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80)
구룡전기-180화(180/217)
구룡전기 (180)
흥친왕의 생일 축하연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이 왕부의 뜰에 모여 오늘의 주인공인 흥친왕 주영국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전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이리 찾아 주어 다들 고맙소. 사실 내가 축하받을 일이 뭐가 있겠소. 날 낳아 주신 선황 폐하와 대비마마께서 날 키워 이만큼 성장할 수 있도록 고생을 하였으니 두 분께 노고를 돌려야겠지요.”
“그럼 이 필모가 선황 폐하와 대비마마께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서 이 잔을 받치겠습니다.”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하고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좌중의 모든 사람이 그를 따라 술잔을 들어 올렸다.
“선황 폐하와 대비마마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그가 선창을 하고 술을 마시자, 다른 이들도 위하여를 외친 후에 술잔을 비웠다.
“이 황모도 오늘 같은 날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흥친어림군의 수장이자, 흥친왕 전하의 건강을 위해서 한 잔 마시겠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일어나 술을 한 잔씩 마셨는데 그럴 때마다 앉아 있는 사람도 덩달아 한 잔씩 마셔야 했다.
술이 약한 사람은 벌써 취기가 올라와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풀려 급기야는 꾸벅꾸벅 조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 강모도…….”
그럼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이를 제지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재미나고 흥이 나는지 모두가 웃는 얼굴로 영친왕 주영호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화린 역시 이들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황자들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술을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무슨 술을 들이붓는 수준으로 마시는 건지.”
“벌써 스물다섯 잔째입니다.”
그 말은 스물다섯 명의 사람들이 별의별 이유를 다 갖다 붙여 선창하며 술을 마셨고,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 후창하며 받아 마셨다는 말이었다.
“괜찮습니까?”
“나는 멀쩡하지. 술을 먹고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가 없는 몸이거든. 몸속에 들어오는 해로운 건 내공이 절로 일어나 태워 버려.”
“백독이 불침한다는 그 경지입니까?”
“만독이지. 독으로는 나를 어찌할 수가 없어. 이건 내가 일마이황보다 뛰어날걸.”
-후배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가?
그때 화린에게 전음이 날아왔는데 화린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색하여 목소리의 주인이 어디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반대편 구석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볼 수가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백정인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변용을 하였다고 생각을 하였다.
-선배님께서 저를 노리고 계시니 뒤통수가 간질간질하여 신경을 이만저만 쓰는 게 아닙니다.
-하하, 그런가?
-저 잠 좀 자게 해 주십시오.
-여전히 엄살은… 그건 그렇고 하나만 물어봄세.
백정인은 오랫동안 화린을 관찰하면서 내린 결론에 대해서 묻고자 하였다.
-자네가 지금 보여 주고 있는 빈틈은 일부러 만든 건가?
-어찌 그리 생각을 하십니까?
-닷새 정도를 살펴보았는데 항상 좌측으로만 틈을 보이더군. 그런데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망설여졌거든.
-아셨습니까? 선배께서 청부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빈틈을 만들어 나를 유인하고 내가 들어가면 반격을 할 생각이었나?
-그렇습니다.
-날 잡더라도 팔, 다리 중 하나는 날아갈 수도 있을 텐데.
-이길 수만 있다면 팔, 다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남는 장사이지 않습니까?
-남는 장사라…, 자네의 말을 들어 보니 그렇군. 그럼 화정수에게 청부금은 더 받아야겠군.
-최대한 많이 받아 내십시오. 그런데 정말 저를 암살하실 생각이십니까?
화린이 묻자, 잠깐 뜸을 들이더니 백정인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자네를 지켜보면서 머리를 굴려 보니 암살에 성공 가능성이 오 할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고심 중이라네.
-하하, 그럼 화정수에게 청부비를 더 뜯어내신 후에 천천히 고민하십시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네가 왕부를 나갈 때 암습을 할 터이니 반응을 한번 보여 주게.
-그리하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네. 돈을 더 받아 내려면 입으로 터는 것보다 뭔가 행동으로 한번 보여 주고 입을 털어야 상대도 믿을 것이 아닌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전음으로 화정수의 주머니를 털어먹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대신 저에게 의뢰비의 일 할을 주셔야 합니다.
-그리하겠네. 그런데 화정수는 저리 놔둘 생각인가?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였다.
살인검제 백정인 역시 살수로 지금 현 무림에서 살수무림계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인물이었고, 화린은 자신의 뒤를 이어 살수계를 이끌어 갈 사람이었다.
그런 화린을 자신이 죽인다는 건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백정인은 그저 화린의 말대로 다음 세대에 살수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닙니다. 다만 지금 화정수를 친다면 그의 사업체를 온전히 흡수할 수가 없으니 구룡장에서 어느 정도 준비를 한 후에 끌어 내릴 생각입니다. 지금도 놈의 자금줄을 끊어 놓으려고 일을 진행 중입니다.
-그런가? 알겠네. 그럼 나도 최대한 많은 금액을 뜯어내어 보내겠네.
전음은 여기까지였다.
살인검제 백정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고, 잠시 후 얼굴이 같은 사람이 와서 자리에 앉았지만 그가 살인검제가 아니라는 거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왜, 떨어져 있어? 어제 영옥이랑 재미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던데.”
오황자인 주영호가 화린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제가 황가의 사람이라고 알려져 보세요. 그날로 불안해서 두 다리 못 뻗고 자는 사람들이 생겨날 겁니다.”
“사혈맹을 두고 하는 말이냐?”
화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건 형님께서만 알고 계시니 다른 형님들이나 누님들에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랬다가 저놈들 두 발 뻗고 자겠어? 나도 가슴이 쿵쾅거렸는데.”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진짜 화린이 사혈맹 소속 문파들을 박살 내고 다니면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긴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까 두렵기도 하였다.
“제가 아무리 악한 놈이라고 해도 형님, 누님들께 폭력을 사용하겠습니까? 지금도 형님, 누님께서 절 괴롭히시면 그러려니 합니다.”
“싸울 상대가 아니라는 소리냐?”
“그런 것도 있지만 폐하께서 다 잊고 황궁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기억이 아니니 굳이 기억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폐하께서?”
“그리고 잊는 김에 다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그만큼 형님, 누님들을 각별하게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
화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나도 황궁을 떠난다고 말하면 보내 줄까?”
“그건 알 수 없지요. 형님께서는 특별히 미움받을 일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황궁은 내가 있을 곳이 못 되는 것 같아서.”
화린은 주영호의 말에 남궁수연이 떠올랐다.
“괜히 집 나가면 고생합니다. 그러니 황궁에 계십시오. 정 심심하시면 폐하께 말씀드려 황궁보고에 들어가서 무공을 익히시던지요.”
“무공을?”
“큰 형님을 보필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황궁보고에 들어가 무공을 익히신다면 한 몇 년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겁니다.”
“음…….”
“잡생각은 몸이 편해서 드는 것이니 무공을 익히시고, 금의위와 함께 훈련도 받으시고 하면 황궁을 떠난다는 말은 쏙 들어갈 것입니다.”
주영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화린을 보며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라도 해 봐야겠구나.”
“권태기가 온 것 같습니다.”
“글쎄다. 황궁 밖에는 할 일이 많은 것 같은데 황궁에만 있으니 갑갑하니 그런 것이겠지.”
“그럼 혼례를 올리시고 분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자유를 담보로 황궁을 나오는 건 의미가 없지 않나?”
일리가 있어 화린은 공감을 하였다.
“그래도 곁에서 늘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든든할 겁니다.”
“하는 일이 있어야 응원을 해 주던지 말던지 하지. 놈팽이라고 욕을 안 들어 먹으면 다행이지.”
그 말에 화린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황자들이나 황녀들은 스스로 뭔가를 배워 할 줄 아는 것이 하나 없음을 알게 되었다.
“황궁을 벗어나면 사람 구실 할 수가 없으니 그냥 황궁에 계십시오.”
“그러니 문제라는 것이 아니더냐. 너의 말대로 나도 무공이라는 걸 한번 익혀 봐야겠구나.”
화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신들이 왜, 황자들에게 바람을 넣는지 그 이유를 알겠구나.’
황자로 태어나 수많은 공부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으로 배우는 공부이지, 생활에 필요한 공부는 아니었다.
그러니 현실에 둔하고 아는 것이 없으니 대신들의 이런저런 말들에 휩쓸리고, 간신들의 아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단 생각이 들었다.
‘황궁에 바람 잘 날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
“화린아.”
“말씀하십시오. 형님.”
“미우나 싫으나 우리는 형제이니 네가 태자 형님을 많이 도와줘라.”
“아직 태자 책봉은 안 된 것으로 압니다.”
“결국 큰 형님께서 책봉이 되실 것 아니더냐. 그러니 네가 많이 도와 줬으면 한다.”
“제가 힘이 닿으면 돕겠지만 황궁 밖에 있는 저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화린의 대답을 들은 영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하긴 황궁이 오고 싶다고 오고, 가고 싶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다 잘될 것입니다.”
* * *
흥친왕의 축하연은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 주인공인 흥친왕 주영국이 없어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들이 흥친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찾아온 이유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니까요. 제가 어렵게 구했습니다. 요즘 물이 나서 왜로 다 가는 바람에 해동국에서도 좀처럼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화린은 회색 포장을 한 상자를 한 사람에게 주며 해구신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지 장대하게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고, 이를 지켜보던 서대영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부랄을 구해 오라는 이유가 이거였어?’
화린이 개부랄을 해구신이라고 속여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사람들이 속아 넘어갈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늘 밤에 잡숴 보고 효과를 확인해 보면 되지 않습니까?”
“이 귀한 걸 왜 나에게?”
“사천에서 제법 크게 농작물을 재배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구룡장의 장주 주화린이라고 합니다. 구룡장에 대해서 들어 보셨지요.”
“허엇!”
최근 구룡장만큼 떠들썩한 곳도 없었기에 어지간한 상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저희가 운이 좋아서 이번에 팔로수로군에 곡물을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팔로수로군요? 그건 화명상단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최근 들어 화명상단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을 것입니다.”
상인들의 정보력은 개방이나 하오문에 못지않다. 다만 이 정보력이 상림에만 국한되어 있어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상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접하는 이들이었다.
“저희 구룡장이 빈틈을 치고 들어가 다행히 납품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흥친어림군 역시 납품을 하려고 흥친왕 전하와 이야기 중입니다.”
“음…….”
“구룡장에서 구룡루를 운영하고 있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소.”
“현금 동원력이나 자금력에 있어서는 십대상단에 육박할 만큼 탄탄합니다.”
“장주께서는 저에게 재배하는 곡물을 팔아 달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기존의 거래가 있을 것입니다. 거래처와 거래를 하시고 남은 양의 곡물을 저에게 넘겨주시면 전량 매입을 해 드리겠습니다.”
“남은 곡물을요?”
“그렇습니다. 전주님께 조금 사들이고, 다른 전주님들에게도 이와 같은 조건으로 곡물을 사들일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희 구룡장과 거래가 마음에 들면 훗날 지금의 거래처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우리와 거래를 해 주신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작물을 재배하는 전주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가 없는 조건이었다.
“뜻하지 않게 사혈맹과의 다툼으로 인해서 조금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 명성과 상인의 신용으로 장담하건대 결코 전주님께는 손해가 없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거래를 위해서 계약서를 작성하면 장주님의 말씀대로 남는 곡물들은 전량 넘기겠습니다.”
전주의 대답을 들은 화린은 활짝 웃었다.
“결코 후회 없는 거래가 될 것입니다.”
전주가 돌아가자 서대영이 다가와서 화린에게 물었다.
“명성과 신용을 운용하면서 사기를 그렇게 치십니까?”
“내가 무슨 사기를 쳐?”
“개부랄을 해구신이라고 속였지 않습니까?”
화린은 걱정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 있게 대답을 하였다.
“너 그 말 들어 봤어?”
“무슨 말 말입니까?”
“개 좆도 모르는 것들이 설왕설래한다는 그 말 말이야.”
서대영은 화린의 물음을 잠깐 생각하더니 설마 하는 눈빛으로 화린을 보았다. 화린은 그의 생각이 맞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저 사람들 해구신이랑 개 좆을 구분할 줄 몰라. 그냥 몸에 좋다고 하니 좋은가 보다 하는 거지. 내일 되면 아마 기가 찰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화린을 보며 서대영은 속으로 큰일 낼 사람이라 생각을 하였다.
‘아니, 이미 큰일은 치렀지. 아, 내가 장주님 밑에서 제 명에 살 수 있을까? 황궁으로 다시 돌아가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