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he Nine Dragons RAW novel - Chapter (95)
구룡전기-95화(95/217)
구룡전기 (95)
“전하, 한 달의 말미를 주십시오.”
화정수는 영친왕부를 찾아가 영친왕 주영운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
“한 달?”
“곡물을 운송하는 도중에 곡물을 탈취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한 달만, 한 달만 말미를 주십시오.”
“한 달? 그 안에 우리 군사들은 굶어 죽으란 말이냐? 곡물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이해라도 하겠다. 하지만 도난당했다고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우리 병사들은 어찌하란 말이냐.”
주영운의 호통에 화정수는 이마를 바닥에 붙인 채로 말미를 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럴 수는 없다. 곡물은 군사들의 사기와 직결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 곡물을 가져오지 못하고 몸만 와서 한 달의 말미를 달라고 말을 하면 내가 자네를 믿고 그러한 기회를 줄 것이라 생각하나?”
“전하.”
“그대와 오랫동안 거래를 하였다. 그동안 이러한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대를 믿고 시간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창고에 곡물이 남아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송구하옵니다.”
“우기가 오기 전에 곡물을 납품해야 했지만 그때도 곡물을 도난당하였다고 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우기가 끝나고 곡물을 가지고 오겠다고 시간을 달라고 하여 내 그대에게 시간을 주었다.”
화정수는 주영운에게 말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네가 곡물을 가지고 오는 동안 비축했던 곡물을 풀었고, 이젠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는 기다려 줄 수 없다.”
“전하!”
“그대에게 사정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사정이 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굶길 수는 없는 법이다.”
“한 달만…… 한 달이면…….”
“그대의 편의를 봐주자고 국가가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 내일부터 당장 다른 곡물 판매업자를 알아볼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다음에 입찰하도록 하라.”
“전하, 이제까지 실수 없이 거래를 해 오지 않았습니까? 저희 상단의 노력도 생각해 주십시오.”
“그대에게 이익이 없다면 그러한 노력을 했겠나? 마치 모두 우리 군을 위해서 한 일처럼 말하니 기분이 언짢군.”
“죄송합니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 정을 생각하여 비축한 곡물을 다 사용할 때까지 그대를 기다려 준 것이 아닌가?”
“전하.”
“상인이라는 사람이 정을 논하는 것이 우습지 않나? 그만 돌아가도록.”
“전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화정수가 엎드려 사정하였지만 주영운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주영운에게 냉혹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군대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국가의 안전과 군사들의 생명 그리고 사기 진작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
주영운이 몸을 돌리자, 장수가 화정수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내가 그대라면 이렇게 사정만 할 것이 아니라 곡물을 확보해 가지고 와서 전하께 부탁드릴 것이오.”
화정수가 장수를 보았다.
“입만 가지고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뜻이오. 그러니 여기서 구차하게 변명이나 약속을 하기보다는 곡물을 구해 오는 편이 더 빠를 것이오.”
화정수는 장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대로 곡물을 가지고 와서 다음 거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다음에 곡물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찾아뵐 동안 강녕하십시오.”
화정수는 허리를 숙인 후에 몸을 돌려 영친왕부를 나섰다.
“너는 지금 구룡장에 연락을 넣어 곡물을 가지고 오라고 전하여라.”
“옛!”
* * *
화린은 영친왕부에서 연락이 오자, 보급창이 있는 절강성 해염현으로 가서 곡물을 납품하였고, 납품 대금으로 대륙전장의 전표를 받았다.
그런 후에 강소성의 영친왕부를 찾아와 숙부인 주영운에게 인사를 드렸다.
“다행히 무사하게 납품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래? 최근 들어 곡물 도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던데 그에 대한 소문은 들어 보았느냐?”
“네. 무림이 개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부 무림인들이 곡물을 수탈해 간다는 말은 들어 보았습니다.”
“너는 그 많은 곡물을 옮기면서도 무탈한 것을 보니 다행이로구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것이 뭐가 있더냐, 내가 고마워해야지. 화명상단의 상단주가 그러더구나. 곡물을 도난당했으니 한 달의 말미를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한 달 안에 그 많은 양의 곡물은 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중원 전역에서 곡물을 수급하는 시기라 이미 계약된 곡물들이 움직이고 있어 곡물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트라빌 왕국이라면 충분히 곡물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나, 트라빌 왕국과 중원 사이에는 대초원이 있습니다. 중간에 마적단을 만나지 않더라도 오가는 데 한 달 보름은 걸릴 것입니다.”
“잘 알겠다. 너는 좀 어떠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곧 구룡루의 장사가 시작되면 조금 더 바빠질 것 같습니다.”
“도박장이라……. 허허허.”
주영운은 헛웃음과 함께 물었다.
“폐하의 자식이 민생을 파탄으로 내몰 수 있는 도박장을 개설하고 운영한다는 것이 정말 기가 차는구나. 너는 어찌 그런 생각을 한 것이냐?”
“욕심만 버린다면 도박장을 운영해도 지역 사회 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욕심을 버려?”
“네. 섬서성 성주님과 구룡루에서 번 돈의 삼 할을 산양현을 위해서 쓰기로 하였고, 매달 섬서성의 발전을 위해서 삼 할을 세금으로 내기로 약조하였습니다. 또한 구제 기금으로 이 할을 모으기로 하였으니 이래저래 나누면 제가 가져가는 돈은 없습니다.”
“그럼 네가 이득을 보는 건 없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저는 구룡루 외에도 다른 사업들을 하니 구룡루로 인해서 사람들이 산양현으로 모여들면 다른 영업장에서 이익을 낼 것입니다.”
“음…… 구룡루는 사람들을 모으는 미끼에 불과하다?”
“그러하옵니다. 유동 인구가 적으면 많아지도록 만들면 되고 그렇게 상권을 형성하도록 주변을 조성하면 됩니다.”
“상권을 만든다?”
“그러하옵니다. 저는 구룡루를 미끼로 아무것도 없는, 그저 그런 작은 동네 상권을 크게 만들어 근처에 있는 상남현, 상주현까지 유동 인구를 크게 늘릴 생각입니다.”
“음…….”
“만약 저의 뜻대로 되기만 한다면 상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자신들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상권을 확장시키고 번화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옵니다.”
“제법이구나.”
“민생을 파탄 낼 수도 있는 도박장이지만 반대로 살릴 수 있는 좋은 무기도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주영운은 화린의 말을 듣고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민아가 너의 절반만 닮았어도 내가 걱정을 한시름 놓을 텐데.”
“과찬이십니다, 숙부님.”
“형님께 안부 인사는 드리는 것이냐?”
“황궁을 나온 뒤 연락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무정한 놈, 황궁에서의 생활을 기억하고 싶진 않겠지만 그래도 너의 부친이시다. 요즘 왕자들 때문에 고민이 많으니 너라도 한 번씩 찾아뵙고 인사드리도록 해라.”
“그리하겠습니다.”
“그래. 다음에도 곡물을 부탁하마.”
“실수 없이 곡물을 안전하게 납품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영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앞에 있는 이 아이가 정말 바보 왕자라 손가락질당하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민아를 만나서 그 녀석에게 조언도 좀 해 주고 돌아가거라.”
* * *
“백대고수 두 명이 죽고, 곡물은 다 털렸다?”
“그렇습니다.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천맹의 제갈탁은 정보부의 부장인 미향에게 최근 무림에서 일어난 일들과 상림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보고를 하였다.
“트라빌 왕국에서 가지고 온 곡물을 감숙성에서 털렸다고 합니다.”
“곡물을 털었다는 건 전쟁을 위해서 물자를 비축해 둔다는 의미인가?”
“확실치가 않습니다. 곡물이 털렸지만 곡물을 훔친 자는 오리무중입니다. 또한 수천 가마니의 곡물을 훔쳤는데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흔적?”
“수레, 말, 등등입니다.”
“흔적 없이 가져갈 방법이 있나?”
“없습니다. 한 가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갈탁은 그 한 가지의 경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삼십 년 전 달아난 배교의 잔당들은 아직 찾지 못하였지?”
“죄송합니다. 저희를 비롯하여 사혈맹과 마교가 따로 뒤를 쫓고 있지만 아직 배교의 신녀에 대한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마교, 혹은 사혈맹이 그녀의 행방을 찾아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올라온 보고는 없습니다.”
“만약 살아서 지금까지 숨어 있다면 그 잔당들이 활동할 때가 된 것 같군.”
삼십 년이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무공을 익히든, 술법을 익히든 충분히 성과를 얻어 낼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정보부의 활동을 조금 더 독려해야겠군.”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교와 사혈맹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살피라고 해. 그리고 하오문과 개방의 도움을 받아서 배교의 잔당들을 더 수색하고.”
“화명상단의 곡물 탈취 사건을 배교의 잔당 짓으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흔적 없이 그 많은 곡물을 훔쳐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은 흔치 않다. 그 첫 번째가 술법을 이용해 상대의 눈을 속이는 것이다.”
곡물이 사라졌다고 믿게 만든 다음 말과 수레를 이용해서 곡물을 실어 나르는 것은 사실상 많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운 방법이다.
두 번째는 공간 주머니라는 술법을 이용하여 곡물을 공간 주머니에 넣어 달아나는 방법인데 이건 신선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자, 술법이기도 하였다.
배교의 고위 술법자들 중에서 이 공간 주머니를 이용하여 물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쓴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사라진 술법들이지 않습니까?”
“신녀의 행방이 모호하니 그녀가 살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술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미향은 제갈탁의 말에 반문할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걸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아. 그리고 자네 혁지석 단장과 동기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자네가 혁지석 단장을 한번 만나 보게.”
뜬금없이 그를 만나 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혁지석 단장이 그만둔다고 하네.”
“네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혁지석 단장이 그만두다니?”
“맹에서 나가 자신의 일을 찾아보고 싶다고 하더군. 이번 작전의 실패로 인해서 상심이 큰 듯하네.”
“아, 그 일이라면 마음을 추스른 다음 다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리 생각하여 휴가를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말을 해 보았는데 그만두겠다고 하더군.”
“그럴 사람은 아닐 텐데.”
“이번 작전에서 뭔가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지. 그래서 자네가 한번 만나 마음을 돌려 보게.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혁지석 단장과 같은 무인이 맹을 떠나면 우리 쪽에서 감수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생긴다네.”
“알겠습니다. 제가 만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리해 주게. 나는 맹주님을 만나 따로 이야기해 보겠네.”