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42)
구룡전기-42화(42/217)
구룡전기 (42)
화양루의 루주인 정 대인 외에도 기루를 팔기 위해서 알아보러 온 루주들이 몇 명이 더 있었지만 당장 팔기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 보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그만 본문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네. 자네 덕분에 편히 쉬었다가 가네.”
송철 장로와 화영 장로는 화린에게 사건의 전말을 다 들은 후에 구룡장에서 이삼일 더 머물며 이것저것 알아본 뒤 조식을 먹고 그들의 문파로 돌아가겠다며 통보하였다.
“편히 쉬었다가 가신다니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그러면서 화린은 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어 송철 장로와 화영 장로에게 하나씩 주었다.
“장원의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정말 가시는 여비만 넣었습니다. 그러니 사양치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이거 아니 줘도 되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시는 길에 식사라도 하시라고 이렇게 챙겨 드려야 제 마음도 편합니다. 정말 가시는 여비만 넣었으니 그냥 받아 두십시오.”
화린이 사정을 하자, 이들은 못 이기는 척을 하고 봉투를 받아 챙겼다.
“그럼 가네.”
“조심히 살펴 가십시오.”
화린은 떠나는 이들을 장원의 문 밖까지 배웅한 후에 자신의 일을 보기 위해서 시전으로 나갔다. 조식 시간이 지난 후라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일터로 향하였고, 시전에서 상점을 여는 상인들은 일찍이 나와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들로 부산하였다.
화린은 늘 하던 대로 단리소소가 운영하고 있는 포목점으로 가서 그녀를 만났다.
“여전히 부지런하십니다.”
화린은 부지런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였고, 단리소소는 그런 화린을 향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나오셨어요.”
“날이 흐린 것이 나중에 비가 올 것 같습니다. 밖에 옷감을 두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그럴 것 같아 안에만 진열해 놓을 생각이에요. 비가 오면 치우기 쉬운 장신구만 앞에 진열하여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보려고요.”
“좋은 생각입니다. 혁진이가 누이인 소소 님 반만 닮았어도 신경을 덜 쓸 텐데.”
“아, 혁진에게 들었습니다. 기루의 관리를 맡겼다고요.”
“네. 손을 다치는 바람에 숙수 노릇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일을 해서 사내구실 좀 하라고.”
“감사합니다. 장주님.”
단리소소는 허리를 숙여 화린의 배려에 감사함을 전했다.
“아닙니다. 저도 편히 일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일을 조금 가르치면 제가 그쪽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쪽으로 신경을 쓸 수가 있으니 서로가 좋은 일이 아닙니까.”
“그래도 장주님의 은혜가…….”
“은혜라 생각 마시고, 많은 돈을 벌어서 장원의 살림이 조금 나아지도록 해 주십시오. 그럼 되는 겁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화린은 수고하라는 말을 하고는 다른 영업장으로 갔다.
“언니.”
함께 일을 하는 점원이 단리소소를 불렀다.
“왜?”
“장주님과 언니는 정확하게 무슨 사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니. 무슨 사이라니?
“아니, 그렇잖아요. 언니한테 포목점을 열어 줘, 혁진 오라비에게 숙수 일도 시켰다가, 이제는 기루의 관리까지 맡기고 그러니 말이에요. 장주님이 언니께 마음이 있는 거 아니에요?”
점원의 말에 단리소소의 양 볼이 살짝 붉어졌지만 자신의 마음일 뿐, 화린의 마음은 아니었다.
“아니거든. 장주님께서는 식솔들에게 잘해 주시거든. 구룡객잔의 숙수장님께는 구룡루가 완공하면 그쪽 주방의 책임자로 내정하셨고 또…….”
단리소소는 구룡장주인 화린이 식솔들에게 어떤 약속들을 하였는지 말하는 동안 속으로는 구룡장주가 자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하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
* * *
화린은 산양현의 영업장을 다 돌아본 후에 상남현의 영업장을 둘러보기 위해서 구룡장의 별장으로 갔다.
별장에서는 총관인 서대영이 아이들을 도맡아 가르치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수가 무려 오십 명이나 되었다.
나이는 다섯 살부터 열 살까지 다양하였는데 이 중 여아가 열두 명이나 있었다.
화린은 서대영의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무공이나 학문에 재능이 없는 아이들은 열 살이 넘으면 객잔을 비롯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열 살이면 어리지 않을까?”
“늦게 공부 머리, 혹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런 애들은 극소수입니다.”
“음…….”
“일찍 장사를 배우게 하고, 그것도 아닌 것 같으면 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을 합니다.”
화린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보다 총관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알아서 처리해. 아이들 문제 말고 다른 문제는 없나?”
“현감이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중입니다.”
“얼마나?”
“성의를 보였으면 하는데 금액은 말하지 않지만 한 달에 금 열 냥 정도는 손에 쥐여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전혀 없습니다. 욕심 많은 돼지에 불과한 놈입니다.”
“그럼 내가 처리하지. 그놈 날려 버리면 되겠지.”
“그럼 앞으로 귀찮게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해 오는 현감 역시 소문을 듣는다면 쉽게 우리에게 접근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다른 건?”
“없습니다.”
“그럼 계속 수고 좀 해 주고…… 아, 혹시 황궁에 연락을 하나?”
“장주님과 함께 이곳으로 온 이후로 황궁과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동창에서도 저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고, 저 역시 황궁에서의 생활은 기억하기 싫어 잊으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그래? 그래도 황궁에 있을 때는 대우를 받고 살지 않았어?”
“동창부사면 좋은 대우를 받는 사실이지만 제 위로 높은 사람이 천 명이나 있었으니 그게 그거입니다. 어차피 갈구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일을 잘하나 못하나 갈굼을 당하는 건 똑같으니 말입니다.”
“말을 들어 보니 나를 따라 황궁을 나온 것이 속 시원한 모양이군.”
“정말 속 시원합니다. 여기서는 저에게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있고.”
“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습니다. 설마 저에게 이것저것 많은 일을 시키려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지금 아이들 키우는 것도…….”
서대영은 화린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상남현에서 운영하는 영업장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경을 써. 손해 보면 다시 황궁으로 돌려보내 버릴 테니까.”
황궁으로 돌려보낸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서대영은 양손을 흔들어 절대 황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니까 열심히 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까지는 필요 없고, 배신이나 하지 마. 배신자의 말로는 황궁 복귀라는 걸 명심해.”
화린의 엄포에 몸을 가늘게 떨던 서대영이 화린에게 물었다.
“정말 보내실 겁니까?”
“하는 거 봐서.”
서대영의 입이 한 자나 튀어나왔다.
“아이들의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하고, 장사나 혹은 기술을 가르칠 아이들을 선별하면 바로 장원으로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그럼 난 영업장 한번 둘러보고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화린은 서대영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의 집무실을 나왔다.
화린은 상남현의 시전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영업을 하고 있는 객잔으로 갔다.
객잔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모두가 인근 상인들 혹은 보부상들이었다.
화린이 객잔으로 들어서자, 매대에 있던 점장이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장주님.”
“장사는 여전하네요.”
“뭐, 장주님께서 많이 챙겨 주시니 다 주인 된 정신으로 열심히 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부는……. 그래도 듣기는 좋습니다.”
“하하하. 티가 많이 납니까?”
“그리 티는 나지 않습니다. 딱 듣기에 기분 좋을 정도입니다.”
점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전 적호문의 아래에서 장사를 할 때는 이렇게 신이 나지 않았는데 주인이 화린으로 바뀌고 버는 만큼 자신들이 더 많이 벌어 갈 수 있으니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정말 즐겁게 일을 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식자재를 받아 쓰는 곳이 어디입니까?”
“몇 군데가 있습니다. 야채와 채소는 시전에 있는 금황상회라는 곳에서 받아 쓰고, 고기는 육다소란 정육점에서 받아 쓰고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그날그날 필요한 것을 사서 쓰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조금 있으면 우기입니다. 우기에는 각별히 식자재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가지고 오는 재료들을 숙수장이 살피고 있습니다.”
“네. 그리고 일이 생기면 별장에 있는 서 총관에게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부들을 하루, 이틀 정도 고용하여 우기를 대비해서 객잔 주변에 배수로를 깊게 파 놓고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하세요. 식당에 물이 고여 있으면 그것만큼 안 좋은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외의 것은 서 총관의 지시를 받아 이행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화린은 점장에서 몇 가지 일을 더 지시한 후에 기루로 갔다. 기루는 아직 장사를 할 시간은 아니었지만 기녀들을 비롯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린은 이곳에서 객잔과 만찬가지로 몇 가지의 일을 지시한 후에 산양현으로 돌아갔다.
상남현에서 산양현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나무가 제법 심어져 있는 언덕이었다.
화린은 언덕길을 걷다가 손가락을 말아 쥐더니 한 그루 나무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기운을 머금은 탄강이 나무의 중앙을 꿰뚫고 지나갔다.
잠시 후 작은 구멍이 난 곳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나무껍질이 벗겨지더니 그곳에서 사람이 나와 앞으로 꼬꾸라졌다.
“살수라…….”
화린은 이들이 자신을 노리는 살수라는 걸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화린은 나무 외에도 바위를 비롯하여 몇 곳을 향해 탄강을 날렸다.
“커어어억!”
단발마와 함께 복면을 쓴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가 나의 주변 환경을 기억하는 거야. 바위, 나무, 풀 한 포기까지 말이야.”
화린은 마치 누군가에게 알려 주는 것처럼 말을 하였다.
“그래야 살아 남을 가능성이 높거든. 그리고 은신의 기본은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모습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시야를 피하는 거야. 다시 말하면 사각을 이용해서 대상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거지.”
화린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그 모습에 바닥에서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지.”
화린이 어느새 땅바닥에 몸을 감추고 있는 살수의 곁에 나타나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살수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는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난 상대였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었다고 생각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화린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소속은?”
“살막곡의 이급 살수요.”
“너에게 물어봐도 누가 나를 죽이라고 청부하였는지 알 수 없을 테니 그냥 고통 없이 죽여 주는 것이 좋겠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턱대고 의뢰를 받은 너희 곡주를 탓하고, 다음 생에는 살수보다는 정통 무인의 생을 살도록 해.”
살수는 자신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너무나 간단한 질문에 달아날 궁리조차 하지 못하였다.
“커억!”
목에서 화끈함을 느낀 살수는 앞으로 꼬꾸라졌고, 화린은 그를 잠시 내려다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살막곡이라……. 미옥 분타주가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