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9)
구룡전기-9화(9/217)
구룡전기 (9)
“또 당했다고?”
대초원의 밤을 지배하고 있는 혈랑대마적단의 단장인 암흑대칸 율랍파는 홍마적단이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로하였다.
맹호사사혈전대의 잔당으로 보이는 자들에게 벌써 여섯 개의 예하 마적단이 당한 것이다.
맹호사사혈전대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자신들이 정말 승리를 하였는지 의문이 생겼다.
최근 들어 예하 마적단들 중에는 맹호사사혈전대의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서 자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들도 생겨날 정도였다.
“홍마적단의 단주 타이단이 죽고, 홍마적단의 마적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최근 들어 마적단의 단주들이 동요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쓰는 율랍파는 잠깐 다른 생각에 잠겼다.
지금 맹호사사혈전대의 잔당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 자신의 손으로 요절을 낼 수 없으니 동요하고 있는 예하 마적단의 단주들의 불안감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마적단을 이끌고 가서 부족들을 공격할까? 아니면 감숙성으로 가서 맹호사사혈전대가 있는 교역 도시를 약탈할까?’
자신이 마적단을 이끌고 감숙성으로 간다면 중원의 군대가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된다면 대초원의 대부족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테지.’
중원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 대초원의 부족민들은 중원의 군대가 넘어오면 그들 스스로가 마적단을 붙잡아 중원의 군대에 넘겨주려고 할 것이다.
‘결국 부족들을 약탈해야 하는 건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파이탄, 각 단주들은 언제 오지?”
“모이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늦어도 내일이면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내일이라…….”
율랍파는 몸을 돌려 자신의 등 뒤에 붙어 있는 대초원 각 부족들의 위치가 기록이 되어 있는 지도를 보며 생각하였다.
“파이탄.”
“네. 칸!”
“이 많은 부족들 중에 약탈품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는 부족이 어디 있을까?”
“네에? 설마…….”
파이탄이 놀란 눈으로 율랍파를 보았다.
“내부의 불만과 공포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해. 그러지 않으면 그 불만이 나에게로 향할 거야.”
파이탄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 상태로는 맹호사사혈전대의 잔당을 만나면 또 당할 수가 있어. 꺾인 기세를 올릴 필요도 있어.”
“현명한 생각이십니다.”
“어찌 생각하나? 호화호특이 낫겠나? 극심동특이 낫겠나?”
율랍파의 물음에 파이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하였다.
“피해 없이 약탈을 하려면 극심동특이 낫겠지만 많은 재물을 약탈하려면 피해는 조금 있더라도 호화호특이 모두가 만족할 만큼의 재물을 얻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이군. 그럼 호화호특으로 하지. 그들 역시 우리가 약탈하러 온다고 하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터이니 미리 심어 둔 간자들을 통해서 몇 가지 작업을 해 두라고 먼저 일러둬.”
“알겠습니다.”
* * *
호화호특은 대초원의 최대 부족이 살고 있는 부족 도시로 사실상 대초원의 수백 개의 부족을 이끌어 가는 열 개의 부족들 중 수장에 해당하는 크고 강성한 부족이었다.
그런 호화호특의 도시가 불에 타고 있는 중이었다.
“크아아악!”
암흑대칸이라 불리는 율랍파가 마적단들을 이끌고 호화호특을 약탈하기 위해서 침공한 것이었다.
이들은 미리 심어 둔 간자들을 이용하여 도시 곳곳에 큰불을 내어 부족민들의 시선을 돌린 다음 기습을 하였고, 호화호특의 무인들에게 독을 사용하여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마적단은 무차별 살육을 자행하며 호화호특에서 살고 있는 부족민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작전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부족민들은 감히 마적들에게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해 달아날 뿐이었다.
“마음껏 죽이고 마음껏 약탈하라.”
율랍파는 마적단의 마적들에게 소리쳤다. 그는 지금 마적단의 단주들과 고수들을 데리고 호화호특의 무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크아아악!”
고통과 비명이 난무하는 지금의 호화호특은 팔대지옥의 아비지옥과 규환지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라라락!
“커어억!”
검을 든 마적 한 명이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누군가가 살인과 방화, 강간을 일삼은 마적들을 노리고 그들을 죽이고 있었다.
마적들은 자신이 어찌 당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화린이었다. 우연찮게 화린이 호화호특의 도시에 있을 때, 마적들이 공격을 해 왔고, 화린은 마적단의 고수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자, 그들을 제외하고 은밀하게 일반 마적들을 죽이며 다녔다.
마적들 역시 일류, 초일류의 고수들이었지만 화린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화린은 마치 노련한 살수인 것처럼 은밀하게 마적들의 눈을 피해서 그들의 수를 줄여 나가는 중이었다.
네 명이 모여 약탈하는 마적단이 보이자, 귀신처럼 접근하여 그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검기의 잔상이 네 명의 마적단의 목을 향했고, 마적들은 살기조차 느끼지 못하고 목이 어깨에서 분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화린의 손에는 자신이 즐겨 쓰는 검이 아닌 검붉은 색을 띠는 단소를 들고 있었는데 단소의 끝에 검날이 튀어나와 있는 기병이었다.
그들이 죽은 걸 확인한 화린은 자리를 떠났고, 마적들에게 죽을 처지에 있던 사람들은 그저 두려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화린에게는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마적단의 고수들은 따로 빠져 있어 위험부담이 없을뿐더러 마적들의 수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줄여 놓는다면 다른 마적단의 단장들이 율랍파에 대해서 신임할 수 없을 것이니 마적단의 분열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커어억!”
화린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심법의 근원이 되는 공무도원공과 황궁 무고에서 익힌 무공들과 그동안 맹호사사혈전대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경험은 큰 힘이 되었다.
화린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마적들이 죽어 나갔다.
“크아악!”
그러는 가운데 화린은 마적들과 싸우고 있는 한 여성을 발견하였다. 화린은 그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남궁세가의 사고뭉치이자, 오자마자 사파인을 죽이겠다고 칼부림을 한 남궁세가의 여식이었다.
“남궁수연이라고 했나? 세가로 안 돌아가고 아직 대초원에 남아 있었던 건가?”
화린은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들 중에서 마적들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난 대원들은 대부분 부대로 복귀를 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궁수연과 같이 신참내기들은 보통 이러한 경우 탈영하여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그녀가 남아서 마적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멍청함에 고개가 절로 좌우로 흔들어졌다.
화린이 남궁수연의 모습을 잠깐 보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할 때, 그녀의 신형이 뒤로 밀려나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인상을 쓰며 한 손으로 복부를 잡고 있는 것이 아마도 부상을 당한 모양이었다.
마적들이 남궁수연에게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본 화린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미친년이, 손발을 잘라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에 겁탈해 주마.”
“이길 수 있으면 니 꼴리는 대로 해!”
남궁수연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이들 사이로 검은 인영이 끼어들더니 마적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한 명이 피가 허공으로 솟구치며 자신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뒤로 넘어갔고, 그 모습을 보고 놀란 그의 동료들이 검은 인영의 움직임을 알아챘을 때, 가슴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함을 느꼈다.
“언……제…….”
마적들이 쓰러지자, 화린은 남궁수연을 보았다.
“작전은 실패했다. 아직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여기서 뭣 하는 거지?”
화린이 남궁수연에게 묻자, 그제야 같은 맹호사사혈전대의 대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얼굴을 보니 지난날 조장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선임임을 알 수가 있었다.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곳 부족민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아직 상처가…….”
남궁수연은 화린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그 몸으로 싸우는 건 무리다. 그렇게 죽으면 개죽음보다 못한 죽음이다. 그러니 어디 들어가 있던지, 아니면 부대로 복귀하라.”
“하오나…….”
“이건 선임으로서 명령이다.”
남궁수연은 입술을 깨물더니 화린을 보고 말을 하였다.
“그럼 숨어 몸을 사리고 있겠습니다.”
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가 끝나면 부대로 복귀하거나 세가로 돌아가라.”
화린은 그 말을 끝으로 부상을 당한 남궁수연을 떠나 마적들을 찾아 움직였다.
그런 화린을 보는 남궁수연은 주먹을 쥐었다. 뭔가 모를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는데 이제까지 살면서 처음 느끼는 그런 감정이었다.
“제기랄…….”
남궁수연은 그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대로 지금의 난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일단…….”
남궁수연은 자신의 검을 챙긴 후에 근처 빈집을 찾아 들어갔다.
화린은 남궁수연을 떠나 마적들을 찾아다니며 베어 넘겼는데 그 수가 백 명이 넘었다.
콰아아아앙!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요란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한 건가?”
호화호특의 고수들과 마적단의 고수들이 맞붙는 소리임을 직감한 화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겨났다.
“조금 오랫동안 치고받고 싸웠으면 좋겠군.”
화린은 자신이 마적들을 죽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으니 그들이 될 수 있으면 오래 싸웠으면 하였다.
“그럼 나도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지.”
* * *
암흑대칸 율랍파는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상황에 분노하고 있었다.
호화호특의 고수들을 물리칠 때만 해도 그는 기분이 좋았다. 자신들의 승리를 직감하였고, 도시의 모든 것을 약탈하고 여인들을 겁탈할 수가 있으니 마적단의 사기는 올라갈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역시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고, 전리품을 얻기 위해서 호화호특의 여자들을 겁탈하고 술을 마시며 자축을 하였지만 하루가 지난 지금 그 자축은 분노로 변해 있었다.
자신을 비롯하여 마적단의 절정 고수들이 호화호특의 고수들을 상대할 때, 누군가가 수하들을 학살하였고, 그 결과 수백 명이 넘는 수하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 호화호특의 부족 도시를 공격하여 약탈하였지만 반대로 수백 명의 수하들을 잃어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다른 마적단의 단주들의 시선 역시 곱지 않았다. 자신의 수하들을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이 넘게 잃어서였다.
―도형, 수하들을 얼마나 잃었소? 나는 칠십이 넘소.
―나도 마찬가지야. 백 명 정도, 다른 부족들에게 알려지면 도망자 신세가 되어야 할 것 같네.
―빌어먹을 대칸의 말을 듣고 행했는데 이게 무슨 꼬락서니인지……, 대칸의 수하들도 제법 잃었겠지요?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대칸의 주위에는 고수들이 워낙 많으니 그 정도의 수하를 잃었다고 해도 큰 피해는 없다고 봐야지.
―그럼 우리를 제물로 자신이 최대 난적인 호화호특 부족을 친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자신들의 수하들이 당한 상태이니 이렇게 생각을 해도 반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많은 마적단의 단장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여도 그 생각이나 불만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어찌할 거요? 나는 몸을 사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오.
―대칸 밑으로 들어가면 중간 간부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미쳤소. 용 꼬리보다는 뱀 머리라 하지 않소. 그래도 백 명이 넘는 마적을 움직였던 두목이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해도 남 밑에서는 일 못 하겠소.
―남은 수하들은?
―여기서 얻은 거 대충 나누어 준 후에 잠시 숨어 있어라 말을 하고 나 역시 잠시 피해 있어야 할 것 같소.
―나도 그래야겠구만.
마적단의 단주들은 서로 마음이 맞는 이들과 전음으로 자신의 앞길을 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