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69)
구룡전기-69화(69/217)
구룡전기 (69)
화린의 앞에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그는 사당의 당주인 문소였다.
“제가 당주님을 보자고 한 건 한 며칠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그동안 당주님과 당주님의 식솔들이 우리 사람들과 함께 장원을 지켜 줬으면 해서 이리 찾은 겁니다.”
“그리하겠습니다.”
문소는 화린을 노리기 위해서 기회를 많이 엿보았지만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빈틈이 너무 많은데 그 빈틈으로 공격을 하였다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공격을 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자신이 위치를 옮겨 다니며 화린을 노렸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듯 시선이 한 번씩 마주쳤다는 것이 더 두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에 따른 비용은 제가 맞추어 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살황 님의 전인을 뵌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그건 그것이고, 또 일은 일이니까요.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거절하지 마시고, 장원의 문제는 총관인 서 총관과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곁에 있는 서대영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화린이 더 대단한 인물이란 생각에서였다.
‘황궁에서 그림자 군주로 불렸던 분인데 언제…….’
“서 총관은 당분간 분장에 있지 말고 본장으로 와서 생활해.”
“아이들은 어찌합니까?”
“본장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생활해. 그리고 화산에 이야기를 해 두었으니 속가제자로 보낼 아이들 선발해서 화산으로 보내. 어릴 때부터 보내야 뭐라도 배우고 본가로 오지.”
“알겠습니다. 본장으로 가서 그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이 호법은 내가 없는 동안 내 배역을 잘하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으니 그들과 될 수 있으면 많은 이야기는 삼가고.”
“걱정 마십시오. 친우분들께 들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도문의 얼굴이 살짝 변하더니 곧이어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체형도 변화되었다. 그러더니 얼마 가지 않아 화린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왼쪽 얼굴이 조금 부자연스러워.”
화린이 이도문의 얼굴을 조금 수정하자, 완벽하게 변하였다.
“목소리는 어쩔 수가 없으니 될 수 있으면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서 총관은 화산지회가 끝나면 이 호법과 함께 돌아가고 문소 당주께서는 지금 화산을 내려가 당원들을 데리고 장원으로 와서 일을 시작하세요.”
“명을 받습니다.”
문소가 사라지자, 화린은 숨을 내쉬며 말을 하였다.
“다녀올 테니까 잘하고 있어.”
* * *
사혈맹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개의 무력 단체 중 구주사망혈루대는 추적과 잠입, 납치와 암살에 특화된 집단으로 정통적인 무력 집단이라기보다는 좌도방문에 속한 집단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구주사망혈루대가 결코 약한 무력 단체는 아니었다.
이들만으로도 웬만한 무림세가는 멸문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구주사망혈루대를 나에게 견제해 달라고 말했지만 실상 그들 역시 내가 이 일을 수락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무림백대고수에 속한 자라 할지라도 혼자서 구주사망혈루대를 막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화린이 매산 장문인의 제의를 수락한 이유는 다른 성은 몰라도 섬서성에서 만큼은 자신이 주도해 나갈 생각으로 수락을 한 것이다.
섬서성에는 종남, 화산, 석천파 그리고 사파에는 음사문이 다른 중소 문파를 선도하며 섬서성 무림을 이끌어 나가는 중이었다.
이 중에서도 종남과 화산이 주가 되니 그들에게 강렬한 인식을 심어 주게 되면 제아무리 종남과 화산이라고 해도 자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란 계산을 한 것이다.
“그때 그 표정을 보아 분명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
화린은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명율 진인과 전음으로 무슨 대화를 나눈 후에 이 일을 전적으로 나에게 맡긴 것이니 명율 진인은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지켜보겠지.”
화산도 화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화린도 생각이 있어 이번 일을 수락하였다.
“당가와 형산파, 아미파의 무인들이 구주사망혈루대의 뒤를 쫓는다고 하였으니 양쪽을 오가며 장난질을 치면 서로 치고받고 싸울 거고 내가 구주사망혈루대의 대가리들만 골라 죽인다면 빠른 시간 안에 그들을 멸할 수 있겠지. 물론 정파도 피해를 어느 정도 입겠지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단순한 계획이지만 가장 확실하게 빠르게 상대를 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화린은 화산파를 떠나 사천으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였다.
개방에서 구주사망혈루대의 정보를 알려 준다고 하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를 듣고 움직인다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화린은 화산파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구주사망혈루대와 정천맹의 사천 지부, 사천 무림의 정파 무림인들을 충돌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고자 하였다.
화린은 사천의 성도에 도착하여 개방이 아닌 하오문의 사천 지부를 찾았다.
허름한 장원의 앞에 선 화린은 장원의 대문 위, 즉 용두에 걸려 있는 편액을 보았다.
편액에는 월하장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곳이 하오문의 사천 지부이자, 하오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월하방의 사천 지부이기도 하였다.
월하방은 도둑들이 모여 만든 문파로 옛날 공공문에서 떨어져 나온 암영신투가 만든 문파다. 공공문이 멸문한 뒤에 중원의 도둑들이 월하방 아래로 모여들면서 지금은 중원 최대의 단체로 성장하여 하오문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이었다.
화린이 대문을 두드리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뉘신지?”
“화린이라고 합니다. 장주님을 만나러 왔으니 그리 안내를 해 주면 고맙겠어요.”
화린이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자, 그는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화린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장주에게 안내를 하였다.
장원의 내원에 들어선 두 사람은 한 건물 앞에 섰다.
“장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안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곧이어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들어가시지요.”
화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호리호리한 사십 대 중반의 사내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화린이라고 합니다, 이성언 장주님.”
“화린? 혹시 섬서성 구룡장의 장주님이시오?”
구룡루로 인해 구룡장의 장주에 대해서는 이미 하오문에 알려진 상태라 이름만 들어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리 와서 앉으십시오.”
자리를 권하자, 화린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선약도 없이 어찌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몇 가지 알아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몇 가지요?”
“네. 제가 듣기로 사혈맹의 구주사망혈루대가 사천에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화린은 자신의 목적을 돌려 말하지 않고 곧장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금 북천현에 있습니다.”
화린의 물음에 월하장의 장주인 이성언은 의아함이나, 의구심 같은 건 가지지 않는지 곧장 답을 해 주었다.
“또 하나의 사혈맹 주력부대라고 할 수 있는 사령혈마대가 중경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이틀, 늦어도 삼 일이면 서로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 둘 중 한 곳이 정천맹에 공격을 당하면 도와주러 오겠군요.”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리 약속한 도주 장소와 만날 장소를 정해 놓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화린은 이성언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럼 내가 분탕질을 치면 구주사망혈루대가 사령혈마대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이동할 경우 어떻게 되는 거지?’
화린은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구주사망혈루대를 견제하기 위해서 사천 무림이 움직였다고 하던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문과 청성 그리고 아미파를 주축으로 한 사천의 정파 무림인들이 그들을 행방을 쫓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십방현에 있습니다. 구주사망혈루대가 있는 북천현과는 두 시진 거리입니다.”
“그들은 개방에서 정보를 받아 움직이겠지요?”
“그럴 겁니다. 개방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예상하고 있을 터이니 구주사망혈루대를 쉽게 공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요?”
“삼십 년 전 배교가 무너질 때, 정파는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로 인해서 정파의 세력이 사파나 마교에 비해서 약해져 있습니다.”
“그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삼십 년 동안 정파가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사파와 마교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니 실제로 지금의 상황에서는 정파가 가장 세력이 약합니다.”
“음…….”
“그러니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지요. 그랬다가 사혈맹과 정천맹이 전쟁을 하게 될 테니까요.”
“중경에 온 사령혈마대를 정천맹에서 공격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천맹의 무사들이 움직이긴 하였지만 그들은 사령혈마대를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혈맹은 지금 정천맹을 공격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하고 그 명분을 만들기 위해 사령혈마대와 구주사망혈루대를 보낸 것이니 말입니다.”
화린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럼 제가 잘못된 정보를 듣고 온 것이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저희들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지만 사령혈마대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장주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정천맹이 사령혈마대를 공격하리라 생각을 하십니까?”
화린이 이성언에게 물었다.
“안 합니다. 그들이 공격하여 사령혈마대가 멸하는 순간 전쟁이 일어날 테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제가 구주사망혈루대를 공격하여 그들과 드잡이질을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럼 정파와 사파가 전쟁을 하게 되는 겁니까?”
“아닐 겁니다. 정파에서는 장주님을 사혈맹에 팔아넘길 것입니다.”
화린은 이성언의 말을 듣고 보니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였다.
“그렇다면 정천맹에서 사혈맹의 힘을 줄이기 위해서 저를 던져 준 것이나 다름이 없군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성언은 화린이 왜 사천에 왔는지 알지 못하기에 물었다.
“실은…….”
화린은 그에게 화산에서 자신이 어떠한 거래를 하였는지 다 알려 주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화산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걸 계획한 제갈세가의 사람이 화산에 그 속내를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제갈세가의 사람이라면?”
“정천맹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 총관 제갈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갈탁?”
“어떻게 보면 제갈세가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제갈세가의 변종?”
“제갈세가는 정파의 두뇌를 자처하며 많은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하지만 정파인들은 그런 제갈세가를 존경하기보다는 조금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화린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무림은 힘이 있어야 하니까요. 무력이 약한 제갈세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제갈탁이 무림에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자가 그리 강합니까?”
“그는 머리도 뛰어나지만 무공도 강합니다. 신체적인 능력도 뛰어나지요.”
“음…….”
“의천뇌력진가술법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의천뇌력진가술법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침술로 천문을 강제로 개방시켜 어릴 때부터 뇌를 빠르게 활성화시키는 비술입니다.”
“천문이라면?”
“선택받은 자들만이 열 수 있다는 그 천문 말입니다.”
무인이 무공을 익힐 때, 처음에는 지문이라 하여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문을 개방해야 하는데 이는 발바닥의 용천혈을 말하는 것이다.
지문을 개방시킨 후에 생사혈관을 비롯하여 기경팔맥을 타통하면 인문이라고 하여 공기 중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문을 개방하는데 이는 허리에 있는 명문혈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늘을 기운을 받아들이는 천문을 개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깨달음이 필요하고, 깨달음의 크기에 따라 천문을 개방할 수도, 못 할 수도 있어 무공을 익히는 무인들 중 천문을 개방하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기에 무림에서 선택받은 자들만이 천문을 개방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한 천문을 의천뇌력진가술법으로 개방할 수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놀랄 일이었다.
‘배교에도 비슷한 술법이 있지만 부작용이 심해서 사장되었다고 하였는데.’
“천문을 강제로 열다니…… 정말 대단한 비술이군요. 그런데 그리하면 부작용은 없습니까?”
“술법을 펼치다 실패하면 바보가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서서히 뇌가 굳어져 십팔 세가 되기 전에 죽는다고 들었습니다.”
‘뇌령신체비술과 부작용이 같다.’
“혹시 제갈세가에서 의천뇌력진가술법을 완성한 것이 언제쯤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지고 있어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제갈탁이 부각되기 시작한 건 이십 년 전이니 의천뇌력진가술법은 짧으면 이십오 년, 길면 삼십 년 안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배교가 망한 시기와 비슷하구나. 그럼 제갈세가는 배교에서 사장시킨 뇌령신체비술을 발견한 후에 연구하여 자신들에게 맞추어 개조하였을 수도 있겠구나.’
화린은 속으로 웃었다.
“그로 인해서 제갈세가는 크게 부흥을 하였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술법의 성공 확률이 낮아 똑똑한 놈들이 바보가 되니 내부에서도 갑론을박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제갈탁처럼 성공 사례가 있으니 제갈세가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똑똑한 머리로도 부작용을 해결하지 못한 모양이구나.’
화린은 그 부작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또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오늘 장주님을 찾아와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저도 화린 장주님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이성언은 화린의 술법에 걸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제갈탁의 잔머리에서 나온 계획이란 말이지.’
화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