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52)
구룡전기-52화(52/217)
구룡전기 (52)
화린은 미옥에게서 화명상단에 관한 정보를 얻은 후에 우선적으로 공간 주머니 안에 있는 곡물을 처리할 생각을 하였다.
그래야 우기가 끝나고 중원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훔쳐 저장할 수가 있어서였다.
“섬서성은 화명상단의 안방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섬서성주도 쉬이 나의 부탁을 들어주긴 힘들 테니 섬서성을 제쳐 두고 많은 양의 곡물을 한 번에 처리하려면 영친왕 숙부밖에 없겠지.”
“팔로수로군의 사정에 정통한 자가 필요한데 서 총관이 알고 있는 자가 있을까 모르겠군.”
황궁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였으니 두루두루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일단 만나서 물어보면 되겠지.”
화린은 상남현의 별장으로 갔다.
거칠게 쏟아지는 비를 막기 위해서 초의를 입고 있지만 빗물은 화린의 초의에 닿지 않고 무영의 기운에 튕겨 나갔다.
느긋한 걸음으로 이동하는 화린은 산양현을 출발한 지 반 시진이 흘러서야 상남현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지만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소리가 장원 밖에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린이 장원 안으로 들어가자, 일을 하는 노복이 달려와 화린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비가 많이 오는데 일을 하고 계세요? 그냥 쉬시지.”
“아닙니다. 비 오고 바람 불면 낙엽이랑 나뭇가지들이 바닥에 떨어져 장원이 엉망이 되니 얼른 치워야 합니다. 이 비가 하루 이틀 올 비도 아니고 말입니다.”
화린은 자신이 입고 있던 초의를 벗어서 노복에게 입혀 주었다.
“어이쿠…….”
노복이 몸을 살짝 움츠리자, 화린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말린다고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이 초의라도 입고 일하세요. 귀찮다고 입지 않으면 나중에 병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화린은 노복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여 주곤 물었다.
“혹시 주방에 남은 술이 있습니까?”
“술은 항상 조금씩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럼 주방에 이야기해서 간단한 주안상을 차려 퇴청마루로 가지고 오라고 전해 주세요.”
“퇴청마루에요? 방으로 드시지 않고요?”
“아이들 공부하는 소리 좀 들으려고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게 정겹거든요.”
“허허, 그렇지요. 요즘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 같아 일하는 우리들도 재미나고 그럽니다.”
“그래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우리도 덩달아 웃게 만들고, 또 엉뚱한 행동이나 생각은 기발하다 못해 참신하여 우리도 배울 때가 많으니 말입니다.”
화린은 노복의 말에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자라면서 평생 웃을 웃음을 선물한다고 하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주방에 이야기해서 주안상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리하십시오.”
노복이 주방으로 가고, 화린은 퇴청마루에 앉아 아이들이 공부하는 소리를 들었다.
화린은 누구에게 글을 배운 적이 없다. 홀로 글을 깨우쳤고, 말을 익혔다.
그래서 아이들의 공부하는 소리가 부럽기도 하였다.
잠시 있으니 한 노파가 주안상을 가지고 와서는 화린의 앞에 놓고는 말을 하였다.
“많이 즐거워 보이십니다, 황자님.”
화린은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노모가 봐도 그리 보여요?”
화린은 그녀에게 노모라 불렀다.
그녀는 화린이 황궁에서 생활할 때 화린의 수발을 들었던 소용인이었다.
종복인 차상인은 함께 오지 못하였으나, 소용인은 화린이 황궁을 떠날 때, 황제가 화린을 위해서 함께 보내 준 사람이었다.
“네. 그리 보입니다.”
화린은 노모 소용인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소용인은 화린에게 고개를 숙인 후에 돌아갔다.
홀로 퇴청마루에 앉아 술을 한 잔 먹으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비가 와서 좋은 점도 있긴 한데 이런 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군.”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겠지.”
―자왈 익자삼요, 손자삼요, 요절예약, 요도인지, 요다현우, 요교락, 요일유, 요연락이라.
―맹우가 그 뜻을 말하여 보아라.
―좋아하는 일 가운데 유익한 것이 세 가지요, 해로운 것 또한 세 가지이니, 자신의 행동을 예악의 범주 안으로 절제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훌륭한 점을 말하기를 좋아하며 현명한 벗이 많음을 좋아하며 유익하고 교만의 즐거움을 좋아하고 일 없이 편안하게 놀기를 좋아하니 연회에서 먹고 마시는 걸 즐기면 해롭다는 뜻입니다.
―오…….
―그래. 잘하였다. 맹우는 열심히 공부를 하니 유익한 것 세 가지를 잘 가려서 얻을 것이고, 만수 저놈은 공부를 게을리하니 해로운 것만 세 가지를 좋아할 것이다.
―아닌데요.
―이 녀석, 왜 아니라 말을 하느냐?
―저는 맹우와 친한 친구인데요. 벌써 좋은 벗을 한 명 사귀었으니 해로운 것 중 하나는 빼 주세요.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린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겼다.
“좋네.”
아이들의 공부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 잔, 한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술병에 술이 다 비워졌다.
“비 온다고 애들 공부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닌가? 하긴 뛰어놀 곳도 없으니 진득하게 앉혀 놓고 공부를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지.”
화린이 빈 술병을 보고 한 병 더 달라고 말하려 할 때,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끝났군.”
곧 아이들이 방에서 우르르 나왔다.
“장주님, 안녕하세요.”
한 아이가 화린을 향해 인사를 하자, 뒤를 따라 아이들이 줄줄이 인사를 하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공부는 열심히 하였고?”
“네.”
“그래. 뭐든 열심히 하면 먹고사는 일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라.”
아이들은 씩씩하게 대답을 한 후에 별채로 달려갔다.
“이 녀석들, 그리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듣겠느냐.”
노복이 아이들을 향해 소리치자, 그제야 조심하는 듯했으나 별채의 큰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다시 아이들답게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오셨습니까?”
서대영이 화린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하였다.
“술이나 한 병 더 달라고 말을 하고 앉지.”
“이미 앉았으니 앉아서 말하겠습니다. 어르신, 술 한 병만 부탁드립니다.”
노복을 향해 말을 하자, 노복이 알았다고 대답을 하며 주방으로 갔다.
“오늘은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팔로수로군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 싶어서 말이야.”
“팔로수로군이면 영친왕 전하의 군영이 아닙니까?”
“실은 팔로수로군을 상대로 장사를 해 볼까 해서.”
“장사요?”
“곡물을 조금 얻은 것이 있는데 그걸 팔아 이윤을 남길 생각이야.”
“곡물을 말입니까? 양은 얼마나 됩니까? 몇 가마니 같으면 취급도 안 해 줄 겁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고.”
“아니, 영친왕 전하를 만나서 팔면 될 텐데 팔로수로군의 아랫것들을 만나려고 하는 겁니까?”
“나도 그러고 싶은데 숙부는 나의 얼굴을 알아도 내가 숙부의 얼굴을 몰라. 그리고 나의 신분을 자주 드러내면 안 좋아. 황제 폐하께서 원치 않는 일이기도 하고.”
화린의 입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서대영이었기에 화린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쉽게 가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어렵게 가려고 하는 화린의 행보가 의아하기도 했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없어?”
“있긴 있습니다. 팔로수로군의 청룡군의 장수로 있는 자인데 동창에서 팔로수로군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그의 비리를 눈감아 주고 정기적으로 정보를 얻는 놈이 있긴 합니다.”
“그놈은 곡물을 파는 데 도움이 되는 놈이야?”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군수품을 담당하고 있으니 말만 잘하면 청룡군 쪽은 어찌어찌하여 곡물을 팔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놈 이름은?”
“팔로수로군의 청룡군 소속 나진화 장군입니다.”
“나진화 장군. 따로 비리 같은 건 없고?”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예전에 군수품을 빼돌려 횡령해 먹다가 동창에 걸렸으니 말입니다. 제 버릇 개 못 주면 지금도 군수품을 빼돌려 자신의 욕심을 채울 겁니다.”
“그럼 며칠 알아보면 되겠네.”
“그리 하십시오. 그런데 곁에 숨어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서대영은 화린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이도문의 존재를 알고 물었다.
“눈치챈 거야?”
“처음에는 몰랐는데 미세하게 그림자가 움직이는 걸 봤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자세히 관찰하니 한 사람이 숨어 있더군요.”
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대영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도문의 존재를 알아차릴 만큼 뛰어날 줄은 몰랐다.
“그럼 따로 자리를 만들지 않아도 되겠군. 이번에 나의 안전을 위해서 새로 영입한 호법이야. 인사들 나누지.”
화린의 그림자 속에서 이도문이 나와서는 서대영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총관님을 뵙습니다. 주군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도문이라고 합니다. 주군과 구룡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아 이행하고 있습니다.”
서대영도 인사를 하였다.
“총관 서대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이 호법님.”
“자, 자, 이왕 이렇게 된 거 세 사람이 앉아서 한 잔들 하지. 노모!”
화린이 주방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술을 동이째로 가져다주세요. 안주거리도 조금 더 만들어 주시고요.”
* * *
“하오문이 팔로수로군의 정보도 취급하나? 군 전용 정보라면 동창이 최고이긴 한데, 그놈들이 아직 비선을 이용하는지 모르겠군.”
화린 역시 군 생활을 오 년 동안 한 경험이 있기에 군대에 대한 체계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특히 정보에 민감한 특수부대에 있었기에 군 정보기관과 관련된 자들 중 아는 이들도 몇 명이 있었다.
“감숙성으로 가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한 번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섬서성에서 감숙성으로 가는 건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자신의 경공술이면 오가는 데 열흘이면 충분하였다.
“이 호법!”
“옛, 주군.”
“내가 감숙에 다녀오는 동안 장원을 부탁해.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사당의 당주가 찾아오면 기다리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화린은 섬서성의 일은 이도문에게 맡기고 자신은 곧장 감숙성으로 향해 출발하였다.
자신의 경공술을 발휘하여 최대한 빠르게 이동을 하였는데, 천마가 하늘을 빠르게 날아 이동한다는 천마행공이라는 공공문의 상승 경공술법을 이용하였다.
신법과 보법으로는 공공문을 따라올 문파가 없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공공문의 신법과 보법은 독창적이고, 독보적이었다.
화린은 오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빠르게 감숙성으로 이동하였다.
그럼에도 섬서성 산양현에서 감숙성의 주천시까지 도착하는 데 닷새나 걸렸다.
감숙성의 주천시에 도착한 화린은 객잔에 들러 방을 잡은 후에 잠부터 청했다.
닷새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도 많이 피곤하여서였다.
낮에 방을 얻어 잠을 청한 화린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오랜 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것을 보면 닷새 동안 내공을 사용하여 이동한 것이 몸에 무리가 많이 가긴 한 모양이었다.
“늙었군.”
이전에 군 생활을 할 때는 이 정도의 이동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피곤함을 느끼는 걸 보니 그동안 몸이 많이 편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맹호사사혈전대에 대해서 알아보고 나진화 장군에 대해서 알아보면 되겠지.”
화린은 짐을 챙긴 후에 방을 나섰다.
주천시의 시전 거리 뒤쪽에는 작은 공방들과 골동품 상인들이 상점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화린은 그중 가월이라는 골동품 상점을 찾았다.
“어서 오십…… 허억!”
점원은 화린을 알아보고는 귀신을 보는 듯하였다.
“왜, 말을 하다 멈춰?”
“아니, 아닙니다. 어서 오십시오.”
“홍 대인은?”
“아…… 안에 계십니다.”
화린이 점원을 지나쳐 골동품 상점 안으로 더 들어가자, 배가 조금 나온 사람이 의자에 앉아 청자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거 진짜야?”
홍 대인이라 불리는 사내는 화린의 목소리를 듣자,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 여파로 감상하던 청자가 탁자 위로 넘어지며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자장…… 차아앙!
청자가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모습에 홍대인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이…….”
이를 갈며 몸을 획 돌리며 화린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지만 곧 옛 기억이 떠올랐는지 금방 꼬리를 내렸다.
“깨져도 가만히 있는 걸 보니 가짜인 모양이군. 그건 그렇고 홍 대인, 석식은 잡쉈어?”
“화린 조장이 여긴 왜……? 전역했다고 들었는데.”
“몇 가지 알려 주면 조용히 가고, 그러지 않으면 깽판을 치고. 선택은 홍 대인이 하는 거야, 행동은 내가 하는 거고.”
화린의 말에 홍 대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궁금한 거 알려 줄 거야? 아니면 내가 지랄 떠는 걸 볼 거야?”
홍 대인을 보며 미소를 가득 지은 채 말하였다.
“알고 싶은 것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