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5)
구룡전기-5화(5/217)
구룡전기 (5)
화린은 파훼무공을 보면서 무공과 술법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제아무리 천문이 열리고 천고의 기재라고 해도 혼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다. 그나마 무공총람이라는 희대의 무공에 관한 이론을 기술해 놓은 책이 있어 이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가 있었지, 무공총람을 보지 못하였다면 이 정도의 성취를 얻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화린은 무공과 술법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 무공총람을 다시 보며 자신이 무엇을 빠뜨렸는지 확인하였는데 파훼무공을 보아서 그런지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무공을 싸움의 기술이라 생각하니 이러한 문제들이 생겨나는구나. 싸움의 기술이 아닌 하나의 학문으로 생각하며 연구하고 탐구를 해야 했어. 형과 식을 익히는 건 그 무공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구나.”
화린은 생각을 달리하였다. 형과 식을 익혀 숙달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공의 본질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익힌 배교의 비전 술법들 역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화린은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황궁 보고에 있을 예정이었다.
모친이 일가의 복수를 운운하였지만 딱히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에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이후, 화린은 육체적인 수련보다는 정신적인 수련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고자 하였다.
거주지에 있는 벽곡단으로 끼니를 해결하면 가부좌를 하고 무공과 술법에 대해서 명상을 했다. 또한 명상을 통해서 얻은 것을 수련해 보고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화린은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화린은 여전히 실망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수련에 매진하였다.
그렇게 수련을 하던 화린이 황궁 보고에 들어온 지 오 년이 되었다.
화린은 연무장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주변에서 기운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기운의 소용돌이는 가부좌를 하고 있는 화린의 신형을 허공으로 띄웠고, 화린의 입에서는 기이한 말이 흘러나왔다.
배교의 술법에 사용하는 주술 같기도 하고, 혹은 귀신 들린 자가 방언을 하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화린의 말에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는지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질수록 기운의 소용돌이도 거칠고 강맹하여 연무장을 부숴 버릴 듯하였고, 그의 말이 부드러울수록 기운의 소용돌이 역시 잔잔하여 살랑살랑 부는 미풍과 같이 부드러웠다.
[공과 공이 만나 무공이 무변하니…….]기운의 소용돌이가 하나에서 두 개로 분리가 되었고, 잠시 네 개로 분리가 되었다.
[말에는 힘이 있고, 그 힘의 원천은 믿음이니 이를 언령이라고 부르며…….]화린의 아래서 소용돌이치는 기운의 성질이 변하면서 하나는 화염의 소용돌이, 하나는 물의 소용돌이, 하나는 바람의 소용돌이, 하나는 흙의 소용돌이로 변하였다.
네 개의 서로 다른 기운이 한 공간에 공존하면서 서로 상생, 상극을 통해 기운이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며 서로 영향을 주었다.
이들 위에 가부좌를 하고 있는 화린의 모습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사라져라!”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허공에 울리자, 거짓말처럼 화린의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던 기운들이 사라졌다.
한순간에 연무장이 고요해지고 화린의 신형은 그대로 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는데, 무엇인가 만족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서서히 화린의 신형이 아래로 내려왔고, 바닥에 완전하게 내려앉은 화린은 깊게 호흡을 하며 자신의 들뜬 마음을 다스렸다.
황궁 보고에 들어온 화린은 지난 오 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힌 끝에 오늘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무공총람에 기록된 이론을 화린이 완성시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화린이 천천히 눈을 떴다.
“사람이 대자연의 기운을 사용하는 것인데 외공, 내공, 술법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무공총람의 이론이 옳았어.”
무공총람의 이론대로 무변이 다변이고, 다변이 일변하니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말대로 화린은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가 있었다.
무공총람에 따르면 기운을 사용하는 주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기운의 성질이 변하는 것이고, 이를 배우고 익히면서 고착된다고 한다. 또한 만약 기운을 사용하는 주체가 구분하지 않고 기운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가 있고, 혹은 순수한 기운을 이용하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술해 놓았다.
화린은 이를 이해하고 행동에 옮겨 뜻하는 바를 이루었으니 무공총람을 기술한 저자를 자신의 사부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이곳에서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하고 무공을 다듬은 후에 세상으로 나가자.”
화린이 황궁 보고에 들어온 지 오 년, 이십 세 약관의 나이에 이룬 성취였다.
* * *
어두운 밤 황궁의 곳곳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황궁을 지키는 황궁수비대가 경비를 맡았고, 금의위가 황궁의 주요 시설들의 경비를 서며 황궁을 지키는 중이었다.
동창은 아홉 개의 궁과 궐의 내부에서 경비를 서며 혹시 모를 침입자에 대해서 경계근무를 서는 중이었다.
사라라락!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한 인영이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귀신과 같아 경계를 서는 황궁수비대, 금의위, 동창들도 그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검은 인영이 내려선 곳은 오래전 구룡장으로 이제는 내명부의 한 부처로 바뀐 장원이었다.
검은 인영은 장원의 앞에서 잠깐 서 있다가 몸을 돌렸다.
한 번의 도약으로 한 마리의 야조가 된 것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더니 그 자리를 떠나갔다.
검은 인영은 황궁의 심처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심처의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곳은 바로 황제의 침소였다.
검은 인영의 옷이 백색으로 변하였다. 그는 다름 아닌 화린이었다.
화린이 황궁 보고에 들어간 지 오 년이 지난 후에 세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화린은 자고 있는 황제를 향해 절을 올렸다. 태어나 처음 보지만 자고 있는 황제가 자신의 부친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절을 한 화린은 품에서 황궁 보고의 열쇠를 꺼내어 침실의 한쪽에 있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아바마마.”
화린이 몸을 돌려 침소를 빠져나가려고 할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황궁 보고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더냐?”
그 목소리에 화린은 흠칫하며 몸을 돌렸는데 황제가 일어나 정좌를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린은 그 모습을 보고 엎드렸다.
“아직 부족하나 원하는 것을 얻었다 생각하여 나왔습니다.”
“원하는 바를 얻었다……. 지금의 네 모습을 보니 어디 가서 두들겨 맞을 정도는 아니구나.”
황제 역시 무공을 익히고 있어 화린의 성취를 어느 정도 알아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
황제는 화린에게 말하였고, 화린은 고개를 들어 황제를 보았다.
“무공의 성취는 높을지 몰라도 실전 경험이 없다면 삼류 잡배들에게도 당하는 것이 세상이다.”
황제는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황궁 보고의 열쇠를 들어 살펴보았다.
“지난 이십이 년 동안 이 옥새가 없어, 짐이 많은 곤란을 겪었느니라.”
그 말에 화린은 깜짝 놀랐다.
“영비가 알려 주지 않은 모양이구나.”
황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을 하였고, 화린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황제는 피식 웃으면서 책상의 서랍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그러고는 화린에게 그것을 주었다.
금으로 만든 패로, 패의 앞면에는 ‘구룡왕’이라는 글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고, 뒤편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구름을 밟고 승천하는 모습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황제는 침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화린에게 말을 하였다.
“짐이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다. 그 명패가 너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호패가 될 것이다.”
“아바마마…….”
“짐이 너에게는 참으로 몹쓸 짓을 많이 하였다. 하지만 그리하지 않았다면 네 어미가 황후의 손에 죽은 것처럼 너 역시 다른 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을 것이다.”
화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화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황제가 물었다.
“황궁을 떠날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저의 뜻은 황궁이 아닌 중원에 있사옵니다.”
“영빈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냐?”
화린은 황제의 질문에 그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여 대답을 하였다.
“사실 모친의 복수는 마음에 와닿지 않아 아직 고심 중입니다.”
“그렇구나. 세상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위험하고 사나운 곳이다.”
“비록 책으로 배웠지만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황궁보다는 덜 사납고 덜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 대륙에는 많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책에서 보았습니다.”
“그 많은 세상에는 저마다 왕이라 칭하며 군림하는 자들이 있다.”
화린은 황제가 무슨 뜻으로 이러한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네가 중원 대륙으로 나가 어떤 세상에서 너의 뜻을 펼칠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그 세상에서 왕이 되어라.”
화린은 왕이 되라는 말에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는 것을 느꼈다.
‘왕이 되어라.’
자신의 운명처럼 그 말이 가슴에 들어왔다.
“너는 나 주한무의 제왕지기를 물려받았으니 남의 밑에 있는 걸 짐이 허락지 않을 것이다.”
“과정 중에 다른 자의 밑에 있을지 모르나 아바마마의 뜻에 따라 세상에 군림하는 왕이 되어 보이겠나이다.”
화린은 황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추상적이던 자신의 목표를 세울 수가 있었다.
무림의 왕!
화린은 무림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 모친의 복수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면 되었다. 짐이 조금 전에 너에게 한 말을 기억하느냐?”
“무슨…….”
“지금의 너는 나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얻었지만 실제로 검을 들고 나와 싸우게 된다면 패하는 건 네가 될 것이다.”
화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만큼 실전 경험은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알게 해 준다. 이는 무공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가르침을 내려 주시면 배우겠습니다.”
화린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입대를 하라.”
“입대라 하면…….”
“군대에 가서 생존에 대해서 배워라. 그런 가운데 실전 경험들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화린이 잠깐 생각해 보니 황제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였다.
“흥친어림군에는 맹호사사혈전대란 특수부대가 있다.”
맹호사사혈전대는 흥친어림군 중에서도 최고의 고수들만으로 이루어진 부대다. 인원은 삼백 명으로, 이들의 주요 임무는 중원에 위협이 되는 단체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며 적 괴멸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한 마을, 도시를 멸해서라도 내려진 임무를 완수하는 대특수전 특수부대이다.
“미친놈들이 모여서 생존을 최대 목표로 하며 살아가는 그곳에서 오 년! 오 년 동안 생존한다면 네가 가고자 하는 세상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화린은 고개를 숙였다.
“아바마마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황제는 화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
황제가 누군가를 부르자, 귀신처럼 그의 곁에 나타나 읍을 하였다.
지난날 화린이 황궁 보고에 들어갔을 때, 나타난 그 사내였다.
“화린을 맹호사사혈전대에 입대시켜라. 그의 신분은 비밀에 부쳐라.”
“존명!”
진이 화린에게 다가왔다. 화린이 일어나 한 번 더 황제에게 절을 하였다.
“아바마마, 만수무강하십시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린은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황제가 따뜻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한번 불러 주었으면 하였는데, 그러지 않아 조금은 섭섭하였다.
화린이 진을 따라 황제의 침소를 나가자, 황제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미안하구나.”
이럴 때는 황제라는 자리가 그리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