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64)
구룡전기-64화(64/217)
구룡전기 (64)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난 매산 진인을 만나 본 후에 돌아올 테니까.”
화린은 서대영에게 자신이 어디를 가는지 알린 후에 숙소를 나섰다.
매산 진인은 해시 말미에 보자고 하였지만 화린이 숙소를 나선 건 술시 말미였다.
화산파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지리를 눈에 익히는 한편 화산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화산파는 상청궁, 영전관, 백운과, 삼청관, 천사동, 조사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들은 화산의 중턱에서 화염봉 봉우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특히 천사동과 조사동은 화염봉 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경계가 특히 심하고, 진법과 각종 기관 장치들이 설치되어 모르고 들어갔다가는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 외에도 수련동을 비롯하여 참선동, 폐관 수련을 위한 화산 석굴 등이 있었다.
화린은 한 시진 동안 화산의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그 누구도 화린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들이 없었다.
“위세는 대단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건가?”
화린은 조금 실망하였지만 이건 화산이 약한 것이 아니라 화린의 무공이 뛰어나서였다.
화린은 무공을 익힌 후에 곧바로 군대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중원을 넘볼 정도로 위험한 세력들을 상대로만 싸워 왔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무공과 배교의 비전 술법을 합일하여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닐 수도 있고, 특히 전설적인 살수인 살황 서문의 무공을 완벽하게 익히고 있어 경계를 서는 자들도 화린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화린은 그렇게 화산파의 경내를 비롯하여 경외에 있는 천사동, 조사동은 물론 수련동, 참선동까지 살펴보았다.
“화산의 수준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참선동의 많은 동굴 중 한 곳에서 강맹한 기운이 자신을 향해 뻗어 나오는 것을 느끼고는 참선동 앞에 섰다.
‘위험한데.’
변방과 새외, 더 멀리 색목국에서 위세를 떨치던 세력들의 수장과 비견될 정도로 강한 기운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느꼈다.
강맹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을 응시하던 화린은 곧이어 그곳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할 것 없는 앙상히 마른 노인이었다.
백발과 백염으로 인해서 나이를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의 노구의 몸을 이끌고 참선동을 나온 노인은 화린을 마주 보고 섰다.
“야심한 밤에 화산의 구석구석을 그리 바쁘게 다니는 걸 보면 좋은 뜻으로 화산에 오른 건 아닌 것 같고, 품고 있는 기운 또한 사마에는 물들지 않았지만 패기가 가득한 걸로 보아 좋은 놈은 아닌 것 같구나.”
화린은 그를 향해 포권을 하였다.
“말학 후배 화린이 화산의 대선배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화린은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노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반응에 화린에게 흥미가 생겼다.
“화린?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구나.”
“산양현에서 구룡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구룡장?”
“최근에 생겨난 장원이라 대선배님께서는 알지 못하실 겁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린에게 물었다.
“보통 이렇게 들켰을 때는 달아나거나, 혹은 싸우려고 하는데 너는 그게 아니구나. 그리고 당황한 것보다 여유가 있는 모습이구나.”
“잘못이라면 밤에 돌아다닌 것뿐이니 말로 오해를 풀 수 있으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어서입니다.”
“현명하구나.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다른 사람들의 참선을 방해하는 것보다 나와 함께 가서 이야기를 해 보지 않겠느냐?”
“그리하겠습니다. 다만 저에게도 시간이 없으니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없다?”
“장문인과 해시 말미에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장문인과 만나기로 했다는 말에 놀라기보다는 흥미를 가지는 모습이었다.
“장문인과?”
“무엇 때문인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장문인께서는 저에게 화산의 경계를 뚫고 조용히 자신의 방에서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오냐,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꾸나.”
화린은 생각지도 못한 화산의 노고수에게 들켜 그가 수련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화린은 참선동 안에 들어선 후에야 암벽에 인위적으로 동굴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참선동이라 이름을 붙여 놓았음을 알 수가 있었다.
“실망하였더냐?”
“아닙니다. 남이 수련하는 공간에는 처음 와 보아 그런 것입니다.”
“의미 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앉거라.”
동굴의 바닥에 앉은 노인을 따라 화린이 바닥에 앉았다.
“내가 화산에 있으면서 너처럼 간이 큰 놈은 처음이구나.”
“제가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화산이 어떻게 섬서성의 제일 문파가 되었는지 궁금하여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였을 텐데.”
“사실입니다. 장원을 이끌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화산이나 종남 그리고 세가의 부흥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냐? 그런데 네놈은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관상인데, 이를 어찌한다.”
“저의 관상이 그렇다고 하여도 장원이 부흥하면 장원의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 터이니 그게 더 이롭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 또한 네놈의 말이 맞는 것 같구나. 네놈이 이렇게 돌아다니다 객사를 하여도 남은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 테니 말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아직 대선배님의 성함이나 무호를 알지 못합니다. 알려 주시면…….”
“다 죽어 가는 노인의 이름은 알아서 뭣 하려고.”
그 말에 화린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명율이라고 한다.”
‘명율? 화산의 항렬이 옥, 명, 운, 적, 화, 매 순이고, 지금 장문인이 매 자, 장로가 화 자 배이니 그 위로 적, 운, 명이면…….’
“허엇!”
“왜, 그리 놀라느냐?”
“아니,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지금 몇 살이야?’
“나이 많다고 놀라는 것이냐?”
화린은 뜨끔하였지만 손사래를 하며 아니라고 강력하게 말을 하였다.
“알고 있다. 나도 죽어야 할 몸인데 이리 살아서 주책을 떨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화린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명율도 따라 웃었다.
“아니라고 하더니 정말 늙어 죽었어야 할 노인네라고 욕을 한 모양이구나.”
“아니, 죽어야 할 노인네라고 욕은 안 했습니다. 그냥 연세가 많아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이지.”
화린은 명율이 다른 화산의 도사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네놈의 무공은 어디서 기원이 된 것이냐?”
“이것저것 익혔습니다. 그리고 오 년 동안 변방과 새외, 색목국을 다니면서 실전 경험을 하였고, 그들이 익히고 있는 무공도 훔쳐 배우고 그랬습니다.”
“아닌데, 다른 기운이 섞여 있는데.”
명율은 화린의 몸에서 배교의 비전 술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배교의 술법을 익힐 때 필요한 기운임을 알지는 못하였다.
그냥 조금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라고만 느낄 뿐이었다.
“색목국의 마법이라는 기운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마법? 그 요상한 술법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색목국의 마법과 배교의 술법은 비슷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는데 배교의 술법이 조금 더 고차원적인 공부였다.
“별걸 다 배우고 다녔구나.”
“살려면 배우고 익혀야 했습니다.”
“어디 한번 보자.”
명율이 손을 내밀어 화린의 손목을 잡으려고 하자, 화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뺐다. 그러자 화산의 무공 중 하나인 매화산수를 펼쳐서 화린의 손목을 잡으려고 하였다.
이에 화린은 호접천화수를 사용하여 명율의 손을 피했다.
슈우우욱…… 슈육…… 슉.
갑자기 진행된 금나수 대결이었지만 화린은 당황하지 않고 명율의 손을 막거나 피하였다.
‘내가 겪었던 자들보다 뛰어난 분이다.’
화린이 이런 생각을 할 때, 명율은 매화산수로는 화린의 손목을 잡을 수가 없다고 판단을 하였는지 손에 변화가 생겼다.
“이것도 막아 보아라.”
화산의 무공 중 하나인 산화무영수로 곧장 화린의 손목을 낚아채려고 하자, 화린 역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는지 허공에 손의 잔영이 생겨나며 명율의 산화무영수를 방어하였다.
“이건…….”
명율은 화린이 사용하는 무공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네가 귀영난화수를 어찌 알고 있느냐?”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살기 위해서 이것저것 다 익히고 배웠다고 말입니다.”
“이건 백오십 년 전에 절진된 무공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너의 손에 들어간 것이냐?”
“변방의 외무성이라는 곳을 알고 계십니까?”
“외무성? 잘 알고 있지. 삼 년 전인가 멸문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외무성은 왜…… 설마?”
명율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파아앗, 팟, 파아악!
허공에 두 사람이 만들어 낸 무수한 잔영으로 인해서 동굴 벽에 온갖 손바닥 자국들이 찍히면서 옅은 진동이 일어났다.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정확하게는 무인 한 명을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무공서를 익혔습니다.”
“그게 귀영난화수다?”
“그렇습니다.”
순간 화린의 손이 아닌 목을 향해 손이 뻗어 왔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랄 뻔도 하지만 화린은 침착하게 명율의 손을 쳐 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지?’
명율은 자신과 대등하게 금나수를 펼치는 화린의 모습보다 침착하게 반응하고 대응하는 그의 모습에 놀랐다.
“네놈 속에 능구렁이가 수백 마리는 있는 것 같구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밑천을 드러내면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놈이 또 무슨 수로 대응을 할지 모르니 드러낼 수도 없고.’
명율은 손을 멈추었다.
“에잇, 재미없구나.”
재미가 없다고 말을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만족하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은 무슨……. 네놈을 보자고 한 놈을 불렀으니 이곳에서 만나고 가거라.”
화린은 흠칫하였다.
‘이곳에서 장문인의 처소까지는 제법 거리가 된다. 천리전술이 가능한 분이신가.’
천리전술은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무공의 경지로 천 리라는 말은 과장이고, 사, 오 리의 거리 정도에서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만 물어보자.”
“말씀하십시오.”
“너 나쁜 놈은 아니지?”
질문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화린은 성실하게 대답을 하였다.
“나쁜 놈의 기준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 기준으로는 나쁜 놈은 아닙니다.”
“너의 기준?”
“좋고 나쁘고는 상대의 생각,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화린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옳은 일, 공명정대한 일만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산 역시 이와 같은 성세를 이루기 위해서 마냥 좋은 일만 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명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마다 말할 수 없는 이유, 아픔들이 있고, 화산 역시 성장하고 여기까지 오면서 그러한 일들을 몇 번이고 해 왔기에 화린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쁜 일도 하겠다는 말이냐?”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나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천륜에 어긋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천륜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라……. 그 말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명율은 화린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동굴의 벽을 가리켰다.
“저것들이 보이느냐?”
화린은 명율이 가리킨 벽을 보았는데 조금 전 그와의 금나수의 대결로 인해서 생겨난 자국들이었다.
“그러합니다.”
“화산지회가 끝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터이니 매일 해시에 올라와서 저 벽에 새겨진 것들을 연구해 보아라.”
화린은 왜 그런 말을 하느냐는 눈빛으로 명율을 보았다.
“너를 만날 때 말하지 않았느냐. 패기가 가득하다고.”
“그게…….”
“너 역시 많은 경험을 해 보았지만 무림은 네가 경험한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네가 생각하는 무림이 어떤 세상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세상은 강하면 부러진다. 또한 부드러우면 막힌다.”
“음…….”
“강함 속에 부드러움을 감추어야 하고,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숨겨야 이 무림이라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있다.”
“저에게 이러한 조언을 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글쎄다. 내가 아직까지 선계에 들지 못한 이유가 아마도 오늘날 너를 만나기 위함이 아닐까 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화린은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였다.
“네놈을 만나자고 한 어린놈이 오는구나.”
동굴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는데 화산파의 장문인인 매산 진인이었다.
그는 명율의 앞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태태사조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