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54)
구룡전기-54화(54/217)
구룡전기 (54)
“하남성의 혈사파 놈들이었습니다.”
“하남성의 혈사파가 왜 우리를?”
화린은 이해가 되지 않아 이도문에게 물었다.
“영천상단의 동서독이 관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서독의 이름을 듣자, 눈을 좁히는 화린이었다.
“동서독이 하오문을 통해서 아들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아본 모양입니다. 하오문은 동서독이 우리에게 청부를 넣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를 유추하여 주군께서 아들을 죽였을 수도 있다고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였는데 동서독이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 듯합니다.”
“동서독이라면 음사문과도 친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하지만 음사문은 주군을 치는 데 잠시 망설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종남과 화산의 관계를 생각한 모양입니다.”
화린은 그걸 노리고 종남파의 송철 장로와 친분을 만들었다.
“사도형의 감이 좋은 모양이군. 전에 나에게 죽었던 자들의 복수도 미루고, 동서독의 부탁도 거부할 정도면 말이야.”
“그런데 주군, 하남성의 혈사파는 사혈맹의 하남성 지부를 겸하고 있는 문파입니다.”
“알고 있어. 무림에 나올 때, 그 정도는 조사하고 나왔으니까. 혈사파는 일단 두고 동서독을 족쳐야지. 장손이 죽고 둘째와 셋째가 동시에 죽으면 볼만할 거야. 이 문제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알겠습니다.”
“그럼 난 하남성에 들렀다가 강소성까지 가서 일을 보고 올 테니까 시간이 걸릴 거야.”
“장원은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화명상단이 석천파를 끌어들이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석천파의 무인들이 장원의 담을 넘게 되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는지 뼛속 깊이 새기게 될 것입니다.”
장담하는 이도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화린은 장원을 이도문에게 맡기고 볼일을 보기 위해서 장원을 나섰다.
화린은 하남성으로 가기 전에 산양현에 들러 구룡장의 별장에서 서대영을 만났다.
“그렇다면 이곳도 안전하지는 않겠군요.”
“그러니 알아서 잘 해. 여차하면 영업장에 나가 있는 호위 무사들 모두 불러들여 장원과 아이들을 지켜.”
“적을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으니 일단 호위 무사들을 장원으로 불러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호위 무사들은 화린이 황궁을 떠날 때, 황제가 직접 화린에게 내려 준 호위 무사들이었다.
동창과 금의위에서 제법 뛰어난 무공을 지닌 자들인데 황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황궁을 떠나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구룡장도 신경을 좀 써. 이 호법에게 맡겼는데 전직이 살수들이라 정공법을 사용하는 무인들에게는 조금 약한 면이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호위 무사들을 장원으로 불러 놓고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본장으로 가서 있겠습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야. 이번에 다녀오면 우기가 끝날 것 같으니까 그때 함께 화산파에 구경이나 다녀오자고.”
“화산파에 왜?”
“화산지회라고 검을 익힌 후기지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대회를 여나 봐.”
“화산지회요?”
“그래. 나와 총관은 후기지수에 들어가잖아. 그러니 어떤 경쟁자들이 있는지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다녀오시면 화산으로 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럼 다녀올 테니까 뒷일을 부탁해.”
화린은 서대영에게 총괄을 맡긴 후에 하남성으로 출발하였다.
* * *
하남성은 중원의 중부에 위치한 성이다. 이곳 역시 섬서성과 마찬가지로 무림에서는 정파의 위세가 대단한 곳으로 하남성 숭산에는 소림파, 개봉에는 개방의 총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흑도라 불리는 녹림의 총채주인 녹림투왕 역도산이 대별산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천중산을 비롯하여 평성산, 광산에 위세가 등등한 녹림채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혈사파를 비롯하여 사파 역시 하남성에 많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소림과 개방의 위세를 업고 있는 정파에 힘으로 밀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혈사파는 흑도인 녹림채와 손을 잡고 정파의 팽창을 견제하며, 나름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실상 소림과 개방이 나서면 힘겹게 맞추고 있는 균형도 단숨에 깨어진다는 것을 혈사파나 녹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남성에서는 사파가 정파를 도발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정파가 사파나 흑도를 자극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섬서성이나 하남성은 다른 성에 비해서 무림의 다툼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곳이기도 하였다.
화린은 하남성에 도착하여 혈사파가 자리를 잡고 있는 성도인 정주로 갔다.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는 하남성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낙양이나 개봉보다 덜 발전된 곳이다.
그렇다고 하남성이 운남, 광서, 귀주, 감숙성처럼 발전이 뒤처진 성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도인 정주만큼은 낙후된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낙양과는 정말 너무도 다른 곳이구나.”
소림의 숭산이 있는 낙양은 많은 관광지는 물론 황하의 물길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많은 발전으로 인해서 늘 인산인해를 이루어 백성들이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비해 성도인 정주에 사는 백성들은 삶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화린이 하남성 정주로 온 이유는 사혈맹의 지부인 혈사파가 정주에 위치하고 있어서였다.
화린은 객잔에 들러 방은 잡은 후에 하남성으로 이동하면서 피곤함을 느껴서인지 잠을 먼저 청했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니 날이 어둑어둑해졌고, 화린은 객잔의 식당에서 석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운 후에 객잔을 나섰다.
객잔을 나설 때는 이미 날이 져서 어두운 밤이 되었다.
마침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어 거리에서 사람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와 짙은 어둠이 화린의 모습을 순식간에 감싸며 객잔 안의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어디를 가누.”
점소이는 그런 화린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이 되는 듯 말을 하였지만 화린은 그 말을 듣지 못하였다.
혈사파의 장원은 정주에서도 제법 크고 넓은 곳으로 장원 안에 안채와 별채가 있는 내원의 건물들을 제외하고도 건물이 다섯 개가 더 있었다.
혈사파의 문도들이 거하는 곳과 식솔들이 거하는 건물들이었고, 외에도 문도들이 수련할 수 있는 연무장과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건물까지 따로 지어져 있어 제법 넓은 부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 혈사파의 위치를 한 번 듣고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화린은 단번에 혈사파의 장원을 찾아 은밀하게 담을 넘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담 위로 올라선 화린은 곧장 가까운 건물이 지붕 위로 뛰어올라 자세를 낮추었다.
우기라 그런지 혈사파의 밤 경계를 서는 무인들이 조금은 허술하게 보였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로 인해서 누가 이 밤에 찾아올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인해서였다.
화린은 잠시 지붕 위에 엎드려 있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 모습이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동함에도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화린은 경비를 서는 무사들의 시선을 피해서 건물의 지붕 위로 옮겨 다니며 안채를 찾아 이동하였다.
혈사파의 안채를 찾은 화린은 곧장 안채로 들어가기보다 잠깐 동안 기다렸는데 그 이유는 날은 어둡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안채에 있는 사람들이 잠을 청하기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화린은 자신의 내공을 이용하여 안채에 있는 사람들을 살폈는데 제법 시간이 지나서야 안채에 있는 사람들의 호흡이 대체로 안정적이고 고르다는 것을 느끼고는 움직였다.
화린의 신형이 마치 지붕 아래로 쏙 꺼지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는데 다시 모습을 나타내었을 땐 어느새 안채 안으로 들어선 후였다.
안채 건물 안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고, 별채의 방까지 합치면 못해도 방이 스무 개는 되었다.
방들 중 비어 있는 방도 있었지만 두세 사람이 함께 잠을 자고 있는 방도 있었다.
화린은 가장 큰 방을 찾아 움직였다.
화린은 허공에 떠서 움직이는 부운행공이라는 신법을 응용하여 허공을 걸어 이동하였다.
하늘을 걸어서 이동한다는 천상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응용한 보법인 만큼 천상제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건물 안을 이동할 때는 천상제보다 더 효율이 좋은 보법이었다.
화린은 큰 방을 찾은 후에 문도 열지 않고 곧장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 모습을 보았다면 귀신이라고 소리를 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이 고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혈사파의 장문인인 혈수무정 나성기와 그의 부인인 이란이었다.
이란 부인 역시 사파의 고수로 산동성을 대표하는 사파 문파 백마사의 장문인인 이천국의 딸이었다.
화린은 잠을 자고 있는 두 사람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이렇게 감이 떨어지는 자가 어떻게 한 문파의 장문인이 될 수 있는 거지.”
화린은 곧 죽을 위기에도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는 나성기와 이란 부인을 보며 어이가 없는 듯하였다.
“뭐, 그럼 나야 편하지.”
화린이 품에서 살황묵혈소를 꺼내 내공을 불어넣자, 살황묵혈소에서 검신이 튀어나왔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예기를 품은 살황묵혈소의 검날은 운석에서 소량으로 얻을 수 있는 운철이라는 천고의 광물로 만든 것으로, 그 어떤 광물보다 단단하고 탄성이 뛰어난 검이었다.
화린이 자고 있는 나성기의 심장을 향해 살황묵혈소를 찌르자, 나성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시 감기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그런 후에 화린은 내공을 일으켜 살황묵혈소에 불어넣었는데, 화린의 내공이 살황묵혈소를 통해서 나성기의 심장으로 전달되더니 그대로 얼려 버렸다.
화린이 살황묵혈소를 뽑자, 검신은 피조차 묻지 않고 깨끗하였다.
화린은 곁에서 자고 있는 이란 부인을 보더니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살려 줄까, 아니면 함께 죽여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 줄까 하는 그런 고민이었다.
“뭐, 죽일 놈 많은데, 문파 뒤치다꺼리하려면 정리할 사람도 필요하니 살려 두는 걸로 하지. 그리고.…….”
화린은 묘한 미소를 지었는데 이란 부인을 통해서 뭔가를 원하는 걸 얻고자 하는 것 같았다.
화린은 이란 부인의 수혈을 짚어 깊은 잠에 빠뜨린 후에 나성기가 모아 둔 재산을 찾기 위해서 방 안을 뒤졌다.
“저기 있군.”
화린은 나성기의 비밀 금고는 물론 이란부인의 패물까지 모두 찾아내어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챙긴 후에 이들의 방을 나섰다.
신기하게도 화린이 방 안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었지만 죽은 나성기의 몸에서는 피가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 * *
간밤의 폭풍우가 지나간 혈사파는 아침에 되어서야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누군가가 혈사파에 침입하여 혈사파의 장문인인 나성기를 비롯하여 그의 두 아들과 문파의 장로 세 명을 암살한 사건이 일어나서였다.
간밤에 여섯 명이나 죽었는데 이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나성기의 가문인 혈사파의 대가 끊어져 그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란 부인은 혈사파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흉수를 찾기 위해서 문파의 무사들에게 흔적들을 찾으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흉수에 대한 흔적은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간밤에 비가 억수같이 내렸으니 침입자가 들어왔으면 바닥에 빗물 자국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국조차 찾을 수가 없어서였다.
“정주의 객잔에 머무는 자들 중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자들, 특히 검을 소유한 자들을 찾아라.”
그녀의 명령에 혈사파의 무인들이 나와 정주 시내로 흩어졌다.
“사마 총관은 하오문으로 가서 어제저녁에 움직인 자들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형수님…….”
“지금 저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가득하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왜 그이와 나의 아들들 그리고 장로들만 죽인 것인지?’
그러면서 그녀의 시선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는 나성기의 두 동생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