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90)
구룡전기-90화(90/217)
구룡전기 (90)
“그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앞으로 일어날 무림의 일에 대해서 잘 대처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정천맹 정보부의 수장인 미향이 화산파를 방문해 매산 장문인과 독대하며 화산파에서 구주사망혈루대를 견제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문인께서 구주사망혈루대를 견제하여 시간을 벌어 준다고 하였고, 마침 그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 부탁을 하였지만 이제는 무림과 자신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며 거절당하였습니다.”
“무림과 관계가 없는 사람?”
“예전에는 무림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은퇴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더 이상 무림에 관여하기 싫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화산의 집행자들을 보냈습니다.”
“화산의 집행자들을 말입니까?”
화산의 집행자들은 혈매화검수를 말하는 것으로 그들에 대한 건 화산파의 기밀이며 무림에서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소림의 밀소림, 무당의 집법무당, 화산의 혈매화, 청성의 진혈청성검수, 아미의 항마검화, 곤륜의 진성운룡과 같은 조직은 무림에서도 기밀에 속하는 조직이었다.
매산 장문인이 혈매화의 이름을 간접적으로 언급하자, 미향은 더 이상 그들에 대해서 물을 수 없었다.
“장문인께서는 그들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들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미향은 질문 자체를 바꾸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 알려 주십시오.”
“우리가 사천에 도착하였을 때는 구주사망혈루대가 이동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천에 모여 있는 무림인들을…….”
매산 장문인은 태태사조인 명율에게 들은 화린의 이야기를 주인공만 바꾸어서 미향에게 해 주었다.
화산의 집행자들, 즉 혈매화검수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금의 변화를 주었고 이야기를 듣는 미향은 매산 장문인의 이야기에서 이상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랬군요.”
“그 후에 그들이 전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전멸과 화산파는 아무런 관련이 없군요.”
“단일 문파, 혹은 세가의 힘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미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검황, 독왕, 권왕, 도왕이 있는 이 네 가문을 제외하고는 없을 듯합니다. 하나 네 가문도 그들을 상대로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검황의 남궁가, 독왕의 당가, 권왕의 황보가, 도왕의 팽가 이렇게 네 가문을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설령 중원십대고수에 속한 이들이라고 해도 사령혈마대, 적령혈사대 그리고 구주사망혈루대와 싸운다면 가문은 피해를 입고 쇄락할 것이다.
그럼 결국 십대세가의 지위에서 밀려나 그저 그런 가문으로 전락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요즘 맹이 이번 일로 인해서 조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혈맹과 마교가 힘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정천맹도 그렇고, 십대세가, 구파일방 역시 이를 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매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산파 역시 닥쳐올 환란을 준비하는 가운데 있었고, 또 가까이 있는 종남파와 함께 위기를 잘 견디기 위해서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사혈맹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개의 무력 부대가 괴멸되니, 사혈맹이 몸을 사리게 되었고, 이 여파로 힘을 모아 두었던 정천맹과 십대세가는 이 힘을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
“맹에서의 세력 다툼입니다.”
세력 다툼이라는 말에 매산 장문인은 살짝 눈을 좁혔다.
정천맹의 세력은 맹주를 비롯한 정천맹의 요직에 앉아 있는 맹주의 사람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두 번째는 장로원을 장악하고 있는 십대세가의 사람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천맹의 상황을 관망하듯 지켜보는 구파일방의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상 구파일방의 사람들은 정천맹 안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장로원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맹주님의 발언이 더 크니 그들이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곧 있을 개편에 맹의 요직에 앉힐 사람을 자신들의 사람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인사권이 아무리 장로원에 있다고 하지만 세가와 구파일방은 맹의 인사에 관여하지 않기로 합의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 합의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을 하고 있고, 마교와 사혈맹이 연일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니 맹을 움직이고 지휘하는 이들의 무공도 이제는 중요해졌다는 것이 장로원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화산에서 말씀하셨던 그분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를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이 약해 정천맹의 입장에서는 강한 무인이 필요하였고, 이번에 화산에서 추천한 그를 정천맹으로 끌어들이려던 것이다. 그런 뒤 장로원의 뜻에 따라 인재 영입을 통해 정천맹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장로원의 생각을 접게 만들려고 하였다.
“그랬군요. 하지만 그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혹시 주변에 인재들이 있으면 추천을 좀 해 주십시오.”
* * *
곡물을 실은 화명상단의 선박 두 척이 사천성의 호주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무한의 장강 선착장에 대기하고 있던 화명상단의 호북성 지부에서는 식료품을 비롯하여 배에서 사용할 선용품을 준비하고 두 척의 배가 정박하기를 기다렸다.
배가 무사히 정박하자, 서둘러 식료품과 생필품 그리고 선박을 수리할 때 필요한 선용품들을 싣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화린은 배가 정박하자마자, 타기실 허공에 손가락으로 점을 찍었다.
그 자리에 공간 주머니가 생겨났고, 공간 주머니는 곡물 가마니를 집어삼키기 시작하였다.
공간 주머니가 곡물 가마니를 삼키고 있었지만 노잡이 선원들은 누구 하나 놀라거나 이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혹은 이 모습을 보지 못한 것처럼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떠들고 웃을 뿐이었다.
화린은 금전 하나를 곡물값으로 바닥에 내려다 놓고 술법을 이용하여 타기실 안에 쌓아 두었던 곡물 가마니의 무게와 똑같이 만들었다.
공간 주머니 안으로 사라진 곡물 가마니의 무게만큼 선박이 가벼워졌음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공간 주머니가 순식간에 타기실에 쌓아 두었던 곡물을 집어삼키자, 널찍한 공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제 강소성으로 먼저 가서 기다리다 배가 도착하면 곡물을 들고 도망치면 되겠네.’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어진 화린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려고 할 때, 강맹한 기운이 타기실의 문을 부수고 날아들었다.
“허엇!”
화린은 놀라 헛바람을 들이켜며 바닥을 굴러 타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 난 구멍을 통해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곧장 타기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진명검 호중산이었다. 호중산은 화린이 조타기와 연결된 구멍으로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검을 휘둘렀다.
퍼어어엉… 콰지지직…….
폭음과 함께 선박의 뒤쪽이 터져 나가면서 사람들이 놀라 그곳을 보았고, 호중산은 그 구멍을 통해 지체 없이 강물로 뛰어내렸다.
풍덩.
화린은 자신의 따라 강물로 뛰어내린 호중산을 볼 수 있었고, 그를 피해 최대한 멀리 벗어나려고 하였다.
이곳에서 싸우게 되면 화명상단에서 고용한 무인들뿐만 아니라 비천도 적염천까지 가세할 수 있어 될 수 있으면 멀리 벗어나려고 하였다.
화린은 등평도수와 비슷한 신법으로 강물 위를 내달렸고, 호중산 역시 이에 못지않은 경신술을 익혔는지 곧장 화린의 뒤를 쫓았다.
“이게 무슨 일이래?”
선용품을 싣던 일꾼들을 갑작스러운 일에 웅성거렸고, 화정수는 갑판에 있다 소란이 일어나자, 황급하게 타기실로 내려갔다.
텅 비어 있는 타기실을 발견한 화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 이……!”
화정수가 분노를 드러내는 이 순간에도 노잡이 선원들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는데, 이들의 눈에는 사라진 곡물이 보이지 않는 듯하였다.
“어떤 놈이냐?”
이들의 대화에 화정수가 끼어들자, 한 선원이 대답하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곡물을 훔쳐 간 놈 말이다.”
“네에? 곡물요. 곡물이야 지금…… 허엇!”
선원은 그제야 곡물이 사라진 현장이 눈에 보이는지 말을 하다 헛바람을 들이켜더니 손으로 두 눈을 닦은 후에 다시 보았다.
“곡물 어디 갔습니까?”
“뭐야!”
되레 자신에게 묻는 선원을 보고 분노한 화정수가 크게 소리쳤다.
“내, 분명 너희들에게 곡물을 잘 감시하라고 전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곡물을 훔쳐 달아날 동안 옆에 사람들과 희희낙락거려!”
“아니, 분명 곡물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노잡이 선원들이 한결같이 조금 전까진 곡물이 있었다고 말하자, 더욱 화가 났다.
“조금 전까지 있었고, 지금은 없지 않으냐? 너희에게 곱절의 삯을 준다고 하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지! 내가 너희들에게 특별히 부탁을…… 에잇!”
말을 하려다 몸을 돌린 화정수는 그제야 타기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타기장은 어디 간 것이냐?”
“타기장요? 타기장이 어디 있었습니까? 우리 배는 타기장이 없습니다.”
“뭐? 분명 배에 조타기를 잡은 조타수가 있지 않았느냐?”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장강의 물살은 완만하여 타기로 방향을 잡기보다는 노를 저어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뭐? 그럼 조타수라고 한 놈은?”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없다고 단언을 하자, 조타수란 자가 범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자의 용모파기가…….”
화정수는 조타수란 자의 용모파기를 떠올려 보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화정수는 진명검 호중산이 곡물을 훔쳐 달아난 놈을 잡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구멍이 난 선미를 바라보았다.
* * *
화린은 강물 위를 달리면서 육지에서도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경공술로 앞으로 치고 나오는 자가 있었는데 바로 비천도 적염천이었다.
화린이 경신술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나 물 위를 뛰는 것과 육지를 뛰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어느새 비천도 적염천이 화린을 따라잡았고, 등에 메고 있던 도를 화린이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쉐이이이익!
강력한 기운을 머금은 도강이 화린을 향해 날아왔고, 화린은 도강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그러자 화린의 뒤를 쫓아오던 호중산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도약하더니 허공에서 화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무수한 검기가 뻗어 나와 화린이 움직일 수 있는 방위를 모두 차단하였고, 화린도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어 검을 빼어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검기를 쳐 냈다.
퍼어어엉…… 펑…… 펑…… 펑…….
호중산이 강 위로 내려서고 마치 평지에서 싸우는 것처럼 화린을 향해 검을 움직였다.
그의 검은 유려하면서도 날카로웠고, 가벼운 듯하면서도 무거운 힘을 지고 있었다.
체에에엥!
화린 역시 실력을 감추지 않고 검을 움직여 호중산의 검을 막아 내었다.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작은 파장들이 일어났고, 그 파장은 주변에 영향력을 미쳤다.
조금 떨어진 육지에서는 강물 위에서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이 신기한지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싸움 구경을 하였고, 화명상단의 무인들이 곧 그곳에 도착하여 구경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었다.
진명검 호중산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검명이 흘러나왔는데 그 소리가 화린의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만들었다.
“이래서 진명검이라 하나?”
화린의 말에 호중산이 반응을 하였다.
“왜 남의 곡물을 털지?”
“도둑놈이 도둑질을 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어서 훔치나? 그냥 훔치고 싶으면 훔치는 거야. 너희 무림인이 사람을 죽일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이듯 말이야.”
“흥!”
“사람들은 참 이상해. 왜 자신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자기 생각이 맞다고 강요하는 거지?”
화린이 검로 변화를 일으키자, 주변의 기운이 사납게 휘몰아쳤다.
체에에엥!
그뿐 아니라 검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호중산은 순간 당황하였지만 그는 중원백대고수에 속한 사람처럼 냉정하게 화린의 검로를 파악하여 방어하였다.
“나에게 곡물을 털었냐고 물었지? 그럼 나도 하나 묻지. 당신은 왜 무림에서 사교라 정의하고 멸문시킨 배교의 술법을 훔쳐 익힌 것이지?”
티이잉!
화린의 질문에 너무 놀랐는지 호중산은 순간 잡고 있던 검을 놓칠 뻔하였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너의 검명, 순수한 검명이 아니라 배교의 탈명혼이라는 술법으로 네놈이 죽인 자의 원혼을 검에 붙잡아 놓은 것이 아니더냐!”
순간 호중산의 눈에 진한 살기가 내려앉았고, 그에 따라 호중산의 검에서 더욱 진한 울음이 퍼져 나왔다.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검명으로 둔갑시켜 사람들을 속여 온 사기꾼에 불과한 놈이 무림백대고수라니…, 웃길 노릇이군.”
호중산은 눈앞에 있는 자를 속일 수 없다고 판단하였는지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었다.
“어찌 알았는지는 몰라도 네놈은 살아서 여기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구나.”
“언제는 살려 줄 마음이 있었고?”
“굳이 죽일 생각은 없었다. 팔다리 잘라 내고 훔쳐간 곡물을 받아 내려 하였을 뿐, 하나, 이제는 네놈의 안목과 식견을 원망하며 나의 검의 재물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