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83)
구룡전기-83화(83/217)
구룡전기 (83)
사천성의 도성, 서창, 덕창, 금양 시는 사천성의 곡창지대로 중원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삼 할을 이곳에서 수확할 정도로 농업에 특화된 도시이다.
특히 금양시는 도성, 서창, 덕창 시에서 거두어들인 곡물을 모아 중원 전역으로 배송하는 집하장과 표국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도성, 서창, 덕창 시보다는 발전되어 있고, 표국이 활성화되어 있어 칼을 찬 무림인이나, 표사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화린은 금양시의 곡물 집하장이 있는 곡현의 한 객잔에서 마주 보이는 큰 곡물 집하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곡현에서 가장 큰 집하장을 운영하고 있는 화명상단은 서창, 덕창, 도성 그리고 금양시에서 거두어들인 곡물을 이 집하장으로 가지고 와서는 배송할 장소와 수량을 나누어 표국을 통해서 운송하였다.
우기가 끝난 뒤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 운송하기 좋은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화명상단 집하장의 분위기는 날씨만큼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서둘러.”
팔로수로군에 가져다줘야 할 곡물의 양을 맞추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 물량까지 끌어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청해성은 어떻게 할까요?”
“한 달만 기다리라고 해.”
“아이고, 한 달이면 거래처에서 다른 곳을 알아볼 겁니다.”
“광동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생선과 해산물을 구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유통에도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집하장을 관리, 책임지고 있는 화명상단 일가의 막내 화정욱은 짜증이 나는 얼굴로 툭 쏘아 말하였다.
“그럼 우리에게 가장 큰 거래처를 잃어? 팔로수로군과 관군들에게 일단 납품을 하고, 구하는 대로 보내 주면 되잖아.”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일에는 중요도가 있고, 그 중요도에 따른 순서도 있는 법이야. 그러니 자네들은 더 이상 다른 이야기 하지 말게.”
화정욱이 역정을 내자,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맞은편의 객잔에 앉아 있던 화린은 내공과 술법을 이용하여 화명집화장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활짝 웃었다.
“사천에서 이러한 문제가 생긴다면 운남, 귀주, 광서성에 있는 집하장도 마찬가지겠지.”
화린은 화명상단이 힘들어지면 그들이 가진 상권을 빼앗기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들을 똑똑한 사람으로 뽑아 각 지역으로 파견 보내어 일을 익히게 하는 것도 좋겠지.”
화명상단은 중원십대거상 중 한 곳으로 쉽게 망할 그런 상단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괴롭혀야 둑이 허물어진 저수지처럼 무너지고, 안에 고였던 물이 밖으로 흘러나와 메말라 버릴 것이다.
“그동안 나의 사람들이 일을 배우고 그들의 거래처를 빼앗고, 관리하게 만들면 화명상단의 상권을 흡수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문제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 즉 인재를 구하는 것인데, 화린은 이러한 인재들을 잘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총관에게 말해서 한 백 명은 구해 보라고 해야겠어.”
총관 서대영은 황궁의 동창 출신이다. 황궁의 모든 정보를 관리하는 동창이니만큼 그간 과거 시험을 보러 오거나, 혹은 다른 고관대작, 실료들이 추천하는 인물에 대해서 살펴보았을 것이니 총관에게 언질을 하면 그가 동창의 인맥을 통해서 사람들을 어느 정도 구해 놓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이 또한 단시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니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어느 정도 이루어지겠지.”
화린은 식탁 위에 있는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십 년, 그 정도면 옛 단리세가의 영광을 재현할 수가 있겠지.”
화린은 단리혁광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단리혁광은 단순히 자신의 여동생과 어린 남동생을 부탁하였지만 화린은 그들이 자립해서 먹고살 정도만이 아닌 옛 중원십대거상 중 한 곳이었던 단리세가의 부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뛰어난 무인들도 제법 필요하겠지.”
살수들만으론 세가를 지키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하오문을 통해서 무인들에 대해서 조금 알아봐야겠어.”
그러면서 화린은 단리혁진을 떠올렸다.
“아니, 그놈에게 무공을 가르쳤다간 다시 사고나 치고 다니겠지. 차라리 단리소소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
* * *
“정말요? 정말 저보고 여기를 관리, 운영하란 말이에요?”
단리소소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포목점을 함께 일해 온 점원 명옥에게 맡기고자 하였다.
점원이라고 하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이고 또 지금의 포목점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녀에게 산양현 포목점의 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이번에 새로 개업하는 화음현의 포목점을 맡아 운영하기로 구룡장과 이야기가 되었다.
그녀가 화음현의 새 포목점을 맡아 운영하기로 결정한 건 동생인 단리혁진이 그곳에서 개업하는 객잔의 점주로 일을 하게 되어서였다.
점주라고 해도 객잔의 진짜 주인이 아니니 신경이 쓰였다.
지금은 정신을 차리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긴 하지만 몇 달 전까지 왈패를 이끌었던 동생이었기에 화음으로 가서 객잔을 운영하며 나쁜 버릇이 나올까 싶어 단속을 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래. 구룡장주님께서 화음현에도 포목점을 연다고 하니 그곳으로 가서 포목점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때까지 일해야 할 것 같아.”
그러자 명옥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왜?”
“아니, 아가씨께서는 종도 아닌데 구룡장을 위해서 너무 일만 하시잖아요.”
그 말에 단리소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
“난 그렇게 생각지 않아. 우리 남매는 이미 구룡장주님께 큰 은혜를 입었어.”
“아가씨께서요? 이 포목점을 차려 주신 걸 두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단리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구룡장주님께서 안 도와주셨다면 나는 물론이고 혁진이 역시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혁진이는 왈패들의 싸움에서 크게 다칠 수도 있고, 또 죽을 수도 있었겠지. 나 역시 다른 집안에 팔려 가거나, 혹은 거리를 헤매다 죽을 수도 있었을 테고.”
“아가씨, 그런 말씀 마세요.”
“아니, 정말이야. 구룡장주님께서 도움을 주기 전에는 정말 그랬으니까. 우리 남매는 그것만으로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거야. 그러니 종이라도 되어서 그 은혜를 갚아야지.”
그래도 명옥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내 걱정은 말고 앞으로 네 걱정이나 해.”
“제가 왜요?”
“포목점 매출이 떨어지면 구룡장에서 점주를 바꿔 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
“구룡장은 상가야, 상인의 가문 입장에서는 수익이 안 나거나, 혹은 매출이 떨어지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먼저 찾고, 그 원인을 개선하려고 하지. 그런 와중에 책임자는 본분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한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자, 명옥은 목을 움츠렸다.
“그런데 아가씨는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아요?”
단리소소는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옛날에는 자신의 가문 역시 상인의 가문으로 큰 권세를 누리고 살았음을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도 많았다.
가문이 망하는 과정도 보았고, 그 가운데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고,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렸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냥 장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중에 하나야. 그러니 포목점 맡았다고 손님들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가 점원이었을 때보다 더 친절하게 해야 해.”
“아가씨처럼요?”
“나보다 더 친절하게. 찾아오는 고객님들이 나를 아닌 너를 더 찾도록 만들어야지.”
“네.”
“그리고 직원들도 잘 챙겨 주고. 돈은 네가 버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벌어 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말이야.”
“네. 알겠어요.”
“그렇다고 너무 잘해 주는 것도 안 좋아. 그럼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해 달라고 할 테니까.”
“그럼요?”
“그건 이제부터 네가 경험을 하면서 하나하나 알아 나가야지.”
“제가요?”
“그래. 너 언제까지 남 밑에서 일할 거야?”
단리소소가 묻자, 명옥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포목점에서 많은 경험을 해 봐. 그리고 그 경험들을 네 것으로 만든 후에 작지만 너의 포목점을 열거나, 혹은 여기에서 배운 장사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잖아.”
“아…….”
명옥은 단리소소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단리소소에 대한 느낌은 생각이 깊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인 사람이었다.
“늘 생각하고 변화를 주려고 노력해.”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아가씨는 왜 그렇게 안 하세요?”
“나?”
단리소소는 대답을 하면서 화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은혜를 갚아야지. 우리 남매를 살려 준 은혜. 그리고 지금의 생활에 나름 만족하고 있어. 비록 대리 점주라고 하지만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니 말이야.”
“그러고 보면 우리 장주님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장주님께서 우리 산양현에 오신 이후로 정말 살기 좋아졌잖아.”
단리소소는 화린이 오기 전의 산양현을 떠올렸다.
하루하루를 걱정과 불안에 떨며 생활하였던 자신이었는데 그가 오고 난 뒤부터는 그러한 걱정과 불안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산양현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겠지만 명옥처럼 이전보다는 살기 좋아졌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니 산양현에서는 구룡장주를 칭송하는 소리가 높고, 무슨 일이 생기면 현의 관아를 찾는 것이 아니라 구룡장주를 먼저 찾아가 어려움을 말하기도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분명 예전보다는 살기가 좋아진 것이 확실하였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우리 장주님께서는 혼례를 안 치른대요?”
“글쎄다. 아직 그런 이야기가 없던데.”
“그럼 만나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닐까요?”
“설마.”
이렇게 큰 장원을 운영하는 사람의 가문이라면 분명 대단한 가문일 것이고, 그 가문에서 좋은 혼사를 알아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문에 혼례를 올린 부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였다.
“만약에 만나는 사람이 없다면 아가씨가 한번 도전해 보세요.”
“내가?”
대답을 하면서도 단리소소의 양 볼에 살짝 홍조가 스며들었다.
“네, 혹시 알아요? 얻어걸릴지.”
“뭐? 얻어걸려?”
“그렇잖아요. 저리 잘생기고 능력 있는 분인데 지금까지 혼례를 안 올렸다는 건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라고요.”
“다른 생각을?”
“네. 이미 혼례를 올렸거나, 장주님의 가문에서 좋은 혼사를 알아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거예요.”
자신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명옥의 말에 일리는 있었다.
“그러니까 아가씨가 한번 도전해 보세요.”
“그러다가 정말 혼례를 올린 분이 계시거나 가문에서 혼사를 알아보고 있으면? 나의 마음만 다치는 것이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모르잖아요.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얻어걸릴지.”
“그런 헛소리 할 것 같으면 앞으로 포목점을 어떻게 운영할지나 생각해.”
“그러다 걸리면 대박이잖아요.”
“가서 재고 정리나 해.”
단리소소의 호통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몸을 돌리는 명옥은 혼자서 투덜거렸다.
“딱 좋구만……. 두 분 참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무도 도전 안 하면 내가 해 볼까?”
명옥은 창고가 갈 때까지 혼자서 투덜거렸는데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단리소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 장주님, 참 좋으신 분이지. 그런데 내가 장주님을 좋아하면 그건 내 욕심이야. 우리 장주님은 나보다 더 좋으신 분 만나야지.”
단리소소의 표정은 왠지 아쉬움이 가득하였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쉬는 단리소소는 평상시의 표정으로 되돌아왔고, 창고가 있는 쪽으로 크게 소리쳤다.
“명옥아, 가게 잘 보고 있어. 나 잠시 나갔다가 올 테니까.”
“어디 가는데요?”
명옥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단리소소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포목점을 나섰다.
“구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