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44)
구룡전기-44화(44/217)
구룡전기 (44)
화린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자, 다시 서점으로 가서는 주변의 어둠에 동화되어 일을 하는 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일을 마치고 한 명씩 서점을 나왔고, 마지막으로 서점의 주인인 이도문이 나와 문단속을 한 후에 어디론가 걸어갔다.
이도문을 뒤따라간 화린은 얼마 가지 않아 그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였다.
담장이 낮아 집 안이 훤히 다 보이는 구조였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불이 밝혀졌다.
“여기가 놈의 거처인 모양인데.”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잠시 지켜보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화린은 멈칫하였다.
“놈의 기운이 바뀌었다.”
주변을 확인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기운이 바뀌었다.
화린은 잠깐 망설이다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방 안이었다.
“허어, 누구…… 커억!”
화린이 손을 쓰자 그가 쓰러졌고, 쓰러진 자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분명 이도문이었지만 그는 내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화린은 쓰러진 자의 얼굴을 만져 보았지만 인피면구는 아니었다.
“그럼 이도문이 인피면구를 착용하였을 가능성이 높겠군.”
화린이 단전을 활성화시켜 방 안에서 사라진 이도문을 찾았다.
기운이 방 안을 채우며 벽에 세워진 병풍 뒤에 통로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화린이 병풍을 걷어 낸 뒤에 벽을 밀어 보니 벽이 안으로 밀리면서 한 사람이 오갈 수 있는 통로가 나타났다.
“서점 아래도 텅 비어 있었는데……. 지하를 이용하여 덕수장과 서점 그리고 이곳을 연결했나 보군. 샤만당 놈들처럼.”
화린은 맹호사사혈전대의 기억을 잠깐 떠올렸다.
중원의 운남성 아래에 묘강이라는 변방이 있고, 그 아래 베콩 왕국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당시 베콩 왕국의 샤만당의 무리가 강력한 힘을 앞세워 월남성을 점령하였고, 그 힘으로 주변의 영토를 굴복시키며 세력을 확장 중이었다.
그들의 힘은 너무도 강대하여 베콩 왕국의 국왕이 중원의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중원 황제는 흔쾌히 이를 수락하여 흥친어림군을 베콩 왕국으로 보내 베콩 왕국을 도와 샤만당의 무리들과 싸웠다. 그러는 와중에 맹호사사혈전대는 샤만당의 수뇌부들을 사살하기 위해서 그들의 본거지인 월남성으로 침투를 한 적이 있었다.
맹호사사혈전대는 샤만당의 수뇌부와 전투에서 가까스로 승리할 수가 있었지만 삼백 명 중에 이백육십 명이 사망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전력상으로 맹호사사혈전대가 강했지만 월남성 아래에는 개미굴처럼 서로 연결된 굴이 파여 있었다. 샤만당의 수뇌부는 맹호사사혈전대원들을 이 굴로 유인하여 각개격파를 시도하였고, 샤만당의 계획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화린을 비롯한 몇몇 부대원들의 무공은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더욱 고강했다.
결국 수뇌부가 개미굴에서 일망타진 당하면서 샤만당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화린은 당시의 기분이 떠오르자, 짜증이 났는지 성큼 걸음을 옮겨 굴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걸어 한참을 내려가니 바닥이 나왔고, 앞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넓은 공터가 나왔다.
공터에는 화린이 나온 굴을 제외하고도 네 개의 굴이 더 뚫려 있었다.
‘도심에 이 정도의 굴을 팔 정도면 상당한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살막곡이 어쩌면 생각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나는 서점으로 통하는 것이고, 하나는 덕수장으로 연결되어 있겠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상 통로가 될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화린은 하나의 굴을 택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월남성의 개미굴과는 다르군. 그냥 거처를 연결하는 통로, 혹은 피난을 위한 굴이군.’
화린의 생각대로 하나는 덕수장, 하나는 서점, 하나는 비밀 통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굴에서 화린은 많은 사람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들은 살막곡 소속의 살수들이었다.
화린은 어둠 속에 녹아들어 그들에게 접근했고 뒤쪽에 서 있는 한 사람의 그림자 속에 숨었다.
암흔무영!
그림자 속에서 흔적을 감춘다는 살수의 은신술이었다.
화린이 그림자 속에 숨었지만 도열해 있는 살수 중에서 화린을 기척을 느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최근 들어 무림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 마교와 사혈맹은 몸집을 부풀리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주위의 세력을 흡수하는 중이다.”
그들 앞에서 한 사람이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도문이었다.
‘인피면구가 맞구나.’
서점의 주인과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지만 얼굴이 달랐다.
그림자 속에 숨은 화린은 이도문의 입을 통해서 무림의 정세에 대해 들으며 살막곡 살수들의 능력을 가늠해 보았다.
‘이 정도의 살수면 어느 정도지? 흑사방이나 적호문의 문주보다 높은 수준인데.’
살수들의 무공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기운으로 대충 어느 정도의 수준에 있음을 알 수가 있었는데 이들 살수 하나하나가 삼류 문파의 수장보다 더 강해 보였다.
“이류 수준에 있지만 살막곡의 곡주를 포함하여 일류 살수가…….”
화린은 미옥이 한 말을 떠올리며 어쩌면 살막곡은 자신들이 힘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업에 종사를 하는 그런 문파가 아닐까 하였다.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오랜 세월을 버텨 온 비결일 수도 있지.’
무림에서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천수를 누린다는 말이 있듯 이들 살막곡은 큰 욕심 없이 이류 살수 문파로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며 생활하는 듯하였다.
이런 이들의 모습에서 화린은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자신을 죽이라고 청부한 자를 알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올해가 우리 살막곡의 선조가 약속한 기다림의 백 년, 그 마지막 해이다. 내년이면 우리는 금제를 풀고 무림 활동을…….”
‘욕심을 안 부리는 게 아니라 어떠한 금제가 있는 건가?’
“그동안 열심히 활동을 해 준 덕분에 제법 큰 돈을 벌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는 구신환을 샀으니 한 사람씩 나와서 받아 가도록.”
구신환의 효능은 일 년 치의 내공을 상승시켜 주는 영약으로 무림에서는 돈만 있으면 암전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가 있는 그런 영약이었다.
단, 구신환은 처음 복용하였을 때만 효능이 있고, 그다음에 복용하였을 때는 효능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살수들이 한 사람씩 이도문의 앞으로 나아가 구신환을 받았고, 화린이 숨어 있는 그림자의 주인 역시 이도문의 앞으로 갔다.
화린은 그가 이도문의 앞에 섰을 때, 단약을 주고받는 사이 이도문의 그림자로 옮겨 갔다.
이도문은 수하들에게 몇 마디를 더 한 후에 들어온 청부 건에 대해서 수하들에게 배당을 해 주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 실수 없이 처리하도록!”
이들이 맡은 청부는 무림인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주로 원한 관계에 있는 일반인이 대다수였는데 살인부터 구타, 협박 등 청부도 다양하게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시정잡배들과 비슷한데 이들은 고관대작부터 관리, 학사 등 소위 지식층, 혹은 지배층에 대한 원한의 청부들이 주를 이루었다.
수하들이 모두 물러나고 이도문 역시 돌아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단해.”
동굴 안에 음성이 울리자, 이도문이 흠칫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류 살수 문파라고 하더니,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군.”
다시 소리가 울리자,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는 몸을 획 돌리며 자신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사각을 찾아 시선을 옮겼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 찾을 필요 없어. 처음에는 한 가지만 알고 가려고 했는데…….”
“누구냐”
이도문이 소리를 치며 단전의 내공을 끌어 올렸다.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낸 이도문은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가 없다니까. 몇 가지 궁금증만 풀어 주면 내가 오늘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는 함구하지.”
“모습을 드러내라.”
“얼굴 봐서 좋을 것 없을 텐데. 칼부림하려고 할 것이 아닌가? 그럼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죽는 쪽은 내가 아닌 당신이 될 것 같은데.”
“음…….”
“힘 풀지. 당신의 무공이 높은 건 알겠는데 그럼에도 나를 찾지 못한다는 건 적어도 내가 당신보다는 조금 더 강하다는 거니까.”
이도문은 화린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 내공을 풀었다.
“뭐가 궁금한 거지?”
“살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나 역시 기연을 얻어 살수 무공을 익힌 사람이다. 당신이나 당신 밑에 있는 살수들의 능력은 보통이 아닌데,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전면에 나선다면 못해도 중원 십대살수문파에 들어갈 것 같은데.”
“어디까지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금제에 묶여 있다.”
“그 기다림의 백 년?”
“그렇다.”
“누구를 기다리는 거지?”
이도문은 체념을 한 듯 화린의 물음에 답을 해 주었다.
“살황 서문엽 님의 후예를 기다리는 중이다.”
“살황 서문엽?”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당시 살수로서 유일하게 무림십대고수의 반열에 드신 분으로 천마도 서문엽 님께 한 수 접어 줘야 할 만큼 뛰어나신 분이시다.”
“그런 분이 왜, 후대를 남기지 않으신 거지?”
“그건 알 수 없다. 당시 본곡의 곡주이셨던 조부에게 들었을 뿐이다.”
삼대에 거쳐 살황 서문엽을 기다렸다는 말이었다.
“그렇군. 그럼 그분의 특징은?”
“모른다. 다만 그분의 무공만을 알아볼 뿐이다.”
“그럼 그가 나타난다고 해도 무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알 수 없겠군.”
“그렇다. 그분께서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이상은 우리가 알 수가 없다.”
“그렇군. 그럼 정말 알고 싶은 거.”
“정말 알고 싶은 거?”
“나 죽이라고 한 놈이 누구야?”
이도문은 흠칫하며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되물었다.
“누구를 죽여?”
“나, 누군가가 나를 죽이라고 청부를 하였을 것이니 살수들을 보낸 것이잖아.”
이도문은 자신과 말장난을 하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속으로 분을 삭이며 물었다.
“네놈이 누구인데.”
“구룡장의 장주!”
화린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 후에 그의 그림자에서 나왔다.
“허엇!”
그 순간 이도문은 놀라 뒷걸음질을 쳤고, 그런 모습을 보고 화린은 피식 웃었다.
“누구야, 날 죽이라고 청부한 놈이.”
이도문은 대답 대신 빤히 화린을 쳐다보았다.
“다른 생각 하지 않는 것이 좋아.”
“그게 아니라…… 방금 나의 그림자에 숨어 있었던 거요?”
“암흔무영이라고 해. 내가 익힌 살수 무공 중 하나지.”
이도문의 눈이 커졌다.
“암흔무영……. 혹시 암흔묵탄강을 아시오?”
말투가 바뀌었다.
“물론.”
이번에는 이도문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럼 암흔구류비혼검도 아십니까?”
이도문의 물음에 화린이 눈을 좁혔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암흔삼공을 알고 있는 걸 보니 내가 익힌 살수 무공과 당신이 말한 살황이 관련 있는 모양인데?”
이도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암흔삼공뿐만 아니라 뇌전삼공과…….”
화린은 말을 하면서 허공에 손가락으로 점을 찍었다.
허공에 작은 공간이 만들어졌고, 화린이 그 속에 손을 넣었다가 빼니 손에 전체적으론 검은색인데 언뜻 붉은색이 감도는 소금이 들려 있었다.
“이것도 있지.”
“살……황 묵혈소!”
이도문은 단번에 소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는 화린을 향해 엎드렸다.
“살황 서문엽 님의 전인을 뵙습니다.”
화린은 이도문의 행동에 당황하여 말을 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말한 것이 맞단 거군.”
“그렇습니다, 전인이시여.”
“그분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었단 말이지.”
황궁 보고에 일기장이 상승 무공으로 분류되어 있어 무림에서 제법 이름을 얻은 살수라 생각을 하였는데, 천마도 한 수 접어 주었다는 살황의 무공이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이런 무공을 내가 그동안 등한시한 거였어? 그럼 내가 익힌 무공들은 모두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지?’
황궁 보고에서 화린이 익힌 것은 아흔아홉 가지의 상승 무공이었고, 그중 하나가 십대고수에 들 정도로 강력한 사람의 무공이었다고 하니 다른 무공들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익힌 무공 중에는 살황의 무공보다 뛰어난 무공이 쉰 가지가 넘는다.’
무공만 따지면 살황의 무공보다 뛰어난 무공이 많이 있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 살황의 무공보다 효율적이고 뛰어난 무공은 무림에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화린이 살황의 일기장을 완전히 이해하고 때와 장소, 상황의 변화에 따른 살인 방법에 대해서 모두 숙지하고 능숙하게 응용할 수 있다면, 중원에서 죽이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해도 될 만큼 살인에 있어서 독보적인 것이었다.
“지금 당신의 행동으로 보아 내가 당신이 기다리는 사람이고, 내가 나타났으니 살막곡의 금제가 오늘부터 풀리겠군.”
“그렇습니다.”
“금제가 풀리는 것과 당신과 나의 관계에 뭔가 이어지는 것들이 있나?”
“본 곡은 살황 서문엽 님의 봉신 가문으로 살황 님의 후인인 주화린 님을 따를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라고 한 자를 알기 위해서 왔다가 뜻하지 않은 살수 문파를 하나 얻게 되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식솔이 더 늘었다는 말이군.”
“저희 밥벌이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 나를 따르든, 따르지 든 그건 곡주의 마음이니까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되고, 조금 전에 물었던 물음의 답은?”
“무슨…….”
“날 죽이라고 청부한 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