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79)
구룡전기-179화(179/217)
구룡전기 (179)
흥친왕의 생일 전야부터 흥친왕부를 찾아온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축하연을 겸한 친목회의 성격을 띤 모임들을 가졌다.
흥친왕 주영호 역시 찾아온 손님들을 만나러 다니며 바쁜 시간을 보내었고, 황궁을 대표해서 찾아온 황자들과 황녀들 역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화린은 흥친왕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지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황자들과 황녀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지켜보았는데 흥미로운 걸 발견할 수가 있었다.
부친은 같지만 모친이 다르기에 황자와 황녀들이 함께 다니는 것이 아니라 따로 떨어져 각자의 만남을 가지는 중이었다.
“둘째 형님과 첫째 누님은 주로 관리들을 만나고, 셋째 형님과 둘째 누님은 군부의 장수들을 만나네. 그리고 여섯째 형님과 넷째 누님들은 서림의 학사들을 만나고…….”
다섯째인 오황자, 주영호와 일곱째인 칠황자 주영수는 딱히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자신들을 찾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과의 만남은 거부하지 않았다.
“숙부의 생신 축하연은 삼일 동안 진행이 된다. 하지만 생신 전날인 오늘까지 포함하면 사일이니 형님, 누님들께서 저들을 다 만날 시간은 충분하겠네.”
-너무 비약적인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닙니까? 음모와 암투가 판을 치는 황궁이라고 하여도 폐하께서 건강하신데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화린은 서대영이 한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걸 난 이미 경험해 버렸는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미래를 대비해서 나쁠 것 하나 없다.
현재가 아닌 미래에 일어날 위협에 대해서 사전에 제거하는 목적을 가진 맹호사사혈전대에서 오 년 동안이나 이러한 일을 해 왔기에 위험을 포착하는 건 몸에 배인 본능이나 다름없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는데 화명상단의 주인인 화정수였다.
화린은 그를 보곤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꿈과 희망을 가질 때니 그렇게 실낱같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
화린의 모습이 점점 옅어지더니 지붕 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화린이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서대영이 앉아 있는 식탁 바로 옆이었다.
“아이고야.”
갑자기 나타난 화린을 보고 깜짝 놀란 서대영이 놀란 듯 화린을 보며 톡 쏘아 말하였다.
“신호는 좀 주고 나타나십시오. 없는 애 떨어질 뻔했습니다.”
“애가 없는데 왜, 떨어져. 그리고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화린은 서대영의 옆에 앉아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더니 과일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황자님과 황녀님들과 오랜만에 만난 것 아닙니까? 가셔서 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들의 기억 속엔 내가 잊힌 지 오래일걸.”
아주 어렸을 때, 자신을 괴롭혔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찾아오지도 않았고, 자신 역시 찾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내 입장에서는 저들과 사이가 좋을 수가 없지. 그러니 굳이 내가 먼저 가서 아는 척해 봐야 좋을 것 없지.”
화린은 황궁의 일에는 신경이 쓰이면서도 황자들이나 황녀들과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넌, 형님, 누님들을 수행해 온 금의위 위사들과 동창 사람들을 만나 봐.”
“금의위 쪽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한 다리 걸쳐서 안면 트고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누면 되지. 넌 장원에서 총관하면서 그런 것도 안 하고 뭐 했어?”
“제가 맡은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다 저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동창 출신이 아니라 관리 출신인지 알았습니다.”
이때다 싶어 그동안 화린에게 당했던 것들을 한 번에 쏟아내는 서대영이었고, 화린은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느끼고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유치하긴…….”
화린은 서대영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싶은 것이 뭡니까?”
“이것저것 많이 알고 싶은데 확실하게 이거다 하고 감이 오지 않아.”
“그럼 황궁에 사람을 몇 명 심어 두겠습니다.”
“간자?”
“간자라기보다는 그냥 정보원이라 생각하는 것이 편할 겁니다.”
화린의 눈이 반짝였다.
“좋은 생각이네. 역시 서 총관의 능력은 탁월하다니까. 그래서 내가 서 총관을 좋아해.”
“왜, 이러십니까.”
“좋아한다고.”
“취향이 남자 쪽입니까? 그래서 남궁 소저를 밀어내시는 겁니까?”
따아악!
경쾌한 소리가 연회장에 울렸고, 서대영의 얼굴이 바닥에 닿아 있었고, 뒤통수에는 혹이 난 것처럼 부어올랐다.
“칭찬을 해 주면 그냥 칭찬으로 받아들여. 선 넘지 말고.”
“어, 이게 누구야!”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화린을 발견한 한 사내가 걸어오며 말을 걸었다.
“육 형님을 뵙습니다.”
화린에게 아는 척을 한 사내는 화린의 여섯 번째 형인 주여옥이었다.
“내가 보이는 것이냐?”
그는 옛날의 화린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화린이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놀라 물었다.
“오래전에 보고 듣고 말하였습니다. 다만 제가 황궁을 일찍 나왔기에 형님들과 누님들에게 알릴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런 것이냐. 네가 이리 말을 하니 내가 다 기쁘구나.”
화린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황궁을 나왔다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냐?”
“폐하께서 섬서성에 작은 장원을 허락해 주시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섬서성? 요즘 한창 시끄럽던 곳이던데 너는 별일 없는 거냐?”
그래도 형제라고 안위가 걱정되는지 물었다.
“저야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주여옥은 화린의 곁에 있는 서대영을 보았다.
“너의 수행원이냐?”
“장원의 총관입니다. 저의 안위를 걱정하여 폐하께서 호위로 붙여 주었는데 동창에서는 제법 뛰어난 무관이었습니다.”
“그래?”
주여옥은 시선을 뒤로 돌려 누군가에게 손짓을 하더니 한 사내가 급하게 뛰어 왔다.
“부르셨습니까?”
“자네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그 역시 동창 출신의 무관인 듯 서대영에 대해서 묻자, 그의 눈이 커지면서 주여옥을 보았다.
-대답 잘해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혓바닥 뽑아 버린다.
서대영이 사내에게 전음을 보내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한때 동창의 위장으로 재직한 자입니다. 일 년 전 동창을 그만두었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하였습니다.”
“그래?”
“오랜만이네. 이영 별장.”
“오랜만입니다. 서대영 위장님.”
두 사람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걸 본 주여옥이 이영에게 물었다.
“이자에게 내 동생의 안위를 맡겨도 되는 건가?”
“무…, 물론입니다. 동창에서도 손을 꼽을 만큼 강한 무인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모가 난 성격이라 다루기가 쉬지 않아. 동창에서도 관리대상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을 지는 실력파 위장으로 동창에서 어려운 일은 도맡아 처리할 만큼 신임을 받았던 자이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동생 하나는 잘 지켜 주겠군. 자네 이름이 뭔가?”
“서대영이옵니다.”
“그래. 서 총관, 나의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불행한 삶을 살았으니 자네가 곁에서 잘 보필해 주게.”
서대영은 육황자인 주여옥의 말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하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웃음을 참고 대답을 하였고, 화린은 고개를 숙인 채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아우는 나와 함께 저리로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세. 내가 좋은 사람들을 소개시켜 줄 터이니.”
서대영은 기회다 싶어 화린에게 얼른 대답을 하였다.
“다녀오시지요.”
“내가 왜?”
“육황자님께서 좋은 분들을 소개시켜 주신다니 안면을 익히시면 우리 장원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화린은 못 이기는 척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황궁에 정보원 심는 거 잘해. 이왕이면 황후, 황비들의 근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자들로 꼬드겨.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야. 여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가 떨어진 밤이고, 그 밤에 음모는 시작되는 거야.
서대영은 잠깐 듣고 있다 조금 이상하여 물었다.
-여자가 아름다운 거랑 음모가 밤에 시작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왜 없어. 너 여자들 거기에 난 털을 뭐라고 말해.
-음모…….
-그래. 그러니 관련이 있지.
-아, 이 무식한…….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서대영은 당황하여 황급하게 입을 막았다.
-방금 뭐라고 그랬어?
-아니, 아닙니다. 그 음모랑 이 음모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긴 뭐가 달라. 밤에 만나서 머리 맞대어 계략을 꾸미는 거랑. 밤에 만나서 살을 맞대며 주둥이 빠는 거랑 다를 게 뭐가 있어.
-그게 그렇게 해석이 되는 겁니까?
-사건, 사고는 다 그렇게 일어나는 거야. 너 세상에 여자 없으면 다툼도 안 일어난다.
서대영은 화린의 말을 듣다 보면 분명 억지를 쓰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말이 되는 것 같아 가끔은 신기할 정도였다.
-하여간 최대한 그쪽으로 정보원을 심어 둬.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심어 놓겠습니다.
화린은 서대영과 전음을 끝낸 후에 육황자인 주여옥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저런 이상한 논리를 가르쳐 주는 학당이라도 있는 건가?”
정말 그런 학당이 있어 화술을 배워서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서대영은 화린의 모습을 잠시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해서 피곤하게 만드는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주인이 시키는 일이니 하긴 해야 했다. 아니,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 아줌마들 곁에 사람을 붙이려면 누구를 만나야 되는 거지.”
* * *
화명상단의 화정수는 화린이 육황자와 사황녀와 있는 모습을 보고 눈을 좁혔다.
“형님, 구룡장주가 성족 출신이란 그 소문이 맞나 봅니다.”
곁에 있는 화생방도 그 모습을 보고 말하였다.
“소문이 사실이면 어찌합니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구룡장주는 중원의 개국 공신이자, 권세를 크게 가진 고관대작의 아들이라 섬서성의 성주도 그의 눈치를 본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었다.
“아니,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권세가의 자제들 중에서는 구룡장주와 같은 자는 없었다.”
스스럼없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화정수 역시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생겨났지만 애써 부인을 하는 중이었다.
“혹시 숨겨 둔 자식이 아닐까요?”
“숨겨 둔 자식이라면 이런 자리에도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권세가들 중에서는 없으니 아마도 군부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그만한 무공도 익혔을 것이다.”
-어떻게, 지금 저놈을 죽여 줄까?
그때 귀에 전음이 들려왔는데 누가 자신에 보낸 것인지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화정수 역시 무공과 술법을 알고 있었지만 내세울 수가 없으니 고개를 저었다.
연회장에서 누군가가 죽는 일이 벌어진다면 흥친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럼 저놈이 흥친왕부를 나서면 죽여 주지.
화정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후 더 이상의 전음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할 수가 있었다.
살인검제 백정인이 나섰으니 화린은 곧 죽음 목숨이라 생각을 하였다.
“제가 장수들과 접촉을 해 보겠습니다.”
“네가?”
“제가 화명상단의 사람이라 이야기를 하고, 군부에 곡물을 납품하고 싶다고 뜻을 전한 후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해 보겠습니다.”
“잘할 수 있겠느냐?”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그래. 한번 해 보거라.”
화정수는 동생인 화생방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나서서 뭔가를 해 보겠다고 말을 하니 믿고 그에게 일을 맡겼다.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안면을 트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크게 성공한 것이니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만나 보아라.”
“명심하겠습니다.”
화정수는 화생방을 독려한 후에 육황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화린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네놈의 목숨도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