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74)
구룡전기-174화(174/217)
구룡전기 (174)
흥친왕부의 앞에서 왕부를 오가는 사람들을 잠깐 동안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지만 아마도 저 사람들은 흥친왕 주영국을 만나 보지 못하고 생일 선물만 주고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방명록을 작성하고 선물을 전달한 후에 기록해 두었을 터이니 훗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일종의 뇌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화린은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며 참 열심히 쉽게 살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고 편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그게 안 되면 열심히 쉽게 사는 차선을 택하는 건 맞지만 그게 너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내심을 좀 숨기고 아닌 척이라도 좀 하지.”
화린은 걸음을 옮겼다.
흥친왕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왕부를 지키는 병사가 화린을 막아섰다.
“어디에서 오신 누구인지와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형식적으로 묻는 질문이었지만 이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질문이기도 하였다.
화린은 대답 대신에 구룡패를 품에서 꺼내어 보여 주었다.
“허엇!”
구룡패를 본 병사들은 놀라 화린과 구룡패를 번가라 보았다.
“혼자 오신 겁니까?”
“수행원이 한 명 있는데 게을러 터져서 나중에 올 거야.”
병사는 화린의 대답에 의구심을 가졌다.
황족이 그것도 황제의 아홉 번째 황자가 수행원 하나 없이 왕부를 찾는 것이 이상해서였다.
그럼에도 화린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손에 들린 구룡패가 진짜처럼 보여서였다.
화린이 오기 전에도 황제의 자식임을 뜻하는 용패를 가지고 온 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용패와 화린이 보여 준 용패가 똑같았다.
병사는 화린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확인을 거쳐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건 죄송할 일이 아니다.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것이다.”
화린에게 양해를 구한 병사는 화린을 왕부 안으로 들어오게 한 후 한쪽에 지어진 경비 초소 건물 안으로 인도하였다.
“불편하시겠지만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해.”
병사가 다른 병사에게 화린이 준 용패를 보여 주고 왕부 안으로 들어가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 말하자 병사가 왕부 안으로 들어갔다.
“당신 이름이 뭐지?”
화린이 병사의 이름을 물었다.
“춘필입니다.”
“춘필…… 당신의 이름대로 봄은 오기 마련이지. 앞으로도 숙부님을 위해서 노력해 줘.”
“감사합니다.”
잠시 기다리자 한 사람이 초소 안으로 들어왔고, 병사 춘필이 그를 보며 군례를 올렸다.
“됐고.”
그의 시선이 화린에게 향했다.
“그림자 군주께서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셨습니다.”
그는 화린을 알아보았지만 화린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누구?”
“흥친어림군의 천호대장군 군상천입니다.”
화린은 그의 소개를 듣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주화린이 천호대장군을 뵙습니다.”
“천하가 구황자님으로 인해 들썩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춘필은 그가 진짜 구황자임을 알 수가 있었다.
“결례를 하였습니다.”
춘필은 자신이 들고 있던 구룡패를 화린에게 건네주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그러니 고개 숙일 일은 아니지.”
군상천이 화린에게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는 시선을 보냈고, 이에 화린은 미소를 띠며 말하였다.
“일 잘하는 병사를 오랜만에 봐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구룡패만 보고 기가 죽어 어리바리했을 테지요.”
군상천은 춘필을 보았다.
“왕부에 이런 병사가 많다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군상천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춘필에게 말하였다.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왕부의 정문을 지켜 주게.”
“옛!”
춘필은 초소가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의 대답에 흡족한지 군상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린 황자님, 가시지요.”
군상천이 화린을 안내하였다. 함께 흥친왕부의 뜰을 걸으며 군상천이 물었다.
“저는 황자님께서 사회에 나와서 적응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화린이 군상천을 보았다.
“맹호사사혈전대에서 살아서 제대한 몇 안 되는 군인이지 않습니까?”
“아…….”
맹호사사혈전대는 독립된 부대라고 하지만 흥친어림군 소속으로 되어 있었다.
흥친어림군의 다섯 명의 대장군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천호 대장군이라면 화린을 알고 있고, 아마도 쭉 지켜보았을 것이다.
“황자님을 맹호사사혈전대로 보내신 황제 폐하의 뜻을 알 수가 없어 상소도 많이 올렸습니다.”
“그래요?”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고 해도 아픈 열 손가락이지 않습니까?”
화린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 손가락을 사지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래도 살아서 전역하시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는 자신의 핏줄인 구황자님께서 견디고 극복하실 것이라 믿고 계셨습니다.”
“그런가요?”
“황제 폐하께서도 맹호사사혈전대 출신으로 오 년 만기 전역을 하셨습니다.”
화린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군상천을 보았다.
“제가 황제 폐하의 곁에서 보필하였으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폐하께서 그 험한 경험을 하셨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렇기에 폐하께서는 지금의 용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화린은 군상천에게서 뜻밖의 과거에 대해 들을 수가 있었다.
“용상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치열합니다. 거기에 잔인하기도 하지요.”
“그런가요?”
“지금 폐하의 형제, 왕야들께서 세 분만 계신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구황자님의 형제는 위로 황자가 여덟 분, 황녀가 다섯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황제 폐하의 형제가 세 분만 계신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
화린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폐하께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맹호사사혈전대를 오 년 만기 전역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계셨던 것입니다.”
“폐하께서 저의 선배라는 사실이 놀랍군요.”
“저도 황자님의 선배입니다.”
화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섬서성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무모하였지만 잘 극복한 것 같습니다.”
군상천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사황 백무기 선배 역시 맹호사사혈전대 출신이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후배가 되는 자이니 말입니다.”
“아, 그렇겠군요.”
“후배라고 하지만 그의 무공이 대단하여 적의 수장들은 혼자서 도맡아서 처리하곤 하였습니다. 급할 때는 홀로 작전을 수행할 정도로 대단한 친구였지요.”
“그래요?”
“아마 무공만으로 따지면 그가 맹호사사혈전대 출신 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화린은 사황 백무기를 떠올리자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대단한 분이지요. 적들이 가득한 곳에 홀로 찾아와 저에게 죽을래, 살래 겁박하셨던 분이시니까요.”
“하하하. 그 친구라면 그랬을 것입니다. 시키는 일 외에는 잘 나서는 법이 없는데 일단 움직이면 부대 전체가 긴장했을 정도니까요.”
군상천의 말을 듣고 화린은 지금의 자신도 젊은 시절의 백무기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저도, 폐하께서도 오 년 만기로 전역하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화린은 백무기를 다시 만나면 그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맹호사사혈전대가 괴한들에게 습격당했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더 이상 맹호사사혈전대와 같은 성격의 특수부대는 창설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군상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황자님께서 중원에 위협이 되는 단체를 다 멸했기에 적어도 십 년, 이십 년 안에는 중원에 위협이 되는 단체가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사실 맹호사사혈전대를 유지하는 데에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고 있어 재정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재정적으로 힘들다는 말을 듣고 화린은 뭔가 생각이 난 듯 물었다.
“이번에 용친어림군에서 특수부대를 몇 개 창설하였다고 하던데, 용친어림군은 흥친어림군과 다릅니까?”
“나라에서 받는 지원금은 비슷합니다. 다만 군대라고 하여 돈을 안 버는 것은 아니니 부족한 건 군대에서 재원을 마련합니다.”
“군대에서 돈을 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맹호사사혈전대로 예를 들면, 한 번 작전에 투입될 때마다 큰 비용이 발생하지만 그만큼의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단 것이지요.”
“아…….”
“군인이 돈을 버는 건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리고 상인들에게 지원을 받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대부분 개인 비리로 끝나지요.”
‘상인들의 지원?’
대화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흥친왕부의 별채에 도착했다.
“별채에 다른 황자님들과 황녀님들도 와 계십니다.”
“눈이 안 보일 때 절 괴롭혔던 사람들이라 지금은 누구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하하. 우리 맹호사사혈전대 후배이신 황자님께서 그리 허술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화린은 피식 웃었다.
황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고, 또 황제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정보도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구룡루를 찾아온 오황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도 있었다.
“흥친왕부에 있는 동안은 거짓말을 자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숙부님께서도 맹호사사혈전대의 선배님은 아니시지요?”
“흥친왕야께서는 군 지원부대에서 복무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하지만 눈치가 현경의 수준에 도달하신 분이라 속이기는 힘드실 겁니다.”
“제가 숙부님을 속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화린은 천호대장군 군상천과 대화를 하면서 어쩌면 황궁에서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였다.
‘전설의 천리안이라도 가지고 계시는 건지.’
“아, 숙부님께 제가 한번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말씀 좀 전해 주십시오. 조카가 처음으로 숙부님의 생신에 찾아와 선물도 드릴 겸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화린이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군상천이 말하였다.
“황자님.”
화린이 등을 돌려 그를 보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을 만나셨을 때,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섯째 형님을 만났을 때도 대화를 통해서 마음을 나누었으니 말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지금 오황자님도 별채에 와 계십니다.”
“그렇다면 제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어느 쪽입니까?”
“건너편 전각의 여섯 번째 방입니다.”
화린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한 군상천은 몸을 돌려 별채를 벗어났다.
“기가 차군. 지금 한자리한 사람들 다 맹호사사혈전대 소속 선배들은 아니겠지.”
화린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오황자가 있다는 별채 건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