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77)
구룡전기-177화(177/217)
구룡전기 (177)
흥친왕 주영호의 생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흥친왕부를 찾아와 머물렀는데 왕부 안에 머무는 이들 대부분은 황족, 왕족, 그리고 군부의 사람들이었고, 관림을 비롯한 서림과 무림과 관련된 사람들은 흥친왕부에서 객잔을 임대하여 그곳에서 머물게 하며 흥친왕 주영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에 대한 예의를 다하였다.
화린은 흥친왕부에서 임대한 객잔의 입구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방명록에는 어느 성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작성을 하였다.
예를 들면 섬서성 구룡장 장주 주화린. 이런 식으로 작성을 하여 누구 찾아왔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를 하였는데 화린은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순식간에 배교의 술법을 이용해 자신에 대한 친근감을 뇌리에 각인을 시켰다.
“요즘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 어떻게, 전답도 좀 올랐답니까?”
화린이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전답을 비싼 값에 매입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전답을 파는 것보다 농사짓는 게 돈이 더 많이 벌리지.”
“그래요?”
화린은 방명록을 작성하면서 몇 마디 주고받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성, 혹은 도시, 현에서 제법 큰 전답을 소유하고 있는 대지주들이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서대영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난 황자님들과 황녀님들을 피해서 일부러 일찍 왕부를 나선다고 생각했는데…….
아침 일찍부터 왕부를 나서더니 이곳으로 와서는 방명록을 기록하는 왕부의 사람 대신 화린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기록하였는데 그 속셈이 넓은 전답을 가진 대지주에 있음을 알고 어이가 없었다.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누가 시비를 건다고 피할 사람은 아니지.”
-거기 서 있지 말고 객잔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나 좀 들어 봐.
-대화는 왜?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는 거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에 앉아 계실 겁니까?
-몰라.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만나 봐야지. 세 사람 정도 남았는데 일단 기다려 본 후에 결정을 내릴 거야. 못해도 미시 말미에는 일어날 테니까 걱정 마.
-알겠습니다. 석식은 어떻게 제가 가져다드립니까?
-아니, 조금 늦게 먹을 생각이야. 그러니 너도 굶고 있어.
-아니, 왜, 제가 굶고 있어야 합니까?
-나 혼자 먹으면 맛없잖아.
잠시 침묵하던 서대영은 어이가 없지만 화린의 말에 틀리다고 생각지 않아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안에 들어가 술을 한잔하면서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많이 마시지 말고.
서대영은 객잔 안으로 들어가서는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손님.”
점소이가 서대영을 불러 세우고는 물었다.
“죄송합니다. 당분간은 초대장을 가지고 계신 분들만 객잔으로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흥친왕 전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알아. 저기 밖에서 방명록을 받고 있는 사람의 수행원이니까 걱정 말고 일단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
“저기 저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서대영은 자리에 앉아 점소이를 보았다.
“못 미더우면 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아니, 아닙니다. 술과 안주는 어떤 걸로 가져다드릴까요?”
“미혹가주와 구운 오리고기, 그리고 전병을 부탁해.”
서대영은 말을 하면서 그에게 금전 하나를 주었다.
“나중에 저분이 오시면 식사를 할 터이니 그것까지 미리 계산하는 거야. 나머지는 자네 가지고.”
“아, 감사합니다.”
조금 전의 미심쩍은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존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환한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에 돌아갔다.
“역시 돈이 좋긴 하구나.”
서대영은 돌아가는 점소이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온 이들은 모두 흥친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라 일반 상인들과는 달리 상단의 우두머리, 혹은 그 지역의 유지들, 큰 땅을 가지고 있는 지주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네 왔는가?”
한 사람이 들어오며 세 명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을 향해 말을 걸더니 그리로 가서 앉았다.
“요즘 땅장사로 재미 좀 보고 있다며?”
“재미는 그냥 소소하게 사고팔고 하는 거지. 듣자 하니 자네 이번에 화명상단에서 운영하는 객잔 하나 인수를 하였다고 하던데.”
“싼값에 나와서 얼른 주웠다네. 요즘 화명상단의 사정이 좋지 않은가 봐.”
“그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중원 전역에 있는 객잔을 비롯한 영업체들을 팔았다고 하더군.”
“자금 사정이 안 좋다는 말이 있긴 했는데, 화명상단의 운도 여기까지인가 보네.”
“그건 또 모르지. 자금을 확보한 후에 새로운 사업을 할지.”
“지난번에 곡물 도난 사건에 배교의 인물이 개입되었다며?”
“배교? 난 마교라 들었는데.”
“무슨 소리인가? 그 많은 곡물을 흔적도 없이 훔쳐 달아날 수 있었던 배경은 배교의 술법을 사용하였기에 가능하다고 하던데.”
“하긴 장강에서 곡물을 훔쳐 달아난 놈은 맨몸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배에 실려 있던 곡물이 남김없이 사라졌으니. 이건 도술이나 술법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지.”
이들도 화명상단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한 지역의 큰 전답을 가지고 있는 대지주들이라 곡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에는 화명상단이 최고였으니 관심을 가질 만도 하였다.
“그럼 배교의 사람들이 다시 활동하는 건가?”
“그건 모르지. 삼십 년 전에 배교를 멸망시킨 무림인들이 배교의 술법을 빼돌려서 익혔을지도 모르지.”
“하긴 세간에 은연중에 배교의 술법이라고 돌아다니는 것이 몇 있었지.”
“상단에서 그 술법을 비싼 값에 사들인다는 말도 있었잖아.”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입구에 들어선 배불뚝이 사내 한 명이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비단옷으로 화려한 수를 놓아 옷에 대한 가치를 더 끌어올린 아주 고급스러운 옷이었다.
“여기네.”
한 사람이 그를 보더니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하였고, 그는 조금 전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가서는 앉았다.
목이 타는지 술병을 들어 벌컥, 벌컥 마시더니 술병을 내려놓고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이 사람, 뭘 그리 급하게 마시는 건가?”
“말도 말게. 내가 오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네.”
“이상한 소리?”
함께 있던 사람들이 얼른 그 이상한 소리를 말해 보라고 재촉하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나의 처형이 대륙전장에 있는 거 알고들 있지?”
“알지. 자네 덕분에 이자를 싸게 돈도 빌렸는데.”
“글쎄, 처형이 말하기를.”
그는 주변을 둘러본 후에 손짓으로 가까이 모이라는 신호를 주고 나지막하게 말을 하였다.
“화명상단의 자금 사정이 안 좋은 모양이야. 그래서 화명상단이 대륙전장에서 빌린 돈을 상환하기 위해서 대리세가에서 돈을 빌렸는데 사천, 운남, 귀주 성의 전답을 맡긴 모양이야.”
“뭐?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니까. 대리세가는 돈을 빌려주는 담보로 전답을 받았는데 만약에 화명상단에서 대리세가에서 빌린 돈을 상환하지 못하면 그 전답이 어떻게 되겠는가.”
“대리세가의 것이 되겠지.”
“그렇지. 그런데 대리세가는 작물을 안 하잖아.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전답이 필요가 없지.”
“음…….”
“그런데 왜, 자네가 그리 열을 올리는 건가?”
“내가 이 정보를 입수하고 대리세가의 사람을 만나 봤거든.”
“그래서?”
“다른 대상에서 냄새를 어떻게 맡았는지 대상들이 그 전답을 사기 위해서 대리세가와 만났다고 하니 내가 아쉬워 그런 것이 아니겠나.”
“대리세가는 작물을 안 하니 말만 잘하면 조금 싼값에 그 전답들을 사들일 수가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배가 아프다는 말이군.”
서대영은 이들의 대화를 감청하곤 곧장 화린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나도 듣고 있어. 말 걸지 말고 조용히 해 봐.
화린 역시 방명록을 작성하면서 객잔 안의 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도 안 빠뜨리는 걸 보면 신기한 양반이라니까.’
서대영은 창을 통해서 방명록을 작성하며 찾아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화린을 보며 자신이 화린을 만나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두려워서 시작조차 하지 못할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대단한 양반이긴 해.”
서대영이 황제를 가까이에서 만나 본 건 딱 한 번이었다. 황궁을 떠나는 화린을 보필하기 위한 사람들이 선별되고 화린을 만나는 자리에서 황제를 만나 보았다.
서대영은 그때 황제의 기질과 화린이 가지고 있는 기질이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함께 지내다 보니 화린의 기질이 조금 더 명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황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양반이지. 다른 황자들처럼 황궁에서 관심받으며 곱게 자라지 않아 그런지 몰라도 사람을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가끔 화린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속에 천불이 나서 염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도 또 곁에 없으면 심심해져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고, 보면 속 터지는 소리만 하니 당장 헤어지고 싶기도 하고 그랬다.
“이것도 중독이라면 중독이겠지. 내가 태어나서 약에 중독이 된다는 소리는 들어 봤지만 사람에 중독이 된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내가 저 양반에게 중독이 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어.”
-야, 헛소리할래? 너 혼잣말에 다른 소리를 못 듣잖아. 조용히 하고 술 먹어.
화린의 잔소리를 듣고 피식 웃었다.
-아이고, 귀가 그리 밝아서 잠은 제대로 잘 수나 있겠습니까?
-당연히 꿀잠 자지. 너 코 엄청 골아도 나 잠 잘 자거든.
-하하, 좋겠습니다. 잠 많이 자서.
-너 저들이 하는 소리나 잘 듣고 있어. 나중에 물어봤는데 잘못된 정보를 말하면 아주 죽을 줄 알아.
-네네. 저기 사람들 옵니다. 그런데 많이 본 얼굴입니다.
화린은 서대영의 전음을 듣고 시선을 조금 먼 곳에 두었다.
“저놈이 여긴 왜 왔대.”
다가오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화명상단의 상단주인 화정수와 그의 동생들인 화생방, 화정욱이었다.
화정수는 객잔 앞에 당도하여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화린을 보며 흠칫하였다.
“어, 왔어?”
마치 친한 친구에게 인사를 하듯 말을 건네는 화린의 모습에 화정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긴, 나의 부친이랑 가까운 분이시라 생신을 축하드리기 위해서 왔지.”
“뭐?”
“넌 내가 알고 있으니까 내가 기록해 둘게.”
화린은 자신의 손으로 섬서성 화명상단의 화정수라 기입을 하고, 그 옆에 동생들의 이름을 기입하였다.
“선물은? 설마 빈손으로 오진 않았겠지.”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말에 화정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숨을 길게 내쉬며 자신의 화를 삭였다.
화정수가 뒤에 서 있는 동생을 보자, 그들은 가지고 온 것을 화린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주었다.
그는 선물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였다. 그 자리에서 선물을 열어 확인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긴 하나 혹여 흥친왕을 해하려고 하는 자가 선물을 가장하여 맹독을 가진 식물이나 동물을 선물하여 암살 시도를 할 수가 있어 현장에서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 화린에게 공손이 대하는 것을 본 화정수는 눈을 좁혔다.
‘저놈의 부친과 흥친왕과 친한 사이라면 놈의 아비가 군부의 장수인가?’
화린의 무공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호피?”
“해동국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백두산군의 백호피이다. 천만금을 줘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지.”
일반적인 호랑이 가죽인 호피 역시 비싼 값에 거래가 되긴 하지만 돈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가 있어 그리 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해동국의 백두산군의 백호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원대륙을 포함하여 가까이에는 변방, 멀리는 새 외, 그보다 더 멀리 색목국까지 포함하여 해동국의 백두산군이라 불리는 호랑이보다 덩치가 큰 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백두산군의 백호는 영물로 대우를 받고 있고, 해동국에서는 사냥이나 포획이 금지되어 이를 어길 경우에는 구족은 물론 삼대가 노예로 생활을 하다 약관, 혹은 방년이 되면 사형에 처하는 무거운 형벌을 받는 걸로 알려져 있어 누구도 백두산군의 백호를 사냥하거나 포획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중원대륙의 무인들이나 혹은 해동국 사람이 아닌 다른 왕국의 사람들이 백두산군의 백호의 호피를 노리고 사냥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있었다.
화린은 슬쩍 선물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하였다.
“오, 이 귀한 걸 또 구했네. 지난번에 밀수품 걸렸을 때, 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네.”
“여기가 어디라고 나를 모함하려고 하는 것이냐. 말을 가려서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화정수의 호통에도 심드렁한 얼굴로 건성으로 대답하곤 질문을 던졌다.
“뭐, 생각해 보고. 그나저나 들리는 소문에, 너 전답 담보로 돈 빌렸다며?”
화정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돈, 필요하면 나에게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럼 내가 비싼 값에 매입을 해 줬을 텐데.”
화정수는 더 이상 화린과 대화를 나누기 싫은지 몸을 돌려 객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놈의 성격하고는…….”
화정수에게 말을 막 하는 화린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막내인 화정욱이 화린에게 한소리를 하였다.
“형님은 당신보다 연장자요. 어느 정도 예를 갖추는 것이 좋지 않겠소?”
“나 죽이고자 하는 놈에게 예의는 무슨, 당장 안 죽인 걸로 다행이라 생각해야지.”
화린이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송상윤 천호갑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말입니까?”
“나 죽이려고 하는 놈을 살려 둬요? 아님 죽여 버려요?”
“당연히 죽여 버리는 것이 뒤탈이 없습니다.”
화린은 화정욱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접한 화정욱은 갑작스러운 한기와 더불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자신도 알 수 없는 몸의 떨림이 찾아왔다.
“춥나 보네. 얼린 들어가서 따뜻한 국물이라도 한 그릇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