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49)
구룡전기-49화(49/217)
구룡전기 (49)
섬서성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기를 알리는 첫 비이기도 하였다.
중원 대륙에는 일 년에 우기와 건기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찾아오는데, 우기 때에는 짧으면 보름, 길면 한 달 보름 정도 비가 내린다.
우기에 강수량은 그리 많지 않아 물난리를 겪는 경우는 드물지만 한 번씩 내리는 폭우로 인해서 마을이나 현이 물에 잠길 때도 있었다.
작년에 산양현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어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
화린은 장원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시원하게 내리네.”
우기가 지나면 무더운 더위가 한풀 꺾일 것이니 지금부터 가을, 겨울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기에 큰 사고만 안 터지면 내년 봄에 구룡루 공사가 끝날 것이고, 가을쯤 안정이 되면 겨울부터는 무림을 좀 다녀 봐야겠군.”
화린은 내년 겨울 이후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하였다. 지금까지는 단리혁광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생활하였다면 내년 겨울부터는 부친과 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본격적인 무림행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장주님.”
총관인 서대영을 대신하여 구룡장의 살림을 맡아 관리하는 이서정이 화린을 불렀다.
“무슨 일이 있나요?”
“장주님, 화양루의 정 대인이 장주님을 만나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집무실로 안내하시고, 간단한 다과를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화린은 잠깐 동안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때마침 숙소가 필요하였는데 잘되었군. 구룡루와 가까우니 일하는 사람들 숙소로 사용하긴 딱 좋지.”
화린은 화양루의 루주인 정 대인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하였다.
“주변에 객잔을 하나 더 인수하여 일하는 사람들 식사를 그곳에서 해결하도록 하면 딱 좋은데. 객잔이나 기루를 팔려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자신이 정 대인에게 좋은 값으로 기루를 인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팔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지금 객잔과 주루의 주인들에게는 구룡루가 장사를 시작하면 그 여파로 자신들의 가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가 작용하여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었다.
“일단 정 대인이 소문을 잘 내어 주기를 바라야겠지.”
화린은 자신의 집무실로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한 사람이 그의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왔어.”
살막곡의 곡주인 이도문이었다.
“정리는 잘 했고?”
“모두 정리하려고 하였으나 그들 모두 저와 함께하기로 하여 돌려보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럼 살막곡은 어떻게, 계속 유지를 할 건가?”
“그렇습니다. 장로들, 살수들과 이야기하여 곡은 존속하는 걸로 하되, 지금처럼 무림인들 간의 의뢰가 아닌 일반인들의 의뢰를 받아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기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화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알아서 하면 될 일이고, 이 곡주가 나와 함께 있으면 살막곡에 문제가 생기고 그러지는 않아?”
“그래서 살막곡을 이곳 산양현으로 옮길 생각입니다. 청부를 받는 방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청부를 받고 확인하는 이들 두세 명만 녕강시에 두고 모든 살수들을 이리로 불러올 생각입니다.”
“그럼 본부는?”
“장원 근처에 알아보겠습니다.”
“장원 근처라……. 그러지 말고, 내년에 구룡루가 완공되고 영업을 시작할 거야.”
“구룡루에 대해선 들어 알고 있습니다.”
“넓은 곳이니 그곳을 본부로 정하고 활동해. 하오문에서도 구룡루를 자신들의 지부로 사용하려고 하니까 그들과의 충돌만 피하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을 거야.”
“주군의 뜻이라면 그리하겠습니다.”
“내가 나중에 구룡루에서 일하는 하오문 소속 사람들이 누구인지 자세하게 알려 줄 테니까 수하들에게 이야기해서 그들의 시선만 피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암흔삼공을 익히는 데 어려움은 없고?”
“초식과 변초를 익히는 중이라 아직은 크게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럼 됐어.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봐.”
“그리하겠습니다.”
“난 지금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하니까 그렇게 알고, 앞으로 잘 부탁해.”
“목숨으로 주군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 * *
구룡장의 장주인 화린이 정 대인에게 화양루를 인수하였다는 소문이 산양현에 퍼졌고, 그로 인해서 구룡장이 산양현에서 장사를 하는 기루, 객잔을 모두 인수하려고 한다는 악의적인 소문까지 나돌았다.
화린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우기가 끝나면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덕분에 쉼 없이 일을 할 수가 있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기술이 좋으니까 제가 찾아 부탁을 드리는 거죠. 기술 나쁜 사람한테는 아무리 싸게 공사를 해 준다고 해도 맡기지 않죠.”
“믿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번 공사도 잘하여 장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대금 결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선수금 삼 할, 중도금 사 할, 일이 끝나면 삼 할 이렇게 대금 결제를 해 드리겠어요.”
“알겠습니다.”
화린은 건축 공사 업자를 만나 인수한 화양루를 개조하는 공사를 맡겼다.
객잔에서 건축업자와 이야기를 끝낸 후에 창을 통해 밖을 보는데 여전히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중이었다.
초의를 입고 내리는 빗속을 바쁜 걸음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확실히 비가 오는 날에는 다니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숙수장님, 오늘 장사 접어도 될 것 같은데요.”
“하하, 장주님께서는 너무 욕심이 없으신 듯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식사보다는 술을 한 잔씩 하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건 기루에서 좋아할 일이 아닌가요?”
“기루에 갈 돈이 없는 사람들은 객잔으로 와서 한 잔씩 하겠지요.”
“뭐, 그렇긴 하네요.”
“그럼 저도 술 한 병이랑 화전을 만들어 주세요. 비와 함께 술이나 한잔하게 말이에요.”
“하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화린은 내리는 비를 보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 추억을 떠올렸다.
* * *
변방!
중원에 속한 땅이지만 다른 성처럼 성주나, 관리가 파견되어 지역을 관리하지 않는 곳으로 부족민들이 자체적으로 땅을 관리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곳을 말을 한다.
중원에는 이러한 변방으로 취급되는 땅이 몇 곳 있는데, 대표적인 땅이 묘강, 신강, 흑룡강성이다. 중원의 무림인들은 요녕성도 변방으로 취급하지만 요녕성은 성주와 관리들이 파견되어 땅을 다스리고 있기에 엄연히 말을 하면 중원의 행정 지역에 속하는 땅이었다.
묘강은 열대우림의 밀림이 있는 지역으로 밀림 안에는 수많은 부족민들이 살고 있었다.
밀림 안에 있는 부족민들 중 요하리치 부족에는 고통을 잊는 마취약을 만들 수 있는 민간요법이 존재하였는데, 이 마취약은 환각과 함께 심각한 중독 현상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묘강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월하란 지역이 나오는데 이곳은 베콩 왕국과 중원의 중립적인 지역이지만 실질적으로 베콩 왕국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고, 월하에 세금을 부과하여 세금을 거두고 있었다.
이곳 월하는 중립 지역이라 중원도, 베콩 왕국도 관리를 파견하지 않았기에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하였는데, 이 월하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세력은 만월궁이라는 단체였다.
이 만월궁은 요하리치 부족의 민간요법을 이용해 마약성 진통제를 대량으로 만들어 유통하였는데, 이 마약성 진통제가 중원으로 흘러 들어와 민간으로 널리 퍼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자, 중원의 맹호사사혈전대가 만월궁을 멸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맹호사사혈전대가 월하의 밀림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던 만월궁을 공격하였고, 그들의 저항은 생각보다 강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만월궁의 무인들에게 복용시킨 후에 전투에 임하게 하였는데 팔다리가 잘려도 가슴이 길게 베여 피가 철철 흘러도 그들은 맹호사사혈전대를 향해 죽일 듯 달려들었다.
그런 모습에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은 기가 죽었고, 전황이 점점 불리해졌다.
화린은 맹호사사혈전대에 입대하여 첫 출전에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과 검으로 베어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화린은 기가 질리고,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정신 안 차려!”
그런 화린을 곁에서 챙기며 소리치던 사람이 조장이었던 단리혁광이었다.
단리혁광의 외침에도 화린은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고, 단리혁광은 결국 그런 화린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죽으려고 왔나? 내가 말했지. 우리가 가는 곳, 서 있는 곳은 아비규환의 지옥이라고. 정신 단단히 챙기라고!”
단리혁광이 다가오는 자의 가슴을 벤 후에 발로 차서 밀어 버렸다.
“우에엑.”
구토를 하는 화린의 모습을 본 단리혁광은 인상을 썼다.
‘안 될 놈인가?’
맹호사사혈전대에 배정된 자들은 대부분 무림인들로 무림에서 사고를 친 자들이거나 혹은 실전 경험을 위해서 오는 자들이 대부분이라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지만 화린은 사람 죽고, 피가 난무하는 전장이 처음이라 그런지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단리혁광은 그런 화린을 포기하려고 하였다. 임무를 한 번 나갈 때마다 수십 명이 죽는데 화린이 임무 중에 죽는다고 달라질 것이 없어서였다.
단리혁광이 화린보다 조금 더 나은 대원을 살리기 위해서 움직이려던 그때, 불현듯 그의 남동생이 떠올랐다.
화린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의 모습과 화린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순간, 단리혁광은 발로 화린의 엉덩이를 강하게 밀어 찼다.
쉐이이익!
그 순간 화린이 있던 자리에 검이 수직으로 떨어졌고, 단리혁광은 검을 내질러 만월궁 무사의 복부를 찔렀다. 그런 후에 검을 비틀어 방향을 위로 향하게 만든 후에 힘을 주고 강하게 올려 버리자, 길게 상처가 나며 적이 쓰러졌다.
“전장에서 널 도와줄 사람은 없다. 너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단리혁광은 화린을 향해 소리쳤고, 그 덕분에 화린은 정신을 조금 차릴 수가 있었다.
“네가 선택한 세상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비정해져야 한다. 그것이 왕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화린은 부친이 자신을 위해서 해 준 말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빠지면서 몸의 경직이 풀렸고, 화린은 마치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만월궁의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화린의 눈에서 푸른 청광이 번뜩이더니 다가오는 만월궁의 무사들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순간 화린의 신형이 미끄러지며 그들 사이로 파고 들어가 검을 움직였는데, 푸른 빛을 뿜어내는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만월궁의 무사 머리가 어깨에서 분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화린의 움직임에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상대의 목을 치는 간결함이 있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대를 가장 빠르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런 화린의 모습을 본 단리혁광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 걱정이 없겠군.”
무공으로만 따지면 화린의 무공이 맹호사사혈전대에서 가장 높았다. 다만 실전 경험이 전무하였기에 걱정이 되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상대를 압도…… 아니, 압살할 정도로 뛰어난 무력으로 만월궁의 무인들을 제압하는 화린의 모습에 더 이상 자신이 챙겨 주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앞으로 대장은 저놈에게 맡기면 생각보다 쉽게 끝낼 수가 있겠다. 복귀하면 대장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어.”
만월궁의 궁주 역시 마취성 마약을 복용하고 나섰고, 그에게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 일곱이 죽었다. 결국 그를 제압하기 위해서 화린이 나섰고, 오십여 초를 서로 교환한 끝에 화린의 검에 목이 날아갔다.
그의 죽음으로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낼 수가 있었지만 이번 만월궁의 임무로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 백오십 명이 사망하였거나 부상을 당했다.
“조장.”
화린이 단리혁광을 불렀다.
“감사합니다.”
그 말에 단리혁광은 손으로 화린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고마워할 것 없다. 너도 앞으로 들어오는 후임들 중 싹수가 보이는 놈들을 챙겨 주고 살아서 전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니까. 그게 선임의 역할이기도 하고.”
“싹수가 없는 놈은 어찌합니까?”
“죽게 내버려 둬. 그로 인해서 더 많은 대원들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뭐, 기회를 봐서 먼저 그를 죽이고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