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88)
구룡전기-88화(88/217)
구룡전기 (88)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것 같던 객잔의 분위기는 허무하게 풀어졌다. 새명파의 무인들은 모두 돌아가고, 화린과 동춘이 마주 앉아 맹호사사혈전대가 공격받았던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부의 동조자가 있지 않았다면 교역 도시에서 우리의 거점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공격해 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듣기로는 용친왕부에서 흥친왕부의 힘이 강해지는 꼴을 볼 수 없어 맹호사사혈전대를 공격했다고 그러던데.”
“그건 알지 못합니다. 그만큼 완벽하게 기습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낭궁수연 선배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남궁수연이?”
“네. 남궁수연 선배가 퇴로를 뚫었고, 대원들이 그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수연이는?”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놈들과 싸웠습니다. 아마도 그 상황에서는 홀로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 죽었다는 말이군.”
“아마도 그리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 순간 화린의 손이 동춘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따아악!
객잔 안이 크게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났고, 동춘은 그 힘에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내란 새끼가 여자를 지켜 주지 못할망정 혼자 남겨 두고 나와? 정신 차린 후에는 뭐 했어?”
화린이 핀잔을 주자 동춘은 맞은 곳이 아픈지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인상을 썼다.
“뭘 잘했다고 인상을 써!”
화린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동춘은 일그러진 인상을 펴고 활짝 웃었다.
“내가 너희들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한 그 세월이 아깝다,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너무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런 정신머리로 이 험한 무림을 어떻게 헤쳐 나가려고 하는 건지.”
화린은 혀를 차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다른 대원들 소식도 알 수 없겠네?”
“그렇습니다. 뿔뿔이 흩어졌으니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살아 있다면 집이나 문파로 돌아가지 않았겠습니까?”
“무림에서 사고 치고 온 놈들이 돌아갈 곳이 어디 있어?”
맹호사사혈전대는 무공이 어느 정도 완성된 자들이 오는 곳이라 대부분 무림에서 사고 치고 군으로 숨기 위해서 온 자들이었다.
화린이나 남궁수연과 같이 개인적인 이유로 맹호사사혈전대에 입대하는 이들은 지극히 드물었다.
“그놈들 무림에 나와서 사고 치고 다니면 피곤하겠는데. 사파 쪽에서 온 놈들이 많았는데.”
화린이 무림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던 동춘은 화린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장은 어디에 적을 두고 계십니까? 조장 성격에 남 밑에 있지는 않을 것 같고.”
“나? 섬서성 구룡장에 있지.”
“섬서성 구룡장요? 구룡루라는 도박장을 짓고 있다는 그 구룡장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왜, 난 구룡장에 있으면 안 돼?”
“그게 아니라…… 아, 조장이 구룡장에 있어서 파리들이 안 꼬이는 거였구나.”
구룡장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생각 외로 조용했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제아무리 무림의 고수라고 해도 화린과 싸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동춘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구룡장주가 누구인지 몰라도 사람 하나는 정말 잘 고용한 것 같습니다.”
“누가 누굴 고용해?”
“구룡장주가 조장님을요.”
화린은 동춘의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 생각하면 편하지. 구룡루가 영업을 시작하면 고수들이 몇 명 더 필요할 듯한데, 아는 놈 없어?”
“제가 군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귄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문파는 이류 문파라 고수들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래? 그럼 네가 이름 좀 알리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네.”
동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림에서 이름을 알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넌 도움이 안 되겠군. 그냥 우리 삼촌 객잔이나 잘 봐줘. 바쁘다는 핑계로 허투로 봐줬다간 아주 죽을 줄 알아. 알겠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아무런 일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입만 번드르르 한 놈이라 이거 믿을 수가 있어야지.”
“믿어 주십시오.”
화린은 못 미더운 표정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니다. 내가 너희들 키워줘?”
그 말에 동춘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몸의 반응과 대답은 정반대로 튀어나왔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운남성에서 오는 물자가 중간에서 털렸다고?”
“죄송합니다.”
“어떤 놈이?”
“억양이 중원인의 억양이 아니었습니다. 운남성 아래 묘강의 부족민인 것 같은데 확실치가 않습니다.”
운남성에서 곡물을 빼앗기고 달아난 표두가 사천의 호주로 와서는 화정수를 만나 운남성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였다.
화정수는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참고 되물었다.
“묘강 놈들이라고?”
“복면을 쓰고 있어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다만 억양이 중원보다는 묘강에 가까웠습니다.”
“내 분명 무림의 고수를 초빙하여 지키라고 하였다. 도대체 어떤 놈을 구하였기에…….”
“무림백대고수 중 한 명인 통천장 배윤걸을 초빙하였고, 그를 따르는 무인 서른 명도 함께 초빙하였습니다.”
“통천장 배윤걸. 그가 있음에도 곡물을 털렸단 말이냐?”
“통천장 배윤걸은 놈들의 우두머리와 싸우다 단 일 합에 가슴이 타 죽어 버렸습니다. 이천수 님도 그자의 일 합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화정수는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통천장 배윤걸은 장법의 고수로 이미 그의 강함은 무림에 크게 알려진 터라 그가 일 합에 당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침울한 신음과 함께 눈을 좁혔다.
무림백대고수가 일 합도 나누지 못하고 죽었으니 곡물을 버리고 달아난 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영천상단의 동서독이 한 짓이 분명할 터!’
광산 일부와 곡물 운송권을 교환하자던 동서독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비열한 수법으로 자신의 뒤를 노린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내가 놈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 일단 귀주성과 광서성에서 얻은 곡물을 싣고 팔로수로군의 보급창이 있는 절강성 해염현으로 가야겠군. 그곳에 납품한 후에 정천맹과 이야기하여 동서독 이놈을 요절내어 버릴 것이다.’
화정수는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로 하였다. 가장 큰 돈이 되는 팔로수로군의 군납을 먼저 처리한 후에 트라빌 왕국에서 곡물을 구해 나머지 거래처에 보내어 준다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너는 표사들과 함께 호북성으로 가서 지부장에게 우리가 먹을 식료품을 준비해 기다리라 전하라.”
“알겠습니다.”
식료품을 준비해 기다리라는 말은 중간에 쉬지 않고 곧장 장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강소성까지 가겠다는 뜻이었다.
중간에 쉬었다가 또 곡물을 털리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매우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팔로수로군과의 거래가 끊어질 수도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곡물을 사수해야 했다.
“혹시 모르니 식료품을 준비하고 부두에 사람들이 오지 못하도록 단속을 하라고 전하여라.”
“알겠습니다.”
“지금 떠나거라.”
표두가 서둘러 사천 호주를 떠나 호북성으로 향했다. 그가 떠나자 화정수는 방을 나왔다.
그는 사천 호주에 있는 화명상단의 객잔을 통째로 빌려서 외부인은 받지 않고 숙식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곧 객잔의 별채로 간 화정수는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호중산 대협, 쉬시는데 송구합니다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진명검 호중산!
그 역시 무림백대고수 중 한 명으로 검을 사용하는 무인이다. 그의 독문 검법인 진명십이수는 무림에서도 일절이라 알려져 있는 독특한 검술로, 검을 움직일 때마다 검명이 흘러나온다고 하여 진명검이란 무명을 얻었다.
같은 무림백대고수에 속한다고 하지만 통천장 배윤걸보다는 진명검 호중산이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들어오십시오.”
별채의 방 안에서 소리가 들리자, 화정수는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림백대고수에 드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였다.
화정수의 행동을 보면 상인들이 무림인들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었다.
호중산은 화정수와 비슷한 연배지만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쉽게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냉정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무슨 일입니까?”
“실은 운남성에서도 곡물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쪽에 문제가 생겼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곡물이 털렸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음…….”
“곡물이 털린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곡물을 지키기 위해 우리 쪽에서 부탁을 했던 분이 통천장 배윤걸 대협이었습니다.”
“배윤걸이 있었는데 털렸단 말입니까?”
끝까지 냉정을 유지할 것 같았던 호중산의 표정에 묘한 변화가 생겼다.
“도망쳐 온 표두의 말을 들어 보면 일 합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호중산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화정수를 보았고, 그는 거짓이 섞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대체 누가? 십대고수라도 왔단 말입니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의 억양이 중원인보다는 묘강의 부족민과 비슷했다고 하였습니다.”
묘강이라는 말에 호중산은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묘강인 중에서 배윤걸을 일 합에 죽일 수 있는 자가 있는지 생각해 보기 위함이었다.
‘지금 묘강은 혼세 부족의 영향력 아래 있다. 혼세 부족의 최고 전사인 라한도 배윤걸을 일 합에 죽일 수가 없는데.’
“혹여 그자가 이곳으로 와서 곡물을 노린다면 호중산 대협과 싸울 수도 있겠다 싶어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아마도 배윤걸 그 친구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놈은 전력으로 기습을 한 모양입니다.”
호중산은 자신은 그런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화정수를 돌려보냈다.
화정수는 내심을 숨기며 그에게 고개를 숙인 후에 별채를 나와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놈, 나는 고용인인데 대우는커녕 하인 대하듯 하니…….”
힘이 없다는 건 그만큼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 노력 중이고, 또 초일류 혹은 절정의 무공서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기도 하였다.
화정수는 객잔의 방으로 돌아갈까 하다 혹시나 하여 곡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곡물의 양이 많아 창고 안에 모두 넣지 못하고, 창고 뒤쪽에 있는 공터에 곡물 가마니를 쌓아 두고 있었다.
경계를 서는 무인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곡물을 지키고 있어 다행히 곡물은 안전해 보였다.
“오셨습니까?”
“수고들 하네. 자네들이 힘든 건 알고 있네. 내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해 줄 터이니 조금만 더 고생을 해 주게.”
“열두 시진을 쉬지 않고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그러니 곡물이 도난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운남성에서 오던 곡물이 괴한들에게 털렸다네. 그러니 내가 더 걱정이 되지 않겠나.”
“운남성에서 말입니까?”
“그렇다네. 솔직히 지금 심장이 타들어 가고, 피가 마를 지경이라네.”
“저희가 무슨 일이 있어도 곡물을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심려 놓으십시오. 호중산 어르신도 계시니 놈들도 곡물을 노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틀 후면 광서성에서 오는 곡물이 도착하네. 그때 선박에 옮겨 실을 것이니 그때까지만 잘 부탁하네.”
자신들에게까지 부탁을 하는 화정수를 본 무인들은 그가 처한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부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