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62)
구룡전기-62화(62/217)
구룡전기 (62)
비가 많이 내림에도 불구하고 화산파로 향하는 젊은 무림인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화산파로 가는 이들도 있고, 홀로 가는 이도 있었다.
중년의 무인이 어린 무인들을 인솔해서 가는 모습도 보였고, 여인들끼리 화산파로 가는 모습에 사내들이 추파를 던지는 모습도 간혹 보였다.
그럴 때면 시비가 일어나곤 하지만 중간중간에 불의에 의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화산파의 고수들이 배치되어 있어 이를 중재하곤 하였다.
화린과 서대영은 느긋한 걸음으로 화산파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들 앞에 몇몇 무인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화산파가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가 있나? 산이라 땅이 넓어 상관이 없으려나?”
화린이 혼잣말을 하듯 말하자, 곁에서 걷고 있던 서대영이 말하였다.
“입구에서 일 차 면접을 본다고 합니다.”
“면접?”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자들만을 산문 안으로 들여보내 주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얼굴만 보면 상대의 무공을 어느 정도 파악하나?”
“간단한 시험 정도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겠습니까? 가령 통나무를 나무로 단칼에 베는 그런 시험 말입니다.”
“설마, 화산이 그런 불공정한 시험을 치르겠어?”
“불공정한 시험이라니요?”
“실력이 없어도 검이 품고 있는 예기를 이용해서 통나무를 자를 수도 있잖아.”
화린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그런 검은 신검, 마검, 사검이라 이름이 붙여진, 중원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검일 것이다.
“그런 검을 들고 있는 것 자체가 검의 고수가 아니겠습니까? 지키지 못할 보물은 재앙의 근원이 될 테니 말입니다.”
“하긴 그렇겠지. 그래도 공정성이라는 것이 있잖아. 안 그래?”
“오랫동안 화산파에서 화산지회를 열었으니 나름 방법이 있겠지요. 그런 걱정 마시고 얼른 산을 오르십시오.”
“그렇겠지.”
“그런데 장주님.”
“왜?”
“왜, 그리 허술하게 보이려고 그러십니까? 이런 모습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뭔가 다른 꿍꿍이 있는 겁니까?”
서대영이 묻자, 화린이 히죽 웃었다.
“내가 남궁세가의 남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다고 그랬지.”
“그랬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은근히 사람을 깔보고 말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
“그래서요?”
“내가 그들보다 잘났다고 쳐. 그럼 얼마나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겠어.”
화린의 말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장주님한테 왜 그런 마음을 가집니까?”
“그럴 것 같지. 봐 봐, 내 말대로 될 테니까. 소위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십대세가와 구파일방 그리고 조금 큰 문파나 세가의 애들은 자기보다 잘난 놈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
“장주님의 말씀대로라면 이곳도 황궁이나 다를 바가 없는 곳 같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대화를 하며 화산에 오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산문에서 시험을 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입니다. 줄이 이렇게나 길게 선 걸 보면 말입니다.”
그때 고개를 숙이고 화산파의 산문을 내려오는 사내가 있어 서대영이 물었다.
“이보오, 말 좀 물읍시다.”
“올라가 보면 압니다.”
서대영이 무엇을 물으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 듯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고 산을 내려갔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요!”
한 사람이 억울한지 산문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곧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내려왔다.
“대단한 고수가 있나 봅니다. 기운으로 상대를 누를 정도면 말입니다.”
“내공도 없는 사람들을 겁주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그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났을 때, 서대영이 먼저 화산에서 내 준 시험을 보았다.
“검으로 단칼에 볏짚 열 개를 베면 됩니다.”
“그럼 저건 뭡니까?”
“일단 이것부터 통과를 하시면…….”
서걱!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열 개의 볏짚이 대각선으로 베어져 옆으로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저것도 시험에 쓰는 도구입니까?”
서대영이 묻자, 화산의 제자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볏짚을 베어버릴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설명을 좀 해 주십시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화산의 제자가 물었다.
“내공을 익혔습니까?”
“그렇습니다.”
“내공을 이용하여 묵강철 덩이를 검으로 힘껏 내리치시면 됩니다.”
서대영이 단전의 기운을 움직이자, 주위에 묘한 공기의 흐림이 나타났다.
이를 본 화산의 장로가 흠칫하는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말을 하였다.
“그만!”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서대영은 그 소리를 듣고 내공의 운용을 멈추었다.
‘내공의 수발도 자유로운 자이구나.’
화산의 장로는 서대영의 모습에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와 말을 하였다.
“화산의 화영이라고 합니다.”
지난날 소수신공이 섬서성에 나타났을 때, 화산의 산문을 내려와 구룡장에서 머물렀던 화영 장로였다.
당시 서대영은 상남현 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기에 그를 만나 보지 못하였다.
“서대영이라고 합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화영 장로가 직접 서대영을 존중하는 모습을 본 다른 무림인들은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장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잠시 있다가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장주님이라면?”
서대영의 고개가 뒤에 있는 화린에게 향했고, 그의 시선에 따라 화영 장로의 시선도 화린에게 향했다.
“헛, 구룡장주님이 아니십니까?”
“안녕하십니까, 화영 장로님.”
화린은 화영 장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고, 화린이 구룡장주라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였다.
최근 섬서성에서 구룡장주의 선행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룡장주가 저리 젊은 사람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화산파와 잘 알고 있는 모양인데. 화영 장로라면 화산파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도 강한 고수 중 한 분이신데.”
사람들이 웅성이자, 화영 장로는 화린을 빨리 화산파 안으로 들여보내려고 하였다.
“화산지회에 참석하러 오신 것입니까?”
“어떤 분들이 오는지 알아보고, 또 같은 연배라 그들과 교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여 이리 찾아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장주님의 무공이라면 화산의 시험을 가볍게 통과하실 터이니 안으로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화영 장주님.”
화영 장로가 인정하여 화산파 안으로 들여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화산파의 산문을 넘어 들어선 화린과 서대영은 기다리고 있던 화산파 제자의 안내를 받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는 화린과 서대영을 백운관이 아닌 영전관으로 데리고 갔다.
영전관은 화산을 찾는 손님들 중에서도 귀한 손님을 모시는 곳으로 장원으로 비유하자면 외원의 별채가 아닌 내원에 딸린 별채와 같은 곳이었다.
“이쪽은?”
화린이 묻자, 안내를 하는 화산파 제자가 대답을 하였다.
“영전관입니다. 화영 장로님께서 이곳으로 모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말고 다른 분들도 계십니까?”
“구파일방, 십대세가 그리고 사파의 고수들을 비롯하여 화영 장로님의 안목에 의해 선별된 분들이 묵고 계십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지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벌써부터 벅차오르네요.”
서대영은 너스레를 떠는 화린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꿍꿍이지.’
화린을 오랫동안 겪어 보진 못하였지만 그래도 함께 생활하면서 현명하고 꽤나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영 흐리멍덩하고 실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안내를 받아 간 영전관은 넓은 터에 이 층 건물이 사각형을 이루며 네 동 지어져 있었는데, 사각형 모양으로 건물마다 담이 쳐져 있어 독립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연무장은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연무장에서 검을 들고 수련을 하는 이들과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무복이 다른 걸 보니 다른 문파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구파일방과 십대세가가 정천맹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있다고 이해관계를 따지면 이들의 관계는 조금 모호하니까.”
“장주님은 무림에 다니지 않으셔도 무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 생활을 힘들게 했잖아. 문파나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도 기득권이 가진 속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군 생활이라는 말을 듣고 서대영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도 화린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그 힘든 맹호사사혈전대를 전역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곳입니다.”
“방은 아무 방이나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 층 이백일 호 방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 저기……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무림의 명문 장원의 자제들이 머물고 계신 곳입니다.”
“세가가 아닌 장원?”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화린이 고맙다는 말을 하자, 화산파의 제자는 곧 돌아갔고, 화린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이 층 이백일 호의 방을 찾았다.
“제일 구석이네. 전쟁 나면 도망칠 곳도 없는 그런 곳 말이야.”
“그래도 보안은 최고인 방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일단 들어가서 좀 쉬자, 화산파를 너무 높은 곳에 만들어 놓았어. 올라온다고 사람 진을 다 빼니 말이야.”
방에 들어가자마자 누워 버린 화린은 눈을 감으며 말하였다.
“누가 나 찾아오면 무공 수련한다고 그러고 돌려보내.”
“찾아올 사람이 있습니까?”
“그건 모르지. 남궁세가의 남매가 찾아올는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있는 곳을 물어본 후에 나중에 찾아간다고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그리고 서 총관도 이제 좀 쉬어.”
“알겠습니다.”
화린은 서대영의 대답을 듣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화린의 몸에 옅고 은은한 빛을 발하는 막이 생겨났다가 화린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그 모습을 본 서대영은 호법을 서듯 화린의 곁에 정좌를 하고는 자신의 검을 다리 위에 올려다 놓았다.
“잠을 자면서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신공이 있다는 사실을 무림에서 알면 어떻게 될까?”
서대영의 말대로 화린은 잠을 자면서도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비술을 알고 있었는데 바로 배교의 비전 술법 중 하나인 몽유무원공이었다.
꿈에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이 몽유무원공을 무공으로 치면 경지를 넘어선 자가 심법을 통해서 무아지경에 빠져 자신만의 세상인 심상의 세계로 들어가 수련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다만 몽유무원공이 무공과 다른 점은 경지를 넘어서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술법의 수련을 통해서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펼칠 수가 있다는 것이 심상의 세상과 다른 점이었다.
“올 사람도 없을 테니 나도 심법 수련이나 해야겠다.”
서대영은 화린이 가르쳐 준 호령제천십팔검의 심법인 호령공을 운기하였다.
호령제천십팔검은 화린이 맹호사사혈전대에서 가르쳐 주는 맹호검에 실전을 통한 깨달음을 더하여 새로운 검술로 만들어 낸 검술이었는데 실전에는 상당히 유용한 그런 검술이었다.
고오오옹!
서대영이 호령공을 운기하자, 단전에 고요하게 잠자던 내공이 꿈틀거리더니 곧 단전을 빠져나와 심법의 유도대로 내공이 혈맥을 타고 움직였다.
서대영은 동창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높은 무공을 지닌 무인이자, 사고뭉치이기도 하였다.
그 역시 무공은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였지만 화린의 기준이 너무 높아 잔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검룡보다 한 수 아래라고 했단 말이지.’
서대영은 지난날 화린이 자신에게 한 말을 상기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주군이 아닌 이상은 상대가 누가 되었든 간에 그를 넘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