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74)
구룡전기-74화(74/217)
구룡전기 (74)
중경은 중원의 정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사람들은 중경을 바둑판의 한 가운데를 뜻하는 천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중경에서도 한가운데 있는 도시가 남녕이었고, 이곳은 중원에서 가장 발달된 도시 중 한 곳이기도 하였다.
남녕에는 커다란 세가가 세 개나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중경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서문세가를 비롯하여 백리세가 그리고 을지세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문세가와 백리세가는 무가인 반면 을지세가는 상가였다.
을지세가는 비록 중원 십대상단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하였지만 을지세가가 가진 부는 십대상단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고, 십대상단에서 급전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세가가 바로 을지세가이기도 하였다.
화린은 사천에서 중경으로 넘어와 있었다. 화산파에서는 구주사망혈루대를 견제해 달라고 말하였지만 화린은 정천맹의 계획을 하오문을 통해서 알게 된 이상 구주사망혈루대만 견제하거나 멸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 정천맹 역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화린이 중경으로 들어왔을 때, 이미 많은 무인들이 중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중경을 중심으로 북쪽 섬서성에서는 화산파와 종남파의 무인들이, 서쪽 호북성에서는 정천맹의 정예부대인 백호단이 남쪽에서는 귀주성의 신검문을 비롯한 검성문, 남천문의 무인들이 중경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녕시에 자리 잡고 있는 을지세가로 모였다.
그뿐 아니라 중경 지역에서 가장 명망이 높고, 십대세가 중 한 곳인 서문세가와 중경의 정파 무인들까지 을지세가의 주변으로 모였다.
화린 역시 다른 모습을 한 채 이들 틈에 섞여 있었는데 서로 다른 지역에서 워낙 많은 무인들이 모였는지라 몰래 이들 속으로 스며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구주사망혈루대의 대원들 역시 은밀하게 이들 틈으로 스며들었겠지.’
화린은 정천맹 사천 지부의 무인들과 사천 무림의 정파인들에게 공격받는 구주사망혈루대가 불리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사령혈마대가 변절한 을지세가를 공격하여 멸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하오문에서는 정파가 사령혈마대를 공격할 일이 없다고 확언을 하였지만 정파로 돌아선 을지세가가 공격을 당하면 정파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사령혈마대를 공격하여 그들을 멸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화린은 정천맹과 사혈맹의 양패구상을 바라며 구주사망혈루대의 대원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구주사망혈루대의 대원 일부를 정파 무림인으로 변장시켜 은밀하게 을지세가에 침투시켜 대기하고 있다가 싸움이 일어나면 곧장 안가로 침입해 사람들을 죽여 내부에서 혼란을 만들어주면 충분히 을지세가를 멸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화린은 구주사망혈루대의 대답은 듣지 못하였지만 아마도 구주사망혈루대의 대원들 중 몇 명은 정파 무림인으로 변장하여 을지세가 안으로 침투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언제쯤 놈들이 올까?”
을지세가 주위로 모인 무인들은 사혈맹의 사령혈마대와 구주사망혈루대가 언제 을지세가를 공격해 올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알 수 없지만 구주사망혈루대가 사령혈마대와 합류하였으니 곧 공격해 들어오겠지.”
“긴장되네.”
고수들은 긴장감이 덜했지만 아래 말단 무인들은 긴장감으로 인해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의심까지 들 정도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잡담 나눌 시간이 있으면 한쪽에서 몸이라도 풀어 둬. 몸이 굳어 있으면 칼 맞기 딱 좋으니까.”
말단 무인들은 을지세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화린은 담벼락 근처에서 몸을 푸는 척하며 배교의 술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청력을 몇 곱절로 상승시켜 을지세가 안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집중을 하였다.
‘이건 아니고.’
듣고 흘릴 이야기들과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구별하면서 화린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정보들을 모았다.
―정천맹에서 현무단을 추가로 보내었다고 하니 그들은 옥화산에서 대기하다 전투가 일어나면 사령혈마대의 뒤를 칠 것입니다.
‘이거다!’
화린은 내원 안쪽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집중을 하였다.
―서림에 있는 사령혈마대와 구주사망혈루대가 남녕으로 오기 위해서는 옥화산을 거쳐야 할 것이니 그들의 움직임을 현무단이 포착하여 뒤따라올 것입니다.
―그들이 공격하면 우리는 방어에 집중하다 현무단과 함께 포위하여 놈들을 일거에 섬멸하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우리 쪽에서도 희생자들이 필요합니다.“
―희생자들요?
―놈들을 조금 더 안으로 깊숙하게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희생이 불가피합니다.
화린은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눈을 좁혔다.
―을지세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무인들을 미끼로 사용하여 놈들이 더욱 깊숙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차피 을지세가를 멸하기 위해서 을지세가 안으로 들어올 것이 아닙니까?
―저항이 심하면 그들이 생각을 바꿀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정파라는 놈들이 이딴 생각을 하니.’
―그렇다고 무고한 목숨을 저들에게 던져 준다는 말씀입니까?
―진인, 이번 기회에 저들을 일망타진하지 못하면 더 많은 희생을 치를 것입니다. 소수의 희생으로 훗날 많은 목숨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리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과 자신의 세가를 희생하라고 하면 입에 게거품을 물 것들이 남의 희생을 논하며 정의로운 척을 하지.’
화린은 정파의 이러한 위선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니지. 난 나를 이용한 놈에게 대가만 치르게 해 주면 되니까.’
―을지세가의 사람들은 잘 피신 시켰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백리세가의 안가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건 백리세가의 사람들입니다.
‘백리세가의 안가? 그곳에 어디지. 조금 있다가 알아보면 되고, 일단 이곳에 침투한 구주사망혈루대의 대원에게 정천맹의 현무단이 옥화산에서 대기하고 있음을 알려 줘야겠지.’
화린은 은밀하게 자신의 내공을 공기 중에 퍼뜨렸다.
화린의 기운이 공기 중에 퍼지면서 모인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가며 그들이 가진 기운의 성질을 파악하였다.
정공을 익히게 되면 몸속에 정기가 충만해지고, 사공을 익히면 사기가 가득 찬다. 또한 마공을 익히면 마기에 육신이 지배당하는 건 무공을 익히는 무인들의 특징이었다.
또한 정공과 사공, 마공을 동시에 익힌 자들은 순간 강해지는 것을 느끼지만 몸속에 기운이 섞여 탁해져 상승의 경지로 가는 것이 어려워진다.
화린은 이러한 걸 이용하여 몸속에 사기를 품고 있는 자들을 찾았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화린의 예상대로 구주사망혈루대의 대원 몇 명이 무인들 속에 숨어 있음을 화린은 찾아낼 수 있었다.
―잘 들어라.
화린은 자신이 찾아낸 구주사망혈루대의 대원들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냈다.
―정천맹의 현무단이 옥화산에 숨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서림에서 대기 중인 사령혈마대가 을지세가를 공격하면 포위하여 뒤를 치려고 할 것이니 너희들 중 한두 명이 서림으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려 남녕으로 오는 사령혈마대에게 옥화산에서 현무단을 먼저 처리한 후에 을지세가로 오라 전하라.
화린의 전음을 들은 구주사망혈루대원들은 전음의 주인공이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복면인의 목소리와 같음을 알고 시선을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 티 낼 필요는 없다. 나의 말을 들어 너희들에게 나쁠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다. 판단은 너희들이 하는 것이다.
화린은 그들에게 더 이상 전음을 보내지 않았다. 이 정도 했으면 그들이 판단하여 움직일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럼 난 백리세가의 안가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러 갈까.”
* * *
남녕의 번화가는 중경의 중앙을 관통하는 장강을 사이에 두고 장강 아래를 남남녕, 장강 위를 북남녕이라 부르며 발전하였는데 북남녕보다는 남남녕이 조금 더 발전하였다.
그 이유는 장강의 물길을 이용하는 상인들에게는 남남녕이 상행선이 되고, 북남녕이 하행선이 되기 때문이었다.
북남녕의 하행선은 바로 옆 사천의 호주시가 종착역인 것에 반해 남남녕의 상행선은 호북성, 안휘성, 강소성까지 세 개의 성을 지나가는 긴 여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상인들이 이 장강의 상행선을 이용했고 발전하는 속도가 북남녕보다는 남남녕이 빨랐다.
남남녕에서도 최고의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시전은 기다란 대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수많은 상점들이 들어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였다.
시전 뒤쪽으로 저잣거리가 형성되어 있었고, 이 저잣거리 뒤로 사람들이 사는 민가가 들어서 있었다.
화린은 을지세가를 떠나와 남남녕의 시전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을지세가에서 배교의 비술을 이용하여 백리세가의 사람에게 섭혼술을 걸어 백리세가의 안가에 대해서 알아낸 뒤에 곧장 이곳으로 온 것이다.
시전 거리를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저잣거리가 나왔고, 가판을 열고 있는 상인들을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넓은 길이 나왔는데, 이곳은 시전이나 저잣거리의 분위기와는 달리 조용하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상인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행동이 차분하게 보였다.
‘저잣거리를 지나 민가로 들어서 검푸른 기와집 우측으로, 여섯 번째 장원이라고 했지.’
화린은 한쪽으로 물러나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검푸른 기와집을 찾았다.
“저 집인가 보구나.”
화린은 검푸른 기와집을 찾은 후에 우측으로 여섯 번째에 있는 장원을 찾았다.
그리 큰 장원은 아니었지만 제법 규모가 있어 보였다.
화린은 주변을 살피다 사람들이 모습이 보이지 않자,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바람처럼 장원 안으로 들어온 화린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장원의 내원으로 들어왔다.
장원은 담을 가운데 두고 내원과 외원을 구별하고 있었는데 따로 별채가 딸려 있지 않았다.
별채가 있다면 을지세가의 사람들이 별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지만 별채가 없으니 을지세가의 사람들은 내원, 즉 안채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화린은 내원으로 들어가 가운데 있는 건물의 퇴청마루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밖에서는 화린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
“며칠만 머물면 될 것이다.”
굵은 목소리의 사내들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가만히 들어 보면 부자간인 듯하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방 밖으로 흘러나올 정도면 이곳 안가의 내원에는 을지세가의 사람들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 가문으로 인해서 많은 무인들이 죽을 것이란 사실이 두렵습니다.”
“수야, 무법천지인 무림에서 무력이 없는 부는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너는 아비가 구해 준 무공을 남들 눈을 피해 익히는 것에 신경을 써.”
“하지만 우리 때문에…….”
“그들이 우리 세가를 위해서 죽어 준다고 생각하느냐?”
을지수의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만큼의 목숨값을 요구할 것이다. 일 년, 이 년 동안 갚을 수 있는 그런 돈이 아니라 우리 가문이 평생을 갚아야 할 큰돈이겠지.”
“그런 법이…….”
“그러니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비가 무엇 때문에 사혈맹을 떠나 정천맹으로 온 것인지 아느냐?”
“사혈맹에서 본가의 재산 절반을 요구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너다.”
“저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를 볼모로 잡고 본가의 돈을 자신들의 돈처럼 사용하겠다는 그런 뜻이다.”
이들의 대화를 듣던 화린은 사파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정파는 그러지 않습니까?”
“사파처럼 그렇게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겠지. 아마도 매년 일정 금액을 정천맹의 운영 자금으로 준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화린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사혈맹을 덩치만 큰 시정잡배들의 집단이라 생각을 하였다.
‘을지세가 사람들을 모두 죽일 생각으로 왔는데 어떻게 보면 이들도 피해자라 차마 손을 쓰지 못하겠네. 이들은 두고 옥화산으로 가서 상황을 봐야겠어.’
“그럼 평생을 벌어 정천맹에 운영 자금을 줘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대신 우리도 정천맹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이번 일로 마음을 쓰지 말도록 해라. 이 또한 거래의 한 종류라 생각해라. 그리고 넌 아비가 구해 준 무공을 열심히 익혀 힘을 기르도록 해라.”
“혼자 무공을 익혀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혼자는 힘들지. 하지만 대를 이어 무공을 익혀 나간다면 후손들 중 천하를 오시할 이가 분명 등장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우리도 더 이상 무림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