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84)
구룡전기-84화(84/217)
구룡전기 (84)
보통 큰 음모나 큰일, 사건, 사고들은 대부분 깊은 밤에 일어났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짙은 어둠이 많은 것을 감추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였다.
깊은 밤 화명상단 곡물 집화장의 담장을 넘어 몰래 숨어 들어가는 인영이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복면을 썼는데, 어둠과 동화되어 그의 모습은 완벽하게 감추어졌다.
집화장 듬성듬성 불빛이 보이는 걸로 봐서 많은 인원이 집화장을 다니면서 경계를 서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곡물 창고가 있는 곳에는 경계를 서는 자들이 상주하고 있구나.”
몇 번의 곡물 탈취 사건이 일어나서 그런지 십수 명의 무사들이 창고 안에서 경계를 서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안에 열다섯, 창고 주변으로 스물. 그리고 집화장을 다니면서 경계를 서는 자들이 마흔이다.”
화명상단의 곡물을 탈취하기 위해서 담장을 넘은 화린은 경계를 서는 자들의 수를 파악한 후에 가장 높은 건물의 지붕으로 올라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황을 살폈다.
“교대는 한 시진이고, 창고 안에 있는 자들은 교대하지 않는다.”
지붕 위에서 오랫동안 아래를 내려다보며 파악한 것들이었다.
“그럼 창고 안에 있는 자들만 제압하면 되겠군. 일단 창고 이동해서 안을 염탐해 봐야겠어.”
허공에 뜬 상태에서 바람의 힘을 빌려 이동한다는 부운풍신의 수법으로 한 마리의 야조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이동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창고를 둘러싸고 경계를 하고 있지만 화린은 그들의 눈을 피해 지붕 위로 가벼운 깃털처럼 내려서서 아래에서는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없도록 납작하게 자세를 낮추었다.
화린은 호흡을 고른 후에 귀를 창고의 지붕 위에 가져다 댄 후에 안의 상황을 살폈다.
‘지금은 축시 초입.’
화린은 일각 정도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알아보려고 하였는데 창고 안이 너무도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나?’
화린은 자신의 기운을 창고 안으로 흘려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폈는데 특별하게 사람들의 움직임이 없었다.
‘호흡도 안정적이고.’
화린의 신형이 아래로 꺼지듯 사라지더니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곡물 가마니 위에 나타났다.
곡물 가마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경계를 서는 자들이 편안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들의 경계는 하루 종일이고, 안에서 창고의 문을 잠글 수 있으니 적이 침입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군.’
아침에 이들이 눈을 떴을 때,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파악하게 되면 아마도 꿈이라 생각하고 하루빨리 꿈에서 깨어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화린은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잠을 자고 있는 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탄지공 수법을 이용해 자고 있는 자들이 더 푹 쉴 수 있게 수혈을 짚어 준 뒤 화린은 허공에 손가락으로 점을 찍었다.
고오오옹!
허공에 생겨난 검은 점은 점점 팽창하더니 곡물 가마니를 단숨에 삼켜 버릴 만큼 커졌다.
휘리리리릭.
순간 팽창한 공간 주머니는 역풍을 이용하여 창고에 쌓인 곡물 가마니를 흡입해 집어삼켰다.
산처럼 쌓였던 곡물 가마니는 순식간에 공간 주머니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 모습을 지켜본 화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
‘이번 일로 타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망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많은 거래처들이 불신할 수도 있고, 다른 경쟁 상단에서 달려들어 화명상단의 거래처를 빼앗을 수도 있을 거다.”
구룡장의 경우 화명상단처럼 곡물을 전문적으로 팔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생산 설비를 갖추기 위해서 아직 사람과 기술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였다.
“하오문을 통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 주고 상단끼리 경쟁을 붙여 시간을 벌어야겠어.”
그래도 영친왕과 약속을 한 것은 지킬 생각이었다.
거래처로 팔로수로군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큰 수익을 남길 수가 있으니 이것만 확보해도 구룡장은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안정적으로 곡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트라빌 왕국과 거래를 해야 하는데 시간을 내어서 한번 다녀와야겠군.”
언제까지 곡물을 훔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거래를 통해서 안정적으로 곡물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사도준 그 친구가 천사곡의 소곡주만 아니었다면 딱이었는데.”
화린은 사도준을 떠올리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단 당면한 일부터 처리한 후에 다른 일을 생각해 보자.”
공간 주머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였다고 생각하였는지 점점 줄어들더니 종국에는 사라졌다.
화린은 텅 빈 창고에서 잠을 자는 무인들을 보며 안됐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언니!”
남궁세가 남매가 남궁세가에 도착하였을 때, 반가운 이가 두 사람을 맞이하였다.
“살아서 돌아왔구나!”
바로 남궁수연이었다.
“어? 살아서 돌아와? 내가 죽을 것이라 생각했어.”
“아니, 언니가 군대 가 있었다며?”
남궁수연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이번에 화산파에 갔을 때, 언니를 아는 사람을 만났어. 화린 오라버니라고 구룡장의 장주님이셔.”
“뭐? 누구를 만나?”
“화린 오라버니. 언니를 잘 안다고 그러던데. 언니는 몰라?”
“화린? 주화린 선배? 그 인간을 만났어?”
“응, 진 오라버니랑 친구 하기로 했어.”
남궁수연의 시선이 남궁진에게 향했다.
“그와 같이 군 생활을 하였다고 들었다. 자세하게는 듣지 못하였지만 네가 살아서 세가로 돌아오면 나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강해져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더구나.”
남궁진은 말을 하면서 남궁수연을 살폈지만 집을 떠날 당시와 딱히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분명 이전과 다른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만으로 남궁수연이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언니, 얼굴에 그 상처는 뭐야?”
남궁연아가 남궁수연의 얼굴에 있는 상처를 보고 물었다.
“괜찮아. 아까 뭐라고 했지?”
“뭘?”
“화린 선배가 있는 곳!”
“섬서성 구룡장.”
남궁연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궁수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
남궁연아가 사라진 남궁수연을 보고 어물쩍하고 있을 때, 남궁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움직였다는 걸 느낄 수도 없었다. 만약 수연이 적이었다면…… 사도준 그 친구만큼, 아니…… 그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남궁진은 화린이나 남궁수연이 생활했던 군부대를 떠올렸다.
‘도대체 어떤 군부대였기에 사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저리 강해질 수가 있지.’
“그런데 오라버니.”
“왜?”
“지금 언니가 섬서성으로 간 거 맞죠?”
“아마도 구룡장으로 갔을 것 같구나.”
“아이 씨. 언니 오면 언니한테 무공 배우려고 했는데! 또 나갔어.”
남궁연아의 볼이 볼록해지면서 불만을 이야기하였다.
“그래도 지금은 간 곳이 어디인지는 알지 않느냐. 넌 들어가 쉬어라. 난 아버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쉴 터이니.”
“네. 오라버니, 나 구룡장으로 언니 만나러 가도 되죠?”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며칠 있으면 세가로 돌아올 것이다. 설마 수연이 구룡장에 눌러앉아 살겠느냐?”
“아, 그렇구나.”
“조금만 기다리면 수연이 돌아올 것이니 그때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하여라. 사 년을 기다렸는데 며칠 더 기다린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없으니 말이다.”
“네. 알았어요. 오라버니는 얼른 아버님을 만나요. 난 방에서 쉴 테니까.”
“그리하여라.”
남궁진은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부친인 남궁백야를 만나기 위해서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의 집무실 앞에서 헛기침을 한 후에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진이옵니다.”
“들어오너라.”
남궁진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 남궁백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에 그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탁자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남궁백야 역시 남궁진의 앞으로 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래? 화산파에 가서 또래의 무인들을 보니 느낌이 어떠하더냐?”
“모두가 주역이 되기 위해서 절치부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사 년 전 처음 화산지회에 참가하였을 때보다 다른 이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네가 그리 느꼈다면 무림이 질적으로 많이 성장하였다는 걸 알겠구나. 그래, 너와 비슷한 인물들이 있더냐?”
“일곱 명을 보았습니다.”
“일곱 명씩이나? 혹여 십룡팔봉의 당사자들이 아니더냐?”
“그건 알 수 없지만 저와 비슷한 자가 일곱, 저보다 뛰어난 자가 셋 그리고 제가 파악할 수 없는 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음…….”
“비무 대회를 열었다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겠지만 사천과 중경의 일로 인해서 조금 일찍 화산지회가 끝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과는 친구가 되었고, 오는 길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
“한 명은 사도준이라는 후기지수로 저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데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껴졌습니다.”
“다른 한 명은?”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자입니다.”
“평범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가 무공을 익혔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무인이라는 걸 본능이 알려 주었습니다.”
“본능이 알려 주었다?”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궁백야는 남궁진 또한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말하여라.”
“사천과 중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많은 무인이 모였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그게 조금 어이없는 상황으로 변하여 대립이 끝나 버렸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혈맹의 주력 부대들이 옥화산에서 괴멸되었다.”
“네에?”
남궁진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말 그대로 그들 모두가 옥화산에 뼈를 묻었다. 그런데 그들을 괴멸시킨 자가 단 한 명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니 어이없는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살아남은 현무단 무인들의 진술이 일관된 점으로 보아 엄청난 고수가 무림에 나타난 것이 분명하고, 개방은 은밀히 그 고수를 찾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 사혈맹의 내부에 심어 둔 첩자로부터 그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아…… 그렇다면 사혈맹과 정천맹의 힘이 이제는 비슷해진 것이 아닙니까?”
남궁백야는 고개를 저었다.
“드러난 힘보다는 숨겨 둔 힘이 더 강한 법이다. 이건 우리 정천맹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사혈맹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개의 무력 단체가 괴멸되었으니 겉으로 드러난 전력은 비슷해져 사혈맹에서도 대외적으로 움직이는 걸 자제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혈맹이 정천맹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군요. 참, 수연이가 돌아왔던데 언제 온 것입니까?”
“닷새쯤 되었다. 이 애비에게 반감을 가지고 집을 나가더니 어디서 무엇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고수가 되어 돌아왔더구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투의 말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자식의 성장에 대한 즐거움과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는 생각에서가 아닐까 하였다.
“입구에서 만났는데 이제는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것 같았습니다.”
“너에게는 좋지 않으냐? 수연을 보고 자극을 받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지만…….”
남궁진은 가족과는 경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녀석이 돌아와서 나에게 한 첫 마디가 무엇인지 아느냐?”
“무엇이옵니까?”
“제왕검형을 달라고 하더구나.”
제왕검형이라는 말에 남궁진의 눈이 커졌다.
“그래서 제왕검형을 주신다 하였습니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철이와 동이가 너의 턱밑이라도 쫓아와 준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하면 가문의 검술을 보호하고 대를 잇기 위해서라도 수연에게 제왕검형을 익히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남궁진은 화린의 말을 떠올리며 구룡장으로 떠난 남궁수연이라면 대를 이어 가문의 무공을 후대에 전하는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쩌면 수연에게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