주인이 화린에게 보여 준 그림은 최근에 그린 것처럼 화색이 선명하고, 얼굴의 윤곽이나 전신의 선들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옛날 그림을 보고 새로 그린 모작이네요.”
“그렇습니다. 요즘 초난의 미인도는 대부분 모작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다른 걸 보여 주시죠.”
두 번째 족자에도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져 있었는데 초난의 아름다움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녀만이 가진 장점도 분명하였기에 주인이 화린에게 이 그림을 추천한 듯했다.
세 번째 족자의 미인도를 보는 순간 화린은 눈을 떼지 못하고 그림만을 바라보았다.
주인은 화린의 반응에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현재 사람들이 고금제일미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여인입니다.”
화린은 주인의 말을 듣고 미인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황금화 전여빈이군요.”
“그렇습니다. 나이가 어려 아름다움이 만개하지 않아도 이미 중원제일미라 불리는데 방년이 지나 여인으로서 아름다움이 만개하는 나이가 되면 아마도 고금제일미라 불리게 될 것입니다.”
화린은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림만으로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정도이니 실제로 보게 된다면…….
‘아나스타시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구나.’
화린이 맹호사사혈전대에서 복무하고 있을 때, 색목국으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나간 적이 있었다.
한 여인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국가의 기능이 마비되어 반란이 일어나고, 그 여인을 중심으로 국가를 새로이 만들고자 하는 세력들이 생겨나면서 큰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으로 피해를 본 수많은 난민들이 중원으로 유입되면서 중원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난민들에 의한 범죄가 중원 사회의 문제가 되자, 황제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아나스타시아라는 여인을 죽여 혼란을 잠재우려고 하였고, 이를 위해서 맹호사사혈전대가 색목국으로 작전을 나갔다.
당시 화린을 비롯한 맹호사사혈전대 이백오십 명은 아나스타시아를 지키는 호위대를 뚫고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 중에서도 그녀를 옹호하며 편드는 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극강의 아름다움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게 깨뜨릴 수 없는 강력한 섭혼술과 같은 세뇌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걸 화린은 그때 깨달았다.
배교의 술법도 극강의 아름다움에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화린 역시 그 당시에는 아나스타시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임무 완수와 그녀를 두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릴 정도였다.
당시 화린이 여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거나, 혹은 많이 볼 수 있었다면 결코 그녀를 죽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화린은 황궁에서 지내는 동안 여자라곤 보모 한 명만을 보았고, 황궁을 나와서는 맹호사사혈전대 부대 내 여성 몇 명을 본 것이 전부였다.
간혹 위장하고 있는 식당에 여성 손님들이 오긴 하지만 대부분 무역을 하는 남자 상인들이라 여자를 만나거나 보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화린은 아나스타시아를 벨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과 피 터지는 싸움까지 벌여야 했다.
그 당시 화린의 손으로 죽인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 수만 해도 백 명이 넘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화린은 여인이 가진 아름다움이 세상을 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린은 족자에 담긴 황금화 전여빈의 그림을 보고 그 당시의 아나스타시아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그림으로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어딜 가도 이만큼 잘 그린 미인도는 찾기 힘들 것입니다.”
화린은 황금화 전여빈의 그림을 산 후에 화방을 나섰다.
“아미산보다는 청성산에 오래된 도관이 많이 있겠지.”
화린은 청성산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하였다.
* * *
청성산은 사천의 성도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중원에서는 무당산, 용호산과 더불어 중원삼대도교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구파일방에 속한 청성파가 청성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매일 수많은 이들이 청성산에 올라 원시천존에게 기도를 올리며 무사안일과 장수를 기원하기도 한다.
화린은 산길을 따라 청성산에 오르고 있었다. 화린의 목적은 방치되어 있는 오래된 장소를 찾기 위함이었다.
오래된 먼지와 오랜 습기를 머금고 있는 이끼, 곰팡이와 같은 걸 이용하여 술법으로 구입한 미인도를 오랜 세월이 흐른 미인도로 둔갑시키기 위해서였다.
청성산에는 도인들의 수련관들이 사방에 널려 있고, 도관을 지어 수련하는 도인들도 있는 반면에 자연 발생한 동굴 안에서 생활하며 수련하는 도인들도 있었다.
화린은 청성산의 주봉인 노소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발견하였다.
산세가 험하고, 깎아 지르는 절벽 사이에 난 동굴은 무공이 고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절벽의 틈새라 또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화린이 절벽의 틈새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자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고, 안에서 특유의 습한 냄새와 더불어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였다.
“이거지.”
동굴 깊숙이 들어가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나타났다.
화린은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는 흐트러진 옷을 바로 정돈한 다음 전면을 향해 양손을 모으고 말했다.
“고인의 영면을 방해하였습니다. 소생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십시오.”
화린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돌로 만든 석대가 있었고, 그 위에 정좌한 시신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삭아 부서질 것만 같은 의복을 입고 뼈만 앙상히 남아 있는 모습의 시신이었다.
그럼에도 시신에서 현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그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대단했던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어 준 후 발을 옮기려던 순간, 위화감을 느낀 화린이 멈칫하였다.
한 걸음 움직인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라 판단한 화린은 발을 원래대로 두고 해골 시신을 바라보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무공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해골 시신이 동굴에 무슨 짓을 해 놓았는지 알 수 없기에 화린은 일단 고개를 숙여 해골 시신에게 말을 하였다.
“원하신다면 시신을 수습하여 청성파에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그제야 위화감이 줄어들었다.
‘사자의 유품에 눈이 먼 자들이 성급하게 시신에 접근하였다면 아마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화감이 완전히 사라지자, 화린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석대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해골 시신을 살펴보았다.
입고 있는 옷 아래로 무엇인가 보여 조심스럽게 옷을 들추자, 그곳에 세 권의 책과 한 자루의 검이 놓여 있었다.
화린은 세 권의 책과 한 자루의 검을 회수한 후에 살펴보니 두 권은 무공 비급이고, 한 권은 도술 비문이었다.
검 또한 예사 검이 아닌 것 같아 검을 뽑아 보니 검신 아래에 벽운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벽운검?”
화린은 자신의 기억 속에 벽운검과 관련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무공총람을 보면 벽운검은 송풍검과 신학검과 더불어 청성파의 삼대보검이라 쓰여 있었는데.”
화린은 정좌해 있는 해골 시신을 보았다.
해골 시신은 벽운검의 주인이 될 정도로 청성파에서 입지가 높은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화린은 무공서와 도술 비문을 보았다.
“천지일기공, 벽산벽운검법, 환환미종비문이라……. 한 이틀 정도 시간이 있으니 이곳에서 보낸 후에 내려가야겠군.”
* * *
이른 아침부터 청성파 사람들은 평소와는 다른 분주함 속에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방문자를 맞이하였다.
방문자는 한 구의 해골 시신과 함께 찾아왔는데 그는 다름 아닌 화린이었다.
화린은 해골 시신이 너무 오래되어 자칫 부서질까 싶어 자신의 내공으로 해골 시신을 보호한 후에 능공섭물의 공부를 이용해 허공을 뛰어 청성파로 온 것이다.
아침부터 해골 시체와 방문한 화린의 모습에 놀란 청성파 사람들이 경계하자 화린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장문인을 만나게 해 달라 청했다. 이후 장문인인 녹풍과 함께 장로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서 나옴으로 일단의 난리는 정리가 되었다.
“알리기에 구룡장주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혈맹의 감시를 받고 있을 텐데 사천까지는 어인 일로……?”
“이번에 흥친왕 전하의 생신일이 있어 상인의 일을 보고자 사천에 들렀습니다.”
곧 있으면 흥친왕의 생신일이라는 걸 청성파도 알고 있었기에 녹풍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혈맹에서 감찰사가 나온 것으로 아는데 그는 이번에 동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동행하지 않고, 멀리서 저를 지켜보는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럼 귀하께서는 우리 청성파를 방문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려고 하였는데 이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청성에 오게 되었습니다.”
화린은 자신의 곁에 있는 해골 시신을 보고 말했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부서질까 하여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해골 시신이었다.
“그분이 누구시기에?”
화린은 품에서 세 권의 책과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녹풍에게 전해 주었다.
허공에 두둥실 떠서 천천히 녹풍에게로 이동하는 걸 본 청성파의 무인들은 구룡장주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었다.
세 권의 책과 검을 받아 든 녹풍의 눈이 이로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이건…….”
검을 든 손까지 부르르 떨며 녹풍은 화린의 곁에 있는 해골 시신을 번갈아 보았다.
“제가 잘 알지는 못해도 그 검이 청성파의 것임을 알기에 이리 찾아온 것입니다.”
녹풍 장문인이 해골 시신을 향해 큰절을 하였다.
“삼가 영성 진인의 존안을 뵈옵니다.”
녹풍 장문인의 행동에 놀란 장로들과 무인들은 뒤에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녹풍 장문인과 해골 시신을 번갈아 보았다.
“장문인, 그게 무슨 말이오. 영성 진인이시라니요.”
장로 중 한 명이 묻자, 녹풍은 그에게 손에 들린 검을 건네주었다.
장로인 그 역시 검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 벽운검이…….”
장로인 그의 말이 청성파의 뜰에 모인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영성 진인, 그는 청성파의 이백 년 전 인물이며 당시 청성제일검으로 무림에서는 그를 검치라 불렀다.
영성 진인이 있을 당시 청성파는 절정의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그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가 남긴 업적들로 오늘날의 청성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청성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청성파의 입장에서 영성 진인은 소림의 사조 혜능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가 사라진 이후, 그에 대한 무수한 소문들이 나돌았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오늘날에야 그의 시신이 청성파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영성 진인의 존안을 뵈옵니다.”
장로들이 해골 시신을 향해 절을 하자, 주변에 있던 무인들 모두가 절을 올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해골 시신 곁에 화린이 서 있었기에 누군가가 이를 보았다면 청성파에서 화린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고 오해를 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