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20)
구룡전기-20화(20/217)
구룡전기 (20)
적호문의 문주 민형두는 문파로 배달 온 시체들을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 명은 시신이 온전한 상태였지만 두 명은 손목과 발목이 잘린 상태였다.
“이 새끼 미친놈 아니야.”
콰아아앙!
그때 폭음과 함께 적호문의 대문이 박살 나며 한 사람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는데 다름 아닌 화린이었다.
화린은 시체들이 적호문에 도착하기 전에 상남현으로 와서 적호문이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 모두 파악을 하였고, 상남현의 시전상인들과 저잣거리의 상인들이 적호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금 알아보았다.
그런 후에 시체가 적호문으로 전달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뭐야, 누구냐!”
갑작스러운 난입에 문주인 민형두가 버럭 소리를 쳤다.
“네놈이 적호문의 문주 민형두냐?”
화린이 민형두를 보고 말하자, 그는 눈을 좁히며 화린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본다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죽은 문도의 시체와 화린을 번갈아 보던 민형두가 구룡장과 관련이 있음을 알고는 물었다.
“네놈이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냐?”
“알고 있으면 대화가 편하겠네. 우리 구룡장이 그들로 인해서 입은 피해가 자그마치 금전 오천 냥이다. 그걸 당신이 갚아 줘야 할 것 같은데.”
민형두는 화린의 말에 화해나 혹은 손해 배상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린놈이라 아직 사리분간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화린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화린이 맹호사사혈전대에 있을 때에도 그랬다. 그들은 사전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늘 상대방의 단체를 찾아가는 입장이었지 누군가가 자신들을 찾아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여기가 적호문이니 내가 고개를 숙이고 너희들에게 사정을 해야 해?”
적호문의 무인들이 화린을 중심으로 넓게 퍼지며 자리를 잡았다.
“아무리 삼류 문파라고 하지만 이렇게 상황 판단을 못 해서야.”
“뭐?”
“이봐, 민형두!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내가 여기에 왔을까?”
화린의 말에 민형두의 눈이 커졌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화린이 움직였는데 넓게 자리를 잡은 수하들을 향해 옅은 잔영을 남기며 움직이는 것을 보아서였다.
언제 뽑아 들었는지 화린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고, 중앙에 선 자의 가슴을 길게 베어 버린 후에 좌측으로 이동하며 자리를 잡은 무사들을 향해 검을 움직였다.
잔살십육검!
백 년 전 사파의 전설적인 고수였던 잔살검 육문식의 독문 검법으로 그 당시 무림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이름을 떨친 자였다.
사공에 심취하여 무림인이 아닌 민간인을, 그것도 한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몰살시켜 동창의 고수들이 나서서 그를 추적하였고 백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면서 사살할 수 있었던 무림의 진짜 고수 중의 고수였다.
동창에서는 그의 무공을 회수하여 연구하고 파악한 후 황궁무고에 보관하였고, 화린이 익힌 아흔아홉 가지의 상승 무공 중 하나로 백 년 전의 잔살십육검이 지금 온전히 화린의 손에서 펼쳐지는 중이었다.
잔살십육검을 보조하는 보법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화린은 수많은 실전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잔살십육검을 보조하는 보법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였다.
여기에 환환공공미리보의 공부를 더하니 잔영을 남기게까지 되었는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느릿하게 움직인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커어억!”
적호문의 문도들은 제대로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는데 화린이 그동안 상대해 온 변방과 새외 그리고 색목국의 대문파나 단체들에 비하면 이들은 너무나 쉬운 상대였다.
그럼에도 화린은 최선을 다하였다.
맹호사사혈전대에서 적을 상대할 때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늘어났기에 적을 상대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는 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적호문의 문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지하지도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는데, 순식간에 십수 명이 화린의 검에 당해 쓰러져 있었다.
“으으으…….”
남은 문도들이 상황을 인지하였을 때는 싸우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하였다.
화린은 두려움에 몸을 떠는 문도들을 보고 차갑게 말하였다.
“그러니까 윗대가리를 잘 만나야 하는 거야.”
화린은 이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렇지만 상남현의 시전과 저잣거리의 상인들과 사람들에게 있어 적호문은 없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을 하여서였다.
이들이 한 명이라도 살아서 문을 나가면 그는 잠깐 몸을 숨겼다가 왈패들을 이끄는 두목이 되어 시전상인들과 저잣거리의 상인들을 괴롭히며 돈을 뜯어내려고 할 것이 분명할 것이니 흑사방을 멸한 것처럼 이들 역시 한 명도 남겨 두지 않고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맹호사사혈전대에서 전역을 하였다고 하지만 아직은 몸에 밴 습관으로 인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놈!”
민형두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화린은 그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화린에게 있어 적호문의 문도들이 먼저였다. 이번에는 우측으로 이동하여 움직였다.
화린의 검이 또 한 번 변화였는데 잔살십육검과 비슷한 환검이었지만 검에 담긴 기운은 전혀 달랐다.
잔살십육검이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라면 지금 화린이 사용하는 검은 가을에 흩날리는 꽃잎과 같이 화사하였다.
천화난무!
잔살십육검의 주인인 잔설검 육문식과 동시대의 정파 기인으로 화검 허난설의 독문 검술이었다.
그녀는 화산파의 속가제자로 화산파의 매화 검법을 전수받을 수가 없었다.
뛰어난 재능에도 속가제자라는 이유만으로 매화 검법을 전수받을 수 없게 된 그녀가 자신만의 매화 검법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말년에 창안해 낸 검술이 바로 천화난무였다.
허난설은 천화난무가 매화 검법보다 더 뛰어난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화산파의 매화 검법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검술이라 자부하였고, 실제로도 뛰어난 검술이었다.
화린의 검이 허공을 가볍게 가로지르며 작은 꽃잎을 만들어 내었고, 꽃잎이 만들어질 때마다 적호문의 문도가 한 명씩 쓰러졌다.
화린의 움직임은 선이 길고 유려하여 마치 여인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화린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 적호문주 민형두는 마른침을 삼켰다.
넓은 적호문의 뜰에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은 그와 화린뿐이었다.
화린이 착검을 한 후에 민형두를 보았다.
화린과 시선이 마주친 민형두는 절로 오금이 떨려 와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왜죽였냐, 잔인한 놈이다, 그따위 말은 하지 마. 내가 너희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을 테니까.”
“이…… 이…….”
화린의 말에 몸이 떨렸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죽고 죽이는 일에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민형두는 화린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지금 착검을 한 상태이니 기습 공격을 한다면 자신이 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네놈을 죽인 후에…….”
민형두가 한 발 내딛는 순간 무엇인가가 날아와 이마를 강하게 때렸다.
“윽!”
그 충격에 몸이 뒤집히며 뒤로 날아간 그가 건물의 기둥에 강하게 부딪치며 떨어졌다.
민형두의 이마에 구멍이 나 있었는데 건물의 벽에 철전 하나가 박혀 있었다.
“이래서 잔머리를 굴리는 놈들은 안 된다니까.”
화린은 천천히 죽은 민형두가 있는 곳으로 가서는 벽에 박힌 철전을 뽑아내었다.
죽은 민형두를 내려다보는 화린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전쟁에서 이긴 쪽이 전리품을 챙기는 건 알고 있지. 그러니 억울해하지 말라고.”
화린은 걸음을 옮겨 적호문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산양현의 흑사방에 이어 상남현의 적호문도 하룻밤 사이에 멸문당했다는 사실이 상남현에 알려지면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다.
“누가 그런 거야?”
“그건 모르지. 관아에서 시체들을 수거해 갔으니 화장하면 누가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을 거야.”
“무림에서 개입하지 않을까?”
“그건 모르지. 삼류 문파 멸문당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잖아. 길 가던 고수에게 시비를 걸었거나 그랬겠지.”
삼류 무인들의 단점이라고 하면 상대의 무공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류 무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삼류 무인들은 이러한 감도 없어 가끔은 고수들에게 시비를 걸어 곤죽이 되도록 맞기도 하고, 자칫 문파가 풍비박산이 날 때도 있었다.
상남현에 사는 사람들은 이번 일도 그러한 일로 인해서 적호문이 멸문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였다.
상남현의 치안을 감당하는 관아는 상남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양현에 있었다.
행정구역으로 현이 나누어져 있지만 관의 사람 부족으로 인해서 산양현과 상남현 그리고 상주현의 치안은 산양현의 관아에서 맡고 있다.
산양현의 관아에 시체들이 누워 있었고 거지들로 보이는 이들이 몇 명 와서는 시체들을 살피고 있었다.
섬서 지부 개방도들이었다.
그들은 흑사방에 이어 적호문이 멸문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모르는 세력이 나타났을 가능성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해서 관의 도움을 받아 시체들을 살피는 중이었다.
개방도들은 시체를 살피며 눈을 찡그렸는데 도무지 봐도 어떤 무공에 당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분명한 건 한 사람이 아닌 최소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적호문의 멸문에 관여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 상처와 이 상처는 다르네. 그리고 민형두의 머리를 꿰뚫은 것도 다르네.”
“이들은 검상인데 서로 다르고, 민형두는 내가기공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면 최소한 절정의 고수가 한 명 있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절정의 고수가 왜?”
“그건 나도 알 수 없지. 이놈들이 고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심기를 크게 뒤틀리게 했겠지.”
개방도들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일단의 무리들이 관아로 들어왔다.
가장 앞선 사내가 개방도를 향해 양손을 모아 인사를 하였다.
“개방의 섬서성 분타주이신 걸충선 님을 뵙습니다.”
“하오문에서도 오셨소?”
이들은 다름 아닌 하오문의 문도들이었는데 이들 역시 개방과 마찬가지로 하오문 섬서성 지부의 사람들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걸충선이 한쪽으로 물러났다. 와서 한번 살펴보라는 의미였다.
하오문 섬서성 지부의 지부장인 남선영은 천천히 죽은 자들의 상처를 살폈다.
한동안 말없이 상처를 살피던 남선영은 살짝 눈을 좁혔고 다른 시체들에게서 같은 반응을 보이자, 그걸 놓치지 않은 걸충선이 물었다.
“뭐, 알아낸 것이 있소?”
“확실치는 않지만 이 상처는 백 년 전 무림과 민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잔살검 육문식의 잔살십육검 같습니다.”
남선영의 말에 걸충선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백 년 전에 갑자기 행적을 감춘 육문식이란 말이오?”
“조금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남선영은 시체들의 상처를 조금 더 살피더니 확신을 가지듯 말하였다.
“이 상처는 잔살십육검에 의한 상처가 맞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검화에 당한 상처인 것 같습니다.”
“검화에 당한 상처?”
검기가 아닌 검화라면 못해도 절정의 고수가 삼류 문파를 멸한 것이다.
“무림의 도리가 있거늘. 적호문에서 아무리 심기를 건드렸다고 하나 절정의 고수가 삼류 문파를 멸문시킨다는 건…….”
“제가 생각할 때는 무림 초출의 신성이지 않을까 합니다.”
남선영의 말을 듣고 걸충선은 잠깐 생각하다 물었다.
“검화를 피운 고수 역시 사파의 인물 같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파의 무공치고는 상처들이 너무 깔끔합니다.”
“그럼 저긴 사파, 이쪽은 정파. 정파와 사파의 고수가 한자리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파와 사파의 고수가 아닌 정사지간의 무인들입니다. 혼자 무공을 익힌 후에 이번에 무림으로 나온 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리 나이는 많지 않겠구료.”
“그건 알 수 없지만 상대도 안 되는 이들을 모두 죽였다는 건 경험이 미숙하여 젊은 혈기가 앞선 것일 수도 있으니 그리 나이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걸충선은 남선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어 분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겠구료.”
“그건 정파나 사파에서 알아서 하실 일 같습니다. 저희는 그저 정보를 모으고 팔아먹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런저런 사건, 사고들이 많으면 제법 돈벌이가 되지요.”
“이 사람, 그러다 하오문이 이렇게 당하면 어찌하오.”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어도 본문의 문도들은 먼저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허허, 사람 일이 그리 생각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소.”
“노력 중에 있습니다. 그럼 전 볼일을 다 본 관계로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리하오. 그리고 그 객잔 주변에 있는 우리 문도들에게 밥도 좀 거하게 주고 그러오.”
남선영은 대답하지 않고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 후에 관아를 떠나갔다.
“후우……. 백 년 전에 사라진 잔살십육검이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 당분간은 뭔가 일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겠군.”
걸충선은 몸을 돌려 관병에게 말하였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지금은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무림에서도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현감에게 들은 그대로 보고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럼!”
걸충선이 관병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에 개방도들과 함께 관아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