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76)
구룡전기-76화(76/217)
구룡전기 (76)
석천파의 멸문
화산파에서 열린 화산지회는 예전보다 일정을 단축하여 빨리 끝이 났다. 그 이유는 사천과 중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상치 않은 일로 인해서였다.
화산파의 산문을 내려오는 정파의 후기지수들은 중경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중경으로 가서 그들을 도울까 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오라버니 생각은 어때요?”
“글쎄다. 나는 반대구나.”
남궁연아는 남궁진의 대답에 조금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위험한 일이다. 상대는 사혈맹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무력 부대야. 그들 개개인이 우리보다 강한 무인들인데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 수 있겠어.”
“오라버니도 상대 못 해요?”
“나도 힘들지. 나뿐만 아니라 십룡팔봉 중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왜요? 오라버니는 강하잖아요.”
“목숨을 건 싸움은 강한 것과는 별개란다. 그들은 전장에서 수많은 실전 경험을 거친 자들이다. 그뿐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는 자들이니 강함의 유무를 떠나 기세에서 밀릴 터이니 우리 같은 후기지수들은 그들을 만나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도 없을 것이다.”
“너무 겸손해도 안 좋은 법이야.”
함께 길을 가던 사도준이 말하였다. 두 사람은 화린으로 인해서 친구를 맺은 사이였다.
사도준은 화린의 소식을 문파에 알리기 위해서 화산파를 몰래 떠나려고 할 때, 화산지회가 예정보다 끝나는 바람에 이들과 함께 화산파를 내려오게 되었다.
일부 후기지수들은 중경의 상황을 듣고 현장으로 간 이들도 제법 있었지만 남궁진과 남궁연아는 중경이 아닌 정천맹의 본부가 있는 호북성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남궁진은 호북성의 정천맹에 들러 일을 본 후에 안휘성으로 돌아갈 계획이었고, 함께 화산파를 나온 사도준은 문파가 같은 호북성에 있으니 이들 남매와 동행하여 호북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내가 모르긴 해도 진이라면 충분히 그들과 검을 섞을 수 있을걸.”
“그렇죠. 오라버니라면 그들과 싸울 수도 있고, 또 이길 수도 있죠.”
“그럼. 다만 그들의 수가 많으니 혼자서는 싸울 수가 없겠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왜, 연아도 중경으로 가고 싶어?”
“솔직히 궁금하긴 해요. 싸움이 어떻게 될지.”
“쓸데없는 소리 마. 정천맹으로 가서 볼일 본 후에 안휘성으로 돌아갈 테니까.”
남궁진이 사도준에게 남궁연아에게 바람을 넣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야. 우리가 중경으로 가는 동안 이미 싸움은 끝났을 것이고, 무인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하려고 했던 거야.”
“뒤치다꺼리요?”
“시체 치우고, 부상자 돌보는 것부터 해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이런 사소한 것까지 해야겠지.”
“그걸 우리가 왜 해요?”
“우리는 무림 초출의 후기지수들이니 당연히 선배님들의 편의를 봐줘야지. 이건 무림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곳이듯 통용되는 일이야.”
남궁연아는 남궁진을 보았다. 그게 사실이냐고 묻는 그런 시선이었다.
“준이 말이 맞아. 무림이란 곳은 그 위계질서가 다른 곳보다 더 심한 곳이다.”
“왜요?”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 매일같이 수련하고 노력하는 곳이 무림이다. 그런 곳에서 질서가 없다면 어찌 되겠느냐?”
“그야…….”
“난장판이 되는 거지. 힘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핍박하고, 자신의 잘못도 정당화시키며 더욱 악행을 저지르겠지.”
“준이 오라버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난 그걸 눈으로 보면서 성장했고.”
남궁연아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사도준을 보았다.
“뭘, 그리 놀라는 거야. 정말 내가 그랬을 것 같아? 농을 한 것뿐인데.”
“치이…… 난 정말 오라버니가 그런 줄 알았잖아요.”
농이라고 말을 하지만 남궁진은 사도준의 말을 사실대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보다 더 강할 이 친구가 평범하게 살아왔을 리는 없겠지. 화린, 그 친구도 그렇고.’
“준이 오라버니는 나를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화가 난 듯 말을 하는 남궁연아를 향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변명을 하는 사도준이었고, 남궁연아는 다시는 말도 안 섞을 것이라며 토라진 모습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어쩜, 토라진 모습이 이리 귀여울 수가 있을까.’
사도준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그런데 준,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우리랑 같이 갈 거야? 정천맹으로 가는 건 조금 부담스러울 텐데.”
“부담스럽지. 그래서 난 가는 길까지 함께 가고, 나중에 구룡장에서 화린을 만나 신세 좀 지려고.”
“오라버니, 우리도 구룡장에 잠시 들렀다 가요. 화린 오라버니께서 공사하는 구룡루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는데.”
“공사 중이라 볼 것이 뭐가 있겠느냐? 이번에는 정천맹에 들러 볼일을 본 후에 세가로 돌아가서 보고를 하고 그 후에 기회가 되면 들르자꾸나.”
남궁연아의 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왔지만 오라비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가 가지. 가는 길에 있을 텐데.”
“그러면 안 돼요?”
“그렇게 해. 잠깐 들러 밥 한 끼 얻어먹는 시간밖에 안 걸릴 텐데. 말이야.”
“오라버니, 밥 한 끼 얻어먹으러 가요.”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남궁연아는 구룡장에 들렀다 가자고 남궁진을 졸랐고, 남궁진은 마지못해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대신, 가서 화린이 그 친구 귀찮게 하거나,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된다.”
“네. 가서 얌전하게 밥만 먹을게요.”
* * *
옥화산에서 현무단과 사령혈마대, 적령혈사대 그리고 구주사망혈루대의 전투가 치러진 이후, 현무단은 거의 괴멸되다시피하였다.
사혈맹의 무력 부대들은 그 기세를 몰아 을지세가로 밀고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사혈맹의 무력 부대들은 조용하였다.
놈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정천맹과 정파 무인들은 정찰대를 옥화산으로 보내어 그들의 흔적을 찾았지만 그들은 옥화산을 떠난 이후였다.
전투가 치러진 곳에서 수많은 시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현무단의 무인들과 사혈맹의 무인들이 뒤섞여 있었다.
“모두 몇 명이야?”
이들 눈에 못해도 이백 명은 넘어 보였다.
현무단의 무인들보다 사혈맹의 무인들이 더 많이 죽어 있음을 알고는 이들도 잠시 놀랐다.
“일단 두 사람은 을지세가로 가서 이 소식을 알리고, 너는 개방 분타로 가서 개방도에게 사혈맹의 무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달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이들이 급히 자리를 떠나자, 남은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체를 구분한다. 현무단의 무인들은 오른쪽, 사혈맹의 무인들은 왼쪽으로!”
남은 사람들은 옥화산에서 사라진 사혈맹의 무인들을 찾거나, 쫓기보다는 시체들을 구분하여 온전한 모습으로 정천맹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사체에 남은 검상이나 도상, 혹은 기병에 당한 상흔을 파악하여 상대가 어떠한 무공을 쓰는지 파악하고, 또 파훼할 수 있는 무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조장님, 이쪽에 시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체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늘어져 있었는데 옥화산 중턱을 돌아다니면서 싸운 것처럼 중간중간 죽어 있는 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얼마나 죽은 거야.”
처음 전투가 일어났을 것이라 짐작한 곳에서 시체를 정리하며 현무단 소속 무인 팔십 명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덟 명의 시체가 더 발견되었다.
백 명의 현무단 무인 중 살아서 을지세가로 온 열두 명을 제외한 팔십팔 명의 시체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외에 사혈맹 소속 무인의 시체가 이백 명이 넘었다.
‘설마 여기서 다 죽은 거 아니야?’
듣기로는 구주사망혈루대, 사령혈마대, 적령혈사대가 옥화산에 대기하고 있던 현무단을 공격하였다고 하였다.
각 기 부대의 인원의 백 명임을 감안할 때, 이곳에서 수거한 시체가 이백사십두 명이다.
사천에서 먼저 전투를 치른 구주사망혈루대의 숫자가 백 명이 안 된다는 걸 감안하면 옥화산에서 세 개의 부대가 전멸하였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머릿속에 정리가 되자, 그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는 죽은 시체들을 보았다.
“도대체 누가…….”
“조장님, 저쪽에 시체가 몇 구 있습니다.”
“뭐야, 또 있어? 도대체 옥화산에서 얼마나 죽은 거야.”
* * *
“믿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이들을 모두 죽였는지.”
을지세가의 넓은 정원을 가득 채운 시체들을 보는 이들은 놀람을 넘어 경악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혈맹 쪽의 죽은 무인들 수가 이백육십세 명입니다. 구주사망혈루의 무인들은 사천 전투에서부터 사망자가 생겼으니 사령혈마대, 적령혈사대 그리고 구주사망혈루대 모두 전멸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상흔을 보면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이들을 모두 상대한 것 같습니다.”
혼자서 이들 모두를 죽였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 이들이었다.
“그분일 것입니다. 그분 홀로 이들을 상대하여 모두 사살한 듯합니다.”
혁지석은 현무단이 옥화산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그 의문의 사내를 떠올리며 말을 하였다.
“그분이 틀림없습니다.”
혁지석이 조금은 흥분한 듯 말을 하였고, 다른 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이들 모두를 혼자서?”
“이들이 스스로 동귀어진을 하였을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현실적으로는 그게 가장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젊은 사내라고 하지 않았나?”
“옆모습을 보았다고 하였으니 확실한 건 아닙니다. 서른이 넘어도 옆모습만 보면 젊어 보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긴박했던 상황이라 잘못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젊은 사람, 즉 후기지수들 중 이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실력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사실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젊고 강한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이들이 많을수록 자신들의 발언권이 약해진다.
무림이 아무리 약육강식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정치도 필요한 법. 발언권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존의 기득권들을 밀어내고 주류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하는 편이었다.
“후기지수가 아닌 기성세대, 혹은 삼십 년 전 배교와 싸웠던 은거 고수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네의 말을 들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 젊은 사내라고 하기에는 그 손 속이 너무 잔인하네. 전쟁을 오랫동안 치러 본 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쉽지 않을 걸세.”
“은거한 고수 중에서 옥화산에 있는 분이 누가 있을까요?”
“그건 알 수 없지. 그들이 괜히 은거를 하였겠나? 당시 소문에 의하면 배교의 숨겨 놓은 비술을 찾은 무인들이 제법 있다고 하였네. 아마도 비술을 익히 위해서 은거하였다가 비술을 터득한 후에 무림에 나온 사람일 수도 있겠지.”
당가의 장로 중 한 명인 당상명은 이들을 전멸시킨 자의 공을 깎아내리려 하였다.
“그자가 떳떳하다면 이들을 멸한 후에 을지세가로 왔을 것인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그자 역시 뭔가 꺼림칙한 것이 있으니 오지 않는 것이 아니겠나.”
“설마요.”
화산파의 화진 진인이 아니라고 말하자, 당상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리 큰 공을 세워 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사혈맹의 다섯 개의 무력 부대 중에서 세 개의 무력 부대를 혼자 괴멸시킨 전과입니다. 이런 큰 전과를 세운 이가 가만히 있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당상명 장로님의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우리들에게 숨겨야 할 것이 있으니 나타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화진 진인은 이들의 말을 듣고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이들은 남을 인정하기는커녕 깎아내려 자신들의 위신을 세우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눈에 보여서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들이 은인이 되는 사내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화진 진인이 화제를 바꾸었다.
“혹시 모르니 이삼일 기다려 본 후에 각자의 문파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도 그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백리세가의 안가에 있는 을지세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들이 을지세가로 돌아와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시지요.”
혁지석은 이들과의 대화에서 조금은 서운하였지만 이게 정치이고, 현 정천맹의 현실이라 생각하니 자신의 신세가 조금 처량하기도 하였다.
‘이제 현무단도 사라졌으니 나도 정천맹을 떠날 때가 된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