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89)
구룡전기-89화(89/217)
구룡전기 (89)
마침내 광서성에서 출발한 곡물이 아무런 사고 없이 사천성 호주에 도착하였다.
곡물이 도착하자마자 화정수는 곧바로 곡물을 두 척의 배에 나누어 실었다.
“서둘러라. 미시 초입에는 배가 출발해야 한다.”
화정수는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곡물을 싣고 배가 떠나면 될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뭍에서 곡물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곡물은 선박의 아래쪽, 노잡이 선원들이 있는 곳에 쌓아 두었는데, 노잡이 선원들이 많으니 누군가 침투하여도 그들의 시선을 온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곡물들이 쌓이면서 노잡이 선원들이 움직일 공간까지 제약하였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번 운반만 무사하게 마치면 보수를 곱절로 받기로 하였으니 이 정도의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통로는 만들어 둬야지.”
노잡이 선원들도 볼일을 보고 밥을 먹을 때는 움직여야 하니 좁은 길을 만들어 다닐 수 있도록 하고 그 나머지 공간을 모두 채웠다.
“더 이상 쌓을 공간이 없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창고에 쌓아 둔다. 서둘러 움직여라.”
그의 말에 곡물 가마니를 옮기는 일꾼들은 반색하였다.
노잡이 선원들이 있는 곳은 배의 가장 아래층이 있는 타기실이었기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였다.
창고는 타기실 위에 있었지만 그래도 한 층 안 내려오는 것만으로 그들은 힘을 더 낼 수가 있었다.
곡물 가마니가 배에 선적될 때마다 이를 지켜보는 화정수는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제아무리 무공에 뛰어난 놈이라고 해도 진명검 호중산과 비천도 적염천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정수가 초빙한 고수가 호중산이었고, 광서성으로 간 화정국이 초빙한 고수가 비천도 적염천이었다.
적염천 역시 무림백대고수로 호중산과 쌍벽을 이룰 만큼 강한 도법의 고수이기도 하였다.
배윤걸이 방심을 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상관없이 일단 두 사람이 동행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큰 힘이 되었다.
육지에 쌓아 두었던 곡물의 양이 줄어들수록 배는 조금씩 내려앉았지만 준비한 곡물은 두 척의 배에 모두 실을 수가 있었다.
곡물을 모두 싣자, 배는 닻을 올리고, 돛을 펼쳤다.
“출항한다.”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두 척의 선박은 선착장을 떠나 장강의 물살을 가르며 강소성으로 향했다.
이제 호북성 무한에서 한 번 식료품을 공급받는 일을 제외하고는 강소성에 도착할 때까지 배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매 시진 타기실과 창고에 있는 곡물의 수량이 변하는지를 확인하고, 또 수상한 자가 없는지 잘 살펴보도록 해라.”
“옛!”
* * *
“영차, 영차!”
타기실에서는 노잡이 선원들이 구호와 함께 힘껏 노를 젓고 있었는데 그들의 노 젓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들의 가장 뒤쪽, 선미에서 조타기를 잡고 있는 사내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타기실에 쌓인 곡물 가마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수가 두 명 있고, 그 외에 무림인이 다수이고, 화정수 이놈은 술법을 익히고 있단 말이지.’
그는 다름 아닌 화린이었다. 그는 얼굴을 바꾸고 조타수로 위장해서 배에 승선하였는데 기회를 엿보다 몰래 곡물을 훔쳐 달아날 계획을 세워 두었다.
‘배 한 척에 한 명씩 타고 있으니 상대 못 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싸우면 내가 불리한 조건이란 말이지.’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고수와 싸우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래도 무공에는 자신이 있어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싸울 수는 있겠지만 아차 하는 순간 절명의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어 다수를 상대로 선박 위에서 싸우는 건 지양하고 싶었다.
‘호북성에서 한 번 정박하였다가 다시 출발한다고 하였으니 일단 정박하였을 때, 여기 곡물을 훔쳐 달아나고, 곧장 강소성으로 가서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야심한 밤을 틈타 훔친 후 장원으로 돌아가면 되겠구나.’
그 후는 안 겪어 봐도 일어날 일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화명상단이 팔로수로군에 곡물을 납품하지 못하였으니 숙부인 영친왕 주영운과 한 약속대로 자신이 팔로수로군에 곡물을 납품하고, 수익을 챙기면 된다.
“곡물을 모두 훔친다고 계산하면 공간 주머니에 들어 있는 곡물의 양은 팔로수로군에 두 해는 납품할 수 있을 양이니 그 기간 동안 곡물을 확보할 수 있는 거래처를 만들면 되겠군.”
화린은 곡물 거래처로 트라빌 왕국을 떠올렸다. 트라빌 왕국의 곡물 생산 능력은 중원을 포함 그 어떤 왕국보다 뛰어나 많은 상인들이 트라빌 왕국과 곡물 거래를 하고 있고, 그렇게 확보된 곡물은 중원을 비롯하여 다른 왕국으로 보내졌다.
‘문제는 내가 트라빌 왕국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데.’
맹호사사혈전대 초기 시절 트라빌 왕국이 뛰어난 곡물 생산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였고, 이 자금을 이용해 전쟁 준비를 한다는 사실이 동창의 정보기관에 알려지면서 맹호사사혈전대가 트라빌 왕국에 경고하기 위해서 출격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화린은 묘강, 월하 등지에서 실전 경험과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후였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적을 상대할 때는 냉정하고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후 늘 출동하면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굳이 과하게 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화린은 조금은 과하게, 잔인하게 손을 썼고, 이를 본 아군조차도 피에 굶주린 사람처럼 보았다.
그래서 그를 피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여 광마, 혹은 혈마라 부르며 멀리하였다.
화린은 사회 경험, 대인관계 등이 전무한 상태에서 군 입대, 그것도 중원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맹호사사혈전대에 입대를 하였다.
그리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화린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더 잔인하게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그런 화린은 진정시키고, 대화를 통해서 화린을 조금씩 변화시킨 사람이 단리혁광이었다.
단리혁광은 화린의 사수로 임무 중에 화린의 목숨을 몇 번이고 구해 준 은인이었고, 또 화린이 피에 미치지 않게 곁에서 붙잡아 준 사람이기도 하였다.
단리혁광이 화린의 곁에 없었다면 화린은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트라빌 왕국으로 출격한 맹호사사혈전대는 전쟁 준비를 하는 트라빌 왕국의 군사들과 싸웠다. 그 과정에서 화린이 홀로 트라빌 왕궁으로 쳐들어가 군사들을 제압하고 국왕을 비롯하여 그의 직계 가족들을 붙잡아 항복을 받아 내었다.
그때 화린이 왕가의 사람 몇 명을 죽였는데 그중에 트라빌 왕국의 적통도 포함되어 있어 아직도 트라빌 왕국 사람들은 화린을 죽일 놈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친구들끼리 싸우다 욕지거리를 하는 경우 ‘이 주화린 같은 놈!’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트라빌 왕국에서 가장 심한 욕지거리가 주화린의 이름이 들어가는 말이었다.
‘화린 같은 새끼를 낳아라’, ‘너네 아빠 화린이다’, ‘화린보다 더한 놈’ 등등…….
그때의 악연으로 인해서 화린은 트라빌 왕국으론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서 총관을 보낼 수도 없고. 앞으로 행정 업무를 봐 줄 사람들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현 12도 방향 전환!
기다란 관을 통해서 전달되는 목소리에 화린은 생각을 접고 조타기를 움직였다.
힘으로 타기를 밀자, 선미에 달려 있는 조타기가 움직이며 배의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하였는데,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구나.’
화린은 상림에 목적을 둔 사람이 아닌 무림에 목적을 둔 사람이었다.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단리혁광의 부탁이니 단리소소와 단리진혁이 한평생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만 도와줄 생각으로 시작하였는데, 조금씩 욕심이 붙었다. 옛 단리세가의 명성까지 찾아 주려고 하다 보니 일이 계속해서 늘어나게 되었다.
‘광산 하나, 팔로수로군에 곡물 납품, 구룡루를 비롯하여 객잔과 기루 그리고 포목점과 전장, 대부업이면 어느 정도 된 것 같긴 한데.’
이 정도의 영업장을 거느리고 있으면 결코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옛 단리세가의 명성에 비하면 부족하겠지.’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단리 형, 지켜봐. 내가 단리세가의 옛 영광까지 찾아 줄 테니까.”
* * *
배가 사천성 호주를 떠난 지 하루가 지났다. 배에서 먹고 자는 것은 물론 이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조치를 하였기에 타기실에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식사요!”
선원 몇 명이 식사를 타기실로 가지고 오면 그때 화린이 노잡이 선원들에게 식사를 나누어 주었는데 식사는 주로 주먹밥이나 감자, 고구마와 비슷한 뿌리 식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었다.
“아, 술 한잔하면 딱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화린이 선원들에게 음식을 전해 줄 때마다 그들은 술 생각이 난다면서 한소리들을 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화린은 웃으며 음식을 건네주었는데 간혹 화린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였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노잡이 선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덤덤한 표정들을 지으며 한 끼의 식사를 받아 앉은 자리에서 먹었다.
음식을 다 나누어 준 화린은 자신의 자리로 와서 손에 쥔 감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내일이면 호북성에 도착을 하나?”
육로보다는 수로가 이동이 빨랐다.
―전방에 수적 출몰, 식사하면서 잠시 대기.
기다란 관을 통해서 타기실에 목소리가 전해지자, 일부 선원들은 잡고 있는 노를 놓고는 기지개를 켰다.
“저것들은 허구한 날 나타나서 삥을 뜯어 가네. 세상에서 가장 팔자 좋은 놈들이야.”
“그러게 말이야. 무공 조금 익혔다고 천하제일고수처럼 지나가는 배마다 찾아와 뜯어 가니.”
“그래도 이번에는 힘들겠지. 듣자 하니 우리 배에 무림백대고수가 두 명이나 타고 있다고 하잖아.”
“우리 배에 두 명이 아니라 저쪽 배에 한 명, 우리 배에 한 명 이렇게 타고 있지. 뭐시냐, 우리 배에는 진명검 호중산이 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그리 유명한가 보더군.”
“백대고수라고 하지 않나. 그 말은 중원에서 백 번째로 강하다는 말이잖아.”
“이 무식한 놈, 백 번째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 백 명 중에 한 명이라고.”
“그게 그거지.”
“무식한 것들. 그게 어찌 같아. 넌 일 등이고, 쟤는 백 등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너희 두 사람을 묶어 백대고수라고 해. 그럼 일등인 네 입장에서는 백 등이랑 같은 취급을 받으면 기분이 좋겠어?”
“안 좋지. 어떤 놈이 그래?”
“그러니까. 백 번째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 백 명 중 한 명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거야.”
“아, 그래? 하여간 수적 저놈들 곧 꼬랑지 빠지게 도망치게 될 거야.”
모두가 수적들이 도망치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가만, 그럼 나도 지금 이거 털고 달아날까?’
화린은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생각을 하였다.
‘호북성에 도착하면 낮이고, 한 시진 정도 보급품을 싣는다고 치면 그때 상황 봐서 움직이는 것보다 지금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화린이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때, 타기실로 목소리가 전달되었다.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출발한다. 좌현 팔 도 노를 저어라.
“내 말이 맞지? 강한 사람 백 명 중에 두 명이 있으니 금방 끝이 나지.”
“그러네. 하긴 수적 놈들도 지들 목숨 귀한 건 잘 알고 있지.”
화린은 타기를 움직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은 도와주려면 확실하게 도와주든가. 야밤에 찔끔 싸고 잽싸게 도망치는 토끼와 같은 놈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