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56)
구룡전기-56화(56/217)
구룡전기 (56)
거래
화린은 남궁세가의 남매와 즐거운 대화를 나눈 후 화산파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이별을 하였다.
그런 후 낙양루에서 하루 더 머물며 혈사파에 대한 소식을 들은 후에 안휘성을 거쳐 강소성으로 넘어갔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고, 모처럼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경공술을 펼쳤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공간을 접어서 이동한다는 축지와 비슷하였다.
무림에서 축지를 경공술의 한 종류로 분류를 하고 있지만 도가에서는 축지를 무공이 아닌 도술, 즉 신선술로 분류하고 있다. 축지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이 있지만 분명한 건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능력으로 경지를 뛰어넘어야 펼칠 수 있는 그런 공부 중 하나란 것이었다.
화린이 펼치는 건 축지라기보다는 배교의 비전 술법과 무공의 합일로 이루어 낸 경공술로, 화린의 입장에서는 무공보다는 술법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화린은 그렇게 강소성 홍택호에 도착한 후 객잔이 아닌 기루에서 방을 얻었다. 술을 시킨 뒤 기녀들을 모두 내보내고 잠을 잤는데 눈을 떴을 때는 밤이 다 지난 새벽이었다.
“정신없이 잔 것 같군.”
화린은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는 몸을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여 보았다.
“내공의 소모가 너무 심하고 몸에 무리가 가는 술법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화린은 눈앞에 있는 술상을 보더니 술과 함께 놓인 안줏거리를 집어 먹으며 배를 채웠다.
“여기 루주인 채화가 나진화 장군의 첩이라고 그랬지.”
화린은 루주인 채화의 용모파기는 알 수 없지만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은밀하게 방을 나섰다.
화린은 방을 나와 은밀하게 이동하다 기루에서 일하는 한 여인을 발견한 후에 그녀에게 접근하여 물었다.
“루주인 채화의 방이 어디지?”
“루주께서는 별채에 딸려 있는 독채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저 아래 있는 별채를 말하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그럼 루주는 기루에 오지 않느냐?”
“큰일이 없으면 별채에서 손님을 맞으십니다.”
화린은 알았다는 말을 하고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여인은 잠깐 서 있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녀는 화린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지 잠깐 의아해하더니 제 갈 길을 갔다.
화린은 일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별채에 딸려 있는 독채에 접근을 하였는데 독채에서 여인의 옅은 교성이 들렸다.
“나진화 장군이 온 건가? 부장들과 함께 다니지 않고 혼자 오나? 별채가 비워져 있는데. 첩이라 숨기는 건가?”
화린은 어찌할까 잠깐 생각하다 이들의 정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남자의 정력이 강한 것인지, 여자의 욕정이 센 것인지 몰라도 이들의 정사는 한참 동안 지속되었고, 화린은 기다리다 짜증이 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동물도 아니고……. 색목국의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하지 않는데.”
간간히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들어 보면 남자의 정력보다는 여자의 욕정이 강한 듯하였다.
무엇보다 루주인 채화는 나진화 장군과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청년과 있는 듯했다.
“훈련이다 뭐다 해서 오지 않는 날들이 많으니까. 남자를 알아 버린 젊은 여자의 입장도 이해는 해. 뭐, 나에게는 협상할 거리가 더 많이 생기니 좋은 일이기도 하지. 채화가 저리 보채는 걸 보면 한두 명 숨겨 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화린이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뭐, 한 번에 거래가 성사되면 좋은 거지.’
* * *
팔로수로군의 강소성 군영에 밤임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피워 놓은 불과 영지를 순찰하는 병사들이 들고 다니는 횃불로 안과 주변이 훤하였다.
화린은 밤의 어둠을 이용하여 팔로수로군의 강소성 군영에 침투하여 청룡군 소속의 나진화 장군을 찾았다.
“청룡군의 막사는 군영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나진화 장군의 막사는 청룡군의 대장군인 채무송 장군의 막사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라고 하였지.”
사전에 들은 정보를 토대로 화린은 경계를 서는 군인들의 시선을 피해 나진화 장군의 막사로 숨어 들어갔다.
“드러러렁…… 드러러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나진화 장군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화린이 의자를 하나 가지고 와 그의 침구 앞에 놓은 후에 앉았다.
그런 후에 나진화 장군을 깨웠는데 그 방법이 조금은 과격하였다.
퍼억! 쿠다다다당!
“뭐야!”
자다가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 소리치며 바닥에서 일어난 나진화는 눈앞에 한 청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 놈이냐?”
“소리쳐도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으니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는 것이 어떻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도움이 많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객이냐? 누가 보낸 것이냐?”
“아, 그 사람…… 일단 앉아서 이야기 좀 하자니까.”
나진화 장군은 화린의 말투에 눈을 좁혔다.
“일단 이것부터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한번 보시고.”
화린은 서책 한 권을 침구 위에 던져 주었고, 나진화는 책과 화린을 번갈아 보며 눈을 좁혔다.
“무슨 수작이냐? 여봐라, 밖에 누가 없느냐!”
소리를 치는 나진화를 보며 화린이 짜증 나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분명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계속 짜증 나게 하면 목 날려 버린다.”
강한 살기를 일으키며 나진화를 겁박하자, 그가 흠칫하며 입을 닫았다.
“일단 읽어 봐.”
목을 옥죄는 살기에 움찔한 나진화는 침구 위에 놓은 책을 집어 책장을 넘겼다.
책을 보는 나진화의 손이 점점 빨라지더니 경악하는 표정을 짓고는 화린을 보았다.
“네가 한 거 맞지?”
“이걸 어떻게…….”
너무 놀라 자신이 그동안 빼돌린 군수품과 군수품 대금을 부풀려 돈을 횡령한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영친왕부에서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러한 사실을…….”
화린은 품에서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금패를 나진화에게 던져 주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정교하게 새겨진 금패로, 화린이 당금 황제의 아홉 번째 아들임을 증명하는 금패이기도 하였다.
화린이 나진화의 첩들에 대한 몇 가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시간을 허비하여 나진화와 이런저런 대화를 할 시간이 없어 자신의 황제의 아들임을 밝혔다.
“들어 봤을 거야. 폐하의 아홉 번째 아들인 그림자 군주에 대한 소문을 말이야.”
“하면 당신이……”
“그래.”
“소문에 의하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고 하던데.”
“그건 병을 치료하니 깨끗하게 낫더군.”
“믿을 수가…….”
“그럼 뭐, 죽어야지.”
냉정한 한마디에 나진화가 황급하게 말하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구황자님께서 어찌하여 황궁이 아닌 이곳에…….”
“형님들과 누님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폐하께서 출가를 허락해 주셨지.”
나진화는 긴가민가하였다. 하지만 화린이 보여 준 패는 황제의 아들임을 알리는 진짜 황룡패였다.
“나진화 장군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으니 부탁 하나 들어주면 그걸 알고도 모른 척해 주지.”
“부탁이라니, 무슨 부탁 말씀이십니까?”
일단은 고개를 숙였다. 다른 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알아봐도 되니 일단은 고분고분하기로 하였다.
“듣자 하니 화명상단에서 들어와야 할 곡물이 안 들어오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야?”
화린은 어느 순간부터 편하게 말을 하며 하대를 하였다.
“그렇습니다.”
“그 곡물을 내가 줄 수 있는데 이번에 거래처를 바꾸는 것이 어떤가?”
“황자님께서 곡물을 말입니까?”
“황궁을 나와서 먹고살려고 이것저것 손을 대는 중인데 때마침 곡물을 수입하여 팔 기회가 생겨서 장군을 찾아와 이리 부탁을 하는 거야.”
‘어떤 새끼가 부탁을 이렇게…….’
“하지만 곡물은 화명상단에서 우기가 끝나면 납품을 한다고 약조를 하였기에…….”
“못 하면? 그리고 지금 전쟁을 대비해서 축적해 둔 곡물을 몰래 풀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건…….”
“그 핑계로 화명상단에서 돈도 좀 받고, 곡물도 좀 빼돌리고 한 것이잖아.”
“황자님, 그게…….”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때?”
“어떻게?”
“우기가 끝나고 화명상단에서 곡물을 납품하지 못하면 그때는 나와 거래를 하는 거야.”
“황자님과 말입니까?”
“그래. 이 정도 양보하면 나도 할 만큼은 한 것 같은데.”
“만약에 화명상단에서 곡물을 납품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그럼 지금처럼 살면 되는 거지. 화명상단이랑 거래를 계속하고, 군수품도 빼돌리고, 횡령도 하고 말이야.”
그러면서 화린은 손으로 목을 날리는 시늉을 하였다.
‘놈을 죽여 버릴까?’
나진화는 머릿속으로 화린을 죽이기 위해서 자신의 동선을 생각해 보았다.
‘침구를 뛰어넘어 발차기를 하는 척하면서 놈이 피하면 검기대에 놓인 검을 잡아들고 단숨에 놈의 목을…….’
“잔머리 굴리지 마.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어? 내가 소리를 차단시켰다고 말이야.”
나진화는 흠칫하였다.
“소리를 차단할 정도면 내가 무공을 어느 정도 익혔는지 짐작할 텐데. 그리고 군영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이곳까지 왔다면 최소한 너보다는 뛰어난 고수라는 걸 알아야지.”
화린의 말에 나진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럼 우기가 끝나고 보는 걸로 하지. 그때는 내가 아닌 장군이 나를 찾아와야 할 거야.”
“제가 말입니까? 어디로…….”
“섬서성 산양현에 있는 구룡장으로 말이야.”
화린이 이렇게 자신의 거처를 알리는 이유는 황궁에서 자신이 거처를 알고 있는 이들이 몇 명 있을 것이라 짐작을 하고 있어 나진화 장군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야. 특히 나의 형님들과 누이들에게는 말이야.”
‘설마 가짜?’
화린은 나진화 장군의 눈빛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 명패는 우기가 끝나고 화명상단이 곡물을 가져오지 못했을 때, 구룡장으로 와서 돌려주면 돼.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명패로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 보란 뜻이었다.
“영친왕 숙부를 찾아가 물어보면 가장 빠르겠지. 아니면 채무송 대장군을 찾아가도 확인해 볼 수 있을 거야.”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나와 거래를 하면 손해는 보지 않을 거야. 최소한 새는 바가지는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새는 바가지요?”
“오늘 좋은 대화를 나누었으니 이것도 알려 주지.”
화린은 품에서 또 다른 서책을 꺼내어 나진화에게 주었다.
나진화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서책의 책장을 넘겨 보더니 눈을 좁혔다.
한 장, 한 장 읽더니 손을 부르르 떠는데 그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는 모습이었다.
“내 이것들을 당장…….”
“그래도 소화 부인께서는 나 장군의 건강과 안영을 위해서 매일매일 불공을 드리더군. 조강지처 놓아두고 젊은 여자 너무 좋아하지 마.”
“구황자님…….”
“내가 관상도 조금 볼 줄 아는데, 나 장군의 재물은 소화 부인에게서 나오는 거야. 소화 부인을 버리는 순간 나 장군은 나락으로 떨어질 거니까 소화 부인에게 잘해.”
고개를 숙이고 붉어진 얼굴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나진화는 막사 안에 바람이 부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있어야 할 화린이 사라지고 없었다.
“황…… 자…….”
―앞으로 좋은 거래를 할 것이라 알고 알려 주는 것이니 명심해.
머릿속에 울리는 화린의 전음과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황룡패가 방금 일어난 일이 꿈이 아님을 알려 주었다.
“아, 시✕! 제대로 코 꿰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