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86)
구룡전기-86화(86/217)
구룡전기 (86)
곡물 탈취
소통시에서 연서현으로 가는 길은 낮은 언덕조차 없는 완만한 길로 보이는 것이라곤 전답과 가옥이 전부였다.
조금은 지루한 여정이었지만 배윤걸은 경험이 많은 노련한 길 안내자처럼 무인들을 인솔하며 연서현으로 향했다.
그런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화린과 혼세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다른 놈들은 상관없겠지만 저기 앞에 있는 놈은 조금 위험하겠군.”
화린은 입으로는 위험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딱히 그를 견제하거나 신경은 쓰지 않았다.
“나를 유인하기 위해 위장하여 출고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란 말이지.”
곡물이 집하장을 나왔을 때, 화린은 몰래 집하장의 창고로 숨어 들어가 곡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였다.
지금 이송하고 있는 곡물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고, 저들은 곡물을 지키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싸울 것이다.
“하지만 저기 앞에 있는 놈은 방심을 하고 있겠지.”
고수일수록 상대와 직접 부딪치기 전엔 방심하게 되고, 그러한 방심이 자칫 위험에 빠뜨리곤 한다.
특히 무림백대고수 포함된 자들은 은연중에 그러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화린은 앞에 선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몸에 무기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걸로 보아 그가 권법에 뛰어난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숨에 놈을 죽여 버린다면 놈들의 기세가 확 꺾이겠지.”
화린은 어쩌면 그로 인해서 손쉽게 곡물을 탈취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복면을 써.”
화린이 말하자, 혼세 부족의 전사들이 복면을 썼다.
“다시 말하지만 너희들 중 한 놈이라도 죽는 놈이 있으면 내가 너희 부족을 멸해 버릴 것이다. 그러니 칼에 맞아도 악착같이 살아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내가 신호를 보내면 놈들을 친다. 저기 선두에 있는 놈은 내가 맡을 테니 너희들은 보고 약한 놈들만 골라서 사냥해.”
화린은 이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 심호흡을 하였다.
“놈들이 방심할 때는 연서현이 눈앞에 보일 때다.”
그곳이 바로 화린과 혼세 부족이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긴장을 풀고 있어. 하지만 전투에 임할 때는 긴장감을 유지해.”
이들은 곧 있을 전투에 대비하며 휴식을 취하였는데, 휴식이 휴식 같지가 않았다.
곡물을 실은 수레가 조금씩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더해 갔다. 그렇게 한 식경이 지났을 때, 화린이 앞으로 쏜살같이 뛰어나가며 외쳤다.
“놈들을 모두 죽여!”
“우와아아아아!”
화린의 말에 반응하여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가는 혼세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적이다!”
이들을 발견한 화명상단 측에서도 곧장 싸울 준비를 하였다.
화린은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배윤걸을 향해 도약하며 한 손을 뻗었다.
배윤걸은 그런 화린을 보며 어리석다는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배윤걸은 단숨에 화린의 목숨을 끊어 버릴 생각으로 말 위해서 화린을 향해 뛰어올라 자신의 독문 장법인 통천장을 펼쳤다.
허공에서 두 개의 손바닥에 마주치자, 거대한 기의 파장이 일어나며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충돌한 기운의 파장으로 인해서 순간 공간에 틈이 생겨났고, 이를 본 사람들은 공간이 찢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찢어졌던 허공이 순식간에 원상복구가 되었지만 이를 본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 허공이 아닌 곡물을 실은 수레 근처였다면 곡물은 물론이고 수레까지 부서져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배윤걸 역시 수레와 곡물의 안전까지 생각하여 화린을 향해 뛰어오른 것이다.
다만 배윤걸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화린이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과 그의 통천장이 무림 일절이라고 하나 화린이 익히고 있는 빙백소수신공은 수공으로는 적수가 없다고 알려질 만큼 무적의 무공이라는 것이었다.
“윽!”
배윤걸은 두 사람의 손바닥이 부딪쳤을 때 이상함을 느꼈다.
강맹하고 패도적이면서도 강한 음의 기운이 자신의 손바닥을 통해서 전해졌다.
“네놈은…….”
배윤걸도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섬서성에 소수신공이 나타나 시끄러워졌고, 종남파와 화산파가 무인들을 파견하였지만 그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춘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그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화린은 반대 손을 배윤걸의 복부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커어억!”
이번에는 반대되는 기운이 화린의 손바닥을 통해서 자신의 내부로 들어와 장기를 모두 태워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태, 태양마공!”
배윤걸은 눈을 부릅뜨며 화린을 보았다.
“어떻게 소수신공과 태양마공을 동시에…….”
서로 반대가 되는 성질을 가진 내공과 무공을 익히는 건 무림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다. 그 이유는 내공의 충돌로 인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어서였다.
“나는 무극지체라고 들어봤어? 모친께서 이러한 특이체질을 만들기 위해서 술법의 힘을 빌려 생명의 절반을 소모하셨지.”
두 사람이 허공에서 격돌하면서 아래로 떨어졌을 때, 화린은 제대로 내려섰고, 배윤걸은 바닥을 굴렀다.
무림백대고수라는 천하고수의 죽음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화린은 그런 그를 힐끗 본 후에 곧장 혼세 부족과 싸우고 있는 무인들을 향해 움직였다.
무림백대고수 중 한 명인 배윤걸이 단 일 합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배윤걸을 가볍게 제압한 화린의 다음 목표는 혼세 부족들과 싸우고 있는 무인들이 아닌 화명상단의 이천수였다.
이천수 역시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히고 있었는지 혼세 부족의 전사와 제법 맞서 싸우고 있었지만 화린이 가세를 하자, 전세가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냐?”
이천수가 물었다.
“가만히 있는 나를 너희가 먼저 공격했잖아. 난 받은 걸 열 곱으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거든. 이제 세 곱 돌려줬어. 앞으로 일곱 곱이 남았다. 물론 넌 오늘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해서 들을 수 없겠지만.”
이천수의 검이 화린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졌고, 화린은 허리를 숙여 검을 피하며 이천수의 품으로 파고들어 손바닥으로 강하게 그의 심장이 있는 곳을 때렸다. 그 충격에 뒤로 튕기듯 날아가 넘어지며 바닥을 구른 이천수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분명 무인들이 수는 많았지만 상황이 불리해지고 있음을 빨리 알아챈 무인들은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하였다.
이들은 무림백대고수 중 한 명인 통천장 배윤걸을 단 일 수에 죽여 버린 상대를 이길 수 없음과 운송의 책임자인 이천수가 죽었음을 인지하였다.
자신들이 현장에서 달아나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걸 파악한 이들은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무인이 달아나자 그다음은 낭인들이 달아났고, 이를 본 표사와 표두들 역시 이곳에 남아 개죽음을 당하기 싫었는지 곡물을 실은 수레와 말을 두고 전장을 떠나면서 싸움은 화린과 혼세 부족의 전사들이 손쉽게 승리할 수가 있었다.
화린의 말대로 혼세 부족의 전사들 중에서는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표사, 표두를 상대하기에는 이들이 터무니없이 강하기도 하였지만 사신보다 무서운 명왕 화린이 부족의 목숨을 걸고 겁박을 하니 다치려고 해도 다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두 수고하였다.”
화린은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찍었고, 그 자리에 공간 주머니가 나타났다.
화린은 공간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꺼내었는데, 작은 비단 주머니가 혼세 부족 전사들 수만큼 딸려 나왔다.
화린은 그들에게 비단 주머니를 하나씩 주며 말했다.
“이건 너희들 개인에게 주는 것이니 기루에 가서 술을 먹든, 계집질을 하든 너희 알아서 해라. 단!”
화린이 말을 멈추자, 그들은 마른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오늘 일이 발설된다면 내가 맹호사사혈전대를 이끌고 너희 부족을 방문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떠나라. 도시로 들어가자마자 달아난 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옷을 갈아입고, 무기는 감추어라.”
이들이 떠나가자, 곡물을 실은 수레와 수레를 끄는 말들만 남았다.
“이건 좀 아쉬운데.”
허공에 생겨난 공간 주머니가 수레에 실려 있는 곡물을 흡입하자, 수레와 말만 남았다.
이것들을 팔아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쉬웠다. 하지만 자신이 추적을 당할 수도 있으니 수레와 말은 내버려 둬야 했다.
“어쩔 수 없지.”
괜히 팔았다가 뒤탈이 생기면 피곤해지니 수레와 말은 그냥 두고 가기로 결정하였다.
화린은 몇 발 움직이다 걸음을 멈추어 섰다.
“아, 이 아쉬움을 어떻게 할 수가 없네.”
* * *
“알아보았나?”
“죄송합니다.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화산파의 장문인인 매산 장문인이 직접 입을 열지 않으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정천맹의 총관인 제갈탁은 정보부의 부장인 미향을 만나고 있었다.
“매산 장문인이 입을 열겠나?”
“그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혈맹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개의 부대를 괴멸시킨 자들입니다. 그건 그들의 힘이 화산파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화산파가 그들보다 강하다고 한들 싸우면 피해를 입게 될 것이고, 그리하면 지금의 화산파가 가지고 있는 지위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화산파에서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음…….”
미향이 이리 말하지만 실제로는 화산파가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미향이 말한 것처럼 싸우면 화산파가 입는 피해가 엄청나니 싸우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정파의 집합체라고 하나 화산파의 존망과 연결된 일에 관하여서는 강요할 수가 없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면 사혈맹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겠는데.”
“제가 매산 장문인을 만나 설득해 보겠습니다.”
“설득한다고 회유될 정도면 애초에 감추지도 않았겠지. 화산지회를 개최하면서 매산 장문인이 특별히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지?”
“알아본 바로는 없습니다.”
제갈탁은 그 당시는 떠올렸다. 당시 화산파에서 시간을 끌어 줄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였고, 자신은 정천맹이 아닌 그들에게 사혈맹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계획을 세웠다.
그러한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을 하는 듯하였지만 결국 정천맹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사혈맹에 알려졌고, 이로 인해서 그들의 유감이 가득한 경고를 받았다.
경고는 경고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가 있지만 사혈맹의 무력 부대를 괴멸시킨 그들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심이 되었다.
“사혈맹에서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나?”
“그렇습니다. 그들은 우리 쪽보다는 오히려 마교 쪽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마교라는 말이 나오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변방과 새외의 세력을 규합한 뒤 질적이나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니 경계를 해야겠지.”
제갈탁은 말하면서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딱히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 개운하지가 않아. 그 이유를 생각해 보는 중이다.”
“사천의 일과 을지세가의 일이 아니면 특별하게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정보부뿐만 아니라 비선까지 모두 가동하여 사혈맹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습니다.”
“마교는?”
“그들은 한결같습니다. 배교를 공격할 당시 힘만 믿고 덤볐던 마교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니 이번에는 신중한 모양입니다.”
제갈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찜찜한 기분은 단순히 마교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뭐가 있지?’
제갈탁은 혼자 고심하며 생각에 잠겼다. 미향은 그런 제갈탁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살짝 물러나 그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한참을 생각하던 제갈탁이 입을 열었다.
“상림의 상황은 어떻지? 사혈맹을 지지하는 상단과 우리를 지지하는 상단 그리고 마교를 지지하는 상단의 변화는 없는가?”
“그건 아직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변화가 있었다면 우리가 먼저 느꼈을 터이니 말입니다.”
“한번 꼼꼼하게 알아봐. 전쟁은 물자 수급에서 승패가 갈릴 수도 있어. 우리를 밀어주는 상단이 한순간에 돌아설 수도 있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드러내지 말고 은밀하게 알아봐. 혹여 그들이 가진 문제점도 알 수 있다면 파악해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