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94)
구룡전기-194화(194/217)
구룡전기 (194)
선실로 들어온 화린은 바닥에 누워, 조금 전의 진지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이 정도 하면 군성이가 속아 넘어갔겠지.”
사실 화린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화린은 대리세가에 가면 자신이 나서서 소뇌음사의 중들을 상대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군성을 비롯하여 십이사가의 소가주들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자들을 상대하겠다고 하지만 흉수들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그들을 상대하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백무기 선배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들만 보낼 리는 없지. 정말 이들만 보냈다면 내가 이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나서서 소뇌음사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번에 백군성의 마음을 조금 움직여 이전보다 자신을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 행동에 제약을 없애고자 한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해서 평소와 다름없이 허술한 면도 보여 주고, 기회가 왔을 때 또 따끔하게 한 소리 하고… 강약을 섞어서 말로 정신을 쏙 빼놓으면 판단이 흐트러지겠지.”
화린은 만족하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백무기 선배를 다시 만날 때는 피해서 달아날 수 있을 정도의 무공은 완성해야 내가 주도권을 잡고 움직일 수가 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고분하게 사혈맹의 뜻대로 움직이지만 백무기와의 간극이 줄어드는 순간 화린은 사혈맹의 통제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늦어도 살수연맹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까지는 이루어야 한다.”
화린은 눈을 감았다.
‘무공보다는 배교의 비전 술법에 집중한다.’
지금 자신의 상황으로는 깨달음의 벽을 허물기 불가능, 아니 깨달음의 벽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차라리 모친이 기억 속에 심어 둔 배교의 진짜 비술들을 익혀 백무기와의 격차를 줄여 볼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다.’
화린은 자신만의 공간인 심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 * *
호북성에서 장강의 수로를 타고 사천성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수채의 수적들만 해도 일곱 개였다.
장강에는 열여덟 개의 수적단이 활동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호북성에서 사천으로 가는 길목에 일곱 개나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을 만났을 때, 백군성이 나서서 수적들을 처리했는데 이전의 유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하게 손을 썼다.
그로 인해서 여객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큰 피해 없이 사천성의 호주까지 올 수가 있었다.
“무려 일곱 곳이야. 한 곳에 은 다섯 냥이면 은 서른다섯 냥을 강탈당했을 것 아니야.”
화린은 배에서 내려서 투덜거렸고, 백군성은 그런 화린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알았다고. 이제 그만해. 언제까지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할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이 형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주옥같은 배움이 될 테니까.”
“알았다. 알았어. 일단 가자. 회양객잔에서 만나기로 했어.”
백군성은 사람들을 데리고 회양객잔으로 갔다. 사천성 호주성에 위치한 회양객잔은 호주 포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장강의 수로를 이용하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그런 객잔이었다.
장사를 통해서 오가는 유동인구가 많아 그런지 객잔 안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는데 객잔의 뒤편에 있는 별채에는 통제가 되고 있었다.
백군성이 화린과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이 회양객잔의 별채였다.
사혈맹에서 별채를 통째로 빌려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쪽에는 방부처리가 된 시체들이 몇 구 누워 있었다.
“어서 와. 온다고 고생이 많았지.”
“고생은.”
회양객잔에서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던 이서원이 반겨 주었다.
“고생은 먼저 와서 일을 처리한 네가 더 고생했지. 이들이야?”
백군성이 한쪽에 누워 있는 시체들을 보고 말했다.
“그래. 내일 마교에서 시체를 인수하기 위해서 올 거야.”
“마교에서?”
“그래. 누가 올지는 모르는데 제법 높은 자가 올 것 같아.”
“검안마영이 일천궁마의 직속이라며? 그럼 일천궁마가 오지 않을까?”
백군성과 이서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화린은 시체들을 살폈다.
“음…….”
화린은 시체를 살피다 단리혁진을 불렀다.
“네, 형님!”
“이 손이 검이야. 내가 너를 공격할 거야. 그러니 어디 한번 피해 봐.”
“알겠습니다.”
화린이 손을 움직이자, 단리혁진이 이를 피하기 위해서 움직이려고 할 때 화린의 손이 가슴에 닿았다.
“이제 가만히 있어 봐.”
화린은 가만히 있는 단리혁진을 향해 손을 움직이자, 곧 그의 가슴에 닿았다.
“왜 그러십니까?”
“무공의 고수가 반응하지 못하고 당했어. 반응을 못 했다기보다는 가만히 서서 당했어. 서원아!”
화린이 이서원을 불렀다.
“왜?”
“이들을 발견한 곳이 어디야?”
“포구 아래 있는 허름한 창고 안에서 발견되었어.”
화린의 신형이 흐릿하게 옅어지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어, 어……!”
자신의 앞에서 사라지는 화린을 보고 놀라는 단리혁진이었고, 백군성은 화린이 멋대로 이동하자,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저대로 두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무림에 관여해서는 안 되잖아.”
“괜찮아. 감찰사인 내가 현장에 같이 있으니까. 그리고 함께 있어 보니 누가 말린다고 참고 있을 친구도 아니고.”
이서원은 화린을 떠올렸다. 자신은 화산지회에서 잠깐 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라 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네가 책임을 져야 하니 단속을 하는 것이 좋을 거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인물도 아닌데. 화린이가 마음먹고 움직이면 어쩔 수가 없어.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분쟁이 일어나지 않게 잘 다독여야지.”
“하긴 일개 장원의 주인으로 맹과 싸우려고 했으니 말을 해서 들을 골통도 아니지.”
백군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화린이 갔으니 뭔가 알아 올 거야.”
“우리가 조사했을 때, 딱히 나온 건 없었어. 이상한 건 사체에 검상을 보면 반항을 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야.”
“그럼 내공의 기운이 깃든 검상이 아닌 일반 검상?”
“그래. 내공의 기운이 깃든 검상이나, 상흔의 잔상이 남아 있다면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유추할 수 있겠는데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그냥 칼로 찔러 죽인 것 같아.”
백군성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화린이 한 말이 생각났다.
‘마교의 마영이라면 상당한 고수이다. 그런 고수가 반항할 수 없는 술법이라면, 삼십 년 전 멸문하였던 배교의 술법이 다시 나타난 건가?’
“화린이 올 때, 소뇌음사의 승려들이 술법을 쓴다고 했는데 혹여 술법에 당한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만 마교의 마영은 무공이 뛰어난 자야. 우리보다 윗줄에 있는 고수라고. 그런 자가 술법에 당했을 리가 없지.”
“배교의 술법이라면? 삼십 년 전에 정사마가 힘을 합쳐 배교를 멸문시켰어. 그만큼 그들의 술법이 위험하다는 말이 아닐까?”
“음…….”
“맹에서 그런 위험한 일을 우리에게 맡겼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영사가의 소가주인 종윤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형님께서 조금 앞서나가신 것은 아닙니까? 어려움이나 위기는 있겠지만 우리가 힘을 합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다고 판단을 했기에 우리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공명사가의 소가주인 남철영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철영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했어.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화린이 저 친구에 며칠 지내다 보니 그게 아니더군.”
“그럼?”
“맹에서는 우리에게 화린이 저 친구를 보고 배우라는 뜻에서 보낸 것 같아. 더불어 화린이랑 친하게 지낸다면 더없이 좋겠지.”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그로 인해서 멸문한 사파문파가 몇 개인데.”
“글쎄다. 맹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것 하나는 알고 있어.”
모두는 백군성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관심을 가졌다.
“분명한 건 화린이 저 친구가 정파의 손을 들어 준다면 우리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걸 말이야. 그러니 우리는 화린과 친해져서 어떻게 해서든 화린이 정파로 가는 걸 막아야 해.”
한편 화린은 이서원이 말한 포구의 허름한 창고 안에 서 있었는데 불이 꺼진 창고 안은 어두웠다.
화린은 어두운 창고 안에 서서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피더니 뭔가를 발견했는지 걸음을 옮겼다.
창고의 벽을 바라보던 화린의 입에서는 주술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주어가 흘러나왔다.
몸속에 흩어져 있던 기운이 전신모공을 통해서 흘러나와 화린이 바라보고 있는 벽으로 가서 접착을 하듯 달라붙었다.
그리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벽을 타고 꿈틀거리면서 이동하더니 기이한 문장을 만들어 냈다.
“역시.”
화린은 자신의 기운이 만들어 내는 기이한 문장을 알고 있는 듯했다.
기이한 문장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하나의 진법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구성진처럼 보였다.
그 후 화린은 자리를 옮겨 창고의 벽 앞에 설 때마다 같은 듯하면서도 조금 다른 문양의 구성진들이 나타났고, 마지막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자, 그곳에서도 하나의 구성진의 흔적이 나타났다.
구성진이 모두 모습을 드러내자,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강력한 빛을 발하였는데 그 빛이 창고 안에 있는 화린에게 영향력을 미쳤다.
“배교의 사혼쇄령이다.”
화린은 창고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진법을 알아보았다.
“내 머릿속에 모친께서 남긴 기억으론 사혼쇄령은 배교의 일반 교도들은 배울 수가 없는 술법으로 각 단체장 이상의 임원들이 배울 수 있는, 그런 술법이라고 하는데.”
화린은 마교도를 죽인 자들이 소뇌음사의 승려들이 아닌 배교의 잔당, 혹은 그들의 제자들이 아닐까 생각을 하였다.
“삼십 년 전의 복수를 시작하려고 하는 건가?”
화린이 자신의 기운을 거두어들이자, 빛을 발하고 있던 구성진들이 기운을 잃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긴 나도 이만큼 성장을 했는데 그 당시 달아났던 이들도 제자나 자식을 낳아 기르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빙궁과 해남검문은 무공 회수와 과거 청산을 위해서 중원에 들어왔다면 소뇌음사와 부산궁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중원으로 들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볼까?”
화린은 허공에 손을 넣고는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붉은색 종이 위에 푸른색의 글씨로 요상한 문양으로 그려진 부적이었다.
화린이 부적에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자, 부적에 불이 붙어 타면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어난 연기는 새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날갯짓을 하며 창고 안을 잠시간 날아다닌 후 천장으로 솟구쳐 사라져 버렸다.
화린도 바닥을 박차고 천장으로 뛰어올랐고, 연기의 새와 마찬가지로 창고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