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199)
구룡전기-199화(199/217)
구룡전기 (199)
정천맹 총관부의 집무실에서 제갈탁은 한 장의 서찰을 보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에 사천에서 올라온 보고에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룡장주가 본가의 비밀을 알고 있다.”
제갈탁은 보고서의 내용대로 단순히 정파를 이간질하려고 말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철저하게 숨긴 본가의 비밀을 이 자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제갈탁은 고심하는 표정으로 한동안 침묵을 하였다. 제갈탁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이 생겨났다.
“당시 대법을 시전 받은 이가 열두 명이었고, 나와 연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실패를 하여 죽었다. 그 후에도 대법을 실시하였지만 큰 성과를 얻지 못해 계속해서 보완하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제갈탁은 비밀이 어디서 새어 나갔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정황만으로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특히 놈은 뇌령신체비술이란 정확한 명칭을 언급하여 그걸 개조하였다고 말했다.”
제갈탁은 화린이 배교와 관련된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배교라…….”
제갈탁은 다시 침묵하였다. 머릿속으로 뭔가를 무수하게 그려 보는 것처럼 어떨 때는 인상을 쓰고, 어떨 때는 괜찮다는 듯 표정이 밝아졌다가 다시 인상을 쓰기를 반복하였다.
“백대고수 둘과 싸워 이겼다는 것보다 사황의 손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불안요소군.”
자신이 알고 있는 사황은 무공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일단 무공을 드러내면 상대를 반드시 죽였다.
단, 예외가 있는데 자신이 인정한 사람에 대해서는 살려 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게 도움이 될 가르침도 준다고 알고 있다.
구룡장주는 그런 사황의 손에서 살아남았으니 단순히 백대고수라 생각을 하고 접근했다간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심이 되었다.
“놈을 그냥 두었다간 본가의 비밀이 무림에 알려질 텐데…….”
삼인성호라고 하였다.
사실이 아니어도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였다.
구룡장주가 계속해서 언급하게 되면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 의문은 제갈세가에 화살이 되어 날아오게 될 것이다.
“연이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나?”
제갈탁이 언급한 제갈연은 제갈세가에서 가장 강한 무인으로, 무림에서는 그녀를 백안검치라 부른다.
그녀는 의천뇌력진가술법의 부작용으로 시력을 잃은 맹인이 되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조금의 자폐증과 같은 병도 함께 얻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녀에게는 오히려 복이 되었는지 무공에 대한 집착, 특히 검에 대한 집착과 집념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녀는 앞에 보이지 않음에도 검이 움직이며 일으키는 바람만으로도 상대의 검술을 파악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와 초감각, 그리고 신체적인 능력으로 인해서 제갈세가의 검술은 물론 정천맹의 검술까지 모두 익혀 자신만의 독특한 검술을 만들었고, 계속해서 그 검술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연이가 놈을 만나 보면 놈의 무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 만약 연이도 상대할 수 없는 자라면 힘으로 누르기보다는 회유를 하는 쪽이 더 낫겠지.”
제갈탁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 후에 다시 침묵했는데 습관적으로 자신이 뭔가를 빠뜨린 것은 없는지 한 번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 * *
사천을 떠나 운남성 대리현에 도착한 화린과 백군성의 일행은 대리세가를 찾아갔다.
굳이 대리세가가 어디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이곳 대리 현에서는 대리세가의 위세가 대단했다.
“형님들, 다 대리세가가 운영하는 공방인 것 같습니다.”
마치 대리현 전체가 대리세가의 영역 안에 있는 것처럼 상점을 비롯하여 민가까지 대리세가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대리현을 부를 때, 대리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게 다 대리세가의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대리현의 땅, 건물, 상가 모두가 대리세가의 것이지. 그리고 사람들도 대리세가의 사람들이니 사람들이 이곳을 대리국이라 부르지.”
“정말 대단한 가문이군요. 남궁세가나 진량사가, 그리고 혈천마가의 세가 크다곤 하나 대리세가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군요.”
이중 가장 어린 종장사가의 소가주인 이현이 감탄을 하며 말했다.
“대리세가가 상가가 아닌 무가였다면 능히 무림제일세가라 불릴 만하지.”
“그런 것 같아요. 무림, 상림, 서림, 관림의 그 어떤 권세가문도 대리세가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네요.”
“황제폐하가 계신 황궁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세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화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들은 천천히 대리현을 다니면서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또 한 번 놀랐다.
“대리세가는 대리석만 파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형님.”
단리혁진이 화린에게 물었다.
“주력이 대리석이지만 그보다 더 다양한 것들을 제작 생산하고, 판매를 하지. 그리고 아래 묘강이나 월하 등에서 수입해 오는 목재도 중원에서는 인기가 좋은 자재 중 하나라고 하니 우리도 대리세가와 거래를 하게 되면 목재가 부족해서 공사가 지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래를 할 수 있을까요?”
“거래를 하기 위해서 왔으니 소득은 얻고 가야지. 네가 필요한 것도 있을 터이니 잘 살피고 하여라.”
“네, 형님.”
대리현의 관도를 따라 쭉 걸어가니 눈앞에 높고 긴 담장이 나왔는데 저택의 담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담은 성벽을 연상케 했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니 정말 대단하구나.”
백군성은 대리세가의 위용에 놀란 듯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뭣 해. 안 오고.”
화린이 이들을 재촉하자, 이들은 발걸음을 옮겼는데 정문에서 또 한 번 멈추어 섰다.
“대리석에 금강지로 새겨 넣은 현판입니다.”
흑난사가의 소가주인 송중기가 현판을 보고 감탄을 하며 말했다.
“대리석에 무공으로 글을 새겨 넣을 정도면 대리세가의 무공도 엄청난 모양입니다.”
“이 많은 걸 지키려면 무력도 지니고 있어야지. 자산을 지킬 힘이 없다면 이 정도의 부를 얻지 못하지.”
화린의 말에 모두 공감을 하였다.
‘재물을 보고 꼬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터이니… 구룡장도 마찬가지였지.’
구룡루라는 황금을 낳는 거위를 가지고 있는 구룡루의 입장에서는 한 번은 치러야 했을 홍역과도 같은 일이었다.
“여기는 대리세가의 본가입니다. 무슨 용무로 본가를 찾아오셨습니까?”
“섬서성 구룡장의 장주 주화린이라고 합니다. 대리세가의 가주님과 약속이 되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아, 가주님의 손님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입구를 지키는 무사가 안에 연락했고, 잠시 후 거대한 문이 활짝 개방되어 안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혈맹이 있는 대지보다 더 넓은 것 같은데.’
“안으로 드십시오. 잠시 기다리시면 마차가 올 것입니다.”
화린은 무사의 말에 따라 안으로 들어섰고, 다른 이들 역시 화린의 뒤를 따라 대리세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엄청납니다.”
단리혁진 역시 대리세가의 규모에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허리 세우고 어깨를 펴.”
화린은 단리혁진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너도 어엿한 한 가문의 가주다.”
단리혁진은 화린을 보았다.
“단리세가의 상황이 지금은 어렵다고 하여 앞으로도 계속해서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 말을 할 수가 있나?”
“그건…….”
“물론 네가 아무리 노력하여 단리세가를 부흥시킨다고 해도 대리세가에는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단리혁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다. 단리세가가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는 것만으로도 너는 네가 할 일을 한 것이다. 그 후 세가의 부흥은 너의 자식들, 손자들, 후손들의 손에 의해 이루면 된다.”
단리혁진은 화린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네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형님.”
단리혁진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소소한테 잘하고.”
화린이 단리혁진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을 때,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사두마차가 입구로 천천히 다가왔다.
“저택 안에서 이동수단이 마차라니.”
대리세가를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는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마차가 이들 앞에 정지하자, 화린이 마부석에 앉았고, 다른 이들은 마차에 탑승했는데 열네 명이 다 탈 만큼 내부의 공간이 넓었다.
“이제는 놀랄 기운도 없습니다.”
“나도 그래. 대리세가가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라곤…, 난 그냥 조금 더 큰 세가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들은 마차를 타고 가면서 창을 통해서 외부 정경을 볼 수가 있었다.
“타앗!”
연무장에서는 대리세가의 무인들이 무공을 익히는 중이었는데 이들이 한 무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연무장에서 무공을 수련 중이었다.
“대리세가의 호위무사들인가 봅니다. 기합이 제대로 들어간 것이 제법입니다.”
“저기 앞쪽에 있는 무인들은 맹의 홍령멸사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대리현을 지키려면 저 정도의 무력도 부족하지.”
화린이 마부석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이야기했다.
“여기는 그냥 한 국가라고 생각하면 돼. 운남성에서는 세가 강한 문파가 없어. 그래서 변방이나 새외의 침략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나서는 이들이 대리세가야.”
화린은 대리세가가 운남성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수많은 피를 흘리며 지켜온 운남성이고, 대리현이야. 이곳 사람들은 그런 대리세가에 존경을 넘어 경외를 표하지.”
“한 가문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요녕성의 모용세가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그 지역에서 생과 사를 함께해 왔기에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백성들과 함께할 수 있는 거지.”
십대세가 중 세가 가장 큰 가문은 남궁세가지만 역사가 가장 오래된 가문은 모용세가였다.
모용세가는 한때 요녕성을 비롯하여 흑룡강성 일부를 다스리는 지방 호족으로 중원의 황제가 요녕성과 흑룡강성을 흡수하기 전까지는 모용세가의 다스리는 땅이었다.
그렇기에 중원의 황제도 모용세가만큼은 성족으로 대우를 해 주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고, 지금도 황궁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가문이기도 했다.
화린은 단리혁진이 들으라는 뜻에서 말했다.
“가문의 위세는 권력, 금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력, 즉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판단하여 함께 잘 사는 방법들을 늘 모색하여야 한다.”
“혁진이는 좋겠다. 저런 든든한 형님이 곁에 계시니 말이야.”
백군성이 말에 단리혁진은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들어. 화린이가 하는 말 못 들었어? 너는 단리세가의 가주로 여기에 온 거야.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너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없어.”
단리혁진이 백군성을 보았다.
“넌 가주고 이들은 다 소가주잖아.”
“하지만 가문의 영향력이 다르지 않습니까? 저보고 가주라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없어!”
화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내가 부랄 두 쪽 차고 나왔으면 그걸로 다 가진 거지. 그런 자신감도 없이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갑작스러운 질책에 단리혁진이 뜨끔한지 고개를 숙였다.
백군성은 그런 단리혁진을 보며 습관처럼 자신이 뭔가 잘못을 하면 고개를 숙이는 버릇이 생겨 버린 것 같아 단리혁진에게 충고하려고 했는데 화린이 먼저 말을 하였다.
“고개 들어. 그리고 허리 세우고 어깨를 펴!”
마부석에 있지만 안에 있는 단리혁진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지 화린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야, 그만해. 귀에 피가 나겠다. 그렇게 기를 죽이면서 무슨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펴라고 하는 거야.”
백군성이 마지못해 한 소리 하였고, 화린은 그제야 잔소리를 멈추었다.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마.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너무 못나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겁니다.”
“왜?”
“그냥 어린 시절 원망하고, 불평하고, 제멋대로 산 것이 너무 부끄럽고 해서.”
“그럼 지금부터 잘하면 되지. 나의 부친께서 늘 하시는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모두가 궁금한 듯 백군성을 바라보았다.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많으면 과거를 후회하기보다는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이야.”
“그게 무슨…….”
“앞으로 잘하라고.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불평불만 하기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너의 미래를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라고.”
마부석에서 백군성의 말을 들은 화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 그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자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형, 혁진이한테도 이제 좋은 형들이 많이 생긴 것 같지. 그러니 이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