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96)
구룡전기-196화(196/217)
구룡전기 (196)
배교의 흔적
일천궁마는 깨어나자마자 화린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런 그를 화린은 다시 두들겨 패서 기절시켜 버렸다.
이와 같은 일을 몇 번 반복하니 일천궁마는 화린에 순한 양이 되어 기가 죽어 있었다.
“무턱대고 덤비면 당신도 술법에 당해. 아니, 당신은 제법 강하니 술법에 버틸 수는 있겠지. 하지만 당신이 데리고 온 자들은 다 당해.”
“흥!”
일천궁마가 콧방귀를 끼자, 화린이 손을 들어 올렸고, 일천궁마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런 일천궁마를 보고 피식 웃고는 품에서 부적을 한 장 꺼내어 주었다.
“받아.”
“이게 무엇이냐?”
“내공의 기운으로 부적을 태우면 놈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거야.”
일천궁마는 화린을 보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당신은 삼십 년 전에 배교도들과 싸워 봤으니 알 것 아니야. 물론 그 당시와 지금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삼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들이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
일천궁마는 부적을 받은 후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수하들을 희생시키지 말고 짱구 잘 굴려서 놈들을 상대하던지, 아니면 그냥 시체들을 데리고 마교로 돌아가던지 그렇게 해.”
화린에게 꼼짝 못 하는 일천궁마를 보며 십이사가의 소가주들은 화린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천궁마는 마교 서열 십 위 안에 드는 마왕이다. 그런 자를 가정집에서 키우는 개처럼 길들어버리는 무력을 지녔으니 최소 삼왕사제에 필적할 만큼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아버님께서 왜, 화린 장주와 친분을 가지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구나.’
십이사가의 소가주들은 같은 생각을 하였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화린이라는 존재가 뇌리에 깊숙하게 각인되었다.
“알아들었으면 시체들을 가지고 그만 가 봐.”
일천궁마는 화린을 보았다.
“왜? 더 할 말 있어?”
“아니, 없다. 수하들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 그리고 오늘 당한 수모는 잊지 않겠다.”
“그건 당신 알아서 하고. 얼른 가. 괜한 아이들 잡을 생각하지 말고.”
일천궁마가 수하들에게 고갯짓을 하자, 수하들은 시체를 넣은 관을 수레에 실었다.
“가자.”
일천궁마가 수하들과 돌아가자, 객잔의 별채에 서려 있던 긴장감도 사라졌다.
“형님, 일천궁마가 멀리서 공격해 오지는 않겠지요?”
“그런 걱정 마. 우리를 찾아올 때는 우리가 이곳을 떠난 후니까.”
화린은 심드렁하게 말을 하였고, 백군성은 궁금해하는 걸 물었다.
“그런데 너, 술법도 익히고 있었어?”
“뭘 들었어.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밀교, 소뇌음사, 색목국의 다양한 술법을 경험해 보았다고 했잖아. 그럼 경험만 했을 것 같아?”
모두는 화린을 보았다.
“살기 위해서는 말이야. 도움이 되는 건 닥치는 대로 익혀 둬야 하는 거야.”
“만 가지의 기술보다 한 가지의 기술에 정통한 것이 더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데 생각을 좀 바꿔. 만 가지의 기술을 익힌 후에 나에게 맞는 한 가지를 익혀 기술자가 되면 되는 거 아니야?”
모두는 화린의 말에 반문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자신의 적성도 알지 못하면서 가르쳐 주니까 그거 하나만 배우면 그게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있어?”
‘하여간 말은…….’
“세상에는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어. 다만 내가 하고 있는, 혹은 배우는 일이 나에게 맞느냐, 맞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야.”
소가주들은 화린의 가르침을 기억하려고 하는지 입을 옹알거리며 외우려고 하였다.
“그러니까 후기지수 때, 많은 걸 배워. 그 후 나에게 맞는 걸 익힌다면 더 빠른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형님께서는 그리 배우셨습니까?”
“나는 군대에서 닥치는 대로 배웠지. 그리고 나에게 맞는 걸 무공을 익히면서 하나의 벽을 넘어서니 나에게 안 맞는 것들도 이해가 되더란 말이지.”
“아…….”
“그렇게 또 하나의 벽을 넘으니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이해를 넘어 손쉽게 사용할 수가 있게 되었지.”
“만류귀종과 비슷한 것입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만류귀종이라기보다는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비유가 더 정확한 것 같아. 하나를 통달하니 자연스럽게 다른 것들의 원리도 쉽게 이해가 되고 빠르게 익힐 수가 있었으니 말이야.”
백군성은 화린의 말을 들으며 소가주들의 살펴보았는데 이들의 눈빛이 처음과 달리 흠뻑 빠져 있는 그런 눈빛들이었다.
‘신흥 종교의 교주가 탄생하는 순간이군.’
* * *
호주에서 일을 끝낸 화린과 백군성의 일행은 사혈맹의 지부에 보고를 하기 위해서 서창으로 향했다.
서창은 사천성과 운남성을 잇는 관도에 위치한 사천성 제이의 성도라 불릴 만큼 발전된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 서창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서창의 사혈맹 지부에 도착한 이들은 이곳에서 하루를 머문 후에 운남성으로 넘어가려고 하였다.
“왜?”
백군성이 화린에게 역정을 내었다.
“생각해 봐라. 내가 때려 부순 사파가 몇 개인데 여기서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겠어? 지부에 내가 멸문시킨 문파의 무인들도 있을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그들이 너를 향해 칼이라도 들 수 있을 것 같아?”
“사람 일은 모른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장담하지 마라. 하여간 난 여기가 아닌 객잔에서 잘 거야. 혁진아, 객잔 가서 자자.”
“네, 형님!”
단리혁진을 데리고 사혈맹 지부를 나서는 화린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상전도 저런 상전은 없을 거야.”
그렇게 사혈맹의 지부에서 나온 화린은 객잔을 찾아다니다 서안객잔이라는 객잔이 보여 그곳으로 갔다.
“지역의 이름을 딴 객잔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이야기고,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는 건 그들만의 철칙이라든지, 혹은 철학, 그것도 아니면 음식이 맛있어서일 거야.”
단리혁진은 화린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너도 객잔을 운영해 봤으니 알겠지만 사실 객잔의 맛은 특출나지 않는 이상 비슷비슷해. 그런데 장사가 되는 집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집이 있어. 그 이유는 뭘까?”
“경영자의 철학이나 철칙이 오시는 손님들에게 호감을 사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래. 우리 구룡객잔은 중원 어디를 가도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서 노력 중에 있어. 이것 또한 경영자의 철학, 혹은 철칙이 반영되어 행하는 일이겠지.”
“그 때문에 섬서성의 구룡객잔은 어디를 가도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는 말들을 합니다.”
“지금 그렇지만 나중에 중원에 지점들이 많이 늘어나면 또 상황은 달라지겠지. 눈에 돈이 보이는데 그걸 가만히 두고 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단리혁진은 화린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묵묵히 화린의 말을 들었다.
“혁진이 넌, 욕심을 버릴 수 있겠어?”
“글쎄요. 저라면 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이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니 저와는 다릅니다.”
“그건 내가 더 잘 알지. 소소는 너 하나 바라보고 사는데. 너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이야.”
단리혁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고 지난날의 행동을 자책하지는 마. 죽을 때까지 기억하면서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이번에 대리세가에 다녀오면 혁진이 네가 구룡객잔 전부를 맡아서 운영해 봐.”
화린의 말에 눈이 커졌다.
“객잔, 전부를 말입니까?”
“구룡루는 빼고, 객잔만. 하는 거 봐서 기루도 맡겨 볼 테니까. 일단 객잔만 도맡아서 한번 운영해 봐.”
“열심히 하겠습니다, 형님.”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걸 보니 뭔가 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보여 기분은 좋았다.
“많은 객잔을 운영하는 것이니 앞서 말을 한 너만의 경영철학을 만들어 봐. 대리세가에 가면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처럼 많은 부를 쌓았는지도 한번 알아보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형님.”
“왜?”
“왜 저희 남매에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
“잘해 주는 게 싫어?”
“아니, 아닙니다. 그래도 이유를 알면 많은 궁금증이 해소될 것 같습니다.”
화린은 잠깐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인연이었다. 그 작은 인연의 시작이 나와 너희 남매를 묶은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 난 또 형님께서 우리 누이를 마음에 두고 우리에게 잘해 주나 보다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
“그런데 형님 곁에는 남궁수연이 계시니 누이 때문에 우리에게 잘해 주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여쭈어본 것입니다.”
화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인연으로 왔다가, 인연으로 헤어지는 것이 만남의 이치인 것처럼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다. 그러니 넌 이 인연의 끈을 잘 붙잡고 견뎌라. 네가 그렇게 견디는 동안 또 누군가가 너에게 다가와서 인연의 끈을 잡게 된다면 그를 잘 인도해 주어라.
화린이 단리혁광을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들은 말이었다.
‘이놈이랑 함께 다니다 보면 형, 생각 많이 날 것 같아. 내가 형이 걱정하지 않도록 이놈 사람 한번 만들어 볼게.’
화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
“얼른 가서 밥 먹고 잠이나 자자.”
* * *
“동생의 이야기는 들었소. 정말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소.”
화정수는 해동국의 밀수꾼들을 만나 거래를 하는 중이었다.
흥친어림군에 곡물을 납품하려고 했던 일이 어긋나자, 일단 자금을 마련한 후에 빌린 돈을 갚고 담보로 맡긴 전답을 되찾은 후에 곡물 유통을 재정비할 생각이었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소. 다만 내 동생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가 없으니 마음이 아플 뿐이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소. 그래서 도움이 될까 싶어 밀수 장소를 고발한 자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았소.”
“그래서 알아내었소?”
“그날 팔로수로군과 함께 있었던 자가 구룡장주였다고 하오.”
화정수의 눈에 독기가 번뜩였다.
“그놈이 확실하오?”
“그렇소. 그래서 도움이 될까 싶어 구룡장주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만약 악연이 있다면 하루빨리 푸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악연을 풀란 말은?”
“그자의 성이 주씨요. 중원에서 주씨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은 황족, 왕족, 성족들뿐이오.”
주씨 성은 중원에서 귀한 성이긴 하지만 부친의 성을 물려받는 중원에서는 제법 많은 이들이 주씨 성을 사용하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주씨가 중원을 다스리며 종족 번식을 위해서 씨를 퍼뜨린 결과이기도 하였다.
화정수는 흥친왕부에서 화린이 황자와 왕자들과 가끔 같은 자리에 있는 걸 보긴 하였지만 그가 진짜 왕족, 성족 출신이라곤 생각지 못하였다.
“반란이나 반역으로 패가 망한 자들도 주씨를 사용하지 않소.”
“그자들은 다들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을 것이요. 혹여 산 자가 있다 하여도 주씨 성을 감추고 살아갈 것이오. 하지만 주화린 그자는 구룡장이라는 장원을 열어 사업적으로 성공을 할 때까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소. 이는 분명 황족, 왕족, 성족인 진골의 출신 중 한 명일 것이오.”
“음…….”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중원에서는 그자를 상대하기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해동국의 왕실에서 나온 정보인데 당금 중원의 황제에게는 사내자식이 아홉 명이고, 황궁에서 생활하는 사내자식은 여덟뿐이라고 하오.”
“그럼 구룡장주가 황제의 아들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화정수가 역정을 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요. 거래처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우리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오?”
“미안하오. 우리도 위험할 수 있으니 어쩔 수가 없소. 밀수라는 것이 원래 그것이 아니오. 어떻게 해서든 위험을 줄이는 것!”
화정수는 해동국의 밀수업자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구룡장주에게 용서를 빌어 그와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든지, 아니면 그를 죽여 시체를 찾을 수 없도록 흔적조차 남기지 않든지. 둘 중 한 가지의 방법으로 화명상단과 구룡장의 관계가 원만하게 해결되면 그때 다시 연락을 주시오.”
‘빌어먹을.’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러 왔으니 이후 거래는 화명상단에서 모든 걸 정리한 후에 그때 보도록 합시다.”
해동국의 밀수업자는 자신이 할 말을 끝낸 후에 미련 없이 돌아섰다.
“물건은…….”
“다음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